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느껴야 움직인다.』이어령. 시공미디어, 2013

그루 터기 2022. 1. 28. 05:33

느껴야 움직인다.이어령. 시공미디어, 2013

 

오래 전 이어령 선생님의 강의를 듣다가 앞으로는 기술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세상이 아니라 문화가 나라를 먹여 살리는 세상이 온다.’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전혀 공감하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기술을 전공한 사람이라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취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은 진실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BTS로 대변되는 한류’. 한류가 우리의 국격을 높이고, 국가에 가치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먹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순전히 이어령 선생님이 쓰신 책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선택했습니다. 다 아는 내용이었다가 다 잊어버린 내용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시는 글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이 별로 많지 않은 그림책. 가족들에게도 한 번씩 읽어보라고 하고, 친구에게도 권해야겠습니다. 아니 기다리는 친구 먼저 빌려주고 가족에게는 다음 순서로 돌리겠습니다.

 

 

 

저자 소개

: 이어령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조선일보』『중앙일보』『경향신문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으로 편집을 이끌었다.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했으며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다. 대표 저서로 지성에서 영성으로』『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흙 속에 저 바람 속에』『축소지향의 일본인』『생명이 자본이다』『젊음의 탄생등이 있고, 소설 장군의 수염』『환각의 다리와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펴냈으며, 희곡과 시나리오 기적을 파는 백화점」「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사자와의 경주등을 집필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그림 : 오순환

1988년 경성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2010 남산화랑(부산) 16회의 개인전과 보고갤러리 개관기념전(보고갤러리/부산) 등 단체전에 60여 차례 참여하였다. 사람들의 심중을 그리는 듯 따뜻함과 깊이를 지닌 작가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오랜 여운이 남는 시와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서 메모

 

8자 하나를 놓고 우리는 이렇게 여러 가지 시점을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잠시 의미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연과 자의성의 허공을 날며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상상력을 낳고 창조의 씨앗을 뿌립니다. 귀에 박힌 이야기, 먼지 묻은 단어들이 여름 아침 파란 푸성귀처럼 머리 들고 일어섭니다.

 

젊은 세대들은 ‘감동했다.’고 말하지 않고 ‘감동 먹었다.’고 말합니다. 먹을거리가 없어서 배가 고팠었는데 오늘의 한국인들은 감동거리가 없어서 마음이 고픈 가 봅니다. 그래서 굶주림의 보릿고개가 아니라 비정한 문명의 사막을 넘어야만 춤추고 노래하며 살 수 가 있습니다.

 

손으로 만져 보세요.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또 하나님의 세계가 거기 있습니다.

 

어머니를 뜻하는 모()'자는 네모난 모양 안에 점 두 개가 찍혀 있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젖꼭지를 나타낸 모양이라고 합니다. 모태에서 갓 태어난 어린애들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상태에서 용케 어머니 젖을 찾아낸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미와 아기는 문화 이전에 자 연의 힘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식들은 어머니 젖을 먹고, 어머니 등에 업혀 잠들며 걸음마를 핍니다. 그리고 서서히 어 머니의 가슴으로부터 천천히 떨어져 나가지요.

그래서 어머니라고 하면 흔히 자신을 잉태해 길러 준 배(母胎) 그리고 품 안에서 키운 가슴 그리고 그 사랑을 보여준 얼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늘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자식이 제 발로 서서 걷게 되어도 어머니의 발은 쉬지 않지요. 물밑에서 끊임없이 물갈퀴를 움직이고 있는 백조의 모습과도 같지요.

 

() : 어머니의 발을 보다.

