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통 수필로 』방민 외, 에세이아카데미, 2020
저자 소개
박민수, 임문혁, 정성화, 최민자, 김기창, 방민, 송경헌, 임미경, 정창기, 차성기, 추대식
독서 메모
한때 나에겐 미운 사람이 많았다. 내 기분 거스리면 그냥 그는 나의 미운 사람이 되었다. 그러하여 나에겐 미움 사람 차고차고 줄지어 서게 되었으니, 좋은 사람보다 미운사람. 더 많아졌다. 기쁨은 작아지고 미움은 무럭무럭 내 가슴 더 크게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움이 미움을 낳고 마침내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졌다. 아차, 이걸 몰랐다니! 미움이 미움을 낳고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고향에는 마을을 지키고 있는 든든한 어른 한 분이 계십니다. 올해 연세가 삼백하고도 몇인가 그러신데 아직도 정정하십니다. 아버지께 종아리를 맞고 쫓겨나 울던 나를 가만히 안아주던 그 어른, 입학시험 낙방하고 주저앉은 내 어깨를 다독여주던 그 어른, 첫사랑을 떠나보내고 가슴 무너지던 날 아픔을 함께 울어주던 그 어른, 꽃상여 타고 어머니 떠나실 때 만장 흔들며 어깨를 들썩이던 그 어른, 그 어른은 요즈음 넓은 그늘에 마을 노인들 불러 장기판을 벌여 놓고 훈수나 두면서 소일한다. 하시더군요.
잘 살다 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죽고 난 뒤에 그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잘 산 삶이 아닐까. 그리고 신문지처럼 자신이 가진 거을 이 세상에 다 내어주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삶이 아닐지. 오늘은 신문처럼. 내일은 신문지처럼 살다 가는 것은 어떨까.
크래파스처럼 우리도 자신만의 색을 갖고 태어난다.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절대 똑 같을 수는 엇다. 그동안 나느 나 자신의 색이 가장 좋다고 우기면서 살아온 게 아닐까. 다른 색의 크레파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흉보거나 업신여긴 적도 많았던 것 같다. 혹시 아들이 나를 그대로 닮은 것은 아닌지.
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했다. 생후 4개월 어린것도 제 고집이 있는지 한사코 왼쪽으로만 뒤집으려 한다. 끙끙거리다 성공하니 제 성취에 양양해져 낯빛이 금세 해사해진다. 풍뎅이처럼 아등바등, 땅 짚고 헤어치기를 연습하다가 두 손 두발을 치켜들고 이륙 연습도 한다. 가르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아서 순서를 밟는 것, 생각할수록 신통방통이다.
여기서 바보란 지극히 평범한 무욕의 삶, 궤도에서 일탈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본래 의미는 상당히 퇴색되고, 고리어 우직하고 선량한 사람임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정도의 바보라면 나도 그 범주에 들기 위해 힘쓸 만하다.
마음에 맞는 친구 교수 부부와 ‘문학 기행’을 기획하여 전국을 누비며 다녔다. 돌아올 날짜와 시간을 굳이 정하지 않는다. 여행 코스도 고집하지 않는다. 가다가 힘들면, 저녁노을이 아름다우면, 그곳에서 짐을 풀고 하루를 묵는다. 여행은 여유로움과 느림의 미학이 있어야 한다.
