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라니』(도시시인과 시골농부의 생태일기), 이소연, 주영태, 출판사 마저, 2021
우연히 동시에 비슷한 콘셉트의 책을 두 권을 빌려오게 됐다. 서울이나 도시의 작가와 시골 농부의 만남이었다. 먼저 읽은 김탁환 작가의『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이 소설가의 농부과학자의 관찰 에세이라고 한다면 『고라니라니』는 시인의 시골농부의 관찰에세이다. 다를 듯 서로 비슷하다. 다른 점은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김탁환 작가 혼자 쓴 글이라면, 『고라니라니』는 두 사람의 글이 실려 있다.
서울 사는 시인은 시골 사는 친구 농사꾼의 모습을 그리고 친구는 시골 모습을 또 그린다. 잘 알지 못하는 전라도 사투리가 넉넉하게 있는 글들이 어떤 때 읽는 속도를 더디게 해도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 각 꼭지마다 사진 한 장에 글 한 꼭지가 있다. 어떤 글은 같은 소재를 가지고 두 작가가 글을 쓰기도 했다. 참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탓에 글 내용은 한 번쯤 경험한 내용들이다. 전라도 사투리만 빼면 그렇다. 서울 시인과 시골 농부의 어울리는 한 마음이 참 좋다. 어린 시절 시골 논밭에서 뛰어 놀던 개구쟁이 시절이 그립다.
저자 소개
이소연 (시인)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가 있다. 현재 켬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주영태 (농부)
고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친환경 농사에 도전하지만 논밭은 각종 야생동물의 산란터가 되어 게으른농부로 살고있다. 현재 유일하게 가입한 단체인 농민회에서 활동 중이다.
독서 메모
이 책은 고창에 ㅅ는 농부 친구가 보내온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손바닥에는 도정한 쌀이 있었다. 우리가 매일같이 씻어 안치는 쌀이 저토록 눈부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내가 잃어버린 세계가 그의 손바닥에 있는 것만 같았다.
농부가 들꽃을 꺾었구나. 그렇다면 누군가 친구에게 “들꽃이 좋더라.”했을까? 언젠가 친구가 묻기에 프리지아꽃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외래종은 못쓴다고 했다. 대신 금계국이 지천인 때라 금계국을 꺾어 소주병에 꽂아 주었다. 함께 술을 마시는 내내 금계국을 바라보았다. 정이 들 만도 한 데 금계국 좋다는 소린 안 나왔다. 그래도 들꽃을 꺾어 모아 쥔 손을 보니 아름답다. 들꽃이 좋다는 사람에게 이 꽃은 얼마나 큰 사랑이 될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날마다 그를 새롭게 보는 눈을 장착하는 것이다.” 더 이상 새롭게 보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권태고 상투라고,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시인이라는 말은 그래서 일리가 있다고 했다. 언젠가 그 말이 이해된 순간이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걸 나만 알 때였다.
단 한사람의 이해로 끝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견디면서 조금씩 서로의 매력을 알아 가는 싸움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법칙 아래에서만 가능한지 모른다. 나는 이 싸움을 통해 친구의 삶이 만들어 낸 부정적인 면과 아름다운 면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나는 토끼풀만 보면 쪼그리고 앉아서 네잎클로버를 찾곤 한다. 가장 재밌다. 찾는다는 건 언제나 기쁨을 예고한다. “찾았다!” 소리칠 수 있는 기쁨을 준다. 게다가 네잎클로버를 찾았다고 하면 시시해 할 사람이 거의 없다. 네잎클로버는 돌연변이라던데….
친구가 트랙터에 시동을 걸고 아까 수건으로 닦은 자리에 나를 앉혔다. 그러고는 서서 운전을 했다. 친국 위험해 보여서 이제 그만 내리겠다고 하려해도 멈출 수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 놀이기구보다 더 재미있었다. 게다가 청 보리밭에서 애전 저수지까지 가는 길이 너무 예뻐서 꼭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뽕나무는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쉽게 물들며 살아가는 존재인지 알리려고 열매를 맺은 것 같다. 물들지 않고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안다. 나는 친구를 사귈 때면 최선을 다해 물드는 편이다. 친구의 말투, 친구의 식성, 친구의 생각에. 그 모든 것에 물들지 않으려는 건 꺼리는 마음이다. 꺼리는 마음으로는 한 사람에게 단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 자꾸만 전라도 사투리가 입에 밴다.
마음은 근육과 같아서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사라진ㄷ. 매일 보던 얼굴을 보지 않고, 연락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 잠만 자면 어느 순간 한 사람을 지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죽을 때가지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매일 매 순간 떠올려도 자꾸만 귀퉁이가 접히고 바래고 찢어진다. 정말 온전히 간직하고 싶었는데 이젠 너무 오래된 일이 되었다.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일은 지고지순한 노력 없인 불가능하다는 걸 매일 같이 배운다. 내 마음은 내 것인데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땐 하굣길에 모르는 사람을 따라갔다. 나는 사탕 하나 주면 따라가는 그런 쉬운 애였다. (…) 온 동네 사람들이 나를 찾으러 다녔다고 했다 엄마는 벌겋게 달아올랐고 나를 다 때리고 나서는 눈물을 흘리며 우셨다. 그날은 엄마한테 맞으면서도 한도 아프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을 뿐이었다.
