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송호근, 이와우, 2013

그루 터기 2022. 2. 16. 05:11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송호근, 이와우, 2013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다. 유명한 58년 개띠는 아니지만 개띠 버금가는 56년 원숭이띠다. 어릴 때는 시골 동네에 유별나게 우리 동기동창들이 많아서 신기하고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이유인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해서 알고부터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내가 자주 말하는 처음부터 철저히 경쟁사회로 살아온 우리들. 젊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만 하여 대한민국을 일으켜 새웠고, 오로지 자식에게 올인 해서 가진 것이라고 겨우 살고 있는 집 한 채가 대부분인 사람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이젠 한꺼번에 노인이 되어 후세들에게 짐으로 남는 사회문제로 전락해 버린 세대, 그 서글픈 세대가 나요 내 친구들이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소리 내어 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소리 내어 울면 안 되는 것으로 배웠다. 어릴 때부터 물건은 귀했고, 먹을거리는 별로 없었다. 배고프게 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일을 했고, 자식은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또 일했다. 가진 모든 것을 자식에게 쏟아 부었다. 참 바보 같이 살았다. 이 책은 그런 나의 이야기이다. 내 친구의 이야기고, 내 주변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다보니 나와 같은 고향 출신의 나와 동갑인 56생이다. 혹시 아는 사람일까? 내가 아는 친구 중에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한 다리 건너 이야기하다보면 금방 알 수도 있을 것 같아 혼자 헛웃음을 지어 본다.)

오늘도 가까운 K시에서 공공 근로를 하는 계약직 무늬만 공무원(내가 지은 별명)과 오피스텔 2일 맞교대 경비를 서는 친구, 소기업 컨설팅을 하기 위해 갔다가 지금은 최저임금으로 14시간 잡부로 일하는 친구와 2시간 당구 게임과 점저녁에 소주 한 잔 하러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지만 우리가 왕이다 떠들고 신나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 시간은 오롯이 7,80년대 산업기수로서 산업화 주력부대의 개선장군이다.

 

 

저자 소개

송호근

저자 송호근(宋虎根)은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정치와 경제, 사회를 넘나드는 넓은 안목과 정교한 분석으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학자이자 칼럼니스트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학 Harvard University 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한림대, 1994년 이후 서울대에서 사회학과 교수 2018년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장을 거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0년대 성장위주의 국가정책이 빚어낸 노동문제와 불평등의 한국적 결합구조를 시장기제적 통제로 이론화하여 주목 받았으며, 유럽사민주의와 비교한 한국의 민주주의와 복지의 발현메커니즘에 관한 탁월한 업적으로 제도주의적 정책사회학의 선두주자로 평가 받는다. 냉철한 사고와 따뜻한 가슴을 지닌 문필가로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감성적 언어가 버무려진 컬럼은 많은 애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연구(1983),정치 없는 정치 시대(1999),세계화와 복지국가(2001)한국,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2006)독 안에서 별을 헤다(2009) 인민의 탄생(2011)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2012) 외에 가 보지 않은 길(2017), 혁신의 용광로(2018) 등과 소설 강화도(2017), 다시, 빛 속으로(2018)국민의 탄생(2020)코로나 시대 글로 마음을 잇다.(2020)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2021) 56권의 저서가 있다.

 

 

 

독서 메모

 

베이비부머의 세대 경험을 집약하는 개념을 도출했다. 바로 가교세대이다. 다리를 놓는 세대라는 뜻이다. 첫째, 부모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면서도 농업 세대와’ ‘IT 세대사이의 소통의 다리를 놓았다. 베이비부머는 농촌 공동체의 문화적 유전가가 흐르는 마지막 세대이자 유고 전통을 계승한 막내 세대다. 둘째, 근대와 현대 사이의 가교를 놓았다. 1970년대에 베이비부머는 이른바 신문명의 담지자가 되었고(예컨대 신교육이 시작되었고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 운동권 세대’, 1990년대 탐닉 세대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즉 베이비부머는 근대가 끝나는 절벽에서 현대로 나아갈 수 있는 교량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스스로 몸을 누이면서 말이다.

