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김훈, 문학동네, 2019
책의 두께가 46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140권이나 되는 책을 낸 작가의 책이라서 많이 긴장하고 읽었다. 산문집이라고 해서 선택한 책인데 정치와 관련된 사회적 사건을 이야기한 내용이 너무 많아서 별로였다.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내용이다.) 그래도 빠트리지 않고 메모를 남긴다. 작가는 서문에 알림이라는 글을 썼고, 첫 번째 문장으로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 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썼다. 작가의 의견을 존중한다.
저자 소개
김훈
1948년 서울 출생. 2000년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 수상 : 2013년 가톨릭문학상, 2007년 대산문학상, 2005년 황순원문학상, 2004년 이상문학상, 2001년 동인문학상, 소설 『칼의 노래』, 산문 『라면을 끓이며』외 여럿.
최근작 : <연필로 쓰기>,<남한산성>,<남한산성 (100쇄 기념 아트 에디션)> … 총 139종
독서 메모
알림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 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출간으로, 나의 적막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전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2019년 봄, 일산에서 미세먼지(fine dust)를 마시며, 김훈 쓰다
개는 개가 아닌 것이 됨으로써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 개들은 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모른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벤치에 앉아 있는 내 앞으로 우아하고 외로운 개들은 지나가고 지나간다. 아무리 품격 높은 개라 하더라도 아무데서나, 누가 보건 말건 똥오줌을 눈다. 이 배뇨 방변은 개들의 마지막 자유처럼 보인다. 개가 똥을 누려고 쩔쩔매다가 쭈그리고 앉으면 개주인은 아무 도리 없이 개의 똥 마려움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어떤 여성 노인은 작년에 칠순을 맞이했는데, 며느리가 전화해서 ‘어느 식당에 가고 싶으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노인의 말인즉, 며느리가 미리 식당을 정해놓고 가자고 해야지, 시어머니한테 그걸 물어보니까 비싼 식당에 가고 싶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고, 하도 더러워서 “칼국수를 먹을란다”고 했더니 정말로 칼국숫집으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호수공원은 인공의 공원이지만 이제는 숲이 무성하고 그늘이 짙어서 자연의 너그러움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의 지지고 볶는 사연들을 숲이 품고 있다. 노인들은 길에서 멀리 물러나 있고 어린아이들은 두 발로 오뚝 서는 미어캣 앞에 모여 있다.
시방세계 억조창생과 모든 들짐승 날짐승 길짐승, 바닷 속의 물고기와 거북이, 풀 속의 버러지들이 창세기 이래 무시무종하게 내지르는 모든 똥 중에서 최상위 포식자의 똥이 가장 더럽고 구리다. 나는 이 학설을 한 동물학자의 글에서 읽고 충격을 받았다.
요즘은 개의 지위가 높아져서, 개를 개라고 하면 무식쟁이 취급을 받고, 반려견이라고 해야 교양인 대접을 받는다. 개가 되었건 반려견이 되었건, 개는 상위 포식자가 아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는 야성이 퇴화해서 제 먹이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 반려견은 먹이사슬의 최하위거나, 사슬의 위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견이 최상위 포식자의 똥을 누는 까닭은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계의 최상위 포식자라고 하지만 인간에 속하는 자들의 똥의 가치가 다 똑같지는 않다. 최상위 포식자 그룹 안에서 또다시 먹이사슬의 서열이 펼쳐지는 것인데, 거름으로 쓰는 똥의 효능은 그 주인의 먹이사슬의 지위에 따른다. 잘 먹고 잘살고 권세 높은 자들의 똥은 하위계급의 똥보다도 훨씬 더 기름지고 건더기가 많고 영양분이 풍부하다. 이것은 자명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서울은 똥으로 넘쳐났다. 집집마다 똥을 퍼내는 재래식 뒷간을 하나씩 끼고 있었다. 뒷간이 없는 집도 있었다. 이런 집은 이웃집 뒷간을 한 달에 얼마씩 돈을 주고 이용했고(월똥), 또는 신문지에 똥을 누어서 밤중에 몰래 내다버렸다. 거대도시의 똥을 퍼다버리는 작업은 서울의 운명이 걸린 대사업이었다.