어머니의 발을 직접 만져 보면, 즉 터치하면 어머니의 노동과 사랑은 눈에 보이는, 만져지는 실체로 다가옵니다. 진짜를 만나게 되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발을 통해 실체에 다가선 것처럼, 손을 만지면서, 터치하면서 사람과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발이 자연을 뜻하는 것이라면 손은 문화를 상징하지요. 오늘날은 자연과 문화가 멀리 떨어져 분리된 상태이지만 그것을 다시 연결하는 데에서 또 다른 미래의 문명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청진기의 체스트 피스는 차갑습니다. 환자는 그것이 가슴이나 배에 닿는 순간 선뜩한 느낌을 받지요. 임산부라면 배 안의 태아가 놀랄 것입니다. 그런데 60년 전 막 병원을 차린 한국의 한 여의사는 그 청진기를 자기 가슴에 품었습니다. 몸으로 덥혀진 그 따뜻한 청진기 덕분에 환자들은 언제고 편안하게 진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따뜻한 청진기 하나가 그 뒤에 큰 병원이 되고 대학교가 되고 소중한 연구소와 수많은 사회봉사 단체로 변화하고 발전해 갔습니다. 따뜻한 청진기 하나가 지금 병든 사회를 진찰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그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 과천대학교 이길여 총장님의 실화

 

우리는 국토와 국어의 두 조국에 삽니다. 군인이 나라 땅을 지키듯이 시인은 나라 말을 지키지요. 조국의 땅을 지킬 때에는 누구나 군인이 되고, 조국의 말을 지킬 때에는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도시락을 싸가는 고학년이 되자 아이의 가슴은 부풀었지요. 기다리던 점심시간. 부러웠던 언니들처럼 자랑스런 마음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것은 새까만 꽁보리밥, 흰 쌀밥 도시락들 사이의 깜깜한 밥 아이는 부끄러워 교실을 빠져나와 뒷마당에 숨었습니다. 어머니는 왜 도시락을 먹지 않았느냐고 물으셨지만 그저 배가 아파서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이제는 꽁보리밥이라도 창피할 것 없다고 다음날 점심. 아이는 도시락 뚜껑을 열었습니다. 보세요. 이번에는 보리밥이 아니라 진주알처럼 하얀 쌀 밥. "아 엄니!" 이제는 눈물이 나 작은 소리로 어머니를 부르며 도시락 뚜껑을 덮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날도 물으셨지요. 왜 도시락을 먹지 않고 그냥 왔냐고. 아이는 또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려다가 엄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지요. 다 알아요. 어머니도 입을 다 물고 눈물을 흘렸지요. 비가 와야 무지개가 뜬다고 하더니만 눈물이 무지개가 된다고 하더니만 정말 먹지 못한 도시락을 사이에 두고 슬프고 슬픈데도 행복했어요.

 

창을 가리키는 영어의 Window'바람의 눈 (Wind+Eye)'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집에 창이 있다는 것은 영혼에 눈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바람의 눈,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배웁니다. 왜 학교를 배움의 창 (學窓)이라 하고 왜 옛 친구를 동창 (同窓)이라 불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청개구리처럼 엄마 말을 안 듣는 말썽꾸러기 아이가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아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그때마다 어 머니는 매를 들었습니다. 달래고 겁을 주고 매질을 해도 아이는 날로 빗나가기만 했습니다. 또 종아리에서 피가 흐르도록 매를 많이 맞던 날, 어머니는 가슴이 아파 잠든 아이의 매 자국을 몰래 살펴보았습니다. 온통 피멍이 든 매 자국으로 아이의 종아리에는 성한 곳에 없었지 요. 이제는 때릴 자리조차 남아 있지 않았지요. 어느새 어머니의 손은 아이의 종아리를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방울 이 아이의 멍든 매 자국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자는 줄만 알았던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엉엉 울면서 어머니에게 빌었습니다. "엄마 다시는 나쁜 짓하지 않을 께 다시는 엄마 속 썩이지 않을게요."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이 어 떤 회초리보다 강했습니다. 어떤 매보다 무서웠습니다. 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아이들은 늘 불안해하지요. 매 자국에서 사랑의 꽃이 피어나도록 만져 주세요. 꼭 안아 주세요.

