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김수현, 마음의 숲, 2017
젊은 작가의 책은 항상 배울 점이 참 많다. 몇 년이 된 책인데도 아직까지 예약을 하고 한 달 정도 기다려 비려온 책이다. 더군다나 한권만 있는 책이 아니라 4권의 책이 있는데도 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우리는 제조업이 주를 이루면 눈만 뜨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던 시대에 살았었고, 그 땐 성실이 최고의 무기였다. 학교 다닐 때도 계근상의 상품이 우등상보다 더 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는데 내 머릿속 생각을 잘 바뀌지 않는다. 요즘 들어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그런 책들을 많이 보는 편인데도 머리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 는 아직도 많이 다른 것을 느낀다. 오늘도 젊은 작가 분께 한 수 배웠다. 머리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가슴으로는 잘 안 되는 것들이다. 그래도 한 걸음은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젊은 작가 분들의 글을 꾸준히 읽을 계획이다. 아니 지금처럼 노소의 구분 없이 닥치는 대로 다독을 할 예정이다. 그러다보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귀한 생각들을 얻을 수가 있다.
저자 소개
김수현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사람 밝지만 가볍지 않은 사람.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과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속 시원한 솔루션으로 전 세계 170만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100% 스무 살』, 『안녕, 스무 살』, 『180』,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등을 펴냈고, 『나는 도망칠 때 가장 용감한 얼굴이 된다』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독서 메모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은 이에게,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친절하려 애쓰지 말자. 상황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들에게 비굴해지지는 말자. 저열한 인간들로부터 스스로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에겐 최소한의 저항이 필요하다.
갑질이란,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갖추지 않은 천박한 갑과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요구하지 않는 무력한 을의 합작품이다.
시기심이 파괴적인 이유는 자신이 가진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데 있다.
그만두면 끝일 회사 상사에게 어쩌다 마주치는 애정 없는 친척에게 웃으면서 열받게 하는 빙그레 쌍년에게 아닌 척 머리 굴리는 여우같은 동기에게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에게 더는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마음 졸여도, 끙끙거려도, 미워해도 그들은 어차피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삶의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할 수 있을까? 아이큐가 지혜를 측정할 수 없고, 친구의 숫자가 관계의 깊이를 증명할 수 없으며, 집의 평수가 가족의 화목함을 보장할 수 없고, 연봉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할 수는 없다.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우월한 존재가 아닌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삶에서 숫자를 지워야 할 것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담을 수 없는 것들에 있다.
희미해진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열패감을 보상받기 위해, 얄팍한 우월감을 맛보기 위해 타인을 모멸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도록 교육 받기보다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도록 교육을 받았다. 영어에는 대응할 단어조차 없는 ‘눈치’가 한국인은 유난히 발달한 것도, 서양인이 보기엔 자기비하에 가까운 겸손도 이러한 문화에서 나온다.
당신이 가장 존중해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당신 자신이다. 약간의 근자감과 어느 정도의 개썅마이웨이 정신이 필요하다.
유럽 사람들은 상황이나 사정이 바뀌면 그에 맞추어 자연스레 하향을 한다. 하지만 한국인은 사정이나 상황이 달라져도 하향은 끝내 하지 않으려 하고, 어쩔 수 없이 하향을 하게 될 때는 처참하고 처절한 심경에 빠진다.
삶이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일 뿐 그 어떤 삶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존감은 기본적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고 부모의 양육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자존감의 원리를 최초로 규명한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은 건강한 자존감을 위한 두 기둥을 자아효능감과 자기 존중감이라 이야기했다. 자아 효능감이란 자신을 돌보며 현실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이자 자신감이고 자기 존중감은 스스로를 존중하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경험과 탐색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정답에 대한 병적인 찬사와 오답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을 서슴지 않는다. 그 속에서 졸지에 오답이 된 개인은 혼자 힘으로 그 부적절함을 견뎌야 한다. 그 결과 우리에겐 정답이 된 소수의 오만과 오답이 된 다수의 열패감으로 응축된 병적인 사회가 남았다.
좋은 학생에는 여러 정의가 있고 잘 사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으며 우리는 각자의 답을 가질 권리가 있다. 우리는 오답이 아닌, 각기 다른 답이다.
그러니 이제 실패를 통해 걸러낸 안목과 취향으로 내게 가장 좋은 한 가지를 찾아내자. 삶이란 결국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질 좋은 옷 한 벌을 찾는 일이다.
외면과 변명을 멈추고 내가 좋아하는 나와 내가 싫어하는 내가 통합된 진짜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오만한 인간이 아닌, 인간적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점이라는 건, 홍삼가루가 5% 첨가된 홍삼 캔디처럼 약간의 진실이 함유된 추측일 뿐이다. 우리는 삶에 확신을 얻고 싶어서 점을 본다. 하지만 노스트라다무스가 관 뚜껑을 열고 나온다 해도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그건 점쟁이의 내공이 부족해서 혹은 복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 모호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다가 어떤 불행을 마주한다 해도 충분히 슬퍼하고 괴로워했다면 그 원치 않는 사실과도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자.
프로이트가 규정한 정상의 기준이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증이듯 정상이란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상처, 약간의 결핍, 약간의 부족함을 의미할 테다. 삶에는 여러 형태가 있으며 우리는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소수의 존재들일 뿐.
당신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건 당신이 어떤 문제와 결핍을 가졌건 그 무엇이건 다 정상이다.
