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고양이를 읽는 시간』, 보경스님, 불광출판사, 2020

그루 터기 2022. 2. 2. 05:27

고양이를 읽는 시간, 보경스님, 불광출판사, 2020

 

역시 스님들께서 쓴 책들은 어렵다. 술술 넘어가지 않는다. 고양이와의 일상 이야기를 그렸지만 꼭지 하나하나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깊이 생각해 봐야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그만큼 정독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좋은 글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일 정도지만 종교적인 색깔은 거의 없다. 스님의 생활의 전부가 성직자이다보니 일상의 이야기와 소재를 삼은 경전들은 있지만 종교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른 책에서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해서 종교적이지 않듯이. 고양이를 통해서 삶의 지혜를 배워는 내용으로 지난번에 쓴 책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가 어쩌다 산중 암자로 찾아든 고양이의 겨울 이야기였고. 이번에 쓴 이 책은 속편인 여름 이야기이다. 보경스님은 고양이를 지켜보는 관찰자다. <바라봄> 그저 바라보면서 고양이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초지일관 낭이를 때 마다 읽는다는 마음으로 대한다고 했다. 잘 읽으려고 어떤 선입견도 가지지 않고 마주보는 사물을 빈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잘 읽을 수 있고, 바르게 읽을 수 있으며 바르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글을 읽다보면 조용한 산중 암자에서의 고양이의 모습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다가온다. 스님 말씀처럼 자연, 시간과 더불어 인내를 배운다 . 이 세 가지를 의사로 표현하신 스님말씀에 격하게 공감한다.

사이사이 그린 삽화가 정겹다. 슬며시 웃음이 난다.

 

 

 

저자 소개

보경스님

송광사에서 현호 스님을 은사로 출가, 선방에서 10년을 살았다. 조계종단의 이런저런 소임도 충분히 살았고, 서울 법련사에서 12년간 주지로 일했다. 동국대대학원에서 수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강의를 하면서 베스트 렉쳐 어워드(Best Lecturer Awards’)상을 받기도 했다. 일생 만 권 독서의 꿈, 불교의 인문학적 해석을 평생의 일로 삼고 정진해가고 있다. 현재는 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송광사 탑전에서 수행과 독서,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는 즐거움》 《이야기 숲을 거닐다》 《행복한 기원등의 에세이와 기도하는 즐거움》 《한 권으로 읽는 법화경》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 《수선사 연구》 《숫타니파타를 읽는 즐거움》 《선문염송 강설》 《아함경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등의 경전류와 논서 저작이 있다. 이 책 고양이를 읽는 시간은 전작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의 겨울 이야기에 이은 여름 이야기이다.

 

 

 

독서 메모

 

냥이에 대한 책임감은 뜻밖에도 내 삶에 대한 충실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굳이 누구와 대화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듯이 시간을 흘려보낼 마땅한 것이 하나도 없이 조그만 뇌로 하루 24시간을 가늠하며 살아가는 냥이의 시간은 눈물겹다. 하물며 사람인 내가 빈 마당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튕겨 오르는 한낮의 햇살처럼 기쁘게 살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기라는 자연 순환의 법칙이 있다. 생명체는 생로병사, 자연물은 성주과공이 있다. 한 번 생겨 난 것은 반드시 소멸되는 이치다. 그 속에는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있고 한 해가 있다. 하루는 낮과 밤이 있고 한 해는 사계절의 변화가 있다. 우리의 삶은 이 속에서 영위되며,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과 고통의 반향이 다르게 울린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의 으뜸은 지혜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삶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우리는 이런 지혜를 스스로 터득해갈 수도 있고 남을 통해 배울 수도 있다. 독학으로도 잘 되면 좋겠지만, 이 경우에는 독선이나 아집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같은 시간, 같은 오력이라면 선각자들의 지혜를 통해 깨달아가는 것이 유익하다. ‘푸른 무화과는 빨간 무화과를 보며 익어간다.’는 말은 아랍의 격언이다. 잘 익을 무화과는 한 과실이 환성되어 가는 길을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 뒤따르는 푸른 무화과는 그 길을 잘 따라가면 된다. (나는 매사에 독학을 좋아했다 물론 교육도 좋아했는데 돈들어가는 것은 별로 였다. 그러다보니 취미생활을 하는 것중에 대부분은 기초만 배우고 나머지는 독학이 였다.)