 

퇴직 후 몇 달 동안 아내는 고향 누이처럼 따사롭게 대해주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삼시세끼를 먹는 날이 잦아지자 아내의 짜증이 점차 늘어났다. 생활고에 찌든 아내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내심 섭섭했고, 섭섭할수록 위태로워졌다.

 

세대란 이런 것이다. 학력과 직업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달라도 해결해야할 시대 과제와 인생 숙제가 엇비슷한, 동질적 경험을 공유한 연령 집단이 세대다. 가족 얘기에도 유사한 스토리가 묻혀있고, 학창시절은 물론 연애, 영화, 소설에도 의기투합하는 포인트가 섞여 있다.

 

생계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두고, 베이비부머에게 부과된 3대 짐, 주택, 자식 교육과 결혼, 부모 봉양을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고백하려 한다. 자신의 신상명세서를 자세히 얘기해준 김명준 씨의 솔직한 고백에 이제 대리기사 부르신 분이 보답할 차례인 듯하다. 세간이 부러워하는 직업, 그리고 정년이 보장된 천상의 직업을 가진 서울대 교수가 겪었고 앞으로 겪을 경험이 베이비부머 700만 명의 체험이나 사정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베이비부머는 이렇게 살아왔다!

 

아파트 중도금을 불입하던 와중에 IMF 직격탄을 맞았고 22퍼센트에 달하는 중도금 이자를 물어야 했다 정말 재운도 없었다. 당시 춘천 소재 호화 아파트가격은 17000만원 이었다. 그럼에도 45평 아파트 입주 때부터 할 수 없이 빚을 지기 시작했고 그 빚은 IMF를 거치면서 큰 폭으로 늘어났다. 90년대 중반 이미 나에게는 마이너스 통장 시대가 개막되었는데, 액수는 지금까지 무럭무럭 자라났다. 마이너스 통장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운명이려니 한다.

 

베이비부머에게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면서도 자식들에겐 다 해줘야 한다는 무모한 의무감 말이다. 주제넘은 욕심이라고 해야 할까, 청춘의 모든 것을 바쳐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장만해놓고 그걸 어떻게든 쪼개 자식들에게 줄 궁리를 한다. () 교육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다. 베이비부머들은 대체로 혼자 해결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수능 치르는 날 시험장 문밖에서 몇 시간이고 서서 기도하는 학부모들을 냉소했다. 그런다고 점수가 잘 나옵니까, 평소에 잘하시지,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큰딸 수능 시험 보는 날, 시험장 문을 붙잡고 중얼거리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40대 후반의 서울대 교수가 어둑해진 저녁 교문을 부여잡고 안절부절못하는 꼴이라니!

 

한국의 대학입시는 언어에 약한 수학 천재를 용인하지 못하고, 과학에 약한 미래의 대문호를 식별해낼 능력이 없다.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 입상한 수재가 서울대에서 거부당하고, 토익 980점짜리 학생이 무난히 진학할 대학이 별로 없다. 모든 과목을 잘하는 학생보다 창의력이 더 중요하다고 번번이 외치는 대통령과 교육부장관이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임에도 말이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월급은 계획 가능성과 심리적 안정성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날 월급이 끊기는 베이비부머들의 심정은 오죽하랴. 확실성에서 불확실성으로, 안정성에서 불안정성으로, 기대에서 절망으로 인생 영역을 이전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연금이 중요해진다.

 

생애 처음 찾아온 경제적 안정은 달콤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여말선초(麗末鮮初)로 부르는 인생 주기, 50대 초중반의 연령 지대에 이르자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질문이 단단히 닫힌 것만 같았던 맨홀 뚜껑을 열고 출현했다. 너는 누구냐너는 누구냐고? 이 느닷없는 질문을 제기한 자의 정체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너는 누구냐? 글쎄, 나는 누굴까? 나는 교수다. 그래 그건 알아, 그런데 그거 말고 무얼 하고 있는가, 삶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너는 왜 매일 논문 쓰느라 허우적대고 있는가, 허둥대면서 30~40대를 살아왔을 뿐 진정한 너를 찾아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을 제기한 내 심연의 다른 나에게 줄 답이 없어 난감했다. 정말 난감했다.