여러 빈소에서 여러 죽음을 조문하면서도 나는 죽음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다.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나는 모든 죽은 자들이 남처럼 느껴진다.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나이를 먹으니까 나 자신이 풀어져서 세상 속으로 흘러든다. 이 와해를 괴로움이 아니라 평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히 늙어간다. 새로운 세상을 겨우 찾아낸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오래전에 주례를 맡았을 때는 주례사에서 남편과 아내가 요리를 배워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햄버거나 피자, 소시지, 짜장면, 치킨 같은 것만 배달시켜 먹지 말고, 주말에는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사와서 스스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 인간의 정서는 먹는 것에 크게 지배받기 때문에 인스턴트식품을 너무 자주 먹으면 삶을 가볍게 여기는 일회용 마음이 형성되기 쉽다고 나는 말했다.
결혼은 두 남녀의 일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풍속적인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모아놓고 결혼식을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삶이 요구하는 형식을 존중하라. 형식이 소멸하고 나서도 존재할 수 있는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 삶의 내용은 형식에 담긴다. 좋은 형식은 인간을 편안하게 해준다. 나의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쉽고, 나의 배우자의 부모에게 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 쉽지 않은 형식에 익숙해져라. 내 배우자의 부모의 생일, 기념일, 안부를 챙기고 명절 때 인사하라. 이런 진부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라.
결혼의 추동력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밥을 벌어야 먹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영위는 물적 토대(material basic) 위에서만 가능하다. 물적 토대 없이도 지고지순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말도 있다는데, 그런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구태여 결혼할 필요 없다. 재물을 귀하게 여기고, 귀하게 쓰라. 재물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오래 연애하다가 결혼한 부부가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연애를 오래했으면 서로 성격을 잘 알터인데,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은, 이른바 사랑이 사그라진 자리에 연민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 빚쟁이처럼 사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
사회 공공성의 문제로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재수없는 소수(the unlucky few)로 몰아서 고립시키는 공작은 ‘안보와 경제’가 문제를 회피하는 오래된 방식인데, 세월호 참사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도 어쩌다가 재수 좋아서 안 죽고 남아 있는 꼴이 되었고, 삶은 견딜 수 없이 무의미한 우연의 장난으로 느껴졌다. 쓰러진 세월호는 한국 현대사의 괴로운 자화상이다. 그 녹슨 고철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이 괴물은 고통스러운 질문과 회한을 한꺼번에 들이대고 있다.
이순신은 정유년(1597년)4월1일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가 감옥을 나와서 쓴 첫번째 문장은 "감옥문을 나왔다"이다. (...)그는 부지런하고 꼼꼼한 기록자였지만, 매맞고 백의종군하는 자신의 내면에 관해서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았고, 술자리에서 부하들에게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
병졸들은 굶어죽지 않으려고 군량을 훔쳤고, 훔치다 걸리면 사형당했다. 병졸들은 죽지 않으려고 탈영했고, 탈영하다 잡히면 베어졌다. 이순신은 살려고 도망치는 부하들을 붙잡아서 목베었다. 격군이 없으면 배를 움직이지 못하는데, 도망치는 격군을 목베지 않아도 배를 움직일 수 없다. 『난중일기』의 메마른 문장 속에서는 춥고 배고파서 도망치는 부하들을 목베는 이순신의 마음의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의 바다는 인간세의 고해다. 그는 그 고해를 끝까지 건너갔다.
이순신은 사실을 기록했을 뿐 첨삭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가 받아들이고 긍정했던 ‘사실’들은 압도적으로 열세인 군사력, 물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부하들의 이탈과 명령 불복종, 전쟁을 지원해야 할 행정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짓밟혀야 하는 자신의 정치적 불운과 같은 시련과 역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지도자된 자질은 이 절망적인 역경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었다. 전 생애를 통해서 그의 리더십에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대목은 이 전환의 국면 속에서 작동되었다. 후인이 전환의 내면을 말하는 일은 두렵다.
이순신의 복합적인 리더십의 중층 구조 속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죽음에서 삶으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헐벗은 부대를 이끌어나가고, 또 실제로 이 같은 원칙으로 전투를 수행해낸 능력에 있을 것이다. 이 점은 그가 끝끝내 탈정치적이었고, 자신의 공적에 대해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던 보상 없는 생애의 모습과 연관이 있다 할 것이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물론 중세적 봉건의 토양 속에서 배태되고 양성된 자질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중세적인 충효사상과 근왕주의 정신만으로 7년간의 길고도 참혹한 전쟁을 돌파해나왔다고는 보기 어렵다.