 

새끼고양이 가족에게 뭐가 더 필요하랴. 뭐든 먹고 기운차려서 건강하게 살아가길 빌었다. 이곳은 불살생의 도량이니 사람을 너무 무서워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고양이는 고양이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된다. 어미 고양이 너는 모르겠지만 네가 지금 너의 새끼들에게 하는 방식으로 너의 어미도 그렇게 했고, 너의 새끼들도 너의 방식을 따라 행동하고 익어갈 것이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기를. 나는 우리가 도량에서 마주친다면 반갑게 인사라도 하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랄 뿐 태어나줘서 고마워. 부디 잘 자랐으면 해.

 

고양이의 성격은 매우 은근하여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사가 조심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돌다 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그들에게는 몸에 배어 있다. 강가에 살려면 악어와 친해져야 하는 것처럼 고양이 도 인간 속에 들어오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야지의 고양이건 이미 인간세계로 편입된 고양이건 그들의 머릿속은 인간과의 거리를 재며 다가오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편견으로 고양이를 미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용기를 가상하게 봐야 한다. 고양이가 없는 세상은 인간사회의 이야깃거리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손해는 인간에게 더 많지 않을까? 아니, 평생 사람하고만 산다면 놓치는 것도 많지 않을까?

 

신발이 맞으면 신발도 잊고 발도 잊는다. 또 허리띠가 적절하면 허리에 뭘 묵었는지도 잊어버린다. 마음도 그렇다. 순조롭고 편안하면 시비를 잊는다.

 

사물은 기울어지면 소리가 난다. 여기저기 불만의 소리란 결국 균형을 잃었다는 뜻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불을 지필 때도 그랬고 절에서 아궁이에 장작 넣을 때도 항상 듣는 말이 잘 타고 있는 장작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괜한 궁금증이 자신에게서 멈추면 좋은데, 한가해지면 시선은 남을 향한다. 갓 출가한 스님들이 배우는 초발심자경문억지로 남의 일을 알려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다.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대중생활에서는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니다. 나는 왜 시비가 많을까, 하는 사람은 무의식중에 남의 일에 간섭하고 자극하는 행동이 많기 때문이다.

 

강은 밀지 않아도 가고 끌어당기지 않아도 온다. 인간의 억지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강의 그런 흐름처럼 세상을 물 흐르듯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우선적으로 떠올린 한 가지는 들쑤시지 않기'.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남에게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삶이란 어떻든 힘겹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삶이 힘겨운 까닭은 바로 우리 자신의 잘못과 실수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한다. 나의 참회와 남의용서는 함께 가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것, 그것은 강을 밀려 하지 말라는 철학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꾸 건드려 불편하게 한다.

 

내리막에서는 달리지 말라고 한다. 그냥 가도 빠른 길인데 사람들은 좋다 싶으면 가속페달을 밟는다. 세상이 문제라는 것이 대부분 호시절에 간과했던 업보들이다.

 

"우리가 혼자서 꾸는 꿈은 미약하지만 모두가 함께 꾸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 된다. 높이 오르려면 우선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한다. 시간을 소홀히 보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을 알기 위해 많이 공부해야 하는 것은 학문의 법칙과 같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배울 것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냥이는 가장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냥이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인간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움직이면 더우니까 극도로 활동을 자제하면서 자신의 체온을 덥히는 행동을 참아내는 냥이 만의 내공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연꽃에 비유하여 처염상정이라 한다. 연꽃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지만

청정한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세상에 살아갈지라도 마음이 물들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다. 따지고 보면 흙에 더러움이 있겠는가. 흙 자체는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다. 그것을 보는 우리가 깨끗함과 더러움을 생각할 뿐이다."

