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김탁환, 해냄출판사, 2020

그루 터기 2022. 2. 17. 00:38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김탁환, 해냄출판사, 2020

 

도시소설가와 농부과학자의 만남. 특이한 부재가 책으로 나를 이끌기에 충분했다. 시인이나 소설가의 에세이는 내가 좋아하는 그룹중의 하나다. 소설가로서의 글의 짜임과 감동이 언제나 실망하지 않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다. 가끔 난해한 전개가 헷갈릴 때도 있지만 말이다.

시골서 나서 자라고, 20년간 사업을 할 때 쌀과 관련있는 미곡종합처리장 사업을 꽤나 오랫동안 했다, 그 사업은 나에겐 손익분기점을 갈라준 효자같은 아이템이었다. 농협과 거래하는 이 사업은 나중에는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이나 농촌진흥청 같은 관련 기관의 많은 분들과 가까워 질 수 있기도 했다. 친환경농법이나 유기농이라는 이름의 농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하고, 시골 사촌형님께서 직접 하시는 우렁이농법(오리농법도 있었다.)도 볼 수 있었고, 후에 일본 농협 출장 중에서도 여러 번 경험했던 추억이 있다. ‘미실란의 이름은 잘 몰랐다. 발아현미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는 사업을 전환하고 과일선별기 쪽과 공장 자동화쪽으로 아이템을 바꾼 이후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 내내 어릴 때 도회지로 떠나 살다가 오랜만에 시골 고향에 들른 사람처럼 가슴 두근거리고 향수에 젖게 만들었다. 가끔 시대 상황을 곁들일 때는 단꿈을 깨우지만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아쉬운 점이라면 그렇지는 않겠지만 특정인과 특정 농촌회사의 소개서 같은 아쉬움이 살짝 드는 것이다. 그건 기존의 많은 관습이나 가치기준에서 탈피하고 개척해나간 미실란을 직적보고 느끼지 못한 내 무지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같이 해 본다. 그래도 이 책은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에는 농사를 짓는 방법이나 기술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가야하고 농촌을 어떻게 지켜야 우리가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을 크게 손으로 가르키고 있는 듯하다.

농부는 혁명가가 될 수 없다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단번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혁명가를 꿈꾸지 않고 해마다 모자라는 부분을 고쳐가며 조금씩 더 나은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을 배운다. 나는 오늘 인생 2막을 살아가는 길목에 씨앗으로서 그 말을 심고 싶다.

 

저자 소개

김탁환

 

군항 진해에서 태어났다. 마산과 창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시를 습작하다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신화와 전설과 민담 그리고 고전소설의 세계에 푹 빠져 지냈다. 진해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에서 해양문학을 가르치며, 첫 장편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불멸의 이순신을 썼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역사추리소설 백탑파 시리즈를 시작했고,, 황진이』『리심등을 완성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끝으로, 2009년 여름 대학을 떠났다.

이후 전업 작가로 사회파 소설거짓말이다』『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살아야겠다등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장편소설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쓰며 판소리에 매혹되었고, 소리꾼 최용석과 창작집단 싸목싸목을 결성하였다. 지금까지 29편의 장편소설과 3권의 단편집과 3편의 장편동화를 냈다.읽어가겠다를 비롯한 서평집, 다수의 논픽션과 에세이집도 출간했다.

그가 최근 관심을 쏟는 것은 마을이다. 소멸 위험 지역으로 내몰린 지방 마을의 숨겨진 미덕을,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이야기로 쓰려는 것이다.

그가 만난 첫 마을은 전라남도 곡성이고, 거듭 만난 사람은 농업회사법인 미실란 대표 이동현이다. 이동현은 미생물학을 전공한 박사이자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농부이자 농업의 미래를 설계하는 기업가이기도 하다. 우정으로 쌓은 이 책은 논과 강과 산에서 어울려 살아가는 생명들의 지혜가 담긴 첫 결실이다.