민주적이고도 참여적이고 온정적이고 여론 수렴적인 리더십이 현대사회의 만인이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민주적 성격만으로 리더십의 내용이 모두 충족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 이순신의 생애는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리더십이란 때로는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고 회피하려는 방향과 목표를 향해 다중을 거슬러가면서 그 다중을 다시 몰고 나갈 수 있는 덕성까지를 포함해야 온전하다 할 것이다.
동물들하고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는 동물들을 좋아했다.
소득이 늘어나자 빈곤은 구조화되었고 구조적 빈곤은 토착되고 세습되어간다. 가난은 다만 물질적 결핍이 아니다. 빈곤은 그 결핍을 포함한 소외, 차별, 박탈, 멸시이다. 이 구조는 이제 일상화되어서 아무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눈비가 오면 건당 100원을 더 준다는데, 100원을 더 주면 위험한 일을 시켜도 되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수많은 소비자와 배달노동자들과 프랜차이즈업계를 로그인시켜놓고 핸드폰의 작동으로 수요와 공급을 연결시키는 노동형태가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노동은 대규모로 소외되어가고, 노동은 오직 노동자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음식을 먹으면 그 재료는 똥이 되어 몸을 빠져나가지만, 맛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의 지층 맨 밑바닥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솟아오른다. 지나간 맛을 지나갔다고 해서 부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나간 맛이 살아나서, 먹고 싶은 미래의 맛을 감질나게 하고, 지금 이 순간의 맛이 지나간 맛을 일깨워서, 나는 지나간 맛과 지금 이 순간의 맛과 다가오는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 지나간 맛은 결핍이고, 지금 이 순간의 맛은 충만이다.
고추장 베이스 떡볶이는 궁중떡볶이를 누항으로 끌어내려 전 국민의 음식, 청소년의 음식으로 정착시켰다. 간장에서 고추장으로의 전환은 삶을 받아들여서 변화시키는 대중의 힘을 보여준다. 그 변화의 방향은 낮게, 넓게, 그리고 맞게, 새롭게이다.
내 어린 날을 지배한 음악정서는 8할이 트로트고 전쟁가요였는데, 이 결핍은 그 시대의 보편적 빈곤의 정서적 밑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박정희 소장은 1961년 군대를 이끌고 한강을 건너왔고 비틀스의 노래는 1963년 한국에 들어왔다. 이 무렵이 나의 격렬한 사춘기였다.(…) 나는 박소장의 혁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비틀스야말로 나의, 우리들의 혁명이고 천지개벽이었다. 나는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뜨듯이 귓구멍이 뚫렸다. 아이들은 발칵 뒤집혔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새로운 음악에 감응하는 생명의 힘이 아이들 내면에 살아서 작동하고 있었다.
지금의 돈암동성당 건너편에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은 때를 씻고 버리는 오수를 이 하천으로 내보냈다. 목욕탕 오수는 온기가 남아 있어서 김이 올랐다. 더운물이 귀한 시절이었다. 겨울에는 손등이 터진 산동네 엄마들이 빨랫감을 이고 이 하천에 와서 목욕탕 오수가 나오는 구멍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 미지근한 오수에 옷을 빨았다.
감은 스스로의 단맛이 강해서 햇볕의 맛을 온전히 간직하지 못한다. 무는 제 맛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햇볕을 받아들여서 저장할 수 있다. 무말랭이는 말라서 질기다. 무말랭이는 천천히 오래 씹어야 햇볕의 맛이 우러난다.
이 ‘애국’은 스포츠가 아니고 이념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애국’의 비장한 정조는 정치권력의 압제와 비리를 정당화하는 당파성으로 변질되면서 후세로 전승되었다. 권력은 애국의 깃발 밑으로 결집되면서 억압을 형성했고 그 대척점에서 또 다른 저항적 당파성이 형성되면서 태극기의 보편성은 훼손되어갔다. ‘애국’을 생업으로 하는 세력이 등장해서 일상의 자유를 억압해가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고귀함을 역설했다.