 

잠은 아무 소리도 없이 오는데 사람들은 잠이 솔솔 온다고도 하고 잠이 살살 온다고도 하고눈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내리는데 사람들은 눈이 펑펑 내린다고도 하고 눈이 사락사락 내린다고도 하고, 새는 아무 소리 없이 하늘에서 날고 있는데 사람들은 새가 훨훨 난다고도 하고 새가 쌍쌍 난다고도 하고, 그러나 나도 들을 수가 있어요. 내가 엄마에게 뽀뽀를 할 때 엄마 가슴이 뛰는 소리를 내가 아빠에게 뽀뽀를 할 때 아빠 가슴이 뛰는 소리를, 잠처럼 솔솔 눈처럼 펑펑, 새처럼 훨훨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요.

 

두 발로 선 인간은 먼 곳을 바라보며 삽니다. 인간은 멀리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입니다. 상상과 지식의 넓은 초원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자처럼 지금, 여기의 발밑이 아니라 먼 내일과 더 넓은 지평을 꿈꾸며 삽니다. 비전입니다. 비전을 잃으면 인간의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감동, 느낄 감(), 움직일 동(), 느껴야 움직인다. 풀을 움직이게 하 라. 나무를 움직이게 하라. 사람을 움직이게 하라. 모든 움직임은 느낌에서 온다. 그러나 움직임에 방향에 없다면 달리는 말에 고삐가 없다. 면 느낌은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느낌에 방향을 주라. 움직임에 화살표를 주라감동을 타고 우리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나라로 간다. 느낄 감() 자에는 마음()자가 있고, 움직일 동 ()에는 힘력 () 자가 들어 있습니다. 감동, 마음의 힘입니다. 당신의 에너지입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깃발이 나부낀다고, 그러나 다른 사람이 말했지요.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어요. 아니다.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세탁기를 쿨 하게 고른다면 기준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전력이 덜 든다거나, 때가 잘 빠진다거나 내구성이 있다거나 남들은 그런 점에 착안하겠지만 스티브 잡스는 달랐어요. 잡스가 고른 세탁기는 빨랫감을 가장 덜 사하게 하는 거였대요. 우리나라 광고들은 다들 옷감 잡아먹는 이야기인데, 정반대의 기준을 삼았던 것이죠. 감성에 승부를 걸었던 스티브 잡스도 세탁기를 고를 때에는 차갑고 차가운 합리주의자였지요.(간단하게 합리주의자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스티브잡스는 돈 때문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므로 전력이 덜 드는 것 같은 것은 사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나 좋아하는 옷이 상한다면 세탁기를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오늘 아침 괜히 시비를 걸어본다.)

 

얽어도 장에 가고 굶어도 떡 해 먹고

(난 이 말은 처음 듣는데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남들이 흉을 보든 안보든, 내일은 굶던더라도 일단 먹고 보는 사람들. 이어령 선생님은 이런 단점이 장점이 되는 시대가 곧 후기산업주의 사회 정보문명의 포스트모던의 문화현상이라고 하신다. 이과로 평생 살아온 나로서는 30여 년 전 선생님의 앞으로는 문화가 나라를 먹여 살린다라고 하셨을 때처럼 아직은 생소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생님의 말씀이 30년이 지난 지금 ‘BTS’로 대표되는 한류가 한국의 앞으로의 희망이 된 지금 새삼 그때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랑'이라는 말의 원래 뜻은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오래오래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옛날 사람들 은 생각한다는 것을 곧 사랑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희랍이나 로마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진실'의 반대말을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 라고 했거든요. 거짓된 것은 금세 잊혀 지지만 진실한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오래오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첫 사랑은 누구에게나 진실하고 순수한 것이었기에 죽을 때까지도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게 됩니다.

 

생각은 사랑을 낳고 진실은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되어 영원히 생생하게 살아날 것입니다.