 

 

독서 메모

 

 

[들어가는 말]

도시소설가에서 마을소설가로, 소설가 김탁환이 발견한 회생의 길

 

이 책엔 도시소설가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는 과정이 담겼다. 미실란이 지방, 농촌, 벼농사, 공동체 등 네 가지 소멸과 맞서 싸우는 과정, 이 대표가 과학적인 방법론과 전통적인 이야기를 한 그릇에 담는 과정, 곡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엉키고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 이동현과 김탁환이 우정을 나누는 과정 등이 볏단처럼 쌓였다.

 

새롭고 낯선 만남 속에서 이 대표는 나를 흔들어 깨웠고 나 역시 그에게 영향을 줬다. 거창하게 운명이란 단어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서로의 곁에 머물며 달라졌다. 나는 이 대표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싶었고 그 역시 오랫동안 읽지 않았던 장편소설에 흥미를 느꼈다. 서른 살 무렵부터 질주한 20년을 돌아보고 정돈한 후 또 다른 20년을 시작할 나이이기도 했다.

 

가족에게조차 드러내지 못한 고민과 감정을 서로에게 보여줬다.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삶이 때론 대황강 새벽안개처럼 모호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껄껄 웃었다. 이 만남이 나를, 이동현 대표를, 미실란을, 곡성을, 또 이 책을 읽는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까. 논 사람인 벼가 그 답을 내놓을지 모르니 서둘러 들녘으로 나가봐야겠다.

 

20183월부터 지금까지 이동현 대표와 틈만 나면 만났다. 왜 나는 그를 자꾸 찾아갔고, 그는 왜 계속 나와 어울렸을까. 우연히 인사를 나누고 뜻이 통하더라도, 바쁜 시절을 탓하며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적지 않다. 그와 나는 그렇게 엇갈리지 않고, 사는 곳이 멀다고 핑계 대지 않고, 만나서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마시고 함께 먹고 함께 잤다.

 

우리 대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발아(發芽)’이다. 발아는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인공 발아를, 신을 대신하여 잠든 씨앗을 깨워, 씨앗이 스스로 일을 하도록 만드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잠든 씨앗은 미래를 대비하여 움츠린 채 영양소를 아끼고 지키지만, 깨어나 싹을 틔울 때는 영양소를 활발하게 생동시킨다. 아직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오로지 씨앗이 지닌 영양소들로 싹이 자라는 것이다. () 우리는 소설가가 되고 과학자가 되기 위한 도약의 순간을 일찍이 겪었다. 문학과 농업의 전문가로 이십 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미 해결한 문제도 있지만 적지 않은 인생의 난관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새로운 모험을 시작해야 할까. 이 정도에서 평온한 길로 방향을 틀까.

 

6월 초 모내기를 끝낸 논에도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다. 내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느라 논두렁에서 낑낑댈 때, 이 대표는 맨발인 채 논으로 들어갔다. 평지를 걷듯 척척 걸음을 뗀 후 허리를 숙이곤 엄지와 검지로 무엇인가를 집어 들며 물었다. “아름답지요?” 새끼손톱만 한 왕우렁이였다.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잡초방제를 하는 것이다. 나도 어릴 때 마을 앞 개천에서 우렁이를 보긴 했다. 하지만 동물계 연체동물문 복족류강 고설목 사과우렁이과에 속하는 왕우렁이를 아름답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장화를 신고 서너 걸음 들어간 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아름다운가요, 정말?” 왕우렁이가 잡초를 먹어치우지 않는다면, 제초제 없이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는 새벽별을 보며 논으로 나와 일일이 잡초를 뽑아야 한다. 그 수고를 왕우렁이가 대신하니 어찌 아름답지 않느냐고 이 대표가 되물었다. 농사를 방해하는 생물은 겉모양이 아무리 멋져도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입장이었다.

나는 '소설'이란 두 글자와 함께 평생을 살 것이다. '소설(小說)''대설(大說)'로 불리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 작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유롭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깊고 넓게 풀 수 있다. '소설'이 아니라 '대설'이었다면, 윤리와 상식과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내 이야기들은 성현의 말씀처럼 크고 작은 가르침 아래 눌리거나 갇혔을 것이다.

