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이주현, 한겨레출판사, 2020
나는 조울증의 증상을 처음 알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조증의 증상을 처음 알았다. 이 책을 읽고 조증이 마음의 병이 아니라 신체의 병이라고 표현한 부분에 충격을 받았다. ‘조울병이 사회문화적 영향보다 생물학적인 영향이 큰 질환’ 이라는 표현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이론에 따라 어릴 때 무의식 속에 내재된 의식이 조증이나 울증을 지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고 한다. 이 한 줄의 글로 내가 이 책을 읽은 보상이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조현병, 조울증 등에 쓰이는 향정신병 약물은 첫 발병 땐 최소 일 년 이상을 유지하고, 세 번째 발병 이후엔 평생 먹는 게 좋다고 한다.’ 는 내용에서는 내가 겪고 있는 통풍과 유사하구나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기도 했다.(나는 평생 먹을 각오로 매일 매일 통풍약을 먹고 있다.)
잘 아는 지인 중에 우울증에 가까운 사람이 있다. 어쩌면 조울증의 경향도 있는 것 같다.(내가 의사가 아니라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신병자라는 단순한 단어하나에 이런 사람들을 엮어서 일반화 시켜왔다. 어린 시절의 시골 동네에도 큰 쇠살에 묶여서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건장한 청년이 사는 집도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 때는 정말 무서워 그 집 부근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우울증 환자에 가까운 지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두렵기만 했었다. 조심스럽게 병원에 가보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혹시 오해를 하지 않을까 두렵기만 했다. 그러다 조금씩 그런 일들(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 줄어들더니 요사이는 거의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다. 다만 그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주위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 마음속에서 웅크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울증의 아주 낮은 단계인 지인도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치료를 받는다면 앞으로의 생활이 걱정이 없을 것 이 아닌 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 이 책을 덮으며 같이 빌려온 또 한권의 우울증 관련 책(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김현진, 프시케의 숲,2020)을 편다.
저자 소개
이주현
어릴 적엔 시험에 나오는 공부만 하다가 어른이 되어서야 노는 게 얼마나 좋은지 깨달았다. 여행을 즐기고 달리기와 걷기를 좋아한다. 어릴 적 말괄량이 삐삐에게 열광한 덕분인지 어른이 되어 ‘삐삐언니’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씩씩하고 용감한 삐삐의 에너지에 의지해 조울의 사막을 무사히 건너왔다. 인생은 결국 새옹지마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음표와 느낌표를 멈추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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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공부했다. 운 좋게 같은 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했다. 24년째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독서 메모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딜까? 잠시 생각했다. 몸이 묶여 있었다.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힘이 없었다. 좌우로 들썩거리며 몸을 칭칭 동여맨 벨트에 저항했다.
정신과 병동에선 자해나 자실 위험을 고려해 유리컵 사용을 금지한다. 환자복은 병원에서 세탁하지만 속옷, 손수건 같은 개인 물건은 직접 빨아야 한다.
그랬던 만큼 병원에서 뇌파검사지에 일기를 쓴다는 것은 의미가 각별했다. 의료진이 폐쇄병동에서 아무리 자유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일기 쓰기를 통해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내 고유의 정신적 핵'을 지키고 있었다. 나치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려고 했지만 프랭클이 관찰과 분석을 통해 인간 최후의 존엄성을 통찰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질주하고 있었다. 비록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정신적 핵은 유지하고 있더라도 그 속도가 엄청나 스스로 다른 사람처럼 느낄 정도였다. 생각이, 감정이, 에너지가 쉼 없이 넘쳐흘렀다. 그 이전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었건만 그 시기엔 잠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잠잘 시간이 없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멈추지 않았다. 생각은 마치 공중에 별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번쩍 나타났다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떠나갔다. 생각이 명멸을 반복하며 잠들지 못하게 했다. 어떤 생각은 채도 높은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와 뿌리칠 수 없었다.
조증의 봉우리가 높으면 울증의 골도 깊다. 격렬한 조증은 그만큼 깊고 짙은 우울을 드리운다. 조증과 울증은 서로를 질투하며 복수극을 펼친다. 조증을 내버려두면 뒤이어 찾아온 울증이 더욱 집요하게 공격한다. 조증을 그리워할수록 울증은 떠나지 않는다. 당시 내 몸은 조울의 전투장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아니 한 때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슬픔은 슬픔대로 받아들이고 실패는 실패대로 인정하고 힘들면 주저앉고 잘 안 풀리면 접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과오를 인정하기 싫었던 나는 에너지를 쥐어짜내며 만회하고자 했다. 술자리를 만들었고 술을 퍼부었다. 주어진 업무뿐 아니라 새로운 일을 부지런히 구상했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잇따른 이별의 혼란과 슬픔, 자책과 후회를 반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무렵 개나리꽃과 함께 노란색 조증도 찾아왔다.
