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우리 아파트 앞에는 나하고 비슷한 나무들이 있다.

그루 터기 2021. 6. 23. 08:00

우리 아파트 앞에는 나하고 비슷한 나무들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33년 된 늙은 아파트이다. 소위 말하는 재건축을 해야 하는 아파트이다.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단지 내에 큰 나무들이 참 많다.

 

직장 생활 할 때 일본에 자주 갔었는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도시 내에 나무들이 많은 것을 보고 참 많이 부러웠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기후조건이나 도시 생성, 역사 등 여러 조건이 달라 나무들이 많겠지만 우리도 이제는 조금씩 도시에도 나무가 늘어나는 걸 느낀다.

 

특히 우리 아파트에는 아파트 나이만큼이나 큰 나무들이 많아서 좋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아파트만 놓고 본다면 이제는 내가 일본에 갔을 때 부러워했던 그 수준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게 또 문제가 되나보다

처음 아파트를 건축하고 분양 할 때는 나무들이 작아서 좀 많이 심었을 것이고, 아파트와 거리도 가깝게 심은 것 같다. 그 나무들이 이제는 너무 크게 자라다 보니 전체적인 숲이 된 것은 참 좋은데 생활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아 진 것 같다.

 

제일 문제가 되는 나무들이 단연 조망권이나 일조권을 침해하는 나무들이다.

저 같이 높은 층에 사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지만 1~5층 정도의 낮은 층에 사시는 분들은 화단의 나무로 인해서 거의 밖이 보이지 않고(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아 좋은 점도 있지만) 특히 햇볕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또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 중에 아파트 앞 화단 옆 도로는 화단에 심어놓은 키 작은 나무들(주로 쥐똥나무 같은)이 반 정도는 통로 쪽으로 넘어져 나와서 길이 부족하다,

이 길에 어린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어서 위험하기까지 한다.

 

또 한 가지는 건물 측면 벽과 아주 가깝게 심어놓은 메타세콰이어가 오래되어 뿌리가 아파트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확인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 나무는 세계에서 키가 제일 큰 나무답게 높이가 너무 올라가서 하나 같이 동강동강 몸뚱아리가 잘려있다. 참 보기 싫다.

 

한 때 공기정화에 좋다고 은행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우리 아파트도 예외는 아니라서 정말 은행나무가 많다.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좋은 선물을 준다, 열매도 그렇고 잎도 약을 제조하는데 사용하고, 가을이면 정말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딱 한가지 만 빼고서는.

 

모두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은행나무 열매 껍질의 냄새는 더도 덜도 아니고 사람의 변 냄새와 똑 같고, 가을에 온통 도로나 주차장에 떨어지면 지나가는 사람의 발에 밟혀 심지어는 엘리베이터까지 냄새가 진동할 때가 있다.

아파트에 청소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청소를 한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다 떨어지는 봄철이 되어서야 그 냄새에서 해방이 될 수 있다 보니 주민들의 불만이 보통이 아니다.

한 때는 은행나무의 암나무만 전부 잘라 버리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실천하지 않은 걸 보면 자연의 섭리로 암나무만 잘라 버리면 수나무도 성장하는데 지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드디어 작년에는 주민들의 불만에 못 이겨 구청에서 아파트 내의 은행나무들을 가지치기했다. 보통 가지치기란 너무 많이 자란 가지들을 잘라 나무가 균형 잡힌 모습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번 가지치기는 목적이 다르다보니, 완전히 잘라버리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가지치기를 했다.

그 덕분(?)에 올해는 은행이 많이 열린 나무가 별로 없고, 주위가 훤해 보이기는 하다. 훤해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 나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것 뿐 아니라 저층 아파트 앞 오래된 나무들도 가지치기의 수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건 은행나무보다 더 심한 것 같아 안타깝다.

숫제 그루터기에 가깝게(과장된 표현이지만) 나뭇가지를 전부다 잘라 버려 처음에는 살아날 수 있을 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 문득 지난 번 자른 나무가 생각나서 눈길을 돌려 봤더니, ~~ 외마디 소리가 나왔다. 나무의 생명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람 같으면 몇 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정도로 싹둑 잘라버린 나무인데 무성하게 잎이 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몇 년 지나면 다시 멋진 가지를 벌리며 무성한 그늘을 만들어 줄 것 같아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이 순간만큼 1층 주민의 생각은 접어두기로 한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 나무야!

 

이 나무를 보면 지금 나와 같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팔다리가 다 잘려 이젠 사회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내 스스로는 나무처럼 앞으로도 할 일이 참 많아서 그냥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새로운 잎을 넉넉히 피우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아니 이미 나는 내가 느끼기도 전에 새롭게 잎을 피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나무야!

비록 멀지 않아 재개발이 되면 다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될 나무지만 그래도 너랑 같이 있는 그날까지는 내가 자주 관심을 가져 줄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너에 대한 최대의 권한(?)인 것 같다. 난 너를 살리거나 죽일 수 있는 자리에 있지도 못하고, 나도 너와 똑 같은 처지니까 친구 하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