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졍현우, 웅진지식하우스, 2021
슬픔은 슬퍼할 필요가 없다. 슬픔으로 이미 아름다운 마음이다. 작가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읽는 내내 난 슬펐다. 책을 읽고 슬픔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깊숙이 간직했던 슬픔이 올라옴을 막을 수 없었다. 엄마의 일기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작가의 글에서 나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 그래도 읽으면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사랑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고, 엄마의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 아부지도....
저자 소개
정현우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있다. 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
독서 메모
떠난 사람들이 찾아와 잠긴 문을 두드리는 날에 나의 문장은 쓰였다. 우리의 슬픔과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슬픔은 지금을 쓰고 사랑은 과거를 쓴다.
아픈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엄마는 자주 집을 비웠고, 나는 끼니를 자주 걸렀다.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오지 않는 날에는 다락방에 들어가 생라면을 부숴 먹었다. 창밖 고드름이 다락을 가릴 정도로 크게 자라면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눈의 여왕』을 읽고 또 읽었다. 동쪽으로 나 있는 창밖에서 눈의 여왕이 얼음 마차를 끌고 나를 데리러 와줄 것만 같았다. 거대한 겨울 앞에서 혼자 슬퍼지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가난과 눈 속에 남겨진 겨울의 벼랑 끝에서 나는 자주 웅크려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자주 울컥하게 되는 것, 자주 뭉클해지는 것임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백과사전에서 병아리에 관해 찾기 시작했다. “병아리는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해야 합니다”라는 말에 방바닥을 데우려고 보일러의 온도를 올렸다. … 병아리는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었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웅덩이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 물속에서 수면 위로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보는 것, 그리고 함께 휘청해보는 것이라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고요히 그 존재를 다치지 않게 안아볼 수 있었을까. 그럼 사랑을 주는 기분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랑은 알게 되는 것뿐. 사랑은 예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엄마는 모든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뭐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일기장을 훔쳐보기 전까지는. 엄마의 일기장을 옮긴다. … 금천 재근중학교에 입학했다. 육 개월 동안 다녔는데 엄마가 공납금 삼천오백 원을 주지 않았다. 나는 쓰레기통에서 다 찢어진 교복을 주워 입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공납금을 가져오라고 머리를 때렸다. 다음 날 엄마에게 졸랐더니 주워온 교복과 책가방을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나는 그걸 다시 주워 마당에 펼쳐놓았다. 소나기가 내렸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아침, 학교 가려고 기찻길을 지나는데 기차 소리가 너무 커서 내 울음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너는 불빛이 꺼지지 않게 어둠 속에서 촛불이 켜진 랜턴을 들고 있어야 해. 그리고 너 혼자 서 있어야 할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해. 눈물은 촛농과 같으니까. 우리의 몸이 전부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울어도 돼. 인간의 몸은 기쁨과 슬픔으로 만들어져 있고, 우리에게 기쁨을 만질 수 있는 총량은 정해져 있으니까. 우리가 다 써야 할 기쁨의 촉감을 만지기 전까지, 너는 촛불을 꺼트려서는 안 돼.
들썩이는 아버지의 등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목욕탕에 들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비록 그렇지는 못했어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 다 이해한다고 아버지에게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 있잖아, 이름을 불러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 “더 많이 기억하라는 거?” “ 잊지 말라고 자주 불러주는 거야. 우리 아빠도 자꾸 이름을 잊어버리거든, 그래서 자꾸 불러줘야 해.”
그러나 우리는 두 눈에서 펑펑 울음을 쏟겠지. 우리의 겨울 빛은 잠에서 영영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몰라. 우리는 빛을 태어나고 빛으로 쓸려 가는 마음, 눈물은 왜 투명한 걸까. 울고 나면 왜 두 분이 따뜻한 걸까.
햇살이 들지 않는 방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이에게 기어이 사랑은 온다. (…) 안다. 우리를 긴 잠에 빠지게 하는 죽음만이 우리를 투명하게 만드는 슬픔만이 기어이 사랑으로 서 있다.
