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바람의 기억(雨風)』, 최인호, 마인드 규브, 2018
참 어려운 책이다. 솔직히 거의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은유를 가르치는 책 같다. 반복해서 읽어야만 뭔가 조금 느낌이 오는 것 같다. 난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가 보다. 독자로서의 자격도 아직 갖추지 못한 바보 같다. 오늘 절망에 빠졌다. 이 책의 저자 최인호가 내가 알던 그 최인호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빌려온 그 시간의 나도 또한 바보였다. 작가님처럼 비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바보였다.
저자 소개
최인호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고전문학 전공.
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1세대 배낭 여행족으로 20년 동안 홀로 40국 이상의 나라를 돌아다녔다. 밥보다 책이 좋아 매일 책을 읽는 책벌레인 저자는 중국, 일본, 미국 등 흔한 여행지는 물론이고 인도, 티베트, 페루, 아르헨티나 등 익숙한 이름이지만 막상 여행하기 쉽지 않은 곳들을 여행하였다. 여행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상념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그가 가진 철학과 그가 읽은 도서의 글들을 연관시키면서 풀어냈다.
펴낸 책으로 《1등급 공부습관》, 《지독재독》,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공저), 《나는 바람처럼 자유롭다》, 《부유하는 단어들》, 《모순 수업》 등이 있다.
독서 메모
나는 두 개의 얼굴로 인생을 만났다. 하나는 비요, 다른 하나는 바람이었다. 말을 거두어 소리를 죽이니 비는 삶을 노래했고, 눈을 감아 존재한 것들을 지우니 바람은 삶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비와 바람이 건네준 삶의 속살을 여기에 펼쳐 놓는다.
비는 어디에도 내리고, 언제든 내리며, 내리지 않을 때도 내린다. 비는 아픈 이들이 기다리는 ‘무엇’을 대신해서 찾아오는 저마다의 ‘무엇’이다.
바람의 걸음은 담백했다. 들꽃에 눈이 팔려 나비의 날개로 팔랑거렸고, 나뭇가지에 앉아 새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했다. 청보리밭에서는 그들과 춤을 추느라 갈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저녁이 되면 산사의 풍경(風磬)을 흔들어 번뇌의 생명들에게 평온한 잠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은 어디에도 미련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았으며,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았다.
바람개비는 바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속도가 만든 바람이다. 숨을 헐떡이며 멈춰서면, 바람개비는 돌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멈춰 선 자리에는 나만의 바람이 분다. (…) 오늘, 바람개비가 보인다. 바람의 끝, 바다 위에서 파도를 일으키고 있는 바람개비가 나에게도 시원한 바람을 보낸다. 걸음을 멈추리라. 더 이상 완벽을 좇지 않으리라. 자신에게서 진실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 바람을 좇지 않으리라.
비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비는 가슴을 헤집고 들어와 나의 죄의식에 프로메테우스의 맷돌을 달아 놓았다. 끝없는 고통의 추락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죄의식 속으로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 그 비밀스런 죄의식을 오래도록 간직해야 했다. 죄의 식만이 살아남는 자를 살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길이 흔들리는 날이면 소쇄원으로 간다. 그곳은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섬 속의 섬이다. 그래서 바람이 들지 못한다. 그런데도 대나무들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울거나 혹은 웃는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곳에는 ‘불지 않는 바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혼잣말로 투덜대듯 혹은 미친 사람이 신을 부르듯, 숲의 언어로 바람에게 물었다.
히말라야 등정 8일째. 가장 큰 고통은 영하의 추위가 아니다. 그것은 바람이다. 히말라야의 바람은 우리의 감정보다 냉정하다. 내리꽂는 칼끝보다 더 빈틈없이 나를 위협한다. ‘자신의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미련 없이 내려가라.’고.
사막 위를 며칠 째 걷고 있다. 낙타도 지쳤는지 거친 숨소리를 한숨처럼 뿜어댄다. 희미한 길 위에는 낙타의 하얀 뼈들이 이정표로 뒹굴고 있다. 아마도 나는 사막 위의 낙타이리라. 무거운 짐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고 묵묵히 의무의 발자국만 따라 걷는 자. 니체가 말한, “스스로를 시험하는 자를 시험하기 위해 높은 산을 오르는가”라고 되물어야 하는 그 낙타.
사자는 사막에도 없었다. 하지만 오아시스에 잠시 짐을 내려놓은 낙타가 사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낙타의 푸른 눈 속으로 유성우가 하얗게 쏟아져 내렸고 나는 낙타의 눈동자에서 유성우를 쫓던‘어린아이’를 보았다. 나는 사막에서 낙타였으며, 오아시스의 사자였으며, 낙타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이던 ‘어린아이’였다.
