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김현진, 프시케의 숲, 2020
같이 빌려온 조울증에 관한 책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이주현, 한겨레출판사, 2020 ’를 읽고 바로 이 책을 폈다. 여기에는 우울증에 관한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마음이 급해지는 건 웰까? 이 시간은 내가 매일 손글씨 연습하는 시간인데 책을 펴다니. 이래저래 마음이 급했다. “뭐지?” 책의 앞쪽인 1부는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뒤쪽은 우울증이 아니라 작가의 다른 이야기였다. “뭐여 이게!” 책이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가 심도있게 펼쳐지는 걸 상상했던 나에게 반전이었다. 뒤쪽 하지원 의사 선생님의 추천사를 먼저 읽었을 때 알아 봤어야 했다. 이 책은 우울증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라기 보다 작가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가 일상의 다른 이야기들과 같은 소재로 등장한다.
책을 덮으며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라서 다행이고, 작가가 우울의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울증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좀더 원했던 나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중의 하나인 재미있는 책이다. 그저 술술 읽히는 책이다. 나의 생각을 초월하는 가난의 일상들에 가슴이 아프다가도 피식피식 웃을 수밖에 없는 표현들이 나를 당황하게 한다. 그렇게 힘든 일들을 이렇게 웃음이 나도록 글을 쓸 수 있는 건지. 나도 노지양 번역가님처럼 도서관 검색 컴퓨터를 두들겨 봐야 할 것 같다. 김현진 작가님이 쓴 다른 책을 빌려보기 위해서.....
어려운 형편에서도 작가님을 챙겨주신 수학자 부부님의 사랑에 가슴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독자로서....
저자 소개
김현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와 서사창작을 공부했다. 삶이 구차하고 남루할수록 농담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한겨레〉 〈경향신문〉 〈조선일보〉 〈시사IN〉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실었고, 에세이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소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등을 썼다. 줄곧 글 쓰는 삶을 살아왔고 계속 쓸 것이다.
독서 메모
오랫동안 자해를 하다가 마침내 어느 날, 이건 수면제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수면제를 삼키느라 마신 물 때문에 배 터져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약을 삼켰다. 점점 의식이 가물거렸다.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는 반려견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지금은 못 놀아줘, 미안. 그럼, 음, 이젠 안녕.
우울증이란 놈은 관심을 너무 주면 내 모든 것이 죄다 제 것인 양 설쳐대고, 관심을 너무 안주면 나 여기 있으니 좀 알아달라고 발악을 하다 기어코 뭔가 사고를 치고 만다. (…) 녀석을 눌러 없애려 하지도 않고 맹렬하게 미워하지도 않고, 그냥 ‘내 옆자리에 누가 있나 보다’하며 창밖 경치도 보고 책도 일고 그러다 보면 녀석도 어느새 조용해져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갈 것이다.(내가 동반자라고 이름 붙인 통풍하고 비슷한 놈이네요)
달리기는 뭔가 달랐다. 뭐랄까,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에 약간 여유를 주듯이 어깨의 힘이 조금 빠지게 된다. 분하고, 화나고, 속상한 부정적인 기분들이 달리면서 뱉어내는 숨에 울분과 함께 빠져나가는 듯하다. 그전에도 우울증에 달리기가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정말 효과가 있었다. 믿으시라. 20년째 우울증과 사투하는 내가 효과가 있다고 하면 정말 있는 것이다.
가끔 그 지방들은 나를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게 해줄 때도 있었다. 이를테면 원치 않는 남성들의 성적 접근에서 확실한 방어막 역할을 해줬다. 내가 패딩코트처럼 두른 지방은 마치 비계로 된 갑옷처럼 그런 일들을 막아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남자들은 내가 살이 찌지 않았을 때는 지분거렸지만 살이 찌자 경멸하기 시작했다. 지분거리는 것도 싫지만 그들에게 경멸당하는 건 더 싫었다.
무거운 여자들은 숨 쉬고 있는 매 순간마다 혐오와 싸우고 있다. 무거운 여자는 차를 몰고 나와도 “뚱뚱한 X이 차를 왜 끌로 나와서”라고 욕을 먹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빈자리가 나서 앉으면 “저렇게 편안한 걸 밝히니까 살이 찌지, 쯧쯧”하고 욕을 먹는다. 경멸과 혐오가 그물처럼 촘촘한 세계를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없다.
