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 듯 살아야겠다고 중얼거렸다. 』, 이외수, 해냄출판사, 2019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의 에세이다. 최근에 선생님의 글을 읽지 못했었다. 일부러 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잠시 잊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선생님의 기행은 기억 나지만 작품에 대해서는 가물가물하다. 1993년에 구입한 중광스님과 천상병시인 그리고 이외수님이 같이 쓰신 시집을 꺼내 읽어봤다. 그동안 이사를 하면서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시집이다. ‘도적놈 셋이서’ 그때의 글과 비교해 본다. 감히 글을 평할 능력이 없다. 그냥 가슴에 담아 둔다. 두 책 모두 다시 한 번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길 기원한다.
저자 소개
이외수
독특한 상상력, 탁월한 언어의 직조로 사라져가는 감성을 되찾아주는 작가. 1946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났고,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홀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 현재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에 칩거, 오늘도 원고지 고랑마다 감성의 씨앗을 파종하기 위해 불면으로 밤을 지새고 있다.
장편소설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장외인간』 『괴물』 『황금비늘』 『벽오금학도』 『칼』 『들개』 『꿈꾸는 식물』과 소설집 『완전변태』 『훈장』 『장수하늘소』 『겨울나기』 등을 발표했다. 시집 『더 이상 무엇이』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 쉴 때까지』와 에세이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자뻑은 나의 힘』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사랑외전』 『절대강자』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아불류 시불류』 『청춘불패』 『하악하악』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 『외뿔』, 대담집 『먼지에서 우주까지』 『뚝,』 『마음에서 마음으로』 등을 출간했다.
독서 메모
제가 원고지에 파종한 낱말들 모두가 띄우고 언젠가는 무성한 감성의 숲으로 자라 오르기를 소망합니다. 고달픈 인생 고통의 나날을 버티면서 살아가시는 분들 모두에게 안온하고 쾌적한 휴식의 그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비 오는 날에는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천지개벽을 해도 성인군자들은 여전히 성인군자로 남아 있을 것이고 개새끼들은 여전히 개새끼들로 남아 있을 것이다.
누가 더 아름다울까. 꽃이 더 아름답다. 아니다 열매가 더 아름답다. 입에 거품 물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멱살잡이 주먹다짐도 불사한다. 묻고 싶다. 둘 다 아름다우면 안 되나요.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든, 어떤 교양과 인격을 갖추었든, 당신에게는 반드시 적이 생길 것이다. 당신이 착해도 적이 생기고 당신이 악해도 적이 생길 것이다. 아무리 변명을 하고 아무리 진실을 보여 주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인간들 중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미친개도 섞여 있고 인간의 형상을 한 벼멸구도 섞여 잇다. 하지만 그것들을 퇴치하거나 멸종시킬 방법은 없다. 어쩔 수가 없이 공존해야 한다. 복장이 터질 지경이 오더라도 그러려니 하라. 그러려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여여한 경지를 깨닫게 된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잠깐 머물다 가는 인생인데, 봄이 오건 안 오건 나대로 즐겁게 살기로 했다. 정신 나간 인간들이 개지랄을 떨건 말건, 하늘에도 들판에도, 바다에도 사막에도, 내가 간직하고 있던 낱말들을 열심히 파종하면서 살기로 했다. 언젠가는 내가 파종한 낱말들이 싹을 틔워서, 눈부신 꽃이 되거나, 푸르른 숲이 되거나, 하늘거리는 해초가 되거나, 우람한 선인장으로 자라기를 기다리겠다.
그런데 눈여겨 살펴보면 고양이들이나 식충식물들만이 정체성을 상실했거나 직무유기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도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정체성을 상실했거나 직무유기에 빠져 있었다. 때로는 거의 구제불능의 상태에까지 도달해 있는 부류들도 허다했다. 어쩌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생이 일장춘몽이면 어떠리, 아직 봄이 머물러 있거늘 사는 일 어려울 거 없다고, 사랑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들은 쉽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여려운 일이 사랑인 줄 불면으로 꽃피워 본 목숨들은 다 알고 있다. 명자꽃 피는 감성마을. 내 비록 늙었으나 가슴에는 붉은 사랑.
