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구해줘, 밥(한국인의 밥상에서 찾은 단짠단짠 인생의 맛)』, 김준영, 한겨레출판사, 2020

그루 터기 2022. 2. 1. 00:32

구해줘, (한국인의 밥상에서 찾은 단짠단짠 인생의 맛), 김준영, 한겨레출판사, 2020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연속극을 보지 않는 저로서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보는데 그중에 <동네 한바퀴> 와 더불어 <한국인의 밥상>도 꽤 자주 보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다. 각 지방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옛날부터 내려오던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에 관련된 사연들을 소개하는 프로라서 어릴 적 생각도 많이 나고 최불암 선생님의 구수한 목소리가 딱 어울려 한없이 빠져들게 되는 프로였다. 처음 이 책을 들었을 때는 매 꼭지마다 음식의 레시피도 나오고 해서 음식을 소개하는 책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음식이 아닌 음식에 들어 있는 인생의 이야기였다. 어릴 때 먹던 고향의 음식들이 사연이 없는 음식이 어디에 있을까. TV를 볼 때는 주로 음식에 집중해서 봤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가 이야기한 삐딱한 청개구리’. 딱 맞는 이야기 같았다. 처음부터 계속되는 삐딱한 이야기가 살짝 책을 덮고만 싶은 정도였다. 매 꼭지마다 갑에 대한 불평불만이 글을 읽는 내내 불편했었다. 뒷쪽으로 넘어갈 때까지 계속이었으면 말이다. 다행히(?)도 뒤쪽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아마도 글을 재미있게 쓰시려고 과장된 표현을 한 것 같다. 도리켜 보면 내가 다니던 직장에도 그 정도의 갑질은 갑질도 아니니까. 이 책은 술술 읽히는 재미가 있다. 궁금한 이야기도 많고, 새로운 이야기도 많다. 그중에서 최고는 술술 읽히는 것이다. 술술 읽힌다는 것은 문장의 흐름이 매끄럽고 빠르다는 것과 이미 재미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믿고 보는 책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하나인 방송작가님의 글. 역시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자 소개

김준영

21년 차 방송작가. 대학 졸업 후 세상물정 모르고 세상 밖으로 진격. MBC 화제집중〉 〈실험쇼 진짜진짜등을 하며 세상을 경험하고 실험했다. MBC PD 수첩〉 〈100분 토론, KBS 추적 60등 시사 보도 프로그램들을 하면서는 세상만사 쓴맛을 봤고, KBS 사미인곡〉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마 생을 통해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하지만 오랜 작가 생활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는 때때로 삶을 공격하고 피폐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4년여 간 KBS 한국인의 밥상을 제작하며 맛봤던 음식들과, 그 속의 진한 사람들 이야기를 떠올리며 위로를 얻었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희망과 기쁨만이 아니라,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절망과 실패에서의 배움이라는 것을, 그것이 진짜 살아가는 맛임을 한국인의 밥상에서 배웠다. 그리고 오늘도 그 배움을 버팀목 삼아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글솜씨를 흉내내 보려고 한다. 다양한 소재를 넘나드는 작가의 능력이 부럽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해서 슬그머니 저런 이야기로 넘어가는 작가, 어느새 본론에 도달해 있다. 내가 제일 부족한 능력. 이 책에서 넘치게 배운다. 다만 내가 실천할 수 있을지.... 그건 오늘도 장담을 못한다.

 

 

 

독서 메모

 

일이 삶을 공격하는 날엔 김을 씹자

(물김에 참기름 소금장)

 

일삼아 꽃길도 만들고, 재미 삼아 흑염소도 키우고 뭔가 생소한 기분이었다. 나는 언제 재미 삼아 혹은 일삼아 뭘 해본 적이 있었나? 둘 다 능동적으로 뭔가를 한다는 건데, 난 보통은 늘 끌려가듯 죽지 못해 하지 않았나? 폭풍처럼 쏟아지는 일을 해야 하니까 하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고, 지겹다. 지겹다 하며 하고...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나.