 

나는 공돌이었어요!” 그는 짧게 힘주어 말했다. 공돌이와 공순이는 베이비부머가 서러운 감정 없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베이비부머 대학 진학률이 평균 28퍼센트 정도였으므로 약 70퍼센트는 고등학교 이하 학력이었다.

 

공단의 밤, 포장마차에서 만난 어느 공돌이는 거침없이 자기의 꿈을 털어놨다. 일찍 기술을 마스터해서 마찌꼬바를 차리는 것이 목표라고, 일본어 마찌꼬바는 자신이 소()사장으로 일하는 선반공업사를 뜻한다. 마찌꼬바의 소 사장, 그래도 평범한 공고 출신 공돌이들이 사장으로 입신양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현재 300만 중소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 나도 이렇게 시작해서 20년을 마찌꼬바 사장을 지냈다. 사람의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바보 같은 꼬임에 빠져 공장을 처분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사장으로 남아 있었을까?)

 

공고 출신의 박 회장이 남몰래 아쉬워하는 것은 대학 진학이었다. 젊은 시절 못 이룬 꿈을 장학금 기부로 달래고 있는데, 빈곤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학자금 지원이 큰 보람이라고 털어놨다. “인재 양성이 중요하죠, 나도 더 공부하고 싶었어요!” 박준서 씨의 동년배 중 대학생은 네명 중 한명에 불과 했는데, 공구 출신의 박 회장 마음속에도 대학에 대한 꿈이 피지 못한 꽃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공학박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고, 어느 마찌꼬바 소사장이 그려내지 못한 성공신화를 일궜다. ( 사례자인 박준서 씨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온 나, 글을 읽으면서 콧등이 시큰함을 어쩔 수 없었다. 성공한 박사장도, 성공하지 못한 나도 모두 60대 중반을 넘어 가고 있다. 한 사람은 현역 사장으로 한 사람인 나는 백수로.. )

 

‘10년만 버티면 돼!’ () 베이비부머의 맨 저층에서 이런 각오를 다지는 사람들을 만나면 고개가 수그러진다. 부모는 저학력의 농부였고, 형제자매는 너무 많았다. 공동 목욕탕에서처럼 내 것 네 것 없이 한 방에서 뒹굴면 자랐던 유년 시절과, 논둑길과 신작로를 가로질러 등교하던 꿈 많던 시절을 삶의 갈피에 접어두고, 이제 막바지 자식농사와 노후 생계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눈물겨운 예기를 쏟아내는 우리네 베이비부머 앞에서 필자는 할 말을 잃었다.

 

흐지부지 돈 써 없애는 딸애한테 저금하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힘이 덜 실렸다. 결국엔 내가 물려줘야 아들도 제 집을 가져볼 수 있을 터였다. 결국 벌 수 있는 데까지 벌어먹고 살다. 늘그막엔 손주들이나 봐주고 병들면 집 물려주고 애들 곁에서 죽는 게 소원이다.

 

퇴직한 사람들을 더 만났다. 한창 일해야 하는 나이의 기술, 지식, 경륜이 쌓일 대로 쌓인 고참 직장인, 이제 성숙의 단계로 접어들어 젊은 시절의 치기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느긋하게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을, 그러나 세상이 지시하는 대로 직장에서 밀려나 아직 마치지 못한 부양 의무를 마저 이행해야 한다고 속울음 우는 이들을 말이다. 그들은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더러 아내가 아프기도 했고, 대학생 자식들이 사회 연착륙을 위해 열심히 출전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 타이른다. 아직은 아니다. 10년은 더 버텨야 한다! 베이비부머의 공동 슬로건이 시시때때로 울려 퍼진다. 나는 의기투합한다. 아니, 성원을 보낸다.

 

청년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생산하는 대기업과 재벌은 성토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베이비부머와 자식들은 일자리를 두고 서로 다투는 형국이다. 베이비부머가 우선 양보하는 것이 순리지만, 자식들 취업을 위해 베이비부머가 우선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모순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퇴직자들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발에 따르면, 퇴직자들은 정말 할 일 없이 텔레비전 시청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16.2%). 그다음이 낮잠96.5%), 등산(6.0%), 친구 만나기 혹은 동호회 참석(5.5%), 산책 (5.4%) 순이었다.