일상에 매력과 효율성을 높여줬던 조증은 점차 본색을 드러냈다. 조증이 치명적인 까닭은 이때 망가지 ㄴ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정신이 든 뒤에도 복구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조증의 주요 특이점 중엔 '타인과의 거리'를 제대로 재지 못한다는 게 있다. 나와 타이을 구분 짓는 경계를 마구 무너뜨리고 함부로 침범해 버린다.
종말이 닥치기 전날이라고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는 정말 지구가 ‘끝’을 행해 가고 있다는, 또는 자신의 인생이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느낌이 든다.
숨 한 모금 마시고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에겐 철칙이 있다고 한다. 욕심내지 않는 것, 자신의 폐활량을 정확히 깨닫는 것.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미역 따는 해녀와 전복 따는 해녀는 따로 있다. 미역만 딸 수 있는 해녀가 더 깊은 물에서 자라는 값비싼 전복을 탐내다 보면 목숨을 잃게 된다. '숨'은 냉정하다.
정신적 에너지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폐활량이 정해져 있듯 내게 주어진 정신적 용량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고양된 감정, 넘치는 활력, 고갈되지 않는 아이디어 같은 조증의 에너지를 계속 감당하기 버거워졌다.
재미슨이 묘사한 조증의 절정기를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내가 입원 직전 길거리에서 쓰러질 때 느꼈던 공포를, 그는 정확히 서술하고 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거실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다가 사방이 피바다로 변하는 화각에 빠지는 장면이었다.
조증에서 벗어나 자 날마다 축제 같았던 흥분이 사라졌다. 아무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담배 피우는 것도 귀찮았다. 의사는 “조증일 때는 주변 사람들이 힘들고, 울증일 때는 본인이 힘들다”고 했는데 정확한 표현이었다. 소리치고 울고 저항하던 조증 시기, 가족들은 쩔쩔맸다. 그러나 이젠 내가 무기력감에 쩔쩔맸다.
퇴원 뒤 몇몇 지인에게 연락했다. 걱정하는 쪽과 경계하는 쪽 두 편으로 반응이 갈렸다. 경계하는 이들에 대해선 마음을 접었다. 조증 이전으로 되돌리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다.
"유리병에 흙탕물이 가득 들어 있다고 치자. 당장은 뿌옇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흙은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게 다 지나간다. 힘들어도 견뎌보자."
과거를 반추하는 일은 조울병을 치료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은 병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울병의 한복판을 지날 때 보였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파악하는 데 필요하다. ‘나’를 재구성해봄으로써 위기에 처했을 때, 감정이 극도로 고양됐을 때 또는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패턴을 발견한다면 그다음 찾아올 조울병의 폭압에 방어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조울병이 왜 발병하는가에 대해선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뇌의 기분 조절에 문제가 생겨 발병하는 생물학적 질환이고 환경 변화나 스트레스가 방아쇠 역할을 한다고 한다.
조율병은 과거의 일이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든 감정을 증폭시켜 스스로 그에 휘말리는 경향이 있다. 할머니는 내 유년의 ‘뒷마당’이었고, 나는 이 지나간 뒷마당의 세계에 집착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한 것은 본래 가지고 있던 열등감, 콤플렉스, 승부욕, 끈기, 집중력 등 자발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았다. 강한 욕망에 따라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내면의 억압’ 도 그에 비례해 쌓여갔다.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닌 ‘소설’을 읽고 나면 그 시간에 공부하지 않은 데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일기엔 “오늘도 나는 공부도 하지 않고 ○○를 읽으며 지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고래심줄처럼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와 유약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각자 다른 유형의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강함과 약함과는 별도로, 아픔을 견딘 사람이라면 배추적의 깊은 맛을 알 것이며, 또 기꺼이 배추적을 부쳐 다른 아파하는 이웃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조울병이 아니었다면 나는 대학 시절 아삭한 생무의 아릿함만 맛보다가 이내 화려한 맛의 세계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 버렸을지 모르겠다. 김서령의 말대로, 아픔에 사무쳐본 사람만이 배추적의 맛을 안다.
