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들』, 김형수, 자음과 모음, 2021
오늘도 문학 나눔 선정 도서를 읽는다. 검색을 해보니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것으로 국내에서 발간되는 양질의 문학 도서를 선정·보급함으로써 문학 분야의 창작 여건을 조성하고 문학 출판시장 활성화를 견인하고자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라고 한다. 나는 작년에 나온 책 중에서 괜찮다고 하는 책을 선정해서 보급하는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리스트를 만들어 놨다가 생각나는 책이 없으면 무조건 빌려온다. 그렇게 빌려온 책은 10중 7,8은 성공한다. 가끔은 아니다 싶은 것도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어디에 속할까? 다 읽고도 머뭇거린다. 아마도 감성에세이를 좋아하는 내 성향에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서두에 ‘이 책을 이름 없이 살다간 유랑극단의 가수들, 내 작은형처럼 뮤직박스에 앉았던 다방의 디제이들, 그리고 최류탄 속에서 노래한 민중 가수들에게 바친다.’라는 글로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하게 했다.
저자 소개
김형수
1959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5년 『민중시 2』에 시로, 1996년 『문학동네』에 소설로 등단했으며, 1988년 『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정열적인 작품활동과 치열한 논쟁을 통한 새로운 담론 생산은 그를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으로 불리게 했다. 시집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조드-가난한 성자들 1, 2』,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흩어진 중심』 외 다수와 『문익환 평전』 『소태산 평전』, 고은 시인과의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 그리고 작가수업 시리즈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등이 있다.
독서 메모
최근 들어 부쩍 트로트 이야기를 듣는다. 친구들이 내게 트로트 이야기를 자주 하는 까닭은 내 젊은 날의 별명이 ‘트로트’였다는 데 있다. 나는 왕년에 <나의 트로트 시대>라는 소설도 썼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나를 트로트라 불렀던 건 아닐 것이다. 트로트라는 말에는 ‘오래된 가요 장르’와 ‘낡은 것’ 또는 ‘촌놈’이라는 뜻이 함께 담겨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고달픈 역사적 사건들과 또 매우 질박한 세월의 축적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트로트가 연주 장르를 가리키기보다 정서적 양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될 때 더 근사해 보인다. 그 세속적 별칭인 ‘뽕짝’은 사회주의 예술론에서 ‘인민성’이라 부르는 대중적 통속성을 이르는 말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것의 정체는 근대적 의미의 ‘신파’가 담긴 예술을 총칭하는 셈이 되는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조금 까다로운 입맛을 앞세워서 한때 태진아. 송대관으로 대표되던 현대 오락 가요를 열외로 놓는 버릇이 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 노래들이 그들의 시대적 감정을 대변하는지 모르겠다. 나이 탓인지 내게는 세월이 갈수록 삶의 전망을 함께 나눌 사회적 감정의 매개물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에는 훌륭한 가수가 참 많았다. 한참 떨어져서 들으면 가사도 선율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노래에 담긴 ‘인간의 감정’만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듣다 듣다 물리는 대로 하나씩 배제하고 맨 마지막에 단 한 명의 가수를 남겼는데 그가 김정호였다. 나처럼 나이가 육십대에 이른자들은 김정호의 음성을 모르는 이가 없다. (…) 김정호의 노래 인생에서 주목할 것은 슬프지 않은 노래가 단 한 곡도 없다는 사실이다. 특기 그가 죽기 전에 부른 노래들은 비장미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옛 트로트의 단조로운 선율 속에 가득 담긴 지난날에 대한 회한, 이건 귀가 듣는 노래가 아니라 인생이 움직여서 따라다니게 되는 노래이다.
이문구의 소설 <유자소전>에 나오는 ‘유자’를 닮은 형이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일명 이풍진 형. 시골 장터에서 아버지를 잃은 가난한 집의 장남이라면 상상이 될 것이다.(…) 형은 입에 늘 유행가를 달고 다녔다. 그 형의 아호를 어머니가 ‘이풍진’이라고 붙여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매번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가 먼저 오고 나서 그 뒤에 얼굴 과 몸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 어쨌거나 이풍진 형이 즐겨 부른 <희망가><사의 찬미>와 같은 노래들은 절망과 허무주의가 팽배해진 일제 치하에서 당대를 허무적 영탄적 비극적으로 반영했는데 우리으 ㅣ유행가가 첫발자국을 이렇게 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이었다.
흔히 서구가 체험한 300년 동안의 근개를 우리는 30년 도안에 살아버렸다고 한다. 그 30년 동안 한국은 정말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멈출 새 없이 매일매일 개화의 길을 관통해 왔다. 우리의 유행가가 그 찰나 속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는 사실은 무한한 연민의정을 느끼게 한다.
한 사회가 외부의 간섭을 받아 융합집단에서 수열 집단으로 전이되는 과정은 슬프다. 가지가 찢기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자아분열의 고통이 동반되는 탓이다.
한국의 1950년대는 많은 사람에게 슬픔을 심화시켰다. 유행가의 세계에서 그 이름 세 자로 역사가 되어온 이미자도, 또 한국적 록 음악의 대가 신중현도 1950년대의 슬픔 위에서 가수가 된 사람들이다. 두 사람 다 전쟁으로 인해 빈자가 되어 참혹한 가난을 이기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세시봉에서 금요일마다 ‘대학생의 밤’이라는 라이브 공연을 했으니 젊은 영혼들의 문화적 해방구에서 새로운 스타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조영남,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한대수……. 이로써 한국 대중가요의 젖줄은 어느덧 미8군 무대가 아니라 세시봉을 필두로 한 젊은 음악 감상실이 되기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에 이렇게 국제 감각을 몰고 온 젊은이들의 가요 장르를 일컬어 포크송이라고한다. 그것을 형이 내게 설명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어린 시절에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표어를 볼 때마다 나는 ‘유행가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었다. 도서관도 서점도 없는 마을에서 내게 ‘존재의 형식’을 전하는 것은 노랫가락에 얹힌 가사들뿐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1980년대가 한국 유행가의 전성시대였다는 말을 언뜻 귓등으로 들었다. 물로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배척해버린 그 시대의 가수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김수철의 노래 몇 곡은 훗날 노래방엣 배웠다. 어쩌면 그리도 무심했을까? (…)하여튼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을 매스컴은 X세대라고 불렀다. X세대의 등장은 나 같은 세대에게는 꽤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두 가지의 특성은 어쩌면 1990년대의 가요 전 장르에 속하는 것으로, 이는 조용필과 김건모의 차이일 뿐만 아니라 신중현과 강산에의 차이이기도 하고, 남진과 성운도의 차이이기도 하다. 여기서 상산에와 설운도보다 강산에와 신중현이 더 가까워 보이는 까닭은 뭘까? 이때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 ‘비동시적 동시성’이다.
삶의 한 때 귀에 와 닿았던 노래는 반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래서 하나의 명곡은 우리 인생의 찰라에만 동참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찰나’하나가 아니라 얼마나 큰 ‘영원’속의 찰나들과 함께 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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