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말들(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서점에서 ~.)』, 윤성근, 유유, 2020
사람들은 책을 사려고 서점에 간다. 그런데 작가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은 서점에 이야기를 하려고 간다고 한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서점에서는 사람을 만나야하고 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아는 서점과는 사뭇 다르다.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책을 만나야 한다.’라는 말로 그 표현을 대신했다.
헌책방 주인들은 책을 그냥 파는 게 아니란다. 책이 들어오면 일일이 확인하고, 읽어보고,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진열한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 그 많은 종류의 책들을 읽는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쉽게 읽혀지는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는 책이다.
저자 소개
윤성근
수많은 서점의 오래된 단골이자 14년 차 책방지기.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보다 서점으로 먼저 향했다. 책이 좋았고 서가로 둘러싸인 서점이라는 공간이 좋았고, 그곳을 지키는 책방지기가 좋았다. 3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책방을 찾아다니는 모험을 시작해 전국, 아니 세계의 서점들을 순례하고 있으며 직접 고른 좋아하는 책들로만 가득한 헌책방을 열어 재미있게 운영하고 있다. 책이 있는 공간에서 매일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글을 쓴다. 『작은 책방 꾸리는 법』,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심야책방』, 『책이 좀 많습니다』 등을 썼다.
독서 노트
이제는 어떤 이유로든 서점에 가는 게 자연스럽다. 책을 사는 것도 자연스럽고, 책을 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을 때 들르는 것도 자연스럽다. 책을 사든 사지 않든 서점이 늘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곳만은 언제나 나를 위한 장소일 거라는 믿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서점은 아주 묘한 장소다. 그저 책이라는 물건을 파는 가게일까? 아니다. 책 가게로 한정 짓기에는 거기에 담 을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 서점은 온갖 것을 다 품고 있는 장소다. 서점의 말들, 서점이 들려주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면 서점은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어렸을 때 동전 몇 개를 들고 서점을 찾은 이후로 나는 언제나 서점의 단골이었고 거기서 들려오는 말에 귀 기울였다. 대학을 다니면서, 졸업하고 회사 에서 일하면서도 귓가를 간지럽히는 서점의 말들은 계속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끝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서점 주인이 되도록 이끌었다. 서점 주인이 되고 나서 손님일 때는 듣지 못했던 소리까지 들려 왔다. 그렇게 수집한 비밀스러운 말들을 이제 여기에 조금 풀어놓는다.
서점은 한없이 조용한 곳이면서 동시에 온갖 소음으로 넘쳐나는 이상한 장소다. 적어도 내가 어릴 적 처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던 작은 동네 서점을 떠올려 보면 그렇다. 그곳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공간처럼 무서운 기분을 자아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주위가 모두 책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책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서점은 아주 묘한 장소다. 그저 책이라는 물건을 파는 가게일까? 아니다. 책 가게로 한정 짓기에는 거기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 서점은 온갖 것을 다 품고 있는 장소다. 서점의 말들, 서점이 들려주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서점은 그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어렸을 때 동전 몇 개를 들고 서점을 찾은 이후로 나는 언제나 서점의 단골이었고 거기서 들려오는 말에 귀 기울였다. ··· 그리고 끝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서점 주인이 되도록 이끌었다. 서점 주인이 되고 나니 손님일 때는 듣지 못했던 소리까지 들려 왔다. 그렇게 수집한 비밀스러운 말들을 이제 여기에 조금 풀어놓는다.
소유한다는 말은 나에게 속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속해 있으려면 그저 물건을 손안에 가지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해해야 하고, 그것이 들려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책은 그것을 사는 행위만으로는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이다.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사서 읽고 이해하는 관계를 맺어야만 비로소 소유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봤을 때 서점은 확실히 여느 상점과는 결이 다르다. 돈 내고 물건을 사는 것은 같지만 그것을 소유하려고 서점에 오는 사람은 아직 초보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기묘한 물건을 마주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의 눈빛은 선하고 아름답다.