나는 평화로운 사랑이 궁금해졌다. 따끈한 크림 스프와 토스트가 있는 그런 화목한 저녁 풍경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것이지. 나의 산타가 가난한 엄마나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는 바닥에 떨어진 참외들을 이리저리 마구 던졌다. 작은 씨앗들이 바닥에 왈칵하고 여름의 투명한 내장처럼 쏟아졌다. 참외는 힘없이 샛노랗게 터져버렸다. 나의 아버지가 가진 슬픈 구멍처럼 보여서 나는 잠깐 무너져버린 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했다.
내게 엄마와 아버지가 없는 날이 온다니. 거스를 수 없는 시간과 떠나보내는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견뎌야 하지. 정말로 그런 날이 와 버릴까 봐, 보고 싶은 마음을 말하면 왜 투정이 되는 걸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라 하자.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날것이니까. 나이가 들수록 인정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각자의 소년에서 머무르고 싶을 거야. 눈이 먼 새들이 여름을 꿈꿀 때 영원히 이어지는 빛의 터널 속에서 철없는 소년의 목소리.
식은 밥에 콩잎 장아찌를 손으로 찢어서 먹는 엄마의 굽은 허리를 보았다. 한 움큼씩 푸른 콩잎처럼 부풀던 엄마의 열여덟 살이 떠올랐다. 엄마도 한때는 흰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이고 싶었을 텐데. 솜사탕처럼 떠 있는 구름들을 떼어 먹기도 하면서. 콩잎들 사이에 핀 유채꽃들처럼 하늘거리고 싶었을 텐데. 엄마가 혼자 분리수거함을 뒤지던 날, 나는 처음으로 당신과의 결별을 다짐하였지만, 나는 당신으로부터 분리 될 수 없는 생. 내가 없는 그날의 콩잎들은 나의 모진 마음을 알았을까. 그래서 더 깊게 우거졌을까.
빛은 빛에게 약속한 적이 없지, 빛은 빛이듯이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나를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 그대를 사랑할 수 있겠다. 사랑이 사랑이듯, 내가 나이듯, 네가 너이듯, 그냥.
그런 기억들 사이에서 멍하니 나는 서서 결국 죽어 있는 것들 사이에서 서성거리고 맴돌다 갈 뿐. 나는 외로워지고 싶지 않아.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또 잊어. 다시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해. 추억을 오래 견디는 사람이 패자가 되는 법칙이 있지. 바보 같다고 해도 나는 그 아픔들을 견뎌보고 싶어. 그건 울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마음일 거야. 잊지 말아야지, 모두 다.
작은 키로 태어난 나는 왼손잡이였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일 학년 칠 반의 화분을 가져오라고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켰다. 화분을 들고 오다가 그만 돌부리에 넘어졌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뛰어갔다. 화분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숨겨두었던 꿀단지를 들고 하수구에 꿀을 다 버렸다. 거기에 꽃을 옮겨 심어 선생님께 가져다주었다.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내게만 꿀단지가 사라졌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숙제하는 척을 했다.
정말 죽고 싶은 그 사람의 밤을 생각하면, 이 생의 기억이 지워지지 전까지 살아만 있어달라고, 그사람의 푸른 밤과 슬픔을 안아주라고, 더 꽉 끌어안아 주라고, 모두가 너를 사랑할 수 없으니, 너는 너를 사랑할 의무가 있지.