 

냥이와 내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같이 잘 지낼 수 있는 비결은 냥이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냥이와 살아가는 첫째 원칙이 냥이가 오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아직 고양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냥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냥이의 마음을 알아내기가 보다 수월해진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발견하고 제시해야 한다."

 

사람 사이는 계속 이어져야 하고, 좋아야만 한다는 무의식이 이런저런 번의와 괴로움을 불러온다. 종종 듣게 되는 '관계 다이어트'라는 말은 현대인이 관계 때문에 겪는 심리적인 문제가 크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관계에 대해서는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같은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몇 사람이면 충분하다. 이 자세라면 자연스럽게 보내주고 받아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냥이가 유일한 식구라면 식구이지만 먹는 것을 함께 할 수는 없다. 내가 냥이의 사료를 먹을 수도 없고 냥이가 김치나 김을 먹을 수 없으니 우리는 한 지붕 밑에 살지만 엄밀하게 한 식구는 되지 못한다.

 

명은 마음을 밝혀 아는 것이다. 지혜가 이성적인 판단과 지식 축적의 산물이라면, 밝음은 통찰이라는 차이가 있다.

 

낭이도 가끔 문 밖에서 혼자 공양하는 나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나 또한 적어도 하루 한 번이라도 냥이가 꺼끌꺼끌한 물기 없는 알갱이 사료를 먹는 시간이면 되도록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다 먹을 때까지 지켜봐 주려고 한다. 많이 먹어 , 천천히! 하면서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불빛이 돋아났다. 고양이 눈에 반사된 불빛이었다. 고양이의 얼굴을 가늠하면 대략 두 눈의 간격을 짐작할 수 있는데 한 마리는 불이 하나만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눈병 난 고양이임을 알 수 있었다. 간혹 한쪽 전조등이 꺼진 채 움직이는 자동차를 볼 때의 바보스런 느낌과는 다른, 정상적으로 불이 들어온 쪽이 오히려 잘못된 듯 한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한 개의 빛은 이내 돌 틈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랬구나. 너 정말 눈이 멀고 말았구나.’

 

우리는 천 송이의 장미에 감격하지만 때론 한 송이 장미에 더 녹아날 수도 있다. 불교식으로 설명하면 많고 적음은 다()와 일()의 세계로 집약된다. 한쪽을 포기하고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추구하는 심플라이프라는 삶의 태도 또한 심층적인 안목이 작용한다. 재우려는 열망보다는 비어있는 안목을 보는 것이다. 악기도 소리가 나려면 공명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경쾌하게 살려면 몸 과 마음이 쾌활하고 가벼워야 한다. 빈 공간에 소리가 잘 울리고 햇살이 모여들 수 있듯이 마음을 넉넉하게 쓰면 행복이 미소 지으며 햇살처럼 내 인생의 창에 모여들 것이다. 쾌활한 정신으로 즐겁게 살면 없는 복도 생긴다는 말씀!

 

풀뿌리를 씹으면 나중에 단맛이 나듯이 무미건조한 삶이라도 자꾸 되새기면 향상 되는바가 있다.

 

인생의 모든 것이 그렇지만 반복, 즉 횟수가 큰 변화를 가져온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연습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쌓여야 어떤 단계에 올라선다는 이론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횟수와 양이 인생의 큰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노력 이 쌓이지 않고서 알짜배기를 얻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른 내용도 공감하지만 이 법칙은 내가 자주 인용하고 즐거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완전음치였던 내가 한곡의 노래를 500번 이상 연습해 노래방에서 18번으로 부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1만 시간의 법칙과 비슷하다)

 

뙤약볕 아래서 식빵을 굽고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한 마디하게 된다. “냥이, 익다 못해 타겠어!” 일단 냥이를 보고 나면 흐뭇하고, 비로소 다음 일을 한다. 땀에 젖은 옷을 세탁하고 아무리 더워도 차를 뜨겁게 우려내 한 사발 마신다. 뜨거운 차를 마시면 갈증이 가시기도 하지만 몸이 편안해진다. 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잘 먹으면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더울수록 몸을 따뜻하게! 냥이가 햇볕 아래서 식빵을 굽는 것도 같은 이유일지 모르겠다.