 

목청 큰 그에게 잔뜩 공격받은 오늘 같은 날이면 맥주 한 캔 꺼내놓고 마른 김을 부숴 소기점도의 일 삼아, 재미 삼아사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 때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폭풍처럼 몰려오지만 않는다면, 누군가 그렇게 자기 것만 챙기겠다고 과하게 욕심 부리며 남들을 뭉개지 않는다면 내 일터도 일 삼아, 재미 삼아뭔가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희망 아닌 희망도 품어보면서 고소한 참기름 소금장 잔뜩 묻힌 김을 질겅질겅 씹어본다.

 

아내는 꽃다운 열일곱에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열아홉. 동네에서 좋아 지내다가 아무 가진 것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부부는 뱃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여자가 바다가 나오는 게 금기였던 시절부터 함께 뱃일을 했다고 했다.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 살지는 않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봐서 알고 있었다. 힘든 어부의 생활보다 남들이 하는 손가락질 때문에 더 힘들었을 그 시절이 생각나 짠하다.)

 

그물 끌어올리느라 고생한 남편을 위해 아내는 잘 익은 순무김치의 맛과 빛깔이 제대로 스며들어 진하게 국물이 우러난 병어찌개를 한 그릇 뜨고, 바닷물로 씻어 고슬고슬 지은 밥 한 공기를 퍼냈다. 넓은 바다 위 작은 목선 안에서 부부는 마주 앉아 밥 한술에 순무김치 병어찌개를 얹었다. 부드러운 병어의 하얀 속살과 매콤하고 진한 찌개의 깊은 국물이 잘 어우러져 보였다.

 

뱃전에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굽은 어깨와 낡아서 군데군데 갈라진 목선의 뱃머리가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말이다.

. 병어찌개. 병어, . 난 갑 아닌 병.’ ! 당신들과도 세월이 지나면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손발 맞춰 일한 날이 올까? 앞에서 잔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그들을 애써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도 직장에서는 항상 갑이었는데 내 을과 병도 이렇게 생각했을까?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지. 결국 나도 갑질하는 사람이었을 때니까.)

 

등 뒤의 말들은 독이면서 약인 옻순이란 음식과 닮았다. 적당히 나눠 먹을 때는 맛있지만, 과하면 씁쓸한 아픔을 남기는 것까지 말이다.

 

옻순 털털이는 쑥 털털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부들부들한 식감과 뭔가 거한 걸 제대로 먹은 듯한 포만감이 있다고나 할까. 그날 나는 옻순을 원 없이 먹었다. 알레르기 약을 미리 먹어 그랬는지 아니면 옻을 안 타는 체질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맛있게 먹으면 옻도 오르지 않는 것인지, 다행히도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그날 저녁 과음을 했는데도 숙취가 없어서 이래서 어르신들이 옻이 약이라 하셨나 보다싶었다.

 

약도 과하면 독이 된다는 말은 진리가. 남에 대한 걱정도 그렇다. 내가 남을 걱정해도 그렇고, 남이 나를 걱정하는 소리를 들어봐도 그렇다. () 걱정은 앞에서 눈 마주치고 손잡아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주고받으며 해야 진짜 걱정이고 위로다.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 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갈팡질팡하지 않고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라는 건 말짱 헛소리다. 늘 흔들리고 갈팡질팡하고 존재 의 의미조차 의심했다가 다음 순간 그냥 따뜻한 손두부 명태탕 한 그릇에, 혹은 백두산 노부부의 트로트 노래 몇 곡을 떠올리며 힘을 내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더 나이가 먹어도 그럴 것이다. 어디서 무엇을 할지 모르면 어떤가, 일단 일어서서 가다 보면 길은 보이지 않을까? ()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다.

 

어차피 약육강식의 세계다. 저들에게 프리랜서인 나는 언제든 송곳니를 꽂아 숨통을 끊고 끌어내리기 좋은 먹잇감일 뿐이다. 눈에 띄면 띌수록 더더욱 당할 가능성이 크다. 난 눈에 띄었고 그래서 계속 당하는 것일 뿐이다.

 

숭어가 올 때는 물빛이 변하고 바다의 소리가 달라진다는 걸 그 늙은 어부께 배웠다. 가끔 바다에 가서 짙푸른 바다를 가만 보고 있자면 그분이 떠오른다. 생뚱맞게도 닭 모래집과 함께 말이다. 평생을 어부로 살고, 숭어잡이 망쟁이로 망루를 본 지도 20년이 넘었다는 어른신을 바다 최고의 진미로 어부밤을 꼽으셨다. () 숭어밤은 숭어 한 마리당 딱 한 점밖에 안 나오는 숭어 내장이다.