"나는 내 생애에 별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을 때 글자를 배웠다. 아마도 조선조의 모든 글 읽는 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산간마을의 할매들은 한 생애의 신산을 모두 겪고 나서 문자를 배웠다. 나는 이 차이가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잘 설명하지는 못한다. 대충 말하자면 할매들의 글에는 문자가 인간에게 주는 환상이 없고, 인간의 문자와 문장 안에 이미 들어와서 완강하게 자리잡은 관념이나 추상이 들어있지 않다. 할매들의 글은 삶을 뒤따라가면서 추스른다."
할매들은 감추거나 꾸미지 않는다. 할매들의 글을 읽으면서 한 문명 전체가 여성의 생명에 가한 야만적 박해와 차별을 성찰하는 일은 참혹하다.
그는 연평도 포격이 시작되자 지체 없이 대한민국 정부가 준 상장을 불질렀다. 나는 그의 이 정확한 생존술을 긍정한다. 이 민첩한 생존술은 그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 겪어낸 모든 광기와 야만성,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작동되는 생물적 조건반사였다. 이 조건반사는 이념이 아니고 당파성이 아니다. 애국이 아니고 매국이 아니고 혁명이 아니고 반동이 아니다. 이것은 충성이 아니고 배신이 아니다. 총칼을 들이대면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이념의 폭력 앞에서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훈장을 태워버리는 행위는 정직한 삶의 길이다.
눈을 치울 때 내 몸과 삽과 대지가 서로 교신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이 교신의 내용은 삶에 대한 직접성이다. 삽을 들고 눈을 치우면서 나는 저 눈 쌓인 공동묘지의 허무감을 넘어선다. 삽이 나를 이끌어준다.(...) 눈 치우기는 노인의 노동이다. 나는 삽을 쓰고 싶어서 눈을 기다린다.
얼마 전 남한산성에 다녀오는 길에 성남 모란시장으로 구경 갔더니 마침 오일장이 서 있었다. 장마다 돌아다니면서 망치, 펜치, 톱, 호미, 삽 같은 쇠붙이 연장을 파는 장수가 전을 벌이고 있었다. 3인 1조가 되어서 곱사춤, 병신춤, 곰배팔이춤에 만담을 곁들여 손님을 끌어모아놓고 물건을 팔았다. 관객은 열댓 명 정도였다. 나는 돼지껍데기볶음을 한 접시 사다 먹으면서 맨 앞줄에 앉아 구경했다. 행수(行首)쯤 되어 보이는 더벅머리 사내가 마이크를 잡고 연설했다. 젊은이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고 살아서 도무지 연장을 쓸 줄 모르는 동물로 퇴화했으며, 살아 있는 몸의 건강한 기능을 상실했고, 인간성의 영역이 쪼그라드는 현실을 그는 문명비평적으로 개탄했다. 그가 핏대를 올려가며 소리질렀다.
-아, 니미, 서울공대를 톱으로 나온 녀석들이 못대가리 하나를 못 박고, 닭모가지를 못 비틀어. 아, 제미, 로스쿨 톱으로 나온 놈들이 펜치를 못 쥐고 도라이버를 못 돌려. 이게 사람이냐, 오랑우탄이냐. 몸이 다 썩은 놈들이 어떻게 밤일을 해서 새끼를 낳는지. 나는 박수쳤다. 다들 박수쳤다. 나는 그 연설에 감동해서 당장 삽 한 자루를 샀는데, 올겨울에 그 삽으로 눈을 치웠다.
주먹도끼의 손잡이에는 그 도끼로 사냥을 해서 처자식을 벌어먹이던 사내의 손바닥 체온이 남아 있다. 그는 이 손바닥으로 짐승을 때려잡고 아내를 애무했을 터이다. 주먹도끼의 손잡이는 사람의 손아귀에 닳아져서 반들반들하다. 나는 석장리박물관의 주먹도끼를 들여다보면서, 짐승의 머리를 치다가 일격이 빗나가서 짐승에게 먹힌 사내들, 하루종일 허탕치고서 배고픈 처자식들에게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내들, 비가 오고 또 눈이 와서 나가지 못하고 움막집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내들을 생각했다. -
인간의 동작을 받아내서 그 힘을 정밀하게 극대화시키는 연장을 만들었다. 모든 연장은 동사와 대응한다.