 

''은 평생 농부로 살아온 사람들, 앞으로 농부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심장과도 같은 글자다. 그런데 그 글자가 농업을 배우고 익히는 학교나 농산물을 유통하는 시장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계절은 어느새 늦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에서 그녀들이 짊어졌던 삶의 끔찍한 무게를 떠올리니, 식은땀이 흐르면서 자두 아득해졌다.

 

20년이란 시간의 두께가 그려지지 않던 때도 있었다.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은 20년 전엔 이 세상에 없었고 20년 후, 그러니까 마흔 살의 일상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스무 살 청년에게 마흔 살 사내는 인생을 살아버린 존재였다. 이제 우리가 대학 시절을 떠올리려면 20년을 지나 30년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1969년생으로 88학번인 그도 그보다 한 해 위인 87 학번인 나도.

 

근대 이후 상생의 꿈을 추구한 사람들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좌절한 예는 많다. 예술가로 사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예술가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연구자로 사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연구자로 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평생 집필실에서 소설을 쓸 자신이 있고 그는 평생 실험실에서 미생물을 연구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나 친환경 미생물 농약을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상품으로 성공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픽슨바이오에서 저지른 실책들을 하나하나 들으며, 내가 25년 가까이 저지른 실수들을 떠올렸다.() 그와 나는 실패했지만 패배하진 않았다. 시장에서의 승부를 포기한 채 꿈을 접진 않았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농업회사법인 경영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연구자로서의 원칙과 품격을 지키면서, 회사를 회사답게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고립되어 홀로 상처를 입는다면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벽이 어디 한두 개에 그치겠는가. 역설적이게도, 나만 벽에 부딪히진 않았다는 확인과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함께 덤벼들 수 있다는 깨달음이 묘한 위안과 힘을 주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책 출간을 꺼리는 출판사도 적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장편을 출간하고 싶었다. 글 인해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감당하리라 마음먹었다. 최악을 각오한 채 제목을 정하고 장면을 그리고 문장을 만들다 보니, 함께 버티겠다는 출판사가 나타났다. 그 여름 책이 나온 후 겨우 다섯 달 만에 촛불시위가 시작되었다. 백만 인파가 서울 곳곳을 행진하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폐교를 고처 사무실과 연구소와 강의실로 삼고 뒷마당에 보관 창고를 비롯한 생산 설비를 갖추기로 했다. 폐교를 포위한 논들을 임대하여 벼농사를 시작할 계획도 세웠다 부딪혀 보기로 한 것이다. 20051129일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설립했다 그리고 200655일 곡성으로 이주했다.

 

모는 모일 뿐 아직 벼가 아니다. 모판에서 제아무리 잘 키웠고 모내기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해도, 벼를 기르는 일은 이제부터 곡성의 논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시작이 절반이 아니라 절반부터 시작인 이유였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았고 쏟고 있으며 쏟으려 하는가. 얼마나 자주 소중함을 되새기며 새로운 다짐을 보태는가. 세상 풍파가 거셀수록 내 삶의 중심을 돌아와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은 나도 내 마음의 오가리를 열고 씨나락을 품어야겠다.

 

인생에서 큰바람 한두 번 맞지 않는 이가 있을까. 큰바람에 낭떠러지까지 몰렸다가 겨우 살아나기도 했으리라. 절체절명의 순간, 어떤 이는 회생하고 어떤 이는 사라진다. 행운과 불운으로 치부하기엔 그 차이가 너무 크다. 한 사람이 평생 지켜온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후엔 농부가 할 일이 많지 않다. 벼 스스로 큰바람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실란의 벼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그가 세운 원칙, 친환경 농법의 힘이었다. 벼는 6월 초 모내기부터 8월까지 하루하루 싸우며 단단해졌다. 잡초와도 싸우고 흙과도 싸웠다. 싸우면서 벼는 땅으로 더 깊이 내려가는 법을 익혔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와 같은 일상이 쌓인 탓에 무사할 수 있었다.p156-157