기다림. 나는 그것을 아주 귀한 삶의 선물이라 믿는다.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 책을 읽곤 했다. 지금도 짧은 기다림의 시간을 위해 습관적으로 가방 속에 책이나 얇은 잡지를 넣고 다니며 읽는다. 5분이나 10분 정도 틈이 날 때 글을 읽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게만 허락된 비밀스러운 상상을 할 수 있다. 책이나 잡지에 실린 글을 보며 한순간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날아갔다가 다음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올 즈음에 맞춰 다시 제자리에 안전하게 착지한다.
서점의 본질은 '기다림'이다. 책을 멋지게 진열하거나 찾아 준 손님을 친절하게 맞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문을 열어 두고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서점이 할 일이다.
책을 사고파는 일을 즐겨 하는 이유는, 그런 일을 하는 서점을 좋아하는 이유는, 책이라는 물건이 내 모든 신 체 감각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지금껏 어떤 사물도 내게 이런 만족을 주지 못했다. 책은 사랑스럽게 만질 수 있고 차분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으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한 그윽한 향기를 그 안에 가득 품고 있다.
지금 세대는 이렇게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직접 느끼는 것에서 멀어졌다. 옷이나 신발을 직접 착용해 보지 보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다 만들어 놓은 반찬이 새벽마다 집 앞에 배달되는 것을 편리하다고 여긴다.
그것들과 비교하면 책은 얼마나 자유롭고 개방적인 물건인지! 우리는 책을 눈으로만 읽지 않는다. 모든 감각 을 통해 책과 교감하는 것이 바로 독서다. 내가 인터넷으로 책을 팔지 않는 이유다. 괜한 고집일 수도 있지만, 나는 책만큼은 서점에 와서 사면 좋겠다. 책이 전하는 다양한 감각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책을 즐기는 완벽한 방법이니까.
서점은 도시의 소음을 거두는 숲과 같다. (···) 사람들은 너무 오래 도시의 소음에 노출된 탓에 건강한 소리를 잃었다. 언제나 존재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소리. 때로 서점은 그것들을 되찾아 준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들.
나무 의자 다리가 바닥에 가볍게 끌리는 소리 / 2~3분에 한 번씩 책장을 넘기는 소리 / 모르는 사람이 내는 "음, 음" 하는 옅은 헛기침 소리 / 벽시계 소리 / 책장에서 책을 뺄 때 옆에 있던 책과 책이 스치는 소리 /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
온갖 소음으로 꽉 찬 도시 한 가운데에서도 잠깐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내 소음이 걷히고 잊고 있던 서점의 소리가 잔잔히 들려온다.
서점엔 무엇이든 도움이 되는 책이 한 권은 있기 마련이다. 몸이 아프면 병원이나 약국에 가는데 마음과 정신이 병든 사람들은 서점에 간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작가는 병들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서점의 책은 그들이 어떻게 병들었고, 어떤 식으로 변화되었는지 보여 주는 임상 기록과도 같다.
헌책방의 진짜 재미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까 책마다 가격표를 붙여 놓고 그대로 판매하고 있는 헌책방은 재미가 없다. 이건 정해진 가격이 없기 때문에 흥정할 수 있다는 것하고는 조금 다른 얘기다. 말하자면 서점 주인과 손님이 보이지 않는 줄을 늘어뜨리고 책 한 권을 사이에 둔 채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 재미다.
나는 언젠가 인사동에 있는 고서점에서 <통문관 책방비화> 절판본을 발견한 적이 있는데 주인은 그 책이 딱 한 권 남은 것이라 팔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처음에는 수긍하고 그냥 돌아갔지만 그 뒤로 몇 번이나 찾아가서 그 책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세상에 과연 몇 권이나 남아 있을지 모를 초판본이었기에 더욱 간절했다. 주인은 결국 몇 달이 지나 그 책을 내게 넘겨주었다.
