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림태주님의 『그 토록 붉은 사랑』세 꼭지 필사

그루 터기 2021. 12. 5. 20:22

   새벽잠에서 깨어나 흐린 눈을 비비고 책상에 앉았다. 어제 저녁부터 읽던 림태주님의 그토록 붉은 사랑을 펼쳤다. 주옥같은 글들을 메모를 하며 열심히 읽어가던 중 어머님께서 남기신 글을 옮긴 듯한 장례에 관한 글을 맞닥뜨렸다. 죽고 나서 치루는 장례식과 추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끝까지 읽었으나 어머님의 글이라는 내용이 없었다. 작가님이 옮긴 유언장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장례식의 모습에 순식간에 세 번을 읽었다. 나도 요즘 유언장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한다. 장례식 절차도 결혼식 절차도 허례허식이 너무 많다고 느낀지 오래다. 애들 결혼식에서도 가능하면 기존의 방식보다는 정말 가까운 가족들이 모여서 축하해주고 즐길 수 있도록 기존의 방식을 많이 배제하고 애들만의 방식으로 치뤘다. 내 장례식도 간소하고 무겁지 않은 장례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나에 대한 추모>는 그런 나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하는 글이었다. 책을 읽어가는 것을 멈추고 필사를 시작했다. 금방 끝난 필사가 아쉽다.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장례식을 치루라고 부탁하고 싶다. 절대 슬프지 않게.

 

 

 

그 토록 붉은 사랑, 림태주, 행성B잎새, 2016

 

<나에 대한 추모>

 

   나는 살아서 충분히 외로웠으므로 죽어서는 외롭고 싶지 않다. 산자를 위한 장례식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장례식을 해주길 원한다. 나는 죽은 자의 기억은 별빛과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내보냈으나 아직도 미련처럼 남아서 천천히 소멸되는 아스라한 빛. 그래서 죽은 자는 스러지는 기억과 함께 천천히 풍화되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삭제 버튼을 눌러 손가락 하나로 단숨에 소거해 버리지 말아다오. 바람과 햇볕과 구름과 비가 시간을 들여 조금씩 나를 허물어 가도록 내버려다오. 나에 관한 산 자의 기억도 그렇게 풍화되기를 바란다.

   나는 차가운 곳이 싫다. 그러니 내가 내 시신을 냉동고에 오래 안치하지 말고, 염 같은 부질없는 의식으로 죽은 몸을 꽁꽁 묶지도 말아다오. 그냥 몸뚱어리 그대로 입던 옷 입혀서 허름한 나무로 짠 관에 넣어 묻어다오. 묻을 때 봉분 같은 건 필요 없다. 묏자리를 애써 구할 필요도 없다. 한적한 산속 어느 나무 아래라도 좋으니 수목장을 해다오. 내가 서러웠던 미루나무도 좋고 즐겼던 매화나무도 좋고 오리나무라도 상관없다. 나무에 의지해 밥을 먹고 살았으니 죽어서는 나무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해 주고 싶다. 내 육신의 즙이 뿌리에 닿아 고운 꽃을 피우고 실한 열매를 맺는데 쓰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제부터 내가 이르는 대로 3일 동안 나를 추억하는 의식을 행해 주면 좋겠다. 첫날은 내 죽음을 알리는 데 시간을 써라. 언제라도 기꺼이 달려와 시신을 거두는 일을 도와줄 내 일생의 친구 이름과 연락처를 따로 적어 두겠다. 내 부고를 알릴 때는 문자 메시지만 달랑 보내지 말고, 수고스럽더라도 직접 내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 말해주면 좋겠다. 그 명단은 따로 작성해 두겠다. 전화를 받는 이가 내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먼저 아는 체를 할 것이다. 그때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내가 편안하게 눈 감았다고 전해라. 내 죽음을 알릴 명단에 당신께서 있었다고, 마지막까지 당신을 소중한 친구로 여기고 갔노라고 알려 주어라.

   죽어서도 꽃향기를 맡고 싶다. 친구들에게는, 올 때 내가 평소 즐겼던 꽃을 들고 와달라고 부탁해라. 화려하고 수북한 꽃다발 말고, 장미나 프리지아 같은 흔한 꽃 한 송이면 족하다. 그러니 국화꽃 무더기로 빈소를 치장하지 마라. 영정 사진은 따로 정해 두지 않겠다. 너무 젊은 시절의 사진도 죽기 직전의 초췌한 사진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제발 향은 피우지 마라.