 

까치 한 마리가 뜰로 날아왔습니다. 치매기가 있는 백발노인이 창밖을 내다보다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요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조금 있다 다시 물었습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까치라니까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시더니 또 같은 말을 하십니다. “애야, 저 새가 무슨 새라고 했지?” “몇 번이나 대답해야 아시겠어요1 까치요, 까치라니까요!” 그때, 옆에서 듣던 어머니가 한숨을 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범아, 너는 어렸을 때 저게 무슨 새냐고 백 번도 더 물었다. 아빠, 저 새가 무슨 새에요?’ ‘, 까치란다.’ ‘까치요? 아빠 저 새가 무슨 새에요?’ ‘까치야.’ ‘까치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까치란다, 까치란다.’ 몇 번이고 대답하시면서 말하는 네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 그래서 네가 말을 배울 수 있었던 거다.” (이젠 무슨 새냐고 물어보실 부모님도 안계십니다. 수없이 물어봐도 한결 같이 대답해 주셨을 부모님! 어머니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동물 중에서 가장 미숙한 채로 태어나는 것이 바로 인간이에요. 다른 짐승들은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고 스스로 먹이를 구하죠.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일 년이 지나도 겨우 일어서서 걸음마을 배울 정도입니다. 최소 삼 년이 지나야 부모 곁을 떠나 혼자서 숟가락질하고 대소변을 가립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아나 삼 년 동안 한시도 부모의 눈에서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러므로 효의 윤리가 아니라도 삼 년 동안 절대적인 도움을 받은 부모의 사랑을 삼 년 복상(시묘살이)으로 갚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가 버릇없는 사람을 보고 '아비 없는 호래자식'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지금이 바로 '아비 없는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가부장제 도가 많이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에 가정에서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의 존재는 보이지 않지요. 원래 생물학적으로 봐도 짐승들의 세계에는 아버지의 존재란 뚜렷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미숙아인 채로 태어나기 때문에 어머니 혼자 힘으로 키우기 힘들지요. 누군가가 어머니와 함께 키워줘야만 했던 거죠. 아버지를 뜻하는 부()'는 남자가 두 손에 도끼를 듣고 서 있는 모습을 본떠서 만든 글자라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어머니 '()'자는 가슴에 있는 두 젖꼭지 모양을 나타낸 거고요. 어머니는 자식에게 젖을 먹여 기르고 아버지는 도끼로 먹을 것을 잡기도 하고 침입자를 막아 처자식을 보호하면서 살아 온 거예요. 그렇게 짐승의 무리에서 발견할 수 없는 가족제도가 탄생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늙고 힘이 쇠약해지면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 가부장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도끼를 든 손의 힘은 잃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니던 아들이 크면 그 손을 놓고 혼자서 세상을 향해 걸어갑니다.

 

미국에서 소년소녀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왜 범죄를 저질렀냐고 물어보면 그 대답 중에서 아버지를 원망하는 소리가 많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왜 날 그냥 방치했느냐. 왜 처음 비행을 저지를 때 말리지 않았느냐는 것이지요. 뜻밖에도 '힘 있는 아버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던 거죠. 오늘날의 가정이나 사회에서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을 찾기 힘들죠. 나의 행동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고 개입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나약하고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지 요. 이것은 단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에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선물을 할 때는 부자가 함께 웃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을 할 때는 부자가 함께 운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선물은 자연현상이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드리는 선물은 문화현상입니다. 인간만이 할 줄 아는 행동이기 때문에 감동이 따르는 것이지요.

 

자식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그에 보답하려고 하는 건 어쩌면 자연적인 현상이에요. 본능이죠. 하지만 아버지는 달라요. 아버지에 대 한 태도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이고, 인간이 만들어온 문화 현상이죠. 다시 말하지만 동물들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없어요. 짐승들 은 그저 짝짓기만 하고 떠나버리죠. 인간은 자식을 키우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리고 어머니의 힘만으로는 키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역할이 문화 현상으로 드러나게 된 거에요.

 

청년성 치매

노인성 치매와 달리 청년성 치매는 자기도 곧 아버지처럼 늙게 된다는 뻔한 사실을 잊어버릴 때 발생하는 병이지요.