 

사마천이 말하듯 성공의 그늘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과거의 실수와 잘못은 참회 하면 된다. 그리고 밝게 밖으로 나와 자연을 보고 사람을 마주하고 시간을 잘 관리하면서 유쾌하게 살아가면 된다. 자연과 시간과 인내는 3대 의사라고 한다는데, 각자 의사 셋을 친구삼아 현명하게 살아갈 생각을 해보라.

 

일인지 알게 되기 때문에 그들 산중에서 동물들을 가까이 해보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사람 손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어서 보살펴 줄 마음이 있다면 그냥 멀리서 지켜보면 된다. 이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동물이 편안하고 위협을 느끼지 않은 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해줘야 한다. 생명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행동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실천은 항상 용기가 따른다.

 

불교 수행의 시작과 같은 마음을 챙기고 지켜봄이다. 마음을 챙긴다는 뜻은 마음을 잘 제어한다는 의미다. 무엇으로부터 제어하느냐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심으로 부터다. 그런데 셋은 한 얼굴이지 다른 모습이 아니다. 탐욕이 있으면 화를 잘 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한 다. 또 화는 자기 욕심대로 되지 않으니까 분출하는 불만족이 가장 큰 원인이고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어리석으면 탐욕을 부리고 분노함으로써 모든 공덕을 불살라버린다. 세상의 모든 종교와 현자들이 가장 경계하도록 가르치는 것 중의 첫째가 화를 다스리는 일이다.

 

몇몇 고양이들과 한 산중에서 마주치며 살아가는 나는 관찰자로서 가능하면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는 자세로 지낸다. ‘바라봄’, 그리고 최소한의 돌봄이 내가 세운 원칙이다. 어찌 이곳 야지의 고양이뿐이겠는가. 먹을 것을 찾아 마당까지 내려오는 한겨울의 멧돼지와 고라니 무리, 빈 하늘을 빙글빙글 도는 까마귀들, 빈 사료 그릇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개미떼, 비바람에 이파리가 뜯긴 뜰의 화초들. 그 모든 곳에 내 마음이 가닿아 있기를, 그러다 어느 순간 적절한 개입이 필요한 순간에 내가 용기를 낼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자비심을 기르는 좋은 방법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노력이다. 그래서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결코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마라. 절대 당황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핵심이다. 그것은 완전하고 고상한 사람의 표시이며 관대함은 쉽게 평정을 잃지 않게 한다'라고 했다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관대해진다. 또 관대한 마음이 온화한 성정을 기른다.

 

완벽함은 넘치지 않음, 혹은 부족함이 없는 심리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나 사물이 어떻게 완벽함을 주겠는가. 그 외물의 온전함은 밖으로부터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주체인 내가 느끼는 것이다.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충만한 행복이 외물을 아름답고 완벽하게 보이게 한다. 냥이의 완벽함은 냥이가 구족하고 있다기보다 냥이를 사랑스럽게 보는 내 마음에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다. 콩깎지가 씌였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당연히 냥이의 소리다. 특히 내가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나 밤 깊은 시간, 냥이가 내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들어서면서부터 내는 소리이다. ‘야옹분명한 소리가 아닌 그냥 아앙하는 정도의 엷은 웅얼거림이다. ‘어디 있냐, ‘나 지금 가는데로 들리는 맑고 투명한 소리. ‘한없이 투명한 블루의 울림이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냥이가 오는 쪽을 바라본다. 냥이가 없는 먼 훗날, 가장 그립고 생각나는 것이 냥이가 나를 찾는 그 소리가 아닐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