 

미실란을 알게 된 후 가게에서 쌀을 고르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 전에는 백미인가 현미인가만 따졌다. 그 다음엔 그 쌀을 생산한 지역이 어디인지 확인했으며, 일 년 동안 땀 흘려 벼농사를 지은 농부의 이름을 기억하기도 했다. 요즘은 이 모든 것들과 함께 품종까지도 들여다본다. 명품 쌀이나 특등 쌀이란 문구보다는 그 품종이 우리나라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또 품종의 특징을 나중에라도 찾아서 알아두려 한다.

 

이 대표가 농부로 살아가겠다는 것은, 새벽녘 어둠이 채 사라지지 않은 들로 나가고 저물녘 노을이 깔린 들에서 돌아오는 기쁨과 안타까움과 쓰라림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 살겠다는 다짐이다.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의 좋고 나쁨을 두고두고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따지는 곳에 희망이 드리우는 법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충실하다" 는 말이 떠돌지만, 농부를 비롯하여 생명을 키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디테일에 충실하다.

 

소설가들끼리 하는 농담이 있다. "쓴 것을 가져오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 주겠다." 나는 말보다 글을 믿고 글보다 행동을 더 믿는다. 장황하게 말만 늘어놓는 자문회의를 싫어하며, 선언적인 주장보다 그 주장에 이르기까지 내밀한 고민이 담긴 글을 원한다. 자신이 쓴 글대로 행하고자 애쓰는 사람들과 벗하고 싶다. 이 대표라면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먹는 쌀을 가져오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 주겠다."

 

내가 날마다 글을 궁리하듯 그의 고민은 쌀이다. 세상에는 글과 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글이나 쌀에 대해 한두 마디씩은 언제라도 거든다. 글이나 쌀이 우리네 삶 가까이에 있다는 반증이다. 국민 대다수가 문자를 주고받고 SNS에 글을 올리는 세상이 되었고, 패스트푸드가 상승세지만 하루에도 적어도 한 끼는 아직 밥을 먹고 있다. 이렇듯 매일 쓰고 먹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쌀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글과 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불량한 기운이 우리 마음과 몸에 차곡차곡 쌓여 큰 화를 불러온다.

 

인류가 지켜야 할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태도는 거리두기다. 야생동물을 우연히 만나더라도 함부로 다가가거나 만지지 않는 것이다. 산림과 습지를 노는 땅 취급하며 거기에 도로를 만들고 인간을 위한 주거공간을 짓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야생동물은 야생동물답게 살아야 한다.

 

기오리의 탄생 비화가 펼쳐졌다. “ 기러기 세 마리를 얻어 와서 키웠습니다. 수컷 둘에 암컷 한. 앞마당을 온종일 돌아 다녔죠.” “애완용으로 키웠단 말씀이신가요? 날아가 버리지 않습니까?” “ 그냥 두면 산이고 들이고 날아가겠죠. 가장 큰 날개 깃털을 좌우 각 서너 개씩 뽑으면 , 날지 못합니다.” () 그러다가 암기러기가 알을 낳았고, 그 알이 부화되어 새끼가 태어났습니다. 한데 그 새끼의 얼굴이 딱 오리 얼굴인 겁니다. 오리와 암기러기의 뜨거운 사랑을 꾸준히 지켜본 저로서 그 새끼가 수컷 오리와 암기러기 사이에서 났다고 처음부터 확신했습니다. ‘기오리라고 말입니다. () “물증르 보여 드리죠. 이 녀석이 기오리입니다. 여기 뒤에 아빠 오리랑 엄마 기러기가 보이시죠?” 사진에 담긴 기오리는 과연 기러기나 오리보다 훨씬 작았다. 정말 암컷 기러기와 수컷 오리 사이에서 태어난 걸까. 기오리가 생물학적으로 가능하냐고, 그냘 그곳에서 뗘져 묻진 못했다.(나도 기오리가 가능한지 궁금하다. 기러기가 기러기목 오리과 기러기속이니 가능한 게 아닌 가 학술적인 지식이 없는 나는 혼자 생각해 본다. )