우울은 실체 없는 어떤 것이 주변을 채우고 목을 조를는 느낌이다. 의지, 목표, 흥미가 마비된다. 모든 것이 메말라간다. 슬픔이 감정의 습지라면, 우울은 감정의사막이다. 그것도 사하라 같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라 남극 같은 동토의 사막, 우울은 귀를 막는다.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우울은 ‘셀프 감금’이다.
밤을 새우며 노트를 채우던 조증 때와 달리, 울증기엔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버리니까. 만약 우울의 느낌과 전개 양상을 소상히 기록할 수 있다면 그건 심한 울증이 아니라는 아이러니가 성립한다.
우울증 초반부 일상의 리듬이 아직 망가지지 않았을 때 두드러지는 증상은 우유부단함이다. 생각이 잘 굴러가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일도 결정하기가 어렵다.
처음으로 우울증에 휩쓸리게 된 나는 어찌할 바 몰랐다. 만약 당시 곁에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이 있었다면,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 따라가기 힘든 과목은 과감히 포기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요즈음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밝힌 뒤 별 죄책감 없이 혼자 있을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보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감정의 과잉,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발언 등이 있었던 것 같다.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어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는 사라에게도 갑자기 속내를 털어놓아 당황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것이 경조증이란 건 나중에 4년 뒤 ‘진짜’ 조증을 앓고 나서야 알게 됐다.
조울병은 격동의 20대에 벌어진 일회성 사건으로, 입원 사실은 청춘의 상흔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특히 유별난 사춘기를 겪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위는 넘기면 과거가 된다. 교훈을 이마에 새길지언정 무릎을 꿇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상태가 아시 안 좋아지면 꼭 병원에 와야 한다.”는 의사의 말은 ‘가석방’을 암시하고 있었으나 스스로 기결수라고 생각했고 ‘정상시민’의 일원으로 복귀했다고 믿었다.
눈은 그쳤다가도 다시 퍼붓는다. 꽃이 폈는가 하면 잎이 떨어진다. 조울병은 완치되는 병이 아니었다. 2006년 봄 다시 조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조울병은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움츠러들었던 겨울을 통과하고 새봄이 오는 기쁨에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는 탓일까. 조증은 봄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조증일 때는 모두 봄이었다. 그래서 2001년 조울병을 앓은 이후엔 아름다운 봄은 두려운 계절이었다.
아직도 정답이 무언지 모르겠다. 다만 내게 조증을 호소하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거다. 의사를 찾아가라. 술을 마시지 마라라. 사람과의 접촉면을 줄여라. 잘 안되겠지만 혼자서 빈둥대라. 울증 환자에겐 이런 조언을 할 거다. 의사를 찾아가라. 아깝더라도 업무량을 줄여라. 산책하라. 스스로 먹을 음식을 천천히 준비하라. 조증이든 울증이든 핵심을 이거다. 괴로우면 의사를 찾아가라.
환자들이 정신과 병원을 찾아 실망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대체로 성의 있는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 중 정신과 치료를 시도한 이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의사의 태도를 못 미더워했다. 의사들이 귀 기울여 자기 얘기를 들어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일단 병명이 밝혀지고 투약 치료에 들어가면 의사와의 대면 상담은 더욱 소홀해진다. 몇 분 동안 근황과 상태를 묻는 얘기를 나누고 약을 처방받아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물음은 이렇다. “잠을 잘 주무시나요? 약을 잘 챙겨 드십니까? 특별히 불편하신 건 없으셨어요?”
정신과 의사들이 뇌에 대한 전문 지식을 이용해 뇌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매뉴얼을 가르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울증을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마음의 감기’라며 대중이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에 올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낮춤으로써 약간의 의학적 도움만 받는다면 행복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음을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심리 전문가’로서의 떠들썩한 명성보다는 역시 진심이 통하는 의사가 환자에겐 더 좋다.
어느 날 나는 왜 이렇게 감정이 요동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감정은 '바다의 파도'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파도가 없는 바다를 생각해보라고. 파도가 쳐야 바다다운 경관이 생겨나고 그래서 아름다운 거라고 말했다. 감정은 배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이성은 갈 곳을 알려주는 방향타다. 좌표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경험의 축적 덕분이다. 우리는 감정을 동력 삼아 나아가고 이성을 발휘해 길을 찾는다. 그리고 항해의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며 서툴렀던 선원은 베테랑으로 성장한다.