 

나는 나이 먹어서까지 그렇게 집요하고 잔인하게 다른 사람의 심장에 송곳니를 꽂고 그들의 삶을 갉아먹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응가 하는 순간조차 누구에게 먹힐까 겁내야 하는 나무늘보로 살기는 더더욱 싫고 그냥 나는 내 기술로 남들과 함께 더불어 얻고 나누며 살고 싶은 거야 오래도록 갈고닦은 이 기술과 연륜으로 남의 심장을 찌르는 대신, 남의 입에 달달한 숨어 뱃살이나 숨어 밤 한 점 넣어줄 수 있다면 참 좋지 않겠어?

 

누군가, 진짜 너무너무 이해가 안 되는 말과 행동을 하는 누군가와 한바탕하고 술을 진탕 먹은 다음 날, 나는 숙취로 고생하며 할머니가 챙겨주신 미역귀로 미역귀탕을 끓였다. 미역귀를 조금 불려 데친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들깨가루와 쌀가루를 넣고 푹 끓인다. 보글보글 끓는 걸 좀 보다가, 조금 더 둔탁하게 버글버글 뽕뽕 쌀알이 익어가면 살짝 불을 줄이며 잠시 저은 뒤 불을 끄고, 김치와 함께 먹는다. 미역귀는 꼬들꼬들, 국물은 걸쭉하고 부드러운 게 미역국과는 전혀 다른 진한 맛이 난다. 마지막 한 입을 먹으며 생각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도 바람구멍이 있었다면 이렇게 답답하진 않을 텐데. 해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도 속을 알면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질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우리사이의 바람구멍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나에게도 바람구멍이 필요한 친구가 있다. 평생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는 그 친구와의 관계 우리사이에도 바람구멍이 생겼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살다 보면 정말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나와는 뭔가 주파수가 다른 것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보통은 '너는 보나마나 이런 사람일 거야'라 는 확증편향으로 더는 알아보길 포기하고 관계를 차단하거나 무시하기 쉽다. 그런데 이곳이 그와 나 둘만 사는 무인도라면 조금은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한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그래도 몇 번은 더 바람구멍을 내려고 두들겨보지 않을까. 그 섬에서처럼 말이다.

 

6시 칼퇴근 주 52시간이 바꾼 풍경. 정규적인 그들은 칼퇴근을 하고, 말이 좋아 프리랜서 힘없는 비정규직인 나는 남아서 잔업을 한다. 6시 내 게 그런 시간이다.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 올 거라고들 했지만 정말 그런가? 진짜 저녁이 있는 삶을 사라는 사람은 몇이나 되려나.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더니, 잡생각과 불안은 때마 다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온다. 나이 먹고 세상 좀 살 아보면 이런 불안도 분노도 떨쳐질 줄 알았는데 아니다. 언제고 위기의 순간 다시 찾아와 머리와 마음을 강타하 며 스멀스멀 스며들어 짜증과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해남 땅끝에서 아낙들이 학독에 꽃새우, 마늘, 고추 넣고 모두 갈아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냈듯 나도 이 잡생각들을 한데 다 갈아 털어버리면 다시 새롭게 시작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조직 생활 부적응자인가.. 하지만 그럴수록 더 강해지는 생각은 적폐냐 아니냐, 보수나 진보나 정규직이나 계약직이나 유학파냐 아니냐, 전라도 사람이나 경상도 사람이냐, 하다못해 남자냐여자냐 인싸 아싸냐 이게 뭐가 중요하다고 이런 편을 만드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게 인간의 본성일까? 그렇다면 인간이란 너무 절망적인 생명체가 아닌가. 같은 종족조차혐오하고 미워하니.

 

 

심리학자 주디스리치 해리스가 양육 가설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은 자기보다 어린 아이를 차별하고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며 심지어 자기와 다른 옷을 입은 아이까지 차별한다고 한다. 그건 아이들의 정체성 확립 과정 때문이라는데, 우린 성인이지 않은가? 그렇게 편 가르기를 하는 수많은 성 인이 다 정체성이 덜 확립됐다는 말인가?