이 의사도 성의 없긴 마찬가지였다. “아프다고 이걸 마취해요? 좀만 참아봐요!” 그러더니 이걸 시술한 의사를 욕하기 시작했다. “머저리 같은 놈, 이걸 나중에 빼려면 실을 제대로 앞에 나와 있게 해놔야지, 실을 저 안에 넣어놔 가지고 실을 꺼낼 수가 없잖아. 어떤 돌팔이야!” 그러면서 “조금만 참아요” 하며 실을 찾기 위해 내 몸속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겨우 실을 빼내고 나서야 고통이 멈췄는데 마치 인간이 아니라 ‘암소’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는 실력이 있는 의사가 아니다. 가까이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이고, 더 좋은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의사다. 이런 의사를 과연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의사에 넣어 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나는 정신이 너무나 괴로울 때 육체를 해함으로써 정신을 한눈팔게 만들었다. 흔히 정신력으로 육체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육체적 고통은 번번이 정신을 이겼다. 미쳐버릴 것 같은 우울감은 피가 흐르는 뜨끔한 통증 앞에 잠시나마 자취를 감추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보존 본능을 지니고 있는데, 그런 본능과 상충되는 짓을 저지르면서까지 자해 환자들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과연 뭘까. 덩어리가 시뻘겋게 진 핏줄기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깨닫고 있는 것은 뭘까.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 살아 있다’라는 삶에 대한 실감이다. 적어도 지금 내가 살아있다.
적어도 몇몇 상투적인 위로의 말들을 경솔하게 건네지는 말도록 하자. ‘마음의 병은 마음에 달렸다’라거나 ‘죽을 각오로 살면 왜 못 살겠냐?’등의 말들은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 특히 맨 마지막 말의 경우 조심해야 한다. 정말로 죽을 힘 밖에 남지 않아 죽은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뭘 하고 있어? 어서 심으라니까?” 네, 까라면 까야지요. 마담은 멀쩡한 손 뒀다가 너 지금 뭐 하니, 하고 얼굴에 궁서체 폰트 16 볼드 정도로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그러다 빈약한 지혜가 떠올라 얼른 가게에서 병맥주 따개를 가지고 나왔다. 병따개로 흙을 파자 모종삽만큼 효율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땅이 파이기 시작했다. 이래서 인간은 도구의 동물이었구나!
더 흥미로운 것은 이들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책도 종종 쓴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애와 영업은 신기하게 비슷한 구석이 많다. 첫째는 인사이드 마케팅, 내부 교육이 철저히 되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좋아하지도 않고 자신이 없는 사람이 이성에게 매력적이지 못한 것처럼, 세일즈맨 스스로가 좋아하지 않는 상품을 팔수는 없다. 다행히도 나는 내가 파는 녹즙을 좋아했다.
거울을 볼 때 남자의 70퍼센트는 자기 정도면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여자의 70프로는 자신이 뚱뚱하다고 여긴다는 농이 있다. 아는 남자 하나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장동건이나 박보검은 너무 부담스러워. 나 정도가 딱 이지”라고 망언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오래 입은 옷처럼 몸이 맞춰져 잇던 회사 조직이 거칠게 개편되었다. 한 팀이 완전히 갈리고 새로운 팀장이 왔다. 팀장은 능글대며, 있는 대로 여자를 밝히고, 그 사실을 회사 여직원들에게 전혀 감추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그런 남자라는 사실을 매번 나쁜 손버릇과 말버릇으로 보여주는 것은 너무 역겨운 일이라 마음이 매우 상했다. 나 역시 그의 못된 버릇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누가 나를 싫어해도, 추진하려던 일이 무산되어도, 누가 나를 욕해도, 날 보는 남자 눈치가 영 별로라 연래가 꼬여도, 나는 별로 휘청거리지 않는다. 거절이라면 충분히 당해봤다. 수십 수백 번 당해봤던 것이다. 그 거절들이야말로 나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다.