선생님은 감정은 ‘바다의 파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파도가 없는 바다를 생각해보라고. 파도가 쳐야 바다다운 경관이 생겨나고 그래서 아름다운 거라고 말했다. 또 인생을 항해일지에 빗대 말했다. 감정은 배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이성은 갈 곳을 알려주는 방향타다. 좌표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경험의 축적 덕분이다. 우리는 감정을 동력 삼아 나아가고 이성을 발휘해 길을 찾는다. 그리고 항해의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며 서툴렀던 선원은 베테랑으로 성장한다.
"인지는 상황을 해석하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이를 왜곡된 논리와 부정적인 추론에 빠지지 않도록 인지하는 방법, 생각의 변화가 중요하다."
"인간에게 생각, 마음, 영혼이 있다면 가장 바꾸기 쉬운 것은 생각이다. 마음을 흙, 생각을 물, 영혼을 식물에 비유해 보자. 식물의 종을 아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고 토양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중 물 공급이 가장 조절하기 쉽다. 영혼을 교체하는 것도 어렵고 마음을 고쳐먹기도 힘들다. 생각을 바꿔보도록 노력해보자."
자아엔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가 있는데, 질병, 업무상 실패 등으로 사회적 자아가 훼손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적 자아가 굳건하다면 결국엔 어려움을 헤쳐 나올 수 있다.
주치의 선생님은 조울병이 사회문화적 영향보다 생물학적인 영향이 큰 질환임을 의미하는 근거 중 하나라고 말한다. 뇌의 기분 조절 문제가 발병을 초래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개발된 약물치료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증상이 호전되면 약을 끊기도 하지만 이것도 다 환자의 증상과 맥락에 따라 다르다. 대다수 전문가는 조현병, 조울증 등에 쓰이는 향정신병 약물은 첫 발병 땐 최소 일 년 이상을 유지하고, 세 번째 발병 이후엔 평생 먹는 게 좋다고 한다.
술 때문에 처방을 받은 적도 있다. 알코올은 조울병에 해롭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요동치고 감정을 증폭시킨다. 조증기에 술을 많이 마시면 활활 타는 장작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사실 우리의 목표는 치료가 아니라 치유이다. 치유는 ‘잘 살고 있다는 느낌“ ”자신에게 가장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과 관련된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조울병은 내게 계속 묻는다. 울증으로 온몸의 에너지를 잃고 벌레처럼 웅크린 나, 조증으로 자신감이 넘치는 나. 그 어느 것이 나의 본모습일까? 조증과 울증 모두에서 자유로운 나란 것이 있을까?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나는 내 기쁨과 슬픔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고 있는가? '요동치는 나' 안에서도 '존재하는 나',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아마 내 삶이 끝나기 전까지 정답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런 물음을 마음에 품고 자기를 계속 돌아보는 사람과 무조건 앞으로만 나아가는 사람은 다르다고. 그들 사이엔 인생의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난 인생의 마지막에 눈을 감을 때, 조울병이라는 변덕스러운 친구를 알고 난 뒤부터 그를 사귀기 위해 평생 성실하게 노력했었다고 말하고 싶다.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행위는 극한 상황에서도 숨통을 틔울 수 있는 한 조각 작은 마당이자, 자기 위로의 습관이자, 위축과 고립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된다. 조울병은 불가역적인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계를 다독여야 하는 상대다. 글을 쓰면서 나는 이 까다로운 파트너의 정체를 곱씹고 내게 끼친 파괴적 영향력을 정리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나로 인해 흘린 눈물을 기록하며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달았으며 좌절의 늪에 빨려들어 질식사할 정도로 내가 허약하진 않다는 걸 믿게 됐다. 글쓰기가 고통을 없애주진 않지만 고통을 관통하며 한 발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길러준다.
가족들은 의사가 추천한 <조을병,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를 돌려 읽으며 조울병이 어떤 병이고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에 대해 연구 토론했다.
이렇게 쿨한 반응이라니, 부모님은 내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딸의 격정이 몰고 온 파고에 올라 함께 단련됐던 것이다. 조울병은 부모도 성장시킨다.
부모님의 모범적인 삶의 방식이나 가족의 헌신적인 태도는 정신질환 발병과는 다른 문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론 파워스는 두 아들을 뒀는데 모두 조현병을 앓았다. 이 중 음악에 천재성을 보였던 둘째 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첫째 아들은 청소년기 저지른 운전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에 조현병까지 겹쳐 고군붙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 그와 아내는 정신적으로 건강할뿐더러 아이들에게 냉담한 부모가 절대 아니었다.