할머니들은 산과 들에 나는 거의 모든 풀의 쓰임을 안다. 들풀로만 아는 질경이로 나물국을 끓일 줄 아는 것이 그분들이다. 한국의 나물이란 게 그렇다. 세계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풀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민족은 유례를 찾기가 힘들다. 그냥 보면 논밭둑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어디에도 쓸모없는 잡초처럼 보이는 풀들이 그 존재 가치를 아는 어머니 아버지들의 눈에 띄면 특별한 맛을 내는 음식으로 바뀌어 밥상에 오른다. 그런 어르신들을 보면 나는 언제나 존경심을 감출 수가 없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어떤 대상이 쓸모없게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그 쓸모와 다루는 방법을 네가 모르는 건 아니고?’라고

 

고기, 인삼, 두릅 세 가지 맛을 낸다는 눈개승마는 누가 어떻게 만들고 언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것 같다. 삶도 그렇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나물 밭을 돌보고 나물을 나누는 것을 노동이 아닌 수행의 일환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스님들의 나물은 그래서 더 달게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희미하게 웃으시던 할아버지의 주름진 입가와 붉어진 할머니의 눈가가 각인된 듯 내 마음에 남았다. 두 분 이 평생 정 좋게 살아 부럽다는 이웃들의 말과 함께. 평생 서로의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는 건 그분들 같은 모습이 아닐까. 지금도 생각한다. 서로의 고생을 알아주고, 처지를 안쓰러워하고, 덕 분에 잘 살았다고 감사해하는 그런 모습으로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건 생의 축복일 것 같다. 오래돼 부패했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라, 잘 곰삭아 제 맛을 내고 누군가의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기쁨이 되는 잘 삭은 홍어처럼 말이다.

 

나 일 참 많이 했지 솔직히남편이 말했다. “당신같이 움직인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지금까지 버텨냈지아내가 답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주는 것. 부부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봤고, 지금도 알아봐주며 살아가고 있다.

 

새것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묵은 것을 처리해버려야 한다. 산골 어르신도 아는 지헤를 나는 왜 못 배웠을까? 내 서랍장 가득한, 뜯지도 않은 새것이지만 묵은 것들을 보며 생각한다. () 이 많은 묵은 물건들은 내 욕심이구나. () 내 욕심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숨 막히다. 숨차다 하면서 또 다른 욕심을 채우고 채우고 그렇게 살았구나 (미니멀라이프. 요즈음 내가 추구하고자 생각하는 일 중에 하나다. 그런데 단 한 건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그냥 마음만 먹고 있다. 오늘 재활용 버리는 날이다. 이참에 생각나는 것들이라도 처리할까? 마음만 미니멀라이프의 하루가 지나간다.)

 

누군가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니 내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멀리서 걸어오는 걸 보고 절세 미녀라고 생각했는데 너였어~”라고 아주 가끔씩 닭살스러운 멘트를 날려주는 친구, 그리고 무뚝뚝하지만 진국인 엄마. 우리 엄마도 토란국을 아주 맛있게 잘 끓이신다.

 

보글보글 잘 끓은 토란죽의 불을 끄면서 싫어하나에서 왜 사나로 이어지는 우울 회로의 전원도 함께 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일지 모르는데, 당연히 살 가치가 충분하지~’라며 스스로 다독인다. 하루하루 촘촘히 살다 보면 그 틈새로 나처럼 싫어하나병이 비집고 들어올 때가 있을지 모른다. 그럴 때면 나를 좋아해줄 것 같은 누군가에게 억지로라도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나 예쁘지?”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쓰레기와 동거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방송을 한 적이 있다. 쓰레기 집에 살지만, 외양은 멀쩡한 그들이 말했다. 한순간에 그냥 손을 놔버리니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쓰레기가 쌓였다고, 그리고 더느 어쩔 수도 없게 이렇게 돼버렸다고. 방송에서는 청소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젊은이들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냥 잠깐 정신줄 놓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모방송국의 유명 프로 사회자 한 사람인 외양이 엄청 깔끔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는 분의 집을 카메라로 보여준 적이 있었다. 모두들 기절할 정도로 쓰레기가 많고, 지저분했다. 물론 쓰레기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엄청 지저분한 그런 집이었다. “젊은 친구가 너무하는 구만내가 말하니, 아내가 0.1초도 기다리지 않고 말한다. “우리 애들도 만만치 않아요.”)