지난밤에는 약간 덥다는 느낌 때문에 창문을 열어 두고 잤다가 새벽에 얼씨구, 너무 추워서 창문을 닫고 보일러를 난방으로 조정했다. 어쩌겠나. 사람이 자연과 조화해야지 자연이 사람과 조화할 수는 없으니. 돈 버는 수완이 뛰어난 사람들은 더울 때는 더위로 한밑천을 잡고 추울 때는 추위로 한밑천을 잡더군. 하지만 나는 추위에도 더위에도 한밑천 잡을 생각은 못하고 언제나 푼돈 아끼기에 바쁘다. 그래도 괜찮다. 오래도록 밑바닥을 짚고 앉아 있었으니, 머지않아 높이 떠오를 일만 남아 있다.
통제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각자의 위치가 있고 그 위치에 따라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늙음이 벼슬이 아니듯이 젊음도 벼슬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지나친 자유와 방종이 범죄를 초래하기도 하고 늙은이들의 지나친 염려와 힐난이 재앙을 초래하기도 한다.
분명히 세상은 병들어 있다. 그래서 힐링이라는 말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힐링은 치유를 의미하는 단어다. 그런데 어디가 어떻게 병들어 있는 걸가. 뚜렷한 진단도 치료법도 밝혀지지 않은 채로 온 국민이 환자가 되어 있는 듯한 양상이다. 물론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현상만 바꾼다고 완치가 가능할까. 인간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병폐는 문제의 본질은 모지를 못하고 현상만을 판단해서 오류를 양산해 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결코 몸만 간직하고 살아가는 동물이 아니다.
비록 느리더라도 성실하게 목적지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시간의 옆구리에 붙어 우주의 중심을 향해 꾸준히 전진했다. 하지만 보여드릴 만한 성과가 아직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몹시 부끄럽게 만든다. 그래도 희망을 간직하고 살겠다. 절대로 비굴하게 살지는 않겠다. 가끔 뇌속을 썩은 콩비지로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놈들이 두부 씹다 어금니 부러지는 소리를 연발해도 전혀 개의치 않겠다.
SNS에서는 지적 허영을 버리지 못하시는 분들을 의외로 많이 만나게 된다. 그분들은 뻑 하면 전문용어를 남발하거나 외래어를 남발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얼마 전, 그들이 구사하는 문체를 ‘인문병신체’라고 규정한다는 해학 넘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인문병신체를 남발하시는 분들 게 ‘허식인’이라는 명칭을 선물하겠다. 지식과 허영을 합성해서 만들었다.
사는 일이 모두 수행이다. 희로애락도 수행이요 생로병사도 수행이다. 희로애락도 생로병사도 바라는 대로 되는 법이 없다.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밥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부처님도 골라 먹은 적이 없고 예수님도 골라 먹은 적이 없다. 부처님은 인생을 한마디로 고(苦)라고 설파하셨다. 먹어도 고요 못 먹어도 고다. 기쁨에 고에 이르고 분노도 고에 이르고 슬픔도 고에 이르고 즐거움도 고에 이른다. 태어나는 일도 고에 이르고 늙어가는 일도 고에 이르고 병드는 일도 고에 이르고 죽어가는 일도 고에 이른다. 그 모든 고를 한꺼번에 벗어던지려면 방하착(放下着), 놓아 버려야 한다. 생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생각을 끊어버리라는 얘기다. 생각을 끊어 버리면 마음자리에 들게 된다.
세상에는 바닷물을 다 퍼마셔 봐야만 바닷물이 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보기 전에는 절대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하지만 물결만 보고도 바람이 부는지 안 부는지 알 수 있는데 꼭 풍속계를 들여다보고 난 다음에야 바람이 분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담 너머로 지나가는 뿔만 보아도 소인지 양인지 구분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무엇이든 가장 아름다울 때 우리는 알게 된다. 그것이 떠날 때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무엇이든, 어찌 저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느끼는 순간, 그것과 이별할 때가 머지않았음을 자각해야 한다.
과학의 힘으로 생로병사는 극복되겠지만 과연 희로애락은 어떤 양상으로 변모될까. 과학만이 능사는 아이다. 하지만 과학만이 능사인 듯이 살게 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과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까. 그때의 절대 가치는 무엇일까. 인간이 수행해 온 모든 일들은 인공지능이 대신 수행하게 된다. 노동도 생산도 소비도 낭만도 사랑도 예술도 모두 AI가 담당하게 된다. 인간은 고작 침대에서 헐떡거리는 쾌락과 식탁에서 처묵거리는 즐거움만 있으면 그만이다. 아니 종국에는 그것마저도 AI들에게 맡겨 버릴지도 모른다. 인간과 사물들이 의상 별 차이가 없는 상태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머물러 있으면 지식, 가슴속에 내려오면 지성, 사랑이 더해져 영혼 속에서 발효되면 지혜다.
