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죽자고 고생해서 벌어 놓고 쓰지도 못하고 죽으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지. 그건 안돼!!

그루 터기 2021. 7. 3. 08:03

 

 

오늘이 가족에게 통풍 커밍아웃을 한 후 20일 째입니다.

 

첫 날 그렇게 펄펄 뛰면서 걱정하고 잔소리 하던 마누라와 애들도 벌써 잊은 듯 무관심입니다. 완전히 무관심은 아니고 그냥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그나마 아내는 그동안 2~3일에 한 번씩 식탁에 올리던 고기류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시켜먹던 족발, 숯불바베큐, 쭈꾸미 볶음 같은 건 일절 없앴습니다.

 

! 하나 있긴 하네요. 몇 일 전 결혼한 조카가 제주도 처갓집 신행을 갔다가 사돈이 보내신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을 가져왔습니다.
대부분은 가까이 사는 애들 주고 두 개만 구워서 먹었었네요.
손아래 동서가 삼겹살를 보낼 때 주말 농장에서 재배한 상추랑 채소들을 같이 보내와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많이 먹은 건 아니구요.
고기는 옛날의 1/5~1/10정도 먹은 것 같고, 채소는 옛날의 3~5배 정도 먹은 것 같습니다.

 

제가 고기나 회 등 음식을 먹을 때 보통은 채소를 싸 먹지 않고, 있는 그대로 먹는 걸 좋아합니다.
소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회나 족발 같은 것도 간장이나 막장, 고추장 같은 것에 살짝만 찍어서 먹고 삼겹살의 경우만 마지막에 상추에 조금 싸서 먹는 편입니다.
양념을 한 바비큐 통닭이나 쭈꾸미는 싸서 먹지를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아내가 항상 채소 좀 많이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그동안은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채소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메인 음식의 맛을 그대로 느끼는 것을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상추나 뜨거운 물에 데친 양배추, 배추 속잎 같은 채소만 있으면 다른 거 없어도 밥 한 공기 뚝딱 할 정도로 채소가 메인일 때는 또 채소만 열심히 먹습니다. 맛도 있고 포만감도 최고입니다.

 

이젠 꼼짝없이 바뀌었습니다. 엊그제 삼겹살을 먹을 때, 다른 사람이 먹는 크기의 삼겹살 한 점을 가위로 반 잘라서 숫자를 두 배로 만들었습니다.
먹을 삼겹살의 총량을 정해놓고, 채소를 듬뿍 가져와 몇 가지 채소를 겹쳐 밥 한 숟가락 뜨고, 반으로 자른 삼겹살 한 조각 올려서 큼지막하게 싸 먹었습니다.
먹지 못할 것 같은 고기를 먹어서 그런가? 참 맛있네요. 그동안 못 느끼던 맛입니다.

 

매끼 식사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침 식사는 오래전부터 생과일 쥬스와 견과류, 제철과일 위주로 먹던거라 변한 것이 없습니다.
점심은 친구들 만나 해결하거나 혼점으로 막걸리 한 잔 곁들여 해결 했었는데, 이제는 집에서 김치나 간단한 채소 반찬에 밥 2/3 공기로 해결합니다.
가끔은 통풍에 그나마 괜찮다는 메밀국수나 막국수, 산채 비빔밥을 혼자가서 먹고 옵니다.
오는 길에 있는 커피 테이크 아웃점에서 아메리카노 블랙으로 한잔 꼭 하고 옵니다. 어쩌면 그 커피 먹으러 나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은 아내가 퇴근하여 준비해서 먹는데 거의 채소쌈밥으로 먹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간단한 무첨가 빵이나, , 찐 감자와 과일로 해결합니다.

 

물도 많이 먹습니다. 평소에도 제가 물을 많이 먹는데 딱히 계산은 해 보지 않았지만 대략 1~1.5리터 이상은 먹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기본적으로 배 이상은 먹습니다.
물통을 책상 옆에 갖다 두고 수시로 먹고 있습니다.
물통의 크기가 1리터인데 그래야 얼마나 먹는지 감이 잡힐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몸에 좋다는 여러 가지 약초를 넣고 끓여서 먹었는데 지금은 순전히 물만 끓여서 먹습니다.
온도도 항상 사계절 똑 같이 미지근한 물로 먹습니다.