 

나처럼 어리숙한 자식은 부모님 속을 반도 알지 못한다. 시골의 낡은 집으로 귀촌한 엄마가 왜 한 달 전부터 명절 걱정을 하시는지, 때마다 텃밭에 고구마가, 무가, 파가 많으니 와서 가져갓으면 좋겟다고 하시는지, 고성의 어머니들을 만나지 않았었다면, <한국인의 밥상>의 그 많은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반도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가의도에서 배로 두 시간 반, 짙은 안개와 격렬하게 꿈틀대는 바다를 뚫고 나야 만날 수 있는 곳, 우리나라 최서단 섬 중 하나가 결렬비열도다. 중국 산둥반도와 불과 270킬로미터 떨어진 화산섬으로 , 새가 열을 지어 나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격렬비열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래전 스킨스쿠버를 하기 위해 격렬비열도에간 적이 있다. 격렬비열도에는 허가받지 않는 민간인을 입도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배에서 다이빙만 하고 되돌아 와야 한다. 그런데 두 시간 반 이상을 배를 타고 들어가야하는 격렬비열도라 배멀미로 바다위에 떠 있는 배위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선장님께 이야기 해서 섬 위쪽으로는 가지 않고 비상계단에서만 있을테니 땅을 좀 밟게 해 달라고. 30분 정도 땅 냄새를 맡고 겨우 살아났다. 덕분에(?) 불법입도의 죄인이 되었다. 완전범죄가 되었지만)

 

"제 밥은 제가 알아서 먹습니다." "식사하셨어요?"라는 내 예의성 물음에 이렇게 답한 동료가 있었다. 새로운 팀에 와서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무리 혼밥이 대세인 시대이고, 자기 밥 자기가 챙겨 먹는 게 당연하니까 그렇게 말한 것일 뿐이라고, 개인주의 시대에 그런 말 좀 들은 게 뭐 대수냐며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슬러 보려고 했지만, 당시 내게는 그 단호한 말 한마디가 몹시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건 억겁이 쌓인 인연이라는데, 직장 동료가 된다는 것도 특별하다면 특별한 인연 아닌가? 그 억겁의 인연을 쿨하게 '안녕~'만으로 보내는 것, 그게 진짜 쿨한 건가? 사람에 대한 성의가 없는 건 아닌가?

 

그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고, 우리는 결국 몰 대신 청년이 들어 갈 수 있다는 근처 로컬 식당에서 인도 향 가득한 말 그대로의 로컬 치킨 마크니 커리를 먹었다. 독특한 향이 맛보다 더 진하게 느껴졌던 로컬 커리의 참맛을 알게 해준 그날의 기억은 내게 여러 의미로 남았다. (인도의 계급사회와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 시골의 머슴댁 이야기가 그렇게 비교가 될 수 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나는 아직도 옛날 우리집에서 머슴을 살던 사람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하곤했었는데......)

 

내 시간을, 감정을 도둑질해 가는 사람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이런 친구를 사귀느라 버리는 시간에 가양주 키트를 사서 가양주를 빚어보 든가. 그게 귀찮다면 막걸리 한 병 사다가 호박전 노릇노릇 구워서 마시는 게 배도 부르고, 감성도 충만해지니 이중의 기쁨을 주는 일 아니겠는가.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펀치볼의 마을을 두루 보고 돌아오는 길, 이름 모른 들풀 사이에서 산에 가야 숨이 쉬어진다는 나물꾼 할머니네서 맡았던 진한 곰취 향이 풍겨 오는 것 같았다. 산길을 줄지어 가는 군용 트럭을 보면서도 더는 전쟁이라든가, 군대라든가, 휴전선이라든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았다 트럭 뒤에 올라탄 앳된 군인들 얼굴 위로 연지곤지 찍은 갓 스물 아낙들의 모습이 덧입혀져 혼자 슬쩍 웃었을 뿐. 전쟁의 폐허 위에도 삶은 피어난다. 그리고 그 삶은 어떤 면에서는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무엇을 보느냐는 결국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에 달려 있을 뿐이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옳고 그름이라는 게 환경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걸 그 친구를 통해 알았다. 그 뒤로도 다른 문화권을 여행할 때마다 생각한다. 그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이방인인 내가 나만의 잣대로 아니라고 말하는 게 맞나? 하고.() 나와 다른 시대, 다른 환경,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그냥 그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 가 있다는 걸 배우게 된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받아들일 수는 있게 되는 지점, 그것은 어떤 책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이 먹는 것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중년이 되고 장년이 되면, 점잖아지고 아는 게 많아져 한편으론 고리타분하고 완고해지고 왕고집이 될 거라는 편견을 말이다. 어르신들을 내가 만든 틀에 넣고 형상화했던 것 같다. ()흰머리가 생기고 나이가 들면 완성형의 어른이 되어 매일같이 어른의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내 오산이었다. 중년 역시 불안정하고 열정적이며 변화무쌍한 20대의 삶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흰머리가 난다고 세상이 갑자기 훅 늙은 어른들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다. 삶은 그냥 똑같이 미성숙한 채로 이어진다. 중년이 된다고 저절로 돈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성공이라는 게 혹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기 스스로 그런 편견으로 인해 우울해지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런 편견을 이용한다는 게 좀 달라지는 점이랄까.