순진무구한 부모님이 다단계를 소개받고 이거면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고 열렬히 세일즈에 임했지만 우리 집 창고에는 자석요만 쌓이고 또 쌓였다. 우리가 살던 동네의 모든 사람에게 신게 할 수 있을 만큼의 황토 양말과, 한꺼번에 가동시키면 혹시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싶은 저주파 치료기 같은 것도 창고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 물건들의 값을 누군가는 치러야 했는데,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다섯 살의 내가 당첨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풍산개에는 ‘개비서’가 따로 있어서 개를 수행했는데, 이 개는 회장님의 모든 행보에 동행했다. 개는 다리가 네 개나 있으니 걸으면 될 텐데, 가장 젊은 ‘개비서’의 역할은 송아지만 한 개가 치와와만 하기라도 한 것처럼 번쩍 안고 회장님이 가는 곳마다 함께하는 것이었다. 저러다 다리가 퇴화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었지만 회장님은 어디나 개를 부둥켜안은 비서와 함께 위풍당당하게 출입했다.
레인위를 자처하는 나의 아버지와 6억 원이라는 돈을 하루에 아들을 위해 녹여버리는 왕세자의 아버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완전히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의 실사판을 보는 심정이었다. 아마 회장님은 자석요나 황토 양말 따위에 절대로 속지 않을 것이다.
그 말년 병장 청년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내가 사다 안긴 과일을 들고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던 청년, 지금은 뭘 하고 살고 있을까? 아직도 나이트를 즐기고 있을까> 이름도 모르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나이트에서 부팅한 남자’로만 알고 있는 그는 내가 아무 사심 없이 순수하게 행운을 빌어주고 싶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행복하길. 당신의 깨끗한 피, 참 고마웠어요.
모든 에디터들이 배석한 가운데 그는 나의 이력서, 자기소개서, 샘플 원고 등을 심각한 얼굴로 한창 뒤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회의실에 들어가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자 인사를 받는 그의 표정은 무슨 산업폐기물을 보듯 혐오스러운 시선이었다. 그러더니, 그는, 내가 준비해간 서류들을 공중에, 휙, 하고 죄다 화려하게 날려버렸다! 아니, 이건 뭐지? (요즈음의 심층면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니? 알고 들어갔으면 모를까 나 처럼 아무런 지식이 없이 들어갔다면 정말 멱살이라도 잡고 나오고 싶은 심정이 었을거다. 그런 참을성이나 냉정함을 테스트 하는 것일까? 참 새로운 세상이다. 이러니 내가 젊은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꼰대라는 말을 듣는 것일까?)
좋지도 않은 머리를 애써 팽팽 굴렷다. 날까지 잡았다니 엄청난 이변이 없는 한 분명히 두 사람은 결혼할 터였다. 아마 이정도 해프닝 때문에 그녀가 결혼을 안 하지는 않을 거였다. 그렇다는 건,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곳을 알아봐서 쫓아온 건, 결혼을 안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내 탓으로 돌려서 결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일 거였다.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자. 내가 같은 여자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그녀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나를 쌍년으로 생각해서 듬직한 내 신랑감이 잠깐 정신이 돌았다고 생각하도록 해 주는 게 가장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교인들을 지도하기 위한 역량에 필요하다며 상담심리를 전공했고, 만만치 않던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암보험을 깼다. 모든 것은 주님이 알아서 채워주신다며 암보험을 깬 다음, 암으로 돌아가셨으니 웃을 수도 없고 그저 기만 막혔다.
“원래 이렇게는 말씀을 잘 안 드립니다만, 목사님들 중에는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분들은 굳이 수의 안 맞추시고 생전에 설교할 때 입던 양복을 입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있으면 한 벌 가져오세요.” 우리 가족을 아무리 찔러도 별로 돈 될 게 나올 게 없어 보이니 나름 팁을 준 모야이었다. 나는 그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여 잽싸게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가서 아버지의 양복을 가져와 무사히 염을 마쳤다.
청국장 통에 든 아빠를 내가 준비한 예쁜 병에 옮겨 담았다. 아파가 이 통에서 다른 통으로 새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빈 청국장 통을 물로 씻는데, 아직까지 통에 남아 있던 아버지가 물 위에 둥둥 떠올랐다. 순간 아버지의 가루를 그냥 씻어 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이 한 줌도 안 되는 가루도 아버지인데. 이대로 통을 헹궈버리면 아버지를 수챗구멍으로 밀어 넣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고민하다가, 나는 그만 그 통을 들어 아버지가 섞인 물을 단숨에 마셨다. 아버지를 하수구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아주 약간 내 몸에 매장한 셈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무덤이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은 석회 맛이 났었다.