 

곡성 도깨비는 어전과 함께 등장한다. 어전은 하천이나 바다에서 나무나 돌로 발을 설치하여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섬진강 어전은 모두 돌을 쌓아 만든 독살이다. () 강 위로는 배가 다녔고 강 밑으로는 물고기 들이 뛰어 놀았다. 가끔은 도깨비들이 배를 탄 사람과 수중의 물고기 사이를 오가기도 했다. 도깨비가 사람을 도울법하고 사람이 도깨비를 도울 법한 곳, 흙을 닮고 골짜기를 닮고 강을 닮은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바로 곡성이다.

 

소설가로서 내가 가장 아끼는 문장은 반복은 아름다운 것이다이다. () 나는 작업실에 가면 매일 세 가지를 반복한다. 우선 따듯한 물을 받아 양손을 넣는다. 손가락과 손목 관절을 풀어 주면서, 뇌의 속도와 손가락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그 다음은 원두커피를 갈아 내려 마신다. 발자크가 검은 석유라고 까지 칭송했던 커피를 아침마다 마시다 보니, 개화기 러시아 커피를 둘러싼 로맨스소설 노서아 가비까지 쓰게 되었다. 마지막은 첼로 음악을 튼다.

 

농부는 혁명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몇 번 있다. 그 문장에서 근거 업는 비난과 경멸을 덜어내고 나면, 농부만의 독특한 삶이 머문 자리가 만져진다. 단번에 세상을 바꾸려 ㅎㄴ 혁명가는 많고, 그 꿈을 실현한 혁명가는 매우 적다. 농부는 단번에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는다. 해마다 모자라는 부분을 고쳐가며 조금씩 더 나은 농사를 지으려한다.

 

이 동현 대표의 흙에 대한 첫 기억은 나보다 훨씬 강렬하다. 흙을 맛본 것이다. 어머니를 따라 고구마 밭에 갔다가 흙을 집어 혀에 갖다 댔다. 그 맛이 무척 달았다. 조금 더 자라서는 뒷산에 나무 하러 올라갔을 때, 떨어진 솔잎을 이리저리 치우곤 그 아래 흙을 또 맛보았다. 그 흙은 새콤달콤했다. 흙을 더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무가 제각각이고 꽃이 제각각이듯 흙도 제각각이라 여겼다. 나무와 꽃을 맛보듯 흙도 맛봤다. 맛으로도 충분히 구별이 가능했던 것이 다 언제나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흙이었다.

 

논의 흙은 사계절 내내 변하지만, 그 흙에 대한 이 대표의 태도는 한결같다. 흙이 흙끼리 사귀고, 흙이 또 벼와 사귀고, 흙이 미생물과 곤충과 작은 동물과 사귈 때까지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사귀기도 전에 농부가 끼어들면 벼가 제대로 자라질 못한다. 흙이 논의 친구들과 우정을 쌓을 때까지 기다린 후, 사람은 제일 나중에 손을 내밀면 된다.

 

모내기를 마치고 나면 작고 여린 뿌리를 붙잡아주는 것은 오로지 흙이다. 뿌리가 쓰러질까 염려하여 너무 깊이 심으면 모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너무 얕게 심으면 모가 실바람에도 쓰러진다. 적당히 심되 흙을 믿어야 한다. 뿌리와 흙의 사귐은 추수를 마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지면서, 깊고 넓어진다. 뿌리는 자랄수록 더 멀리 뻗고 더 많은 흙을 움켜쥔다. 그렇게 흙과 치열하게 사귀는 뿌리는 옆 벼의 뿌리와도 만난다. 지상에서만 보면 농작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따로 꼼짝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지하에선 긴밀하게 뿌리로 만나 사귀며 시시콜콜한 소식부터 중요한 정보까지 주고받는다. 흙이 없다면 불가능한 만남이다.