내가 쓴 글을 놓고 부자지간 글감, 주제 구성 표현 등에 대해 밤 깊은 시각까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는 퇴근 후 매우 피곤한 아이를 붙들고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다가, 우리의 대화 내용이 사뭇 진지하고 재미있는 걸 보고, 슬그머니 우리 곁으로 다가와서 자기가 수필가 인양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 시간이 아주 좋았다. 아들의 조언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게 가능하다. 용기와 겸허한 자세만 가지면 된다. ≪탈무드≫에는 누구에게나 무엇인가를 배우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계속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학술논문에서 수필로 전환하면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주변과 세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겁니다. 글감을 찾으려 하다 보니 새롭게 보이고 들리며 느끼는 것이 많아졌어요.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 거죠. 글쓰기의 미덕이 아닐까요? (방민 작가노트)
세상 예기를 나누지 않고도 그저 해물 국물 맛에만 빠져 면발을 목 너머로 보내고 싶다. 임금이 누군지 모르고도 격양가를 부르며 살아가던 태평성대는 여전히 옛날 얘기로만 듣는가. 이제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은 세상 얘기 안하고 그냥 칼국수 국물 넘기듯 후루룩 거리며 살고 싶은데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나 보다. 국수가 국수로 입안에서 씹히길 빌며 한 젓가락 집는다.
나를 찾으러 떠나는 긴 여정을 내가 선택한 직장이라는 행복열차를 타고 출발한 것이었다. 어느 인생이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 있는 삶이겠는가? 나는 그런 삶을 선택한 별난 여자 중 하나였다.
나는 아버지가 퇴직할 즈음 결혼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여 30년이라는 시간을 바쁘게 살아내느라 아버지를 걱정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버지는 설날이 지난 후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각각의 인생은 진정 이렇게 비껴가는 것인가? 이제 돌봐드릴 시간은 있는데, 부모님은 안 계시니 한탄스럽기만 하다. 나는 그대 왜 그랬을까?
메모하는 순간, 영감이 떠오르는 찰나가 생긴다. 그 찰나에 생각나는 대로 쓰면 글의 시작이다. 고로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는 것이 글쓰기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어르신들의 밝은 미소와 감사의 마음을 받을 때면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내가 세상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면 감사할 뿐이다. 봉사는 내가 누구에게 뭔가를 주는 것만이 아니다. 나도 뭔가를 얻는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인생 2막 출발이 순조롭다.
변하는 시간 속에 주어진 운명이지만 열심히 살다 홀연 떠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시간에 얽매인 인연에 남는 미련은 어찌할거나. 그래도 주어진 삶에 충실하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공수래공수거’라지만 주위 모두 오늘도 열심히 변함없이 살아간다. 온통 그저 살아갈 뿐이다.
올린했던 삶, 자부심 기둥 밖으로 묻어나는 빨간약 흔적 그리고 여운. 동아난 새살처럼 별일 없었노라고 시침을 떼고 있습니다. 자갈길이든 고속도로든 나름으 ㅣ가치가 있었기에, 달랑 백지 한 장 들고 양떼구름에 앉아 멍 때려 봅니다. 그래 그러려니 합니다. 유유자적 걸음으로 한발 한발 옮기니 물 비친 하늘 모습이 다가옵니다. 긴 숨 들이쉬고 참 나 찾고자 고개를 돌리니 그림자가 춤을 춥니다.
가끔 찾는 곳, 서촌시장의 닭갈비 식당은 적당하게 붐비는 곳이다. 서민적 분위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소맥이나 막걸리 한두 잔을 할 수 있는 장소다. 그날 역시 원탁에 앉아 진지한 토론을 주고 받았는데 불현 듯 사자성어가 뇌리를 스쳤다. 맹구우목, 주로 태평양과 같은 깊은 바다에서 헤험치는 눈먼 거북이 얘기다. 그가 하루에 한 번씩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솟아올라, 수면으로 목을 내미는 순간, 마침 파도에 떠다니던 널빤지의 송진구멍에 목이 끼이는 장면. 정말 희박한 확률이다. 결코 만나기가 쉽지 않은 귀한 인연을 표현할 때 주로 쓰는 사자성어가 아닌가?
우리는 종로통에서 만났다. 전반기 살을 여러 곳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고 비로소 한자리에 모였다. 글이라는 공통분모를 깃발로 꽂고 개별 삶을 각기 분자로 삼아 후반생 밥을 맛나게 지어 먹으려 한다. 이 밥솥이‘종로통 수필로’다. 종로통에서 수필로 손을 마주 잡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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