그 후로 서점에서 일하며 몇 사람이 그 책을 찾았지만 내가 가진 초판본만큼은 결코 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책과 서점의 운명이란 ······! 몇 년 후 그 책 초판본을 원하는 사람이 찾아왔고 몇 번인가 거절했지만 그가 얼마나 책을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되어 결국 그 책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 옛날 내가 인사동에서 겪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언젠가 나는 이상한 실험에 몰두한 적이 있다. 어떤 동네에 무작정 간 다음, 한 서점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서점까지 걷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걷는다'는 행위다. 한 서점에서 다른 서점까지 이어지는 거리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짧을수록 마음의 풍요로움이 커진다. (···)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걷다가 크고 작은 서점을 자주 만나는 동네에 방문했을 때, 나는 마음이 든든해지고 선한 예감으로 충만해진다. 서점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런 가게가 거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책을 몇 권을 읽은 것처럼 뿌듯하다. 거리엔 서점이 필요하고 서점이야말로 거기를 거리답게 만든다.
서점에서 만나야 할 것은 책뿐만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만나야 한다. 이 야기는 이야기들끼리 만나고 그것들이 합쳐지면 상상하기 힘든 큰 빛이 될 수 있다. 이 작은 서점은 서점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초라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책이 사람을 끌어들이고 사람들끼리 만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이 모든 게 '만남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가', 아니면 책을 만나 는가'
헌책방은 일반 서점과 달리 절판된 책을 자주 다룬다. 이렇게 잊힌 책과 잊힌 작가를 다시 소개하는 것도 헌책방의 고유한 임무다. 잊힌 작가와 책들, 그리고 그 사상을 발견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지 유희다. 그러니까 이것은 놀이이기도 해서 헌책방은 때때로 아기자기한 놀이터가 된다. (…) 책이 없다면 꿈도 없다. 서점이 꿈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책과 작가, 이야기들이 잊히고 말 것이다. 잊힌 다음엔 사라진다. 사라지고 나면 눈은 감기고 꿈도 끝이다. 눈먼 자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헌책방의 책은 도매상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다. 요즘엔 대부분 서점에서 책을 큐레이션해서 파는데 헌책방이야말로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일해 왔다. 책을 들여오면 주인장이 일일이 확인하고, 읽어 보고,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진열한다. 무심한 듯 보이는 헌책방 주인장들이 실은 이런 속내와 배짱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목적'이라고 하는 것에 떠밀리고, 목표에 끌려 다닌다. 그런 삶은 사람을 피곤하고 지치게 만든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목적지는 노력 여하를 떠나서 사람을 기다려 주는 법도 없다. 그것은 오로지 사람을 밀고 나가 어디론가 알 수 없는 곳에 데려다놓고 이것이 너의 목적이었다며 다그친다. 그래서 목적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은 흔히 자신을 잃고 수많은 목적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목적도 없이 잠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생활에 큰 활력을 가져다준다. 특히 아무런 목적도 없이 몸을 움직여 어떤 장소에 다녀 보는 것만큼 특별한 경험은 없다. 그것은 곧 불안한 경험이기도 하다. 몸을 움직여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투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런 투자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불안에 휩싸이게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것이 또한 '재미'의 한 부분이다. 진정한 재미는 어떠한 목적도 바라지 않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지금의 길과 기억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내 모습이 조금 서글프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헤매고 있다. 책들 사이를, 삶과 생활 사이에서 우스운 몸짓으로 갈팡질팡한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다 자유다. 학교는 자유를 가르쳐 주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빼앗으려고 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몽둥이로 교탁을 탕탕 두들기며 자유를 억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께 맞고 싶지 않았고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커서 서점에 갔다. 거기서 나는 자유를 공부하지 않았다. 자유는 학습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아무것도 아닌 것조차 그냥 그대로를 존중하며 사랑해 준다.
‘서점’이라는 단어보다 ‘책방’이라 부르는 걸 좋아한다. “책방”하고 입술을 움직여 말하면 우선 책이 있는 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리 크지 않은, 사방으로 책이 가득하고 나지막한 책상과 의자 하나 있을 뿐인 그런 풍경 말이다. 아무것도 움직이고 있지 않지만 모든 게 춤추듯 자유롭게 날고 있는 곳. 그런 장소가 바로 책장이다.