 

글을 쓰다 연필이 부러지면 연필을 보게 됩니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면 손톱을 보게 됩니다. 다칠 때, 넘어질 때 나는 비로소 나를 봅니다.

 

시골의 어머니가 군대에 간 아들을 보려고 찾아 오셨습니다. 아직도 따뜻한 떡 보자기를 받아든 아들은 목이 메었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던 아들은 그동안 아껴 두었던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떠나는 어머니의 짐 속에 몰래 넣어 드렸지요. 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와 떡 보자기를 펼치니 급할 때 용돈으로 쓰라는 어머니의 짧은 사연과 함께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끼워져 있었지요. 아들은 어머니에게 만 원을 드렸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만 원을 주었으니 주고받은 금액을 숫자로 계산해 보면 0원이 되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분명 아들에게서 만 원을 받았고, 아들은 부면 어머니에게서 만 원의 용돈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GDP의 통계숫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랑 계산법입니다. 어머니 도 아들도 그날 지금까지 없던 새 만원 지폐 한 장이 생긴 것이지요. 정과 사랑까지 계산하는 국민총생산에는 분명 이 만 원이 더 증가되어 있었을 겁니다.

 

배고픔을 멈추지 마라. 우직한 꿈을 버리지 마라. - 스티브 잡스

 

남들이 해가 돈가고 할 때 땅이 돈다고 한 갈릴레오는 바보였지요. 그래요 , 자전거나 만들던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 실험을 할 때 사람들은 모두 바보라고 했지요. 백의종군을 한 이순신장군도 바보고, 대동여지도를 만들다 옥살이를 한 김정호도 바보입니다. 배고픈 사람과 바보가 만들어가는 세상, 그것을 우리는 '원더랜드'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강해도 사자의 자연 생존율을 20%를 넘지 못하는데 먹히기만 하는 가젤의 생존율은 사자의 배가 된다는 사실. 약육강식 쫓는 자와 쫓기는 자 그러나 시선을 바꿔 보세요. 과연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를.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는 것까지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는 혼자 힘으로 다 했어요. 일기도 쓰고 성경 도 읽고 우산 같은 물건도 만들었지요. 하지만 함께 울어 주고 함께 손뼉 칠 사람은 없었지요. 사람 없는 섬이었으니까. 그런데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와서 제일 놀라고 무서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해변 백사장 위에 찍힌 사람의 발자국이었지요. 무인도에서 제일 그리워했던 것이 사람이었는데 목마르게 찾던 것이 사람이었는데 막상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을 때 그는 호랑이를 만난 것보다 사 자를 만난 것보다 더 두려워했습니다. 야만인은 사람을 잡아먹고 문명인은 가람을 노예로 만들어 팝니다. 그래서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사람. 그렇지요. 무인도가 따로 있습니까. 천만 명이 사는 도시라 할지라도 사람의 발자국을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무인도인 것입니다.

 

곰의 모성애는 인간보다 더 깊고 따뜻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 것이 두 살쯤 되면 어미 곰은 새끼 곰을 데리고 산딸기가 있는 먼 숲으로 간다고 합니다.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산딸기 밭이지요. 어린 새끼는 산딸기를 따 먹느라고 잠시 어미 곰을 잊어버립니다. 그 틈을 타서 어 미 곰은 몰래 아주 몰래 새끼 곰의 곁을 떠납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침을 발라 기르던 새끼를 왜 혼자 버려두고 떠나는 걸까요? 왜 그렇게 매정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건 새끼가 혼자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언제까지나 어미 만 의지하다가는 험한 숲 속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발톱이 자라고 이빨이 자라 이제 혼자서 살만한 힘이 붙었다 싶으면 어미 공 은 새끼가 혼자 살 수 있도록 먼 숲에 버리고 오는 것입니다.