부모님 주머니로 한 번 들어간 돈이 나한테 도로 들어오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뭘 기대했냐, 흐하하. 나는 아무도 없어 을씨년스러운 집 앞 놀이터에서 발을 힘차게 굴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것으로 그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서 삼켰던 온갖 쓴맛을 꿀꺽 삼켜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한 남자가 엄마와 나의 인생에서 나간 대신 다른 남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것도 날이면 날마다. 그는 용역깡패였다.
나는 아버지를 여의고도 서러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건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 빽 맛을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날은 유일하게 아버지가 없다는 게 서러웠다. 아버지만 살아계셨어도 저런 영감이 나를 며느리감으로 점찍고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무슨 성은을 베푼다는 표정으로 감히 하진 못했을 텐데.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울진 않았다. 내가 이 따위 소리를 듣고 울면 아버지가 정말로 슬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울고 사람을 귀찮게 한다고 여지없이 매를 맞았다. 잔뜩 화가 난 아버지는 나에게 손찌검을 하다 말고 마루에 놓여 있던 케이크 상자를 가져와 안방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아예 발로 밟아 뭉개 버렸다. 어떤 모양이고 어떤 맛일지 궁금해 살짝살짝 엿보던 내 인생의 첫 번째 생일 케이크는 그렇게 엉망으로 짓눌려 복구 불가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완전히 뭉그러진 테이크 상자를 붙잡고 엉엉 우는 나를 한심스럽다는 듯 쳐다보며 부모님은 그러게 왜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다가 매를 버느냐고 혀를 찼다.( 혹시 아버지도 조울증 환자가 아니었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부모님의 행동과는 너무 달라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이제 계시지 않은 분이시기 때문에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아니 계시더라도 너무 가난하여 병원에 가보시기도 쉽지 않겠지만 안타까움이 자꾸만 가슴에 파고든다.)
해마다 내 생일이 돌아오면 아예 습관이 붙어 내 생일을 축하하기보다 늘 해왔던 대로 부모님께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대신 두 배로 어머니께 호사를 누리게 해드리려 애쓰는 중이다. 어린 시절 초도 못 꽂아보고 두 개나 뭉개져버린 케이크들의 기억은 슬펐지만 내가 일찌감치 돈을 벌게 되어 호기롭게 두 분께 비싼 밥을 사드릴 수 있었던 시간은 아버지와 빨리 헤어져야 했던 내게는, 어떤 축복이었던 것 같다.
이게 미쳤나 / 그래 미쳤다 / 하도 쳐 맞다 보니 미쳤다./ 맨날 자식이나 쳐 패는 게 무슨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사랑이 어째? / 매를 아씨면 자식을 망친다. / 부모로서 부끄럽지도 않아? 내 나이가 이제 스물한 살인데, 언제까지 패서 바로 잡는다는 거야! / 이런 독사의 자식 / 다신 내게 손대지 마. 배를 걷어차지도 말고, 한 번만 더 손댔다가는 다 죽여버릴 테니까 / 패륜도 이런 패륜이 없구나 / 계속 이렇게 맞으면서 살 순 없어. 이젠 멈출 거야./ 이런 마귀 새끼 /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이젠 멈출 거야. (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스무살이 넘은 자식에게 배를 걷어차는 채벌이 과연 정당한 채벌일까? 나는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때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놀러다닐때, 야단을 치다가 아들의 등짝을 스매싱한 걸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아들이 그 한 번의 등짝스매싱이 견딜 수없는 아픔이 아니라. 자기 주장에 대한 부모의 불신에대한 서러움이 더 컷을 것이고, 나는 지금 생각해도 결코 그날의 채벌이 아들의 생각을 바르게 고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을 거라 생각이 든다. 도리어 역효과가 나지 않았을까? 가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날의 일을 이야기 하는 경우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면 아들은 말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아직도 섭섭한 것이 있는 것일까?)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내게 호된 체벌을 한 것은 아니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는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정직한 사람이었고, 나는 여전히 그런 아버지를 사랑했다. 사랑했지만 용서할 수 없었고, 용서 할 수 없지만 사랑했다.