 

운동은 조금 줄였습니다. 그동안은 불규칙적으로 적으면 만보 많으면 4~5만보까지 무리하게 운동을 했었는데요,
요즈음은 많아야 만보 이하로 합니다.
아직까지 발목의 통증이 완전하게 좋아진 게 아니고, 조금 심하게 걷고 나면 발목관절에 미미한 신호가 오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걷기 운동 위주로 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어제 무심코 체중계에 올라섰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동안 살 좀 빼겠다고 저녁마다 안양천을 열심히 다녀도 겨우 1~2키로 빠지던 체중이 먹는 거 빼고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는데 20일 만에 3키로나 빠졌습니다.
그것도 보수적으로 이야기해서 3키로지, 정확히 따지면 4키로는 빠진 것 같습니다.
그동안 80.5키로와 81키로를 오고가던 체중이 어제는 77키로에 떡하니 멈춰 섰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체중을 갑자기 많이 빼지 말고 한 달에 1~2kg씩 꾸준히 감량하라고 하셨는데 털컥 겁이 납니다.
이거 괜찮은 걸까요?
먹는 거 약간 줄인 거 외엔 딱히 한 게 없는데 이렇게 갑자기 많이 빠지는 건 위험신호일까요?

 

이것 말고도 달라진 것이 또 있습니다. 그동안 통풍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에

먼저 인터넷에서 통풍에 좋고 나쁜 음식과 원인이나 치료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 통풍 카페에도 가입하여 그동안 환우들이 올려놓은 글들을 꾸준하게 읽어보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통풍 관련 동영상을 있는 대로 보고, 지나간 통풍관련 기사를 열심히 찾아봤습니다.
양천 도서관에 있는 통풍관련 책을 빌려보고(거의 없네요), 교보문고에 있는 통풍 책 두 권도 샀습니다.
한 권은 통풍의 원인부터 치료까지 자세하게 적혀 있는 책인데 일단 다 읽었습니다.
한 권은 통풍예방과 치료에 좋다는 음식에 관한 내용인데 이건 나 혼자 읽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아 거실 테이블에 놓고 집사람과 같이 읽어보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참 한심했구나 하는 것은 알게 됐습니다.
저에게 통풍 신호가 온 것이 무려 16년 전 쯤 인데 그 때부터 관리를 했으면 약을 먹지 않고도 충분히 관리가 됐을 텐데 너무 몰랐었구요.
두 번째가 몇 년 전부터 자꾸 발목이 아플 때 정확하게 통풍 진단을 받고, 통풍에 대해서 조금만 공부했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심하게 되지 않았을 텐데 그것도 아쉽습니다.
아니 작년 초 회사 다닐 때라도 조금만 통풍에 대해서 공부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어디의 정보를 들어봐도 거의 평생 통풍약을 먹으면서 지내야 한답니다. 참 바보 같고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동안 건강검진을 해도 딱히 심각한 멘트가 없어서 나이 먹으면 다 조금씩 문제가 생긴다고만 생각했지
하나하나의 항목에 대해서는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 요산 수치가 거기에 나오는지도 몰랐을 정도였습니다
.
소변의 산도를 측정한 값인 요산과 혈중 요산(uric acid)의 수치가 헷갈리는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참 많은 것을 느낍니다.
인생 2막을 시작하면서 건강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새로운 인생 막 시작하자마자 이런 일이 생겨서(사실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을 뿐인데) 갑자기 걱정이 앞섭니다.
그나마 아직은 통풍 외에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같은 것이 위험하지 않은 것 같고, 생명을 위협하는 병도 없어서 다행입니다.
통풍을 치료하기 위해 하는 식이요법이나 체중 감량, 운동, 음주 등이 모두 성인병과 관련이 있어서 앞으로 조심하고 조절한다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도 생각도 해 봅니다.

 

한식아! 할 수 있어

너 담배도 단칼에 끊었잖아!

그리고 너 평생 고생만 직싸게하고, 고생 고생해서 모은 돈 써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너만 손해잖아?“

 

 

 

 

이건 오늘 아침 식사이구요

 

 

 

 

물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점심 먹고 한 잔 하는 커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