 

새끼 곰을 껴안는 것이 어미 꿈의 사랑이듯이 새끼 곰을 버리는 것 또한 어미 공의 사랑인 거지요. 그래요.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산딸기 밭은 눈여겨봐 두어야 해요. 아이들 이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몰래 떠나는 슬픈 사랑의 연습도 해둬야 합니다. 눈물이 나도 뒤돌아보지 않는 차가운 사랑을 말이지요. 그게 언제냐고요?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잡았던 두 손을 놓아주었던 때가 있었잖아요. 그때부터 시작된 일이지요. 매일매일 무릎을 깨뜨리는 아픔이 있더라도 어머니와 따로 살아갈 수 있는 그 걸음마를 배우기 위해 손을 놓아주세요. 탯줄을 끊는 순가부터 그 연습 은 시작된 것입니다. 어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사랑, 얼음장 같은 차가운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아라. 활은 사냥터에 서, 전쟁터에서 쓰는 거란다. 사냥터에서 화살을 맞은 사슴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단다. 전쟁터에서 화살을 맞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단다. 하프 그리고 가야금 거문고, 기타, 바이올린 줄 달린 현악기들은 활시위에서 생긴 거란다. 화살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목숨을 빼 앗지만, 줄 달린 악기들은 죽어 있는 것들에게도 목숨을 준단다. 활은 전쟁, 하프는 평화!

 

활로 하프의 현을 만든 사람처럼 네가 크거든 활시위를 모아 예쁜 소리를 내는 가야금을 만들거라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궁상각치우 가슴을 뚫고 적시는 노랫소리를 울리게 하라. 알겠니. 활이 아니다. 하프란다. 가야금이란다.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손끝에서 튕기는 맑은 생명의 소리란다. 이 아니다. 하프가 되어라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검색해 보면 사랑이라는 말이 2.271번 나온다고 합니다. 사랑할 때 영미 사람들은 "I love you"라고 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Je t'airne."라고 하고 독일 사람들은 "Ich liebe dich. "라고 하고. 중국 사람들은 "我爱你."라고 하는데 그것은 모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간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 에 낼 때에도 '', ''라는 말 다 빼고, 그냥 사랑해"라고 하지요. 사랑은 단둘이 있을 때 하는 말인데. 말하는 사람이 나이고, 듣는 사람이 너인데, "I love you." 왜 굳이 1라고 말하고, 왜 꼭 You'라고 해야 합니까?

 

사랑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 사랑에 ''가 있으면 이미 사랑이 아닌 것. 사랑에 ''가 있으면 이미 사랑이 아닌 것,

 

하트 모양으로 두 손이 하나가 되는 것, 왼손 오른손이 하나가 되는 것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이란 말도 거부합니다. 느끼고 숨쉬고 웃음 짓는 것. 그냥 보면 다 아는 것, 만지면 잡히는 것,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무 뜻 없이 암기하고 규격에 맞춰 길들여진 숙련공보다 나만의 개성과 창조력을 길러야 할 때입니다.

 

스마트 맙을 쓴 하웨드 라인 골드는 그 책 헌사를 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에게 바쳤습니다. ‘색칠하는 그림공부를 하다가 선 밖으로 크레용 색이 삐져 나가도 야단치시지 않았던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린다.’라고 말입니다.

 

어느 시인이 한국에는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고 우겼습니다. 울릉도와 독도는 있어도 우리나라 3,358 개 중에 '그래도'라는 섬은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말했습니다. 불행한 일이 있을 때 살기 힘들 때 절망을 할 때 자신의 꿈과 소망이 산산조각이 나도 새로운 긍정을 만드는 섬이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그래도'라는 섬입니다.

 

'그래도' 섬 안에서 우리는 쓰러지다가도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걸었습니다. 한국에 있다는 섬 그래도'. 몇 천 년을 두고 '그래도 내 나라' '그래도 내 고향' '그래도 내 식구'라고 살아온 한국인. 가난하고 어렵고 험한 역사 속에서도 '그래도'라는 섬 덕분에 시련을 이겨온 한국인. 절망이 앞을 가리고 외로움이 나를 가두어도 서겐 폭풍이 불어와도 말하세요. "그래도 나는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