(정신질환)병 자체가 주는 충격도 크지만 유전 문제도 있다. 정신질환은 반드시 유전된다는 공포가 짙다. 실제로 제1형 양극성장애 환자의 1차 친족의 유병율은 일반 인구의 유병률보다 7배가량 높다고 한다. (…) 그러나 조울병은 단일 유전자에 의해 발병하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르지 않고, 다수의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발병하는 ‘복합유전질환’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이다.
모든 병이 다 마찬가지이지만 정신질환은 특히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친밀한 관계가 절실하다. 가족에게 버림받는다면 고통과 상실감 때문에 병이 더 악화될 수 있다. 약물치료를 통해 정상 상태로 돌아온다고 해도, 환자에겐 사회인으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사회적 관계가 무너져 있다면 회복 시간이 필요하다. 완전히 복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직장생활, 인간관계, 경제적 질서 등을 다시 세우는 데는 공감과 격려, 객관적인 충고, 경제적 지원을 해줄 가족 같은 가까운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울병 환자라는 사실을 굳이 꼭꼭 숨길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조울병을 자신의 역량을 제약하는 불변의 조건으로 여기는 것 또한 불필요한 것 같다. 일상생활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겠으나, 조울병에 대한 타인의 편견이 옳지 못한 것처럼 환자 스스로 위축되는 것도 온당치 않다.
자신의 질병을 동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면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고통도 슬픔도 공유할 순 없다. 이를 알기에 더욱 고통스럽고 슬프다. 그러나 가거 나의 아픔은 현재 아픔 속에 신음하는 조카에게 다가갔다. 우리는 삼십 년 터울을 가로질러 인생의 십자로에서 만나 서로 고통의 ‘곁’이 되어줬다.
웃음과 행복은 총액을 알 수 없는 적금 같다. 자꾸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기고, 자주 행복을 느끼면 행복해진다. 입금을 많이 하면 출금 액수도 많아진다.
신문사에 입사 뒤엔 남들에게 씩씩하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큭 웃고 목소리를 높이고 과한 농담도 서슴지 않았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위해 쓰고 있던 여러 개의 가면을 이 길에서만큼은 내던져버리고 싶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다 보면 숨어 있던 본 연의모습이 수면 위로 떠오를 듯했다.
타인의 시선에 포박되지 않은 내 모습은 끼마노를 걷기 전 실제 현실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줍음, 명랑함, 당돌함, 엉뚱함, 어수룩함, 열등감, 자존감, 대범함, 소심함, 정의감. 비겁함 .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공존 불가능해 보이는 요소들이 뒤엉켜 있다고 하더라도 그 어느 쪽이든 모두 나였다 솔직했고 그래서 충만했다. 나의 연대기가 담긴 지질층을 발굴하는 탐험의 결론이었다.
걷기는 이 ‘셀프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주변 풍광을 보면서 걷다 보면, 깊은 우물 속에 빠져 있던 괴로움이 스르르 몸을 푼다. 절대적으로 느껴졌던 고통의 부피가 줄어든다. 지금 당장 답이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견딜힘을 준다. 땅바닥에 몸 전체를 붙이고 꿈틀꿈틀 움직이는 환형동물처럼 길의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어가다 보면 영혼의 어딘가가 ‘징’ 울리는 느낌이 든다.
나는 조율병과의 평화를 원한다. 그러니 평화를 준비하겠다. 꽃 지는 풍경도 눈에 넣어 두겠다. 우울과 불안을 감추진 않겠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겠다. 조울병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현실과 광기 사이의 좁은 틈에 끼어 심연을 바라보았다.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넘쳐나는 감수성과 창의성, 자발성을 경험했다. 이처럼 고양된 자아에 깃발을 높이 매달고 흔드는, 심장 터지는 경험을 하기 쉽지 않다. 물론 그다음엔 우울의 바닥에서 죽음의 커튼을 들출 뻔했지만 말이다. 조울병을 앓지 않았더라면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보내준 지지와 응원에 이처럼 마음 깊이 감사하지 못했을 것이고,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랐을 것이다.
조울병은 적절한 치료를 잘 받으면 사회적으로도 우수한 능력을 보이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치료를 안 받으면 재발이 잦고 증상이 더 심해져서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어렵습니다. 즉, 치료를 잘 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좋아지고 나빠지는 진폭이 큰 병이지요. 저는 조증 시기에 약 처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증 시기 뒤에 찾아오는 우울기의 혼란스러운 심리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여기에 의사의 개입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마음이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특유의 차분하고 진지한 태도로 말씀 하셨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내면세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진료실 밖에서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경우 환자가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고 이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접해본 거절 중에 가장 명쾌하고 우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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