 

오늘 점심은 누구와 먹을까, 혼자 분식집에서 점심을 사먹는 궁상스런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에 퇴직자들은 점심 동료가, 같이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친구가 아쉽다. 그러나 퇴직과 동시에 동료들은 흩어졌고 각자의 고립된 길에서 외로움을 한탄할 뿐이다. 시인이라면 홀로 외로움을 탄하는 시를 쓸 수도 있을 터인데, 시를 읽어본 기억이 까마득하고, 일기는커녕 30년을 바친 직장 얘기조차 기록한 적이 없다. 30년 세월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을 찾아 나서봐야 부질없는 일.

 

이런 재테크를 통해서 나는 단 한 가지를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현금 월 100만 원 만들기를 시작하라는 권고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반으로 줄여 현금 월 50만원 만들기가 좋겠다. 개인연금이나 기타 약간의 소득과는 별도로 보유하고 있는 저축과 소유 주택을 활용하여 월수입 100만원을 기어이 확보하는 전략을 구상하면 좋을 듯하다.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는 현금이 없으면 결국 가족 관계와 사회관계가 파탄에 이른다.

 

세대론의 관점에서, 베이비부머는 고령화된 부모와 자식들의 부양책임을 무한정 짊어지려는 세대다. 앞 장에서 잠시 살펴보았지만 베이비부머들은 자립심이 유난히 강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자존심, 비유하자면 농인 근성인 자작농 적 자존심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내기도 했고, 부모와 친지에게 기대지 말라는 합리적 근대교육을 본격적으로 받은 덕분일 것이다.

 

가고 세대는 이제 단절의 시대를 잇던 기억을 접고 퇴장해야 한다. 아니 퇴장하고 있다. 앞으로 베이비부머와 같은 가교 세대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당당한 부모와 개성을 앞세우는 자식 세대 사이에서 소통의 채널을 만들려고 자신들의 자아를 억제했던 세대, 근대와 현대 사이에 느닷없이 만들어진 절벽 앞에서 스스로 다리가 되어 대한민국이 부드럽게 미래로 진군하도록 만든 세대 말이다.

 

늙은 사자들과 가족들을 경호할 힘이 없어지자 초원을 헤매는 젊은 숫 사자의 습격을 받아 죽어가고, 가족들은 곧 젊은 숫 사자의 차지가 된다. 동물의 신계약이 체결되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늙은 숫 사자의 입장이 아닐까?)

 

독립! 당신을 그것을 잊은 지 오래다. 누가 당신의 다리가 되어줄까? 바로 당신 자신이다. 홀로 선 당신, 독립한 당신 자신이다. 독립을 위한 필수 요건은 세 가지다. 죽음, , 취미.

 

선시대 선비들은 죽음과 친해지려고 자찬 묘비명을 스스로 썼다. 자신의 묘 비석에 써넣을 묘비명 창작은 사대부의 관습이지만, 이는 인생에 대한 성찰이자 개성, 현실 개탄이고 진정한 자아상과 자의식 등을 확인하려는 자신과의 대화이다. 죽기 훨씬 전에 이런 글을 쓴 사대부들의 행위는 앞에서 얘기한 제3인생을 출발하는 새로운 계약에 해당한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독립선언인 것이다. 취와 벽, 자탄, 개성 묘사, 자아 연민 등 여러 유형이 있는데, 세 가지만 소개해보려 한다.

 

요리는 필자가 적극 권하는 취미다. 퇴직자에게 가장 서럽고 귀찮은 것은 식사다. 눈치가 보인다. 어지간히 간이 크지 않은 다음에야 아내에게 하루 세끼를 요구하기에는 염치가 없다. 아직 홀로 서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삼식이가 된다. 삼식이는 고령화 단계에 접어드는 순간 아내로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할 위험이 크다.

 

그날 나의 울음이 베이비부머들에게 보내는 세대원의 작은 확인이었음을 나는 안다. 3인생을 출발시키는 이 장대한 시작에서 베이비부머는 소리 내 울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