세상엣 가장 아름다운 독백은 내가 나에게 전부였던 시절, 뜨거운 문장들로 당신을 붙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나에게로 부딪힌 계절에 오로지 하나의 마음으로 읽히는 당신의 독백을 모두 다 외울 듯 하였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영어 학원, 주산 학원에 다녔다. 사촌의 고등학교 졸업장을 빌려서 서우레 있는 주식개발 회사에 취업했다. 처음에는 경리과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사장님께서 일을 잘한다고 비서실로 보내주었다. 야간 근무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교복을 입고서 웃고 있는 여자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흘러나왔다. ( 작가의 어머니 일기 내용이다. 작가의 어머니 나이가 나와 비슷한 나이인가 보다. 19살 시작한 객지 생활에서 이웃에 사는 여공들 중 여러명이 친구나 언니, 혹은 동생 주민등록증을 빌려서 취직을 했었다. 내 친구의 여친도 동생의 졸업장을 빌려 취직을 했다. 취직한 회사가 꽤 괜찮은 외국계 회사인데 그 회사에는 대학 동기가 근무했는데 내가 소개를 해서 합격을 했다. 명절에 시골에 다녀오더니 오리를 두 마리 잡아 삶아서 왔다. 그땐 연락이라야 직접와야하는데 나도 야간에 늦게 퇴근하니 며칠동안 만나지 못했다. 오리가 상할까봐 한 마리는 자매가 먹고 한 마리를 며칠 뒤에 나게게 전해 줬다. 친구랑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슬픈 기억이다. 김정호의 하얀나비도 많이 불렀었다. 음~ 생각을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네가 나의 마지막이 아니라도 쉽게 울고 웃을 수 있는 거야. 사랑은 지나치면 그만이니까. 또다시 올 거니까,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물어도, 너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겠지만.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는 순간은 너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때지. 내가 없는 곳에, 그곳의 나는 무심히 빛나고 있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없는 그대가 더 많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한 시절 나의 가장 찬란한 슬픔, 잘 지내.
슬픔을 잊는 방식이 더딘 사람도 있고, 성실하게 슬픔을 비워내는 사람도 있다. 멀리서 걸어오는 너의 얼굴이 그립지 않고 첨벙이는 노래들이 이제 들리지 않을 때, 이토록 사소한 하나에 반응하고 더 이상 그 대상을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될 때, 잊는 것 또한 아주 평범해진다. 나도 모르게 닳아버린 칫솔처럼. 잊는다는 건 아주 평범하고 사소하게 휘어진 사랑. 사랑은 습관이 될 수 있으나 이별은 습관이 될 수 없으니, 그래서 잊는다는 건 성실하게 앓는 것. 우리는 묵묵히 흐른다. 아주 평범하고 성실히.
떠나고 알게 되는 것들은 겨울의 경계에서 온다. 마음과 기억 사이에 눈이 오는 것처럼. 폭설처럼 많이 내려서 그곳에 갈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얼음 장막을 한 꺼풀 벗겨내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를 떠난 것들이 너무 많아 어쩔 도리가 없이 그 자리에 얼어버리게 되는. 닿을 수 없는 마음은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간밤의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겨울 수평 너머에서 건너올 수 없는 영혼들을 푸른 얼음물에 잠겨 출렁이고. 오르골 속에서 춤을 추다가 멈추어 서 있겠지. 교율 오단거애 사건울 돌려놓을 수 있는 태엽이 있다면 다시 돌리고 싶다. 들여다보고 싶다. 콰직 곧 깨지고 말겠지만.
나의 아버지는 허공으로 올리는 낚시 바늘 끝에 할아버지의 귀먹은 귀를 건져 올리고 싶었으리라. 나는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이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일어나 봐요, 아버지! 아버지, 끝까지 이럴거예요.”
지금은 문지방을 밝지 않게 조심해 다니고, 손톱은 한 곳에 모아둔다. 베개는 가지런히 베고 눕는다. 나는 이상하게도 할머니가 내 귀에 대고 조곤조곤 말하던 금기들을 지키며 산다.
우리는 끝없이 애도해야 한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 슬픔과 마주 보며 우리가 인간임을 알기 위해서. 그 사람의 빈집까지 사랑하기 위해서. 죽음 또한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른 일부임을 인정하기 위해서. 그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초라하고 위대한 초능력일지도. 나의 모든 것들을 잃는 순간이 오면 나는 알게 되겠지.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을 이별하고 있는 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에 대해서. 살아 있다는 건 결국 울어야 아는 일이라고. 한 사람을 위한 애도는 그 사람의 숨이 꺼지지 않게 내가 사라지지 않게 우리가 숨을 쉬게 만드는 힘이라고. 사라지는 것의 발목을 끝까지 붙잡아두는 일이라고.