 

내가 세운 만다라 규칙은 간단하다. 자주 이곳을 찾아 한 해 동안의 순환을 지켜본다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아무것도 죽이지 않고 어떤 생물도 옮기지 않고 만다라 안을 파헤치거나 그 위에 엎드리지 않는다. 이따금 사려 깊은 손길은 괜찮겠지만.

 

드넓은 들판처럼 혹은 꼭꼭 겹으로 숨겨진 골짜기처럼, 직접 걸으며 보고 듣고 탐구하면서, 나를 위하면서도 가족과 남을 위하는 가장 나은 결정을 찾는 과정이 또한 공부이다.

 

삼무에 기초한 음악회를 열자 말들이 많았다. 곡성 군민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유명 가수들 노래를 즐기는 방식에 익숙했던 것이다. 참석한 유지들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은 것도 비난을 샀다. 이 대표 부부가 버릇이 없고 건방지다는 악평을 들었다. 미실란은 터무니없는 흉문에 굴하지 않고 삼무를 지키고 있다. (삼무는 술이 없고, 평가가 없고, 경계가 없는 음악회) ()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지 않느냐도 중요하다. 수백 년 이어온 관습을 바꾸려면 철저한 단절이 필요한 때도 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관행이란 미명 아래 불합리한 일들이 용인되고 만다.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스물두 번이나 쉼 없이 달려온 미실란 작은 들판 음악회가 증명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03년부터 남이섬에서 시행 중인 551차 정년, 802차 정년 제도에 관심을 두고 있다. 55세까지 근무한 뒤에도 남이섬을 떠나지 않고 재계약을 통해 근무할 수 있으며, 다른 회사에서 정년은 맞은 이들도 재취업이 가능한 것이다. 회사에서는 분초를 다퉈 판단하고 집행야 하는 업무도 있고, 꾸준히 오래 정성을 쏟아야 하는 업무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르다고 물리치지 않고 느리다고 타박하지 않고 어리다고 얕보지 않고 늙었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 걸어온 삶의 무늬를 본다. 듣는다. 어루만진다. 거대해지기를 꿈꾸지 않는다. 결실을 꿈꾸되 봄부터 가을까지 땀 흘려 일한 만큼만 갖는다. 다 갖지 않고 직원과 이웃과 동식물과 나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여행기는 '왕오천축국전''열하일기' 사이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완벽하게 알 때까지 집필을 자제하는 것과 더욱 잘 알기 위해 겪으면서 적어나가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자리는 두 걸작 사이 어디쯤일까.

 

서울에는 970만 명이 산다. 그러나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고민을 나눌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친구들과도 바쁜 일상에 쫓겨 자주 만나기 힘들다. 계절에 한 번씩만 만나도 매우 친한 사이라는 농담까지 있다. 곡성에는 28천 명이 산다. 읍은 하나고, 면은 열 개고, 리는 125개다. 리에서 마을이 또 나뉘기도 한다. 마을에 터를 잡으면 그 마을 사람들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다.

 

곡성을 비롯한 우리네 마을들을 들여다보라.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약하고 병든 생명을 돈이 되지 않는다고 내치진 않았다. 어떻게든 마을에서 어울려 살 방법을 찾았다. 조금씩 짐을 나눠 지면서, 함께 웃고 울며 살아온 세월이 수백 년인 것이다. 이렇게 쌓인 마을의 역사와 공동체의 전통이 존중받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 수 없다.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빛바랜 낡은 유산으로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들을 아끼고 지키면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마을로 가서 누구와 이웃하며 살 것인가. 거기 당신의 미래가 있다. 어떤 사람들을 마을로 받아들여 함께 살 것인가. 거기 곡성의 미래가 있다.