지렁이가 땅을 얼마나 이롭게 하는지 알아도 나는 여전히 지렁이가 징그러운데, 지렁이를 보면 마치 자신의 가장 여린 부분을 드러내 놓고 쏘다니는 사람 같았다. 너무 솔직하고 너무 부끄럼이 없고 너무 예민한 부분을 보는 것 같아서 그랬다. 지렁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몸속의 핏줄을 꺼내 든 것처럼 아파서 그랬다.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너무 쉽게 혐오 표현을 가져다 썼다. 이날은 내내 나 자신에 대한 징그러움에 치를 떨었다.
그렇게 한참 실랑이하듯 시인 동생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다 보면 이러다 해 져 불 것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다. 무의식적으로 손바닥에 뭔가를 올려놓고는“동상, 또 시 썼네 이것 시 맞당가?”하고 물어보게 된다. 그렇게 오래오래 도시 시인과 시골 농부의 이야기를 쓴다면 좋겠다.
고창 청보리 축제가 끝나면 눈물 자국 선영한 강아지들이 자신을 버린 주인의 차와 비슷한 차만 보면 전력질주로 쫓아가다. 털레털레 버려진 자리로 되돌아갔다.
쌀농사는 늘 힘이 든다. 밥 한 공기 300원도 안 되느 ㄴ농사를 짓자고 내가 흘린 땀을 생각하면 억울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한 번 씹고 뱉는 껌도 20~30년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올랐는데, 쌀 값은 그대로다. 요새 들어 이상기온과 흉작으로 인해 그나마 회복세인 듯싶어도 물가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것이 내 몸값인 셈이다. 그래도 침종 싹 틔우는 것이야말로 내 모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야 할지 생가하다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친구가 보낸 원고를 받았다. 순박하고 청명한 마음이 담긴 한 페이지 남짓한 글은 서리태에 대한 거였다. 그가 내게 주려고 고창에서부터 가져온 짚단과 서리태를 보고 웃은 것처럼 그의 글을 보고 웃었다. 옹졸한 마음은 콩처럼 구워 먹어 버리고 서리태로 시나 써야겠다.
동물의 생과 사를 두고 놀이를 하는 인간이 끔찍스럽게 느껴져서 낚시한다는 말ㄹ을 들으면 우울해진다. 이를테면 손맛이라거나 입질이라거나 이런 말들이 잔인하도록 권위적이어서 견디기 힘들다. 꼭 세상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한쪽은 즐기고 있지만 한쪽은 사력을 닿 쫓아온 것이 미끼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놀이. 정말이지 일방적인 놀이. 나는 어느 한쪽만 즐거운 세상의 많은 놀이를 그만 뒀으면 좋겠다.
물고기는 타원형의 유연하고 매력적인 선을 가졌다. 물고기가 좌우를 공평히 매만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아름다워서 내 마음속에 들여 키우고 싶어지곤 했다. 나는 어떻게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앞으로 나라갈 수 있을까? 매번 생각한다. 수족관의 기울어진 물고기는 이미 죽어가는 물고기였다.
할머니가 나눠 쥐던 겨울 간식은 꼭 하나씩 나눠 줘서도 맛있었고 내게 돌아오는 몫을 계산해 보는 어린 마음 때문에도 맛있었다. 그러니 할머니는 내게 세상에 다시 오지 않을 맛을 나눠주신 거나 다름없다. 다시 살아도 두 번 다시 느끼지 못할 겨울 찬 홍시의 맛이다.
이번 장마가 유난히 길어지자 친구가 이젠 비가 징글징글하다고 했다. 그렇게 비가 좋다고 설파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진짜 중의 진짜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싫다고 말한 건 여태 다 가짜였다는 걸. 사실은 눈이 보고 싶기도 했으면서, 빗소리를 들으면 더 듣고 싶다고 생각했으면서, 그건 아주 잠깐이고 잠깐의 좋음을 붙드는 일이 구차하다고 여겼다.
논병아리는 분명 언제나 처럼 물 위를 떠다녔을 텐데 어쩌다가 저렇게 멀뚱멀뚱 손 위에 앉아 있게 된 걸까? 오로지 자신인 무엇이 저 손 위에 동그랗고 따뜻하게 앉아 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몸을 통해 드러나기를 바라는 농부의 자의식이 느껴진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몸을 통과한 것들에 대해서만 제대로 느낀 거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나는 그 감각의 천연한 믿음을 사랑한다. 저 손이 품은 것이 시가 아닐 리 없다. 갑자기 나는 친구가 다른 사람에게도 손 사진을 종종 보내는지 궁금해졌다.
옥매미다. 옥빛으로 몸을 지으려고 땅속에서 7년을 보냈다던가. 그늘을 좋아해서 그늘목숨이라고 부른다. 매미가 울면 낮이 길고 잠이 얇아진다. 밤잠을 설친다. 매미가 울어야 수박도 나오고 참외도 나온다. 매미가 울면 물가의 잠자리 애벌레들이 갈대를 타고 날개를 얻으러 올라온다. 매미가 없으면 가을은 오지 않는다.
좋은 것을 보면 내게 보내주려는 고마운 마음을 마다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그 마음 닮아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주소를 보내줬는데 어느새 눈앞에 그 마음이 와 있다.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나조차도 보지 못한 나의 웃음을 떠올리자 “여름이 낳은 뺨의 복숭아”란 문장이 생각났다. 책방지기 제이가 나의 시 <나의 겨울 사과>의 한 구절을 오마주해 인스타그램에 남긴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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