자유라면 서점에서 우연히 누릴 수 있는 가치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서점에서는 그 자유 너머에 있는 평안과 안시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돈으로 받고 판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제 몫을 양껏 챙기면 된다. 돈과 상관없이 자유와 평안, 안식을 무한대로 누릴 수 있는 곳, 이런 유연을 만나는 곳이 서점이다.
진정한 독서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이들은 앎을 부정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생황을 누린다. '아는 것을 부정 한다'는 말은 '모른다'는 게 아니다. 어제까지의 앎을 가지고 오늘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고,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자주, 그리고 반복해서 읽는다. 이렇게 자꾸만 새로운 앎을 향해 나아가는 독서가가 서점에 많이 올수록 공간에는 활력이 생긴다. 책장 곳곳마다 숨길이 나 있는 것처럼 신선한 공기로 가득 찬다. 살아 있는 서점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지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좋은 서점이다.
어릴 때 읽었던 책, 읽었지만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책, 이제 읽어 볼 책 읽어야만 하는 책, 어쩔 수 없이 읽었던 책, 어제가 읽을 수밖에 없는 책, 관심은 없지만 아는 척해야 할 책, 이런 다양한 책들에 연결된 자신을 발견한 순간, 기억은 이 공간을 거대한 우주로 만든다. 이 우주를, 서점이라는 우주를 설계하고 탐험 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자신뿐이다. 서점은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존재한다.
악보는 음악이 아니다. 그것을 소래 내어 연주해야 음악이 된다. 똑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니 음악은 해석의 아름다움과 깊이라고 해도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왜 그가 이 책이 역병처럼 창궐하기를 소망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서점은 이야기가 충만하게 쌓인 곳이다 신화가 된 이야기도 있고 조금씩 신화에 가까워지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100년 후에 신화가 될 수 있는 이야기도 여기에 있다. 서점에 오는 사람들은 사실 이야기를 즐기는 한량이 아니다. 신화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신화를 찾아다니는 현자들이다.
어떤 독자는 두꺼운 책을 보면 뭔가 커다란 산을 앞에 둔 것 마냥 열정이 솟구친다. 저 책을 정복하겠다는 의지를 향한 쓸데없는 열정! 이것이 독자와 작가를 피 말리는 싸움터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책방 주인은 말없이 미소 지으며 이 모습을 은근히 즐긴다. 줄다리기를 하는 중가네 서서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있는 심판처럼 팽팽해진 양쪽 모두를 향해 마음에도 없는 응원을 보낸다. 묵직한 책은 보통 이런 식으로 쓰이고 소비된다. 그 중간에서 책방 지기는 돈을 번다. 묵직한 책은 비싸서 제법 돈이 된다.
책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내기 위해 무언가를 쓰는 사람들이다. 책을 팔러 오는 사람도 대개는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서점 주인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작가들이 더 많아지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바로 여기에 있다.
중학생이 세상을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본다는 것! 어른들이 보기에는 좀 탐탁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불만이 나중에 어떤 큰이를 이루게 될지 그것 역시 모르는 일이다. 나는 불만 섞인 자세로 세상을 보는 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불만을 불만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건 정말 나쁜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만을 느낀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고
책방은 그저 책이 있는 곳일 뿐. 당신이 읽고 싶거나 또는 그렇지 않은 책이 있는 곳일 뿐. 기대 이상의 책이 잇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그렇고 그런 공간이다.
자연과학에 기대어 발전해 온 서양인의 눈에 와비사비는 신비로운 삶의 태도일 것이다. '완료'나 '완성'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것이고 서양철학은 이것을 배제하는 식으로 발전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이런 곳에도 갖다 불일 수 있다면 그 말이 썩 잘 어울린다. 레너드 코렌이 그렇게 해석했듯이 모든 살아 움직이는 것에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서점도 살아 있다. 움직인다는 말은 이곳에서 저곳으로의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고 생각이 움직인다. 서점은 사람과 생각의 물결을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자꾸만 어디로든 나아간다. 내가 일하는 이곳도 완성되지 않은 그림처럼 계속 덧칠해 나가고 있다. 그러니까 새로운 서점도 없고 늙은 서점도 없다. 다만 모든 서점은 제 갈 길을 가는 중이다.
