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인생 첫 요리 배추전 도전기

그루 터기 2021. 9. 4. 20:07

배추전 도전기(요리 난이도 : 완전 초급)

 

 

   겨울철 별미 중에 배추전을 빼 놓을 수가 없는데요. 특히 전 종류를 좋아하는 그루터기로서는 배추전이 아니더라도 전 이름만 들어가면 좋아합니다. 요즈음 같으면 반찬으로 호박전이나 가지전, 고추전을 가끔 먹습니다. 제가 전을 좋아하다보니 반찬으로 먹는 경우보다 주식으로 먹는 경우가 더 많은데, 보통 부추전, 쪽파전, 대파전, 배추전, 해물파전, 감자전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자주 먹습니다.

   그런데요. 이제까지 전을 할 때마다 재료 다듬는 건 제가 도와주는데 직접 굽는 건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중간 중간 조금씩 거들어 준 건 있어도 제 솜씨로 전을 부쳐본 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늘 점심에 갑자기 배추전에 도전하고 싶어서 한 번 해 봤습니다. 요즈음은 감자를 갈아서 하는 감자전이나 대파전도 맛이 있는데 갑자기 배추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추전이 맛있을 계절을 아닌데 갑자기 하게 된 이유는 어제 시장을 보러가서 된장에 찍어먹을 배추 속을 두 개 사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배추와 밀가루만 있으면 다른 준비가 별로 필요하지 않으면서 맛도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배추전을 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비슷비슷하지만 반죽이나 배추에 반죽을 묻히는 방법이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지난번 티비에서 백종원세프의 레시피는 반죽에 계란을 넉넉히 넣어 색상도 더 노랗고, 고소한 맛도 더 난다고 했는데 저희집은 가장 배추의 맛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일명 가난한 배추전입니다.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배추전을 할 때 가능하면 밀가루를 적게 넣고 부쳐서 거의 배추의 물맛만 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또 한가지는 탕수육 먹을 때 ‘부먹’과 ‘찍먹’으로 선호도가 나누어지는데, 배추전도 부칠 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배추전을 먼저 반죽한 밀가루에 담궈서 충분히 묻힌 다음에 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올려놓는 방법이구요. 또 하나는 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배추를 올린 다음 아주 묽은 밀가루 반죽을 뿌려주는 방법입니다. 인터넷에 보니 대부분은 첫 번째 방법으로 하고 두 번째 방법을 보조로 해서 배추전을 부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집은 두 번째 방법을 좋아하고 특히나 밀가루를 아주 조금만 넣고 물을 많이 넣어 거의 콩국수 물 수준으로 만들어 숟가락으로 살짝만 묻혀서 부칩니다. 이렇게 하면 거의 밀가루 맛을 모르고 순전히 배추의 풋내만 많이 나는 맛입니다. 어떨 때 보면 정말 배추만 부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 나름의 맛이 정말 좋습니다.

 

   오늘 난생 처음으로 배추전에 도전했는데요. 우선은 밀가루를 찾은 것부터 한 참 고생을 했습니다. 분명히 지난번에 아내에게 물어 봤을 때 냉장고 문 안쪽에 있다고, 했는데 문 네 쪽을 몇 번씩 찾아봐도 없었거든요. 부엌의 수납장을 다 열어봐도 없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냉장고 뒤쪽 깊숙한 곳에 통밀가루가 있네요. 싱크대 밑에서 적당한 후라이팬을 꺼 내구요. 전을 부칠 때 쓰는 콩기름도 찾아놓고, 냉면 그릇에 밀가루 두 스푼에 물 큰 컵으로 하나를 섞으면 모든 준비는 끝납니다.(소금간을 조금해도 되는데 간장에 찍어 먹기 때문에 간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 제일 중요한 배추가 빠졌네요.    배춧잎 큰 걸로 4장 준비했습니다.

   배추를 엎어놓고 칼등으로 톡톡 쳐서 숨을 죽이고, 달궈 논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배추를 올립니다. 이때 달궈진 기름에 배추에 있는 물이 묻어서 장맛비가 쏟아지는 소리처럼 ‘찌찌찌찌’ 들리는 게 너무 좋습니다. 불기운에 약간 숨이 넘어갈 때쯤 숟가락으로 밀가루 반죽물을 떠서 배추 두 장 사이와 주위에 약간씩 발라 줍니다. 밀가루를 넉넉히 넣는 걸 좋아하시는 분은 반죽을 조금 되게 해서 하시면 되구요. 저처럼 밀가루가 있는지 없는지 정도로 하시고 싶으신 분은 물을 조금 넉넉히 넣어 묽게 하면 됩니다.

 

   밀가루가 살짝 익었구나 싶을 때 주걱으로 한 번 뒤집어 주구요. 다시 밀가루 반죽물을 숟가락으로 살짝만 발라줍니다. 이 때도 밀가루가 익어가면 다시 한 번 뒤집어 줍니다. 가끔 보면 아내가 이럴 때 후라이팬 주변에 조금씩 기름을 추가해 주는 걸 봤는데 저도 한 번 해 봤습니다. 생애 첫 배추전 작품이 완성 되었습니다. 후라이팬을 흔들고 비스듬히 기우려 도마에 올려놓고, 다시 새로운 배추전에 도전했습니다. 한 번 하기가 덜덜 떨리고 조마조마 했지 한 번 하고 나니 자신감이 ‘뿜뿜’입니다. 다시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배춧잎을 올리고, 밀가루 반죽을 올린 다음 잠시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도마 위에 올려진 완성된 배추전을 칼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 접시에 담았습니다. 두 번째 전도 완성을 해서 같이 접시에 담고, 준비해둔 양념간장을 꺼내 식탁으로 옮겼습니다.

   처음하는 배추전인데 자주 하던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구워져서 저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모양도 근사하고, 작업과정도 너무나 부드럽게 진행이 되어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도 40여년을 옆에서 보고 마인드 콘트롤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간단하게 주방을 정리하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는데 제일 중요한 맛을 어떨지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른 건 특별히 조리하고 할 내용이 없으므로 괜찮은데, 겨울이 아닌 가을에 그것도 속박이 배추로 처음 전을 먹어보는 거라서 맛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완전히 대박 맛입니다. 보통의 배추전이 거치고 물맛 나는 맛이라고 한다면 이건 약간 고소하기도 하지만 엄청 부드러워서 입안에서 씹을 것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살살 녹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부드럽고 맛있었습니다. 정말 내가 만든 거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랄 맛이었습니다. 첫 젓가락질을 시작한 후 마지막 젓가락까지 3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한 접시를 비웠습니다. 마지막 한 개를 먹고 난 아쉬움이라니...

 

   오늘 배추전 도전은 대대대박입니다. 대대대 성공입니다. 이젠 제가 할 수 있는 음식이 라면 끓이는 거 외에 하나 더 생겼습니다.

 

   배추전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전송했습니다.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잘했네요. 맛있게 드세요”

 

   제가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벌써 다 먹었어요.”

 

 

 

인생 첫 번째 작품(?)입니다. 

 

 

두 번째 작품도 완성되어갑니다. 

 

 

 

식탁으로 옮겨 한 컷 찍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아주 작은 속은 막장에 찍어 먹으며 밥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행복한 하루가 깊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