지식과 지성과 지혜는 숙성 정도에 다라 상당한 수준 차이를 나타내 보인다.
이름 모를 존재는 많아도 이름없는 존재는 없어라. 산과 들에 피어 있는 수많은 꽃들 중에서, 이름 모를 꽃들은 많아도 이름 없는 꽃들은 드물다. 엄밀하게 말해서 지구별 그 어디에도 잡초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하잖고 보잘 것 없는 미물이라도 만 존재는 다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는 법이다. 당연히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가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 부처님말씀
클래식 음악만 무조건 최고의 음악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못하다. 때로는 민요나 유행가도 클래식보다 몇 배나 큰 감동과 가치를 전달할 수가 있다. 모든 분야에 걸쳐서 위엄과 권위는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계급의 부산물이며 거추장스러운 허영의 장신구에 불과하다.
그것들을 과감하게 내던지고 사셨던 중광스님과 천상병 시인이 못 견디게 그리워질 때가 많다.
그녀는 뻑하면 주 메뉴들을 바꾸어 붙이고 그때마다 상호도 새로 바꾸어 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식당은 손님이 없어서 날마다 파리를 날리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느 날 마을에서 입바른 소리 잘하기로 소문난 노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죽어라 하고 메뉴하고 간판만 바꾸면 무슨 소용이 있나. 이 여편네야. 싸가지 없는 자네 인성하고 둔감한 자네 음식 솜씨부터 바꿀 생각부터 해야지.”
모든 분야에 걸쳐 기본은 매우 중요하다. 기술면에서나 정신면에서 기본을 철저하게 가르치지 않는 지도자는 사이비거나 사기꾼일 가능성 이 높다. 모든 기본은 양심을 기저에 두고 이루어진다. 그래서 기본을 무시한 채 실력을 연마할 경우, 어쩌다 설정한 목표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안정성을 오래 유지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반칙이나 변칙을 쓰게 된다. 대부분 자신도 속이고 대중도 속이는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들은 대개 실력뿐만 아니라 인품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고 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단풍이 먼저 드는 나무는 낙엽도 먼저 진다. 서두른다고 잘될 리도 없고 미룬다고 못 될리도 없으니 모든 것을 시와 때에 맞추어 수행하는 것이 요령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어도 자신을 없애지 않으면 시와 때를 읽어 내기 힘들다. 자신에게 가려져 매사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없애는 일, 그것이 수행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욕심을 알면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러움을 알면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잠결에 불현 듯 고독을 들었다.
잠결에 불현 듯 소나기 소리를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수습하니 제기럴, 소나기 소리가 아니었다. 방안 가득 암갈색 고독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은 새벽 2시 이제 잠들기는 글렀다.
어쩌면 우리는 피해자인데 수혜자로 둔갑해 있는 것은 아닐까.
외로움 끝에 깨달음 있다
추위는 언제나 몸에 익숙한 평상복처럼 걸치고 살았다. 하지만 인생을 살 만큼 살아 본 사람들은 안다. 가난도 무섭고 추위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추위와 빈곤에 물어 뜯겨야 했던 인생. 뻑하면 실패와 절망에 진저리를 쳐야 했던 인생. 어디를 둘러보아도 세상은 텅 비어 있었다. 허기진 영혼, 메마른 늑골 사이로 몰아치는 눈보라. 날마다 외로움에 사무쳐서 아아 씨발,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세상이 우라지게 혐오스럽고 지겹기는 하지만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가난과 비극을 물려주셨고 세상은 제게 차별과 박해를 물려주었습니다. 작가가 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밑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외로워 하겠습니다.
누구나 결국엔 무한에 이른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간을 떠돌다 거기에 닿았으리 이름과 형상을 가진 천하만물은 모두 거기에 이르나니 내 비루한 젊은 날 진실로 동경해 마지않았던 존재의 보잘 것 없음 마침내 물질로서의 무가치함과 무의미함 무한 자유와 무한 평화 그 거룩한 경지 먼지라는 이름의 우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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