책은 저마다 고유한 소리를 갖고 있다. 서점은 그렇게 태어난 책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이 소리는 여간해서는 들을 수 없고, 책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상상할 때 비로소 들려오기 시작한다. 상상하지 못하면 책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책에 들어 있는 글자를 읽을 수도 없다 상상하지 못 하는 독자에게 책은 그저 두껍고 무거운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이후 나는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내가 염두에 둔 책만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될 풍경을 기대한다. 알 수 없는 오솔길 앞에 선 옛 시인처럼 작게 떨려오는 기쁜 예감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과거에는 한 가게에서 유사한 품목의 물건만 파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가게마다 책을 큐레이션해 주는 전문 업체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러 혹은 사러 갔다가 책을 사게 되는 거다.
생각이 많으면 삶이 불편하다. 단순한 생각을 가진 사람일수록 편하게 산다. 위대한 철학자나 예술가들이 모두 불편한 삶을 살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불편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보통 서점은 책과 식물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인간을 불편한 생각으로 이끄는 장소다. 그러니 독재자에게는 아주 위험한 장소다.
‘서삼치(書三癡)’라는 옛말을 들어 보신 적 있는지? 책에 관한 어리석은 행동 세 가지를 뜻하는 말이다. 그 첫 번째는 책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책을 빌려주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가 빌린 책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누군가 우스개로 지어낸 말 같지만 나는 여기에서 굉장한 철학이 느껴진다.
사람의 모든 부분은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입에 험한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그만큼 험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자기'는 말 그대로 스스로 만들어 세우는 본모습이다. 누가 나를 대신 만든 게 아니라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은 몸에 난 작은 터럭 하나라도 결국 다 내가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집착한다. 나에 대한 탐구를 충분히 하고 나서야 세계를 향한 질문이 비로소 의미가 있다.
나는 서점에 온 손님들을 관찰하면서 이 이론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 서점에 있는 책은 사기 전까지는 자기 소유가 아니다. 그런데 책을 아무렇게나 꺼내서 막 다루는 사람들이 있다. (···) 작은 책 한 권을 대하는 태도가 그러한데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이 아름다울지 의문이다.
전자책을 파는 책방이 생기는 날이 올까? (···) 전자책은 편리하고 가볍다. 그러나 종이책은 더욱 책답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책이며 책의 역할이고 책방은 그런 불편한 물건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책방에는 책과 책방의 불편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많다. 카프카의 말대로 책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솜사탕이기보다는 머리를 후려치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시인은 책을 훔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책방에서 시집을 도둑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시를 가까이 하는 사람 또는 책을 훔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 시인은 분노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아니면 분노만 남은 사람이거나. 시인은 글자 외에 다른 것은 훔치지 않는다.
'사유'란 '생각'보다 조금 더 깊은 곳에서 우리 자신을 향해 스스로 질문하는 목소리다. 생각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유 없이 사는 사람은 진짜로 있다.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는 사람, 남에게만 질문하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사유 없이 사는 사람이다.
나를 향한 질문이라고 하면 우선 무엇을 먼저 물을 것 인지부터 막막해진다. 질문을 했다고 하더라도 대답하는 것이 '질문을 받은 나'인지 혹은 '방금 질문한 나'인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사유라는 것은 그렇게 괴로운 문답을 힘껏 밀고 나가는 행위다.
그 거리 곳곳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서점을 만날 수 있다. 각각의 서점은 사유를 거래하고 책과 사람이 만나 또 다른 철학이 탄생하는 작은 우주다. 사유의 방향은 이 땅을 뛰어 넘어 드넓은 우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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