 

   둘째 날은 내 친구들이 내가 살았던 집에서 내가 쓰던 물건들을 구경하고 나를 추억하다 가게 배려해라. 한 번도 내 집에 와 보지 못한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죽어서 뒤늦게 초대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셨다고 대신 전해 드려라. 내 사진첩이며 내가 쓴 일기장이며 내 책들과 만년필과 손수건 하나까지도 볕드는 창가 쪽 탁자 위에 올려두고 그들이 쓰다듬고 매만지고 추억하다 가게해라. 혹 어느 친구는 자신과 관련 있는 물건을 오래 만지작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것을 아끼지 말고 그에게 내 주어라. 번거로운 음식을 하지마라. 평소 내가 일상으로 먹던 밥과 국과 반찬을 나눠라. 친구들도 내 뜻을 알 것이다. 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을 테니 술도 내놓아라. 아마도 그들 중에 과하게 취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민망하다 여기지 말고 나를 추억하느라 그런 것이니 감당해 주면 좋겠다.

 

   셋째 날은 흙을 들추고 나무뿌리가 다치지 않게 나무 아래 가볍게 나를 묻어라. 포크레인으로 깊은 구멍을 파고 거기에 무거운 관을 넣는 일은 얼마나 위악적이고 암담하더냐. 봉분도 묘비석도 세울 필요 없다. 무덤의 흔적을 남기지 말고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사라지게 해다오. 욕심 같아선 그 나무가 봄이면 환히 꽃이 피어 흐드러지고 그 꽃이 지고 나면 새록새록 단물이 차오르는 열매를 맺는 과실나무였으면 좋겠구나. 영혼이라는 것이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염원이 만들어낸 허전한 말이라는 걸 알지만, 내 영혼이 있다면 꽃나무에 스며들어 그 나무가 생을 다할 때까지 햇볕과 바람과 빗방울과 눈송이를 맞고 싶구나. 집에 돌아와서는 내가 너희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함께 읽기 바란다. 이로써 나를 추모하는 일은 끝났다.

 

   49재도 필요 없다. 1주기가 되었다고 향을 피우고 제사상을 차리는 그런 고리타분한 짓은 하지마라. 내가 죽은 날을 기리지 말고 늘 그랬듯이 내가 태어난 날에 다함께 모여 축하하고 음식을 나누면 좋겠다. 죽은 날은 나 혼자만 기억되는 날이지만 내가 태어난 날은 나를 있게 한 너희 조부모가 함께 기억되는 날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너희들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위해서 그리해다오. 우리가 가족임을 확인하고 축복하는 하루이니 그날만큼은 꼭 같이 모여 정을 나누기 바란다. 나에 관한 기억보다는 너희가 사는 일의 현재를 도란도란 나누기 바란다. 엄숙하고 무겁게 죽음을 받아들이지 말고, 봄날을 맞듯이 환하게 맞아 주면 좋겠다.

 

 

<맑은 날의 조문>

 

   맑은 날이다. 죽은 이를 조문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날은 포근하고 바람은 불지 않는다. 나는 죽은 이가 어떻게 세상에 왔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다 내 혈족과 인연이 되었고, 같이 밥과 술을 나누는 사돈으로 맺어졌다. 영정사진을 망연히 바라보고 두 번 절하고 애도했다. 그렇게 그와 맺은 모든 인연을 놓아 보냈다. 나는 그가 산자들을 위해 남기고 간 밥 한 그릇을 묵묵히 얻어먹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날이 있다. 삶이 죽음 같고, 죽음이 삶처럼 여겨지는 산다는 일이 실체가 없는 듯 막막한, 아무것도 감각되지 않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의 지금이 현실인지 환각인지 분간이 안 돼 당혹스럽다. 사람들이 내일이라도 나를 조문하러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아무도 내일이 먼저 올지 내세가 먼저 올지 알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조문한 이들과 나를 조문한 이들과, 조문을 맞이하는 내가 무엇으로 다른 것인가. 시간 앞에 그 다름이란 것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 것인가. 인간이 신앙처럼 떠받드는 많이오래도 우주의 광대무변 앞에서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한숨이고 티끌이다.

 

   삶의 요체는 축적과 차지가 아니라 비움과 나눔이다 조문을 가면 먼저 죽은 자들은 늘 이 두 가지를 명명백백하게 알려 준다. 이것은 사유가 아니라 삶의 감각이다. 이 구체적인 감각이 무뎌지고 만져지지 않으면 그때를 죽음이라고 한다. 죽은 자의 것 중 기릴 것이 있다면, 그가 살아서 얼마나 나누고 베풀었는가이다. 그것을 산 자들은 덕망이라 부른다. 삶을 감각하고 있는가, 나여.

 

 

 

 

   책을 마져 읽고 나서 다시 첫 번째 글을 읽는다. <어머니의 편지>. 이젠 필사를 한다.

(어머니가 직접 쓴 편지가 아니라 평소에 어머님께서 하시던 말씀과 살아생전 당부하시던 말씀을 유언의 형식으로 엮은 거라고 한다.)

 

<어머니의 편지>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는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이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 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도량이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 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러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 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한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 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지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는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 했더라도 어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 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대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어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