어떻게 날 버린 마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은 아름답고 쓸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니, 온전히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랑과 울음은 언제나 한 몸이니까.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거니까. 그래서 걸을 때마다 찍히는 사람의 발자국과 마음은 두 개인 걸까.
인생은 아주 초라하면서 아주 특별한 꿈을 사는 것. 보이지 않는 슬픔의 물속에서 나의 세상으로 걸어 나가는 것. 내 슬픔의 걸음이 느린 것은 태어나서 매일 처음을 만나기 때문. 그대의 오늘과 내일은 같은 날이 없고 모든 것이 처음으로 시작된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처음으로 흐른다. 다시라는 단어가 없는 시간 속에서 매일을 시작하는 처음을 가진 그대는 잊지 말기를 . 우리는 다시 쓰일 수 없는 기적이라는 걸.
완벽히 사랑을 과거형으로 쓸 수 있는 순간에 대해. 일상적이고 아주 사소한 순간 안에서, 모든 것은 한순간 시작된다. 걷다가 지붕 위의 풍향계를 바라본다. 잊히는 것들은 또 다른 시간에 밀려 흘러가고, 그 순간에 매달려 있는 우리들.
시장 과일 가게 아저씨에게 썩거나 상처 난 과일이 없냐고 물었다. 집에 있는 토끼를 준다고 거짓말을 했다. 썩은 부분은 도려내고 감쪽같이 깎아서 아이들에게 준다. 시장에선 나를 토끼 아줌마라고 부른다. (둘째를 낳고 나서 회사가 부도로 정리를 하게 되었다. 쌀도 떨어지고 돈도 떨어지고... 과일을 좋아하는 아내의 손에 5백원 동전 하나를 올려줬다. 그건 과일을 사 먹으라는 돈이 아니라 반찬 할 채소를 사야하는 돈이었다. 오이를 샀나보다. 저녁상에 오이 반찬이 올라왔다. 밥 한 공기에, 깨끗하게 씻어 세로로 자른 오이와 시골에서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된장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꽉 잡아, 넘어지면 큰일 나니까.” 눈구름 속에 구멍이 났는지 함박눈이 쏟아졌다. 네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을 뒤에 태우고 시장으로 간다. 돌아오는 도중에 눈에 미끄러져 셋이 한꺼번에 엎어져 버렸다. 양쪽에 실어둔 과일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졌다. 딸이 벌떡 일어나 엎어진 나의 손을 잡는다. 아들은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를 쓴다. 넘어지는 순간 아이들이 다칠까 봐 내 몸을 바닥 쪽으로 던지는 바람에 허벅지 한쪽이 찢어지고 멍이 들었다. 울고 싶었지만 아이들 앞이어서 울음을 삼켰다. 엄마에게 피가 난다며 아들이 울었다. 나는 아이들을 껴안으며 말했다. “뚝, 세상에 울 일이 훨씬 더 많지. 이건 하나도 아픈 일이 아니야.”
목련으로 부푸는 밤, 나의 애인은 푸른 겨울로 나를 흩트려 놓았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그러하듯 모든 꽃은 목을 맨 모양 / 사윈 꽃잎들은 당신의 잎술 같아서 지울 길 없어 그것들 모두 주워 사랑이라고 불러보았습니다.
영혼이 태어날 때,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거야. 세상에서 영원히 지워진다는 것은 신비롭고 슬픈 일이라고. 이 세상 문이 닫힐 때 또 다른 세상의 잠긴 문이 열린다고. 저 너머의 보이지 않는 울음이 그득히 고여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라고
밤마다,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한 사람에게 날아가 그 사람의 슬픔을 생각합니다. 슬픔이 너만의 것이 아니라고, 너는 아직 숨 쉬고 있다고, 혼자 엎드려 있지 말라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모두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고백하건대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제가 사람으로 온 이유를 하나 알았습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약속이라는 것을요.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은 늘 약속 없이 떠난다는 것을요. 건너온 슬픔과 사랑들은 약속이 없다는 것을요. … 나는 속삭여봅니다. 사람으로 온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약속이 감히 사랑이었노라고. 그러니 당신은 내 곁에 부디 살아 있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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