 

돌오름길에서 만난 노루들은 행인이 누구냐에 따라, 또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그때그때 인간과의 거리를 넓히거나 좁혔다. 너무 가까이 붙으면 위험하지만 지레 겁을 먹고 떨어져 고립될 필요도 없다. 접속이냐 접촉이냐, 컨택이냐 언컨택이냐. 메르스와 코로나19 이후 인류의 미래를 양자택일로 파악하려는 시도가 부쩍 늘었다. 나는 적당히 접속하고 적당히 접촉해야 하며, 적당히 컨택하고 적당히 언컨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접촉하고 무분별하게 컨택해 온 근대 이후 인류의 행태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한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나 이익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되는 것이다. 대도시가 바이러스를 비롯한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소멸이나 붕괴란 단어로만 연결되던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지방 농촌이 안전한 과소 지역이 된 것이다. 지구인 전체가 사람답게 사는 적당한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소설을 쓰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모순 없이 가지런한 인생은 드물다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여도, 그 삶에 폭풍이 몰아친 경우가 적지 않다. 처음엔 이와 같은 모순과 불일치를 인간의 나약함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문제적 개인들의 일생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 인물의 삶이 치열한 만큼, 오늘의 언행은 어제의 언행과 크든 작은 차이가 생겼다. 일기장에 쓴 문장과 벗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 문장과 공문서에 쓴 문장이, 누가 읽느냐를 염두에 둔 탓에 달랐다. 원칙이 흔들린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닥쳐온 삶의 문제를 신중하면서도 세심하게 살폈기 때문이다. 차이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뒤늦게라도 깨닫고 바꾸는 삶이 첫 마음을 지키겠노라며 일상의 깨달음을 외면하는 삶보다 백배 더 낫다.

 

소설가로 살아가노라니, 퇴고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구상은 날아다니는 것이고, 초고는 뛰어다는 것이며, 퇴고는 무릎걸음으로 문장을 하나하나 찍으며 설산을 기어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처음엔 퇴고로 고통받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초고를 쓴 시간만큼 퇴고를 해야, 구상이나 초고보다 더 나은 문장과 이야기가 찾아 들었다.

 

 

곡성을 오가며 '적정'이란 단어에 점점 끌렸다. 최첨단 기술을 몰라서, 간디가 물레를 돌리고 에른스트 슈마허가 중간 기술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최첨단 기술이 지닌 보편성은 각 지 역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중간 수준, 그리니까 사정에 맞는 적정 수준의 기술이면 해결 가능한 일을 두고 막대한 돈을 들 여 최첨단 기술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낭비인 것이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지역민들이 떠안게 된다. 제아무리 최첨단 기술이라 해도, 지방과 농촌과 공동체를 죽이는 기술인 셈이다. 적정기술을 찾고 따듯하며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로 보는 이유가 여 기에 있다. 그 지방, 그 마을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를 풀기 위한 최적의 기술을 찾는 것이다. 고액의 돈이 드는 난해한 기술이 아니라 싸고 친환경적이며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도 손쉽게 만들고 다룰 수 있는 기술이어야 한다. () 그러므로 지켜야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기술의 편리함이 아니라 그 사람만이 지닌 아름다움인 것이다. 이동현이란 사람이 흥미로운 것은 만물의 고통에 뜨겁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스콧 니어링은 일찍이 말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전파를 타기 전엔 마을 농부들이 밤이면 모여 정치 현안은 물론이고 우주를 논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줌 볕든 강의실 바닥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문제부터 창백한 푸른 점 지구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문제까지, 공간을 넓히거나 좁히고,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자르고, 사람을 등장시키거나 퇴장시켜 가며, 사실을 논하고 상상을 더해 궁리하며 이야기하는 능력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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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에선 넋을 잃기보다 새 힘을 얻을 때가 더 많았다. 그 힘은 대도시의 도로처럼 곧게 뻗은 직선이 아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의 노래를 듣노라면, 삶 속에 죽음, 빛 속에 어둠, 노래 속에 비명이 담겼다. 무작정 즐겁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겹지만 내딛는 쪽이다. 맺고 끊음이 분명한 대도시의 나날에선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휘감아 도는, 내 살을 깎아내리면서도 타인의 자리를 챙기는 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