 

웅어는 한강 유역 행주나루의 명물로 소문난 물고기다. 웅어를 취재하면서 아직 한강에 어촌계가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그들이 한강의 마지막 어부들이 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청어목 준치과에 속하는 웅어는 썩어도 맛있다.’는 준치의 사촌인 셈이다. 사랑채에서 조신하게 앉아 글 읽는 선비가 책장을 덮고 기어이 나들이를 가도록 꼬드기는 물고기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맛 좋은 생선이다.

 

새벽부터 아들과 함께 옻 가지를 베고 약초를 채취 해 와서 손질하고, 닭과 함께 옹기에 넣어 은근한 아궁이 불 앞에서 아내와 함께 하루 종일 옹기 옻닭탕을 만들어 주신 약초꾼 아저씨. 그 정성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나는 보았다. 물 한 방울 넣지 않은 옹기 속에서 옻의 수분과 닭의 육수가 우러나며 진짜 옻닭탕의 진한 국물이 완성되는 모습을. 이 착한 가족이 아니었다면 이런 진짜배기 옻닭탕을 어떻게 맛보겠는가? 긴 시간을 행여 탈까 봐 불 조절을 해가며 끓여내는 정성 없이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 진미이니 말이다.

 

나는 고기 특수부위를 취재하면서 이 뒷고기 맛에 진심 푹 ~ 빠졌다. 돼지 자븐이들이 너무 맛있어서 뒤로 빼돌린 고기라 뒷고기라더니 정말 맛이 좋았다. 가브리살, 뒤통, 목덜미살, 목구멍살, 밤살, 돈설, 볼살, . 특수부위는 하나하나 양이 적은 만큼 제각각 독특한 식감과 맛을 낸다.

 

흔히 말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처럼 네 몸엔 지랄만큼 알콜이 충부하다고 이성은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고 마음이 축축해지고 사방에 어둠이 내리면 또 다시 술과 술친구와 술안주로 가장 적격인 전 삼총사를 찾게 된다. 순전히 개인 생각이지만, 기름에 고소하게 부쳐낸 전과 비는 세상에서 가장 잘 맞는 궁합이다.

 

곱창김은 원래 다른 김보다 꼬들꼬들 오돌오돌하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 물김에 굴도 넣고, 매콤한 청 양고추까지~ 거기에 시장기까지 더하니 배를 타서 멀미 기운이 있던 입에도 세상 이런 진미가 없었다. 거짓말 안 하고 한 접시 가득 부쳐놓은 물김전을 네 명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씹지 않아도 그냥 식도로 넘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면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지금도 그 맛은 잊히지가 않는다. 피곤과 바닷바람에 절어 있던 몸이 단박에 깨어나는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말테우리는 바람과 영혼의 땅이라는 한라산과 수백의 오름을 누비며 살아온 제주 목동을 말한다.

 

꿩 수렵을 할 수 없다고, 말고기는 내키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제주를 떠났다면 나는 말테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새롭게 아는 것을 하나 더 늘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장애물을 넘을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막다른 벽은 감사하게도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발판이 돼주기도 한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