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사업 잘 되는 친구를 찾아가라

그루 터기 2021. 6. 22. 08:00

제가 20대 후반에 결혼하고 얼마지 않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준비없이 사업을 했었던 것 같은데요. 변명하자면 그 땐 대부분 그렇게 시작을 하긴 했습니다. 한참 경기가 좋을 때고, 금형가공 외주가공업은 기계 한 대만 사서 시작하면 금방 커 갈 수 있기 때문에 너도나도 준비없이 시작했구요. 기계도 외상으로 준비할 수 있어서 작은 공간만 하나 임대하거나 친구 공장 한 구석에 자리를 빌려서 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친한 친구가 사업을 조그마하게 하고 있어서 그 안에 회사 간판도 없이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친구 따라 장에 간다고 그 친구가 한 번 해보라고 자꾸 권해서 못 이기는 척 시작했습니다.

 

고생 많이 했지요. 좋은 일도 많이 있었구요. 그런데 제가 사업 체질이기 보다는 연구 체질이라고 해야 하나? 뭐 장사에는 소질이 별로 없었나 봅니다. 외주가공이란 것이 가공 시간에 따라 돈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을 하거나 같은 일을 남들 보다 빠르게 하면 돈이 되는데, 남들보다 늦게까지 일하고 더 열심히 하는데도 매출이 작은 것을 보면 실력이 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제가 기억력이 부족하면 남들보다 몇 배 더 암기하려고 노력하듯이 그 때도 제가 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아서 매일 밤 늦게까지, 어떤 날은 새벽까지 일하면서 남들보다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2년 뒤 기계값을 다 갚고 데리고 있던 직원 3명과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도 갔다오고 이제 조금 자리가 잡혀 갈 즈음, 평생 겪지 않아도 될 거래처가 부도가 났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가리봉동 방두칸짜리 남부아파트에 방 한 칸을 빌리고 부엌을 같이 사용하던 생활을 탈출하고, 가리봉오거리 부엌 딸린 집으로 이사를 가기위해 이삿짐을 싸는 중에 부도소식을 접하고 집사람과 4살 큰아들, 갓 태어난 작은 아들을 부등켜 안고 펑펑 눈물을 쏟았습니다.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사용한 어음이 돌아올 시기에 어음을 할인해 준 다방 사장님의 매일 같은 독촉에 결국 기계를 모두 팔고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때 금형기술자의 취직은 사람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거래하던 거래처의 결재관계와 데리고 있던 직원들 문제, 그리고 기계를 제외한 나머지 어렵게 구한 공구들이 아까워 고민 끝에 친구의 도움을 얻어 다시 기계를 외상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기계를 주문하고 출고가 되는 약 6개월 동안은 친구 회사에서 봉급을 받고 일을 하였구요. 6개월을 잘 견디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여 20년 동안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엊그제 책장을 정리하다가 종이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그 어려울 때 내가 스스로 다짐했던 작은 다짐인데 기억이 새롭네요

 

 

과연 내가 이 내용을 얼마나 지키며 살았을까요?

그 때 내가 책상 앞에 적어 놓았던 글을 옮겨 봅니다.

 

 

 

 

사업 잘 되는 친구를 찾아가라

절대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

용기를 가져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라

친구에게 의무감을 부여하라.

크게 봐라

외국어를 해라

공부를 해라초심을 생각해라

 

 

다른 것도 제대로 한 게 별로 없지만 외국어를 해라하는 내용은 전혀 하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영어도 일본어도 완전히 빵점에 가까우니까요.

 

 

그 때 찍은 기계 사진입니다  
저의 사진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직원사진이었네요...
이 친구는 졸업하고 우리회사에 처음와서 초보때부터 하나하나 가르친 친구인데요, 요즈음은 중소기업의 공장장으로 재직중에 있구요. 가끔 만나 소주 한 잔씩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