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이태석, 생활성서, 2010

그루 터기 2022. 1. 28. 10:47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 이태석, 생활성서, 2010

 

나는 그리스천이 아니다. 무신론자이다. 불교나 기독교의 성서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나 <성경> 같은 경전을 읽어 본 적은 있어도 다른 종교 서적들은 무신론자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잘 읽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종교적인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태석 박사님께서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책이자 그분의 평생소망이자 유언과 같은 희생과 봉사를 느끼며 배울 수 있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읽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이 그저 존경스럽고, 글 하나 하나에서의 안타까움이 지나온 나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젠 고인이 되신 이태석 신부님의 고귀한 정신이 영원히 이어질 수 있도록 기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자 소개

이태석

살레시오회 수도 사제이자 의사로 아프리카 남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그곳 주민들과 함께 살아왔으며 휴가중 대장암을 발견하여 투병 중, 2010114일 선종하였다. * 톤즈 마을 사람들은 이태석(요한) 신부를 `쫄리(John Lee)`라고 부른다.

 

 

 

독서 메모

 

그 남자의 다른 손에는 여기선 정말로 귀한 분유 깡통과 젖병이 들려 있었다. 없는 와중에도 가진 것 다 털어 이웃을 살리려는 그를 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가 마치 살아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 감동은 잠시, 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 아기가 여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손을 대지 못하도록 먼저 선수를 치는 것입니다.”라고 귀띔해 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거룩한 복음과 처참한 현실을 왕복 달리기하며 하늘이 무너지는 실망감 속에서 무능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다.

 

첫 곡을 합주하려면 적어도 두세 달은 걸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루 이틀 만에 적어도 한 옥타브 음계의 소리를 쉽게 불어 대고 있었다. 대단한 아이들이었다. 둘째 날 저녁 부랴부랴 첫 곡 주 찬미하라를 편곡하여 맹훈련을 시작했는데 아이들은 어려운 금관 악기들을 소치는 아이들이 풀피리 불듯이 쉽게도 불어 댔다.

 

이곳 수단은 역사적으로 전쟁이 잦았던 곳이라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 네댓 살 정도의 꼬마 아이들도 상개가 누구이든 자신에게 피해를 주면 언제든지 목숨을 내놓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또 쉽게 아이들의 싸움이 부모들 간의 싸움으로 되거나 더 나아가서는 가족들의 싸움, 심하면 마을 전체 혹은 부족 간의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봉구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곤 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으니 분명히 누군가가 이렇게 만들었고 그렇게 만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문제를 가정, 사회 또는 매스컴 등 애매모호한 대상에게로 탓을 돌리려 하지만 D동 수도원의 시설에서 수사님들과 함께 사는 60여 명의 아이들 가운데 99퍼센트가 결손 가정의 자녀들인 것을 보면 실제 범인은 나를 포함한 이 땅의 어른들이 아닌가 싶다.

 

고통 받는 환자들을 보면서 콜레라의 원인이 단순히 더러운 물 만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오염된 강물도 문제였지만 더러운 줄 뻔히 알면서도 그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이곳의 열악한 환경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어느 정도 있지 않는가? 선진 기술의 문화는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했고 지구 온난화를 야기 시켰으면 그것이 아프리카의 열악한 환경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가는 아프리카의 여러 전염성 질환에 우리도 어느 정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는 것이 없는한국과는 반대로 이곳은 말 그대로 있는 것이 없는곳이다. () 부족한 것들 때문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불편한 점도 있긴 하지만 부족한 것들 덕분에 얻는 평범한 깨달음도 많다. 무엇보다도 작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덤으로 얻게 되어 기쁘다.

 

세상을 46년 동안이나 살면서 나와 너의 만남은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엄숙한 순간이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했나 싶어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가 매일 수도 없이 가지는 만남들,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엄숙한 순간들이기에 큰 장치를 벌여도 부족할 판인데 왜 그렇게 과장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비방하여 가치 없는 순간으로 전락시켜 버리게 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말라리아의 종류는 균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되지만 처음 세 종류는 증상과 예후가 경미하여 생명에 큰 위협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종류인 팔시파룸이라는 놈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이 골리앗의 급소만 공격하는 아주 악질이다.

 

여기 수단은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정말 아름다운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는 너무도 많아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고 다른 하나는 손만 대면 금방 톡하고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이고 아이들의 눈망울이다.

 

우리의 삶도 하나의 여행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스팔트와 같은 평탄한 길도 있지만 때로는 요철이 많은 흙 길도 있다. 때론 산을 건너야 하고 때론 맨발로 강물도 건너야 하기에 쉽지 않은 여행이지만,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기에 어려울 때 서로 의지하고 넘어질 때 서로 일으켜 줄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기에, 더욱이 항상 함께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케냐나 탄자니아를 가면 길거리에서 기브 미 비스켓!” 또는 기브 미 머니!” 라고 외치며 먹을 것이나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과는 달리 이곳 수단에선 기브 미 어 펜!”하며 연필이나 볼펜을 구걸하는 특이한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특한 아이들이다. 이들이 구걸하고 있는 것은 단순하게 볼펜을 사기 위한 돈 백 원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들의 작은 외침은 배움의 권리 대한 정당한 요구요,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이유에서이건 교육의 충분한 여건을 마련해 주지 않는 것은 어른들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작은 외침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건물이나 중요한 유산들이 파괴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보다도 전쟁이 마뉴알과 같은 죄 없는 아이들에게 입힌 도덕적, 실리적 상처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파괴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베로니카라는 여자아이는 학기말 시험을 끝내자마자 네 명의 남편 후보감이 달라붙어 할 수 없이 경매(?)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소 150마리로 낙찰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들은 지 이틀 만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 왔다. 얼굴 부분의 상처들이 깊고 커서 조금 큰 병원이 있는 와우로 후송했는데 상처를 보니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걱정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재물의 주인이 되기만을 원할 뿐 자기 행동의 주인이기를 꺼려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우리 행동의 참 주인이 된다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재물을 조금만 덜 챙기고 이웃을 조금만 더 챙겨 주력 노력하다 보면 행동의 참 주인이 되지 않을까.

 

향의 조류와 세기의 정도에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자기장과 비슷한 그런 향기 말이다. () 내 삶의 향기는 어떤 향기일까? 얼마나 강한 자기장을 지닌 향기일까? 내가 스스로 맡을 수도 없고 그 세기도 알 수 없지만 그 향기에 대해 내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니 않나 생각하게 된다.

 

전쟁은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 전쟁으로 희생되는 많은 아이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도덕적 관념이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은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 아니 목숨 걸고 반대해야 한다. 전쟁을 막을 수만 있다면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밀어붙이며 반대해야 한다.

 

이 세상 가장 가난한 곳에서 모든 것을 바치며 불꽃처럼 살았던 이태석 신부,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는 어쩌면 그가 평생 품어 왔고 이 세상 모든 이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소망이자 남기고 싶은 유언이었는지 모릅니다. 극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이에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달라는 그의 간절한 부탁 말입니다. 사랑만이 희망임을 삶으로 보여주고 떠난 그의 아름다운 영혼이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합니다. - 김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