+ 사람들은 불행을 꽁꽁 숨겨두기에 모를 뿐 세상에 보편적이지 않은 불행은 없다.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필요한 건 후회가 아닌 평가이고, 앞으로의 길을 내다볼 때 필요한 건 걱정이 아닌 판단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지점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동안 가짜 해결책에 매달리고 있던 건 아닌지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필요한건 후회가 아닌 평가이고, 앞으로의 길을 내다볼 때 필요한 건 걱정이 아닌 판단이다.
당신의 삶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목적을 세우고 방법을 찾자. 당신의 목적을 충분히 의식하고 실천하는 것. 안도감이란 그곳에 있다.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네 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러니까 니들 마음대로 해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그러나 누군가 이차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이차방정식이 아닌 그 사람의 이해력 부족에 있듯이 누군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이해력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에게 쩔쩔 맬 필요도 없고 우리를 증명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우리는 편협한 이들에게 이해 받으려 사는 게 아니며,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다. 3인칭 시점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여기는 오만은 언제나 진실을 오독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에겐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하나는 타인의 삶을 지나치게 관심 두고 참견하지 않는 것인데 이건 일종의 감수성을 키우는 문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예민해지지 않는 것이다. 각자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 나 역시 완벽하지 않지만, 노력하고 있다. 나와 당신이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하여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혜자스러움을.
사람에게 인간관계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기에 인간관계의 금이 갈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만큼,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누린다.(중략) 상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났다 해서 식음을 전폐할 필요가 없듯이, 또라이를 만나 힘들었다 해서 모든 관계를 끊어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상한 음식을 골라내는 후각이고, 진심 없는 인간들은 곁에 두시 않는 안목일 뿐.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가 3%의 소금 때문인 듯, 우리 각자의 3% 노력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른다. 만약 세상이 어딘가 잘못되어있다면 그러니 각자의 몫을 하자. 우리 사회의 유일한 구원자는 외면하지 않은 개인이다.
돈 때문에 일하는 건, 비굴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며 버티는 건 부끄러운 것도 비참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인간들보다 자신의 삶이 소중한 것. 뿐이다.
비난이 아닌 대안이 필요하며, 모욕이 아닌 설득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맨날 싸워서가 아니라 제대로 싸우지 못함에 있다.
하루 네 끼를 먹으며 살이 빠지길 바랄 수는 없는 것처럼 희망을 품고 싶다면 방법을 찾아라. 그리고 방법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다면 그 고단함을 견뎌내라.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연한 희망이나 대안 없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하는 질문 이전에,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무엇을 소유했는가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자.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행복감은 높은 소득이나 복지시스템의 결과가 아니라,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에 있다고 한다.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두려움의 실체는 가난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비참함과 고립감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반대 지점에 있다. 자유의 박탈, 획일적인 삶의 강요, 타인에 대한 불신.
행복은 깊이 느낄 줄 알고, 단순하고 자유롭게 생각할 줄 알고, 남에게 필요한 삶이 될 줄 아는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삶에 도전할 줄 알며, 남에게 필요한 삶이 될 줄 아는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삶이 불안하다며 너무 많은 짐을 챙기지만 사실 그렇게 많은 짐이 필요하진 않다. 필요할 때 충당할 수도 있고,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쪽이 이득일 수도 있다. 삶이란 오랜 여정이다. 최대한 가볍게 살아가야 지치지 않는다. 그러니 삶을 조금 더 가볍게 하고 싶다면 불안한 마음에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마주하고 그것들을 덜어내는 용기를 갖자.
여행 내내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짐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삶을 무겁게 만드는 불필요한 욕구와 지치게만 하는 과잉된 관계 이 모든 것에 대한 최후통첩. 그 포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자유롭게 살고 싶거든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을 멀리 하라.
주말에는 바다를 보러 가고, 퇴근길에는 다른 길로 걸어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제까지 내가 시도하지 않았던 일들을 감행해보자.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예측할 수 없는 내가 되어보는 것. 우리가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손에 있는 생명선을 팔목까지 연장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는 일이다.
만약 당신이 삶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삶의 앞마당에 있는 사소한 행복에 예민해지고 살아있는 삶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즐거움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며 가능한 어릴 때부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와 방법을 익혀야 한다. 그건 구질구질하거나 초라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쉽게 행복해지는 일이다.
대부분의 선택에는 한정된 예산과 제한적 선택지가 주어진다. 인생을 만수르가 이마트에서 쇼핑하듯이 살 수는 없는 거다. 그렇기에 선택에 있어 '무엇을 얻느냐'보다 중요한 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아무리 조심해도 예상치 못한 비용이 들 때가 있다. 인생이 언제나 딱 들어맞을 수도, 효율적일 수도 없다. 그러니 자책하고 후회하기보다는 실수와 오차를 위한 여백과 바보스러움에 대한 예산을 책정하는 편이 낫다. 이 정도 바보짓은 인생에 있을 수 있다고, 이 정도의 삽질은 어쩌면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인생에 언제나 효율적일 수는 없다고,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그게 나도 좀 어려웠다고 말이다. 그 오차와 실수에 대한 관대함이 우리를 보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나는 무엇으로 회복하는가. 나는 어느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하는 자신의 행복을 다루는 노하우다. 행복하고 싶다면 당신의 행복에 관심이 필요하다.
응원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이다. 죽는 순간까지 나를 떠나지 않을 존재에게 오늘은 꼭 이렇게 말하자.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나 자신을 응원할 것이다.
냉담한 세상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부당함과 모욕과 불안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그리고 나와 타인을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몫을 해야 한다. 보통의 존재가 내가 아닌 것을 시기하지 않으며 차가운 시선을 견디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당신은 조금은 자유로워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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