별들의 빛은 수만 광년 동안 우주공간을 건너와서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모든 별빛들이 내 가슴에 박혀서 나의 생명은 기쁘고 벅찼다. 내가 한줌의 글자를 움켜쥐고 살다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중생이라 하더라도 별들과 동일한 빛, 동일한 시간으로 닿아 있으므로 나는 중생이라도 미물이라도 좋았다. 오늘 별을 떠나는 빛들은 다시 수만 광년을 건너가서 수만 년 뒤의 중생의 가슴에 박힐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영감’이라고 말할 때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내가 겨우 쓰는 글은 오직 굼벵이 같은 노동의 소산이다.
"맛은 음식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동안만 그 실체가 살아있고, 먹고 난 후에는 만질 수 없는 기억이나 그리움으로 마음의 밑바닥에 깔린다. 맛을 경험할 때 생명은 발랄하게 작동되어서 충만감에 도달하지만, 이 실존의 전율이 지나가고 나면 충만감은 사라지고 맛은 결핍으로 변해서 목구멍은 다시 먹고 싶어진다. 중생의 고통은 한이 없다."
메밀껍질로 속을 넣은 베개를 베어보면 메밀이 어떤 곡식인지를 알 수 있다. 메밀 베개는 가볍고 서늘해서 장마 때도 습기가 차지 않는다. 이 베개에서는 가을의 마른 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메밀은 쌀처럼 사람에게 들러붙지 않는다. 메밀은 끈끈하지 않고, 엉기지 않는다. 사람과 메밀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데, 이 거리가 메밀의 서늘함이다. 그래서 메밀을 국수로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녹말을 넣어야 한다. 함흥냉면에 녹말을 너무 많이 넣으면 이 서늘한 자유의 공간이 줄어든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과 영변 약산의 핵폭탄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눈 덮인 안시성의 겨울과 메밀꽃이 피어서 바다를 이루는 고구려의 광야를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청천강에서 싸우는 을지문덕과 불타서 무너지는 고구려의 평양성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개마고원의 저녁놀과 백두산의 새벽과 압록강 하구의 밀물과 썰물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평양의 박치기꾼과 강계의 미녀들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마지막 철수선이 떠나던 1950년 12월 24일(내가 세 살 때) 흥남부두의 눈보라와 아우성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박헌영, 임화, 김남천의 죽음을 생각하고 병자호란 때 만주로 끌려간 50만 명의 포로를 생각한다.
하얼빈역은 안중근이 이토를 쏘아 죽이기에 가장 걸맞는 시대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고, 이토 또한 총 맞아 죽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나는 이토가 잠자다가 침실에서 당하거나, 기생집에서 놀다가 당하거나 자신을 배반한 부하에게 당한 쪽보다는 동청철도 하얼빈역에서 실탄 7발만을 지닌 조선 청년에게 당한 죽음이 그의 명예에 다소 기여한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신경준은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서 그 위를 걸어가는 자가 주인이다'라고 썼다. (...) '그 위를 걸어가는 자가 주인이다'라는 말은 '걸어가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들렸고, '걸어갈 때만 주인이다'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오는 자도 주인이고 가는 자도 주인이어서 길 위에서는 누구나 주인이고 누구도 주인이 아니다. 오는 길과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돌아서면 가던 길이 오는 길이다. 내가 너에게 갈 때 너는 내가 너에게 온다라고 말한다. 길에서는 옴과 감이 다르지 않으므로 길에 주인 없음을 알 것이다.
자연으로서의 시간은 다만 전개될 뿐, 그 전개의 방향에 도덕적 목표가 없고 진화의 충동이 없다. 그 진행의 궁극에 관하여 인간은 영원히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생명은 그 자비 없는 시간에 쓸리면서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저 자신을 전환시키는데, 저 자신을 전환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모조리 멸종해서 그 생명을 미래에 전할 수 없다. 이 전환이 건너뛰기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고, 수백만 년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멸종들의 무덤을 딛고 서서히 이루어진다.
당신들은 이 송년회가 후지고 허접하다고 생각하겠지.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덧없는 것으로 덧없는 것을 위로하면서, 나는 견딜 만했다. 후져서 편안했다. 내년의 송년회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해마다 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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