내가 나쁜 직원인 만큼은 아니었지만, 보스도 대단히 훌륭하고 고귀한 상사는 아니었다. 그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형님들’ 앞에서는 그 분노가 신기하게도 잘 조절되었다. 주부 사원과 수위가 약한 언쟁을 벌인 다음 그녀가 사무실을 나가자 거기다 핸드폰을 집어 던지는 걸 보고 나는 여기서 얼른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처럼 우울증을 심하게 앓은 경험이 있는 언니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형부가 가운데에 우뚝 서서 시부모님의 그 어떤 접근도 허락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세상이 전혀 침범해 들어오 수 없는 두 사람만의 견고한 성을 만들고 오직 둘이서만 지냈는데, 문을 살며시 열어 나를 그 성에 들어오게끔 초청한 거였다.
그렇게 기어코 각서를 받은 나는 글이 안 되거나 마음이 서글플 때 보려고 냉장고 위에 이 억지 각서를 붙여놓았다. 이런 억지라도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 복도 많지, 하고 그 각서를 볼 때마다 스스로의 뻔뻔함에 감탄했다. 결혼한 것도 아니고 집안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잉여의 존재로 식량과 광열비만 축내는데도 종신토록 책임져주겠다니, 이것은 결혼보다 낫다. 훨씬 낫다.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나도 이제 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족에게 가장 많이 위로를 얻는 것은 냉엄한 세상 속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받아들여주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언니와 형부는 정말 로 내겐 가족이다. 게다가 언니도 되고 형부도 되고, 오빠도 되고 새언니도 되고, 엄마도 되고 아빠도 되고, 온갖 가족의 역을 다 해준다면 너무 과장일까. 내가 세상에 호된 어퍼컷을 맞아 쓰러져 있는 동안 우 리 가족은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할 태세로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부레옥잠처럼 둥둥 떠다니는 인생이지만, 이 빚을 꼭 일부라도 갚고 싶다. 부디 기다려주세요. 나의 사랑하는 채권 자 들이여, (세상에 이런 분들이 또 있을까? 천사 같은 언니 형부 부부가 있어서 오늘도 가슴이 따뜻해 옴을 느낀다. )
바다 사나이는 아무 말 없이 〈니드 포 스피드〉 같은 컴퓨터 레이싱 게임을 현실 로 구현한 것처럼 한껏 속도를 내 험한 길을 돌파했다. 나는 바다 사나이의 무게 있는 침묵에 감탄하여 나도 마도로스의 아내가 되면 어떨까, 하는 망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바다 사나이에게는 그림으로 그린 듯 행복한 가정이 이미 있으니 불륜과 막장의 일일드라마를 찍는 일이 없도록 얌전히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의 당부대로 나는 늘 추자도를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진짜 신사를 만난 곳. 언젠가는 그 작고 아름다운 섬을 다시 한 번 방문해 바다 사나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하고 싶다. 그때. 정말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매너가 넘쳤던 추자도의 보물, 바다 사나이와 그의 온 가족이 늘 행복하고 편안하기를!
하지만 내가 안부가 궁금한 것은 ‘항명’도, ‘집총거부’도 아니다. 그날 밤 가로등 사이로 사라진 큰집 다녀온 아저씨는 지금 잘살고 있을까? 여전히 매일 맥주를 한 캔 마시고 티브이를 보다 잠이 들고 다음날 운전을 나갈까? 그를 이용해먹은 형제들은 뉘우쳤을까? 아들은 다시 만났을까?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도 가끔 그의 안부가 궁금하다.
나는 간절히 바란다. 그녀가 부디 술 끊고 돈 아껴서 저금한 돈으로 이제는 엄마와 살게 되어 이 찌그러진 가구를 버리고 떠났기를. 그리하여 ‘방’이 아닌 ‘집’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기를. 그 예쁜 집에 살면서 예뻐졌기를. 그리고 지친 청춘 모두에게도 다들 머리 누일 곳이 있기를.
'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 > 독서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리사회』, 김민섭, 미래엔, 2016 (0) | 2022.02.07 |
---|---|
『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 장신모, 행성비, 2018 (0) | 2022.02.06 |
『윤은기의 골프마인드 경영마인드 』, 윤은기, 한스미디어, 2005 (0) | 2022.02.03 |
『고양이를 읽는 시간』, 보경스님, 불광출판사, 2020 (0) | 2022.02.02 |
『구해줘, 밥(한국인의 밥상에서 찾은 단짠단짠 인생의 맛)』, 김준영, 한겨레출판사, 2020 (0) | 2022.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