베네치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이 온 것은 아니다. 안개가 도시의 빛을 삼켜버린 것이다. 곤돌라가 안개를 헤치며 나에게 날아오는 것 같다. 그때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구스타프가 떠올랐다.
가방을 싼다. ‘현재’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단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작가만을 넣는다. 바람을 따라 문 밖을 나선다. ‘지금’ 그리고 ‘그들의 나’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람이 그렇듯이, 미련 따위는 남기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나는 홀로 기다린다. 낯선 도시의 밤을 홀로 들어가야 하는 숨막히는 떨림.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남자 주인공 돈 록 우드는 비가 쏟아지는 도시 한 복판에서 텝 댄스를 춘다. 양팔을 벌리고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며 춤을 춘다. 손에 쥔 우산은 애인이라도 된 듯 주인공과 함께 리듬을 탄다. 나는 종종 영화 속 돈 록 우드가 되는 꿈을 꾼다.
아테네로 가는 페리가 나의 불안을 비웃기라도 하듯 항구로 들어섰다. 바람은 점점 더 거세졌고, 성난 파도는 페리와 나의 불안을 낙엽처럼 흔들었다. 나의 방은 8층이었다. 영화 <타이타닉>의 슬픈 장면들이 방안 가득 떠다녔다. 불안과 파도가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분명한 건, 우리의 삶이 자람 밖에 서 있었던 날은 없었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바람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 ‘부안과 불확실성’, 그것은 보이지 않는 바람이며,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감정들이다.
모로코의 거리는 적당히 젖어 있다. 소나기와 무더위는 두 다리가 교차하며 걸어가듯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사람들의 손에는 우산이 없다.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져버리는 소나기를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리라.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길을 간다. 아이들도 이런 날씨의 변덕에 아랑곳하지 않고, 쏟아지는 분수 속으로 물고기처럼 뛰어 든다.
무지개는 소나기오 햇빛의 사랑이다. 아니, 사랑의 꽃이다. 습한 공기의 포화상태는 소나기를 부르고, 소나기의 짧은 몸짓은 그리움을 안은 채 수증기로 온 공간을 가득 메운다. 그 대, 햇빛이 다가와 수증기와 사랑을 나누고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운 꽃 무지개로 피어난다.
바람이 그리울 때, 나는 제주도 두모악에 간다. 그곳엔 바람을 닮은, 바람과 함께 산 사람이 있다. 그는 그의 방과 마당 가득 바람들을 풀어놓았다. 산바람, 들바람, 바닷바람, 겨울바람, 밤바람들. 마당에 들어서면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언제나 추억의 바람이다. 그 바람은 시골 학교에서 뛰어놀던 친구들을 닮았다. 나는 그 바람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카메라를 목에 건 채 언제나처럼 나를 반겨준다.
때 아닌 비가 내린다. 비도 기차처럼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아직 올 때가 아니데, 혹은 벌써 왔어야 하는데 …’ ‘여기 오지 말아야 하는데, 이곳에는 와야 하는데…’ 이렇게 비도 길을 잃거나 혹은 약속 시간을 깨면서 찾아올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불쑥 찾아오는 비가 얄밉지만은 않다.
세상은 침묵의 깊은 곳에만 살고 있는, 자신의언어가 부재할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을 시간의 상실 속에서 만난다. 그렇게 언어는 우리의 교감을 막아왔다 .교감은 오직 침묵으로만 가능할 것이리라.
농부에게 진리는 신이 아닌 ‘비’에게 있다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자명한 진리도 농부들에게는 허무맹랑한 거짓일 뿐이다. 오직 ‘비’ 만이 농부들의 마음과 정신으로 다독이고, 그들의 땀방울에 응답해 줄 수 있었으리라.
영화 <우편배달부>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자신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우편배달부에게 시를 가르쳐준다. 얼마 후, 우편배달부는 병상에 누워 있는 스승을 위해 ‘한 편의 시’를 준비한다. 밤하늘의 흔들리는 별과 일렁이는 바다를 녹음하여 들려준 것이다. 네루다는 처음으로 살아 있는 ‘은유’를 만난다.
그곳에 감성의 언어들을 한가득 넣어주는, 은유의 배달부다.
비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방황 속에 머물다 다시 떠나고 그리고 돌아갈 뿐이다.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여행은 어느 간이역에서 쉬고 있는 걸까? 비가 우리의 냄새를 맡으려는 지 밤새 쏟아져 내린다.
가끔 나를 괴롭히는 책임과 고단한 짐을 바람에게 떠 넘겨도 좋으리라. 삶의 무게와 그것의 곰팡이쯤 되는 책임감을 바람이 지나간 자리 뒤에다 슬쩍 옮겨놓아도 괜찮으리라. 그것들은 늘어진 시계바늘도 거두어갈 수 있는, 실체 없는 시간의 그림자들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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