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예쁘네』, 박현, 일요일오후, 2021
오늘은 4권의 책을 빌렸는데 모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1 문학나눔’ 선정 도서이다. 문학나눔 도서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지원사업 중의 하나로, 각 출판사에서 신청한 책들을 시, 소설, 수필, 평론, 희곡, 아동문학 등 6개 분야에서 년간 총 500종 정도의 신간서적에 대하여 지원을 한다고 한다. 나는 이 책들을 좋아한다. 물론 이 많은 책들을 다 볼 수도 없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 수필부분도 전부다 찾아볼 수는 없다. 여기에 선정되지 않은 책들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딱히 찾는 책이 없을 때는 문학나눔 스티커가 붙어 있는 책을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 (가끔 정치적 편향된 책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덮어 버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마음에 딱 드는 책은 꼭 여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관심사가 많은 나는 도서관이야 말로 행복한 놀이터이고, 서가에서 맘에 드는 책을 찾는 놀이를 하는 것이야 말로 신나는 놀이다.
엄마! 언제 생각해도 목이 메는 이름이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나도 이제 노인네의 범주에 들었지만 아직도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이젠 돌아가시고 안 계신 엄마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인가. 이 책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내용이 어렵다거나 나는 겪지 않은 신기한 일은 아니다. 부제 ‘언젠가 당신의아이가 건넬 이야기들’처럼 대부분이 겪을 수 있는 사소한 일들로 엄마를 생각한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다. 남들이 전혀 겪지 않은 큰일들은 별로 많이 생각나지 않지만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에서 엄마의 얼굴이 생각난다. 어쩜 그 모든 것이 다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소개
박현
오래도록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읽어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자 한다.
독서 메모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하루의 점심 즈음이었다. (… ) 한 손으론 아들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걸었다. 그때 시원한 바람이 엄마의 뺨을 어루만지며 스쳐 갔다. 그러니까,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딸의 유모차를 잡은 그때. 따사로운 볕과 시원한 바람이 함께한 그 순간, 엄마는 세상에 어느 하나 부러운 것 없는 행복을 느꼈다.
내가 가장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을 꼽아보자면 어디보자.... 모르긴 몰라도 엄마는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히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엄마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대화 상대이기도 하지만, 또 어느 때는 편하다는 이유로 내가 본의 아니게, 혹은 욱하는 순간을 못 이겨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상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여태 엄마 마음에 박은 못의 개수를 헤아리는 일은 그리 의미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나아가 그 못의 개수뿐 아니라 크기도 제각각이라 말뚝만큼 큰 못도 곳곳에 박혀 있을 것이고, 압정만 한 못은 정말이지 산을 빽빽하게 채운 나무만큼 있지 않을까 싶다
사건의 그 날도 엄마는 싱크대에서 딸기를 씻고 꼭지를 따고 있었다 한다. 그러다 한쪽 귀퉁이가 상한 딸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다. 귀한 자식에게 한쪽이라도 상한 딸기를 먹이기는 싫은 마음이었다고. 그래서 상한 부위를 칼로 도려내어다가 엄마 입에 넣는데, 이때 뒤의 식탁에 앉아 있던 어린 내가 동그란 눈으로 이상하게 쳐다보며 말하더란다. “엄마, 엄마가 딸기를 왜 먹어?”
그래, 쓸모. 500원이면 검은 봉지 가득 담아주는 시장 콩나물을 사서 직접 다듬는 우리 엄마. 꼬리 말끔히 다듬어진 마트 콩나물은 쓸데없이 비싸다고 하던. 부티나 보이는 브랜드 외투 대신 구제 외투로 충분하다고 하던, 우리 엄마. 엄마인 엄마는 무엇보다 쓸모를 따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꽃은 쓸모없다고 말하던 엄마의 모습은 내게 당연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만큼이나 쓸모없는 꽃. 그런데 이 쓸모없음이 꽃의 쓸모일지도. 내가 선물하고 싶은 건 쓸모가 아니라 마음이라서. 꽃에는 마음만 오롯이 담겨서.
앞만 보고 뛰어가다가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어제의 내가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뒤처질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주저앉아 우는 나를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뒤를 돌아 나 자신에게 손을 내 밀기로 했다.
기적이라는 말의 뒤에는 예기치 못한 불행이나 지극한 간절함이 숨어 있다. 기적이라 부를 법한 상황에 불행이나 간절함이 없다면, 대개 행운이나 요행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할 따름이다. 그러니까, 사실 엄마에게 일어난 기적이란 철부지 자식이 보인 의외의 대견함이 아니라, 어찌 보면 미련하다 싶을 만큼의 걱정과 간절함으로 바꿔 읽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삶에서 기적이라 부르는 순간들이란. 그 아래 얼마큼의 시간과 노력과 간절함을 쌓고서야 우리 눈앞에서 빛나고 있는 것일지, 이 어린 마음으로는 언뜻 가늠도 되지 않는다.
처음으로 영상을 찍자고 했을 때 엄마의 민망함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나아 동생이 발을 동동거리며 성화를 부리는데 엄마가 어디 버틸 재간이 있나. 이제 집에 내려갈 때면 적어도 하나의 영상은 꼬박 찍고 온다. “엄마, 우리 같이 영상 찍어요!” 하면서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민다. (…) 엄마와 내가 함께 하는 시간의 바다가 끝없이 계속 이어 질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이, 더 착실히 부표를 남기는 것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보자면, 지난 행복의 기억을 곱씹을 추억 한 조각이 되어줄 테니까.
지난 과거나 너무 먼 비래를 이야기하느라 오늘의 소중함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소중한 순간은 고이 접어다 서랍에 둬야지
이 일의 여파인지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성격의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깎이고 다듬어지는 걸 느끼지만, 지금도 유독 거짓말만큼은 쉬이 넘어가지 못한다. 나도 이렇게 거짓말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자면 아마 어릴 적 콩알탄의 영향도 분명 사소하나마 지분이 있지는 않을까. 종종 생각한다.
머지않은 어느 날 한 번쯤은 조금 다르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날은 내가 운전해서 엄마를 모셔다가 재밌는 공연을 봐야지. 그러고는 카페에서 수다도 떨다가, 해가 떨어질 즈음에 전망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야지. 스테이크에 칼질해야지. 누군가가 보기에는 식상할 만치 뻔한 코스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냥, 한 번쯤은 그렇게도 시간을 보내야겠다.
어릴 적에는 작기 세상에 자산만이 가득하다. 그런 자신이 마구 뻗어나가다가, 어느 순간엔가 자기가 더 뻗어나갈 수 없는 천장을 만나곤 한다. 자기 재능의 한계 때문이든 주변 여건의 문제이든,
쏟아지는 햇살에 부스스 눈을 뜨는 어느 일요일. 점심 약속에 여유 있게 집 문을 나서는 평온한 오후.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서 더욱 감사한, 오늘치의 행복.
어떤 일이 있건 마지막에 돌아보면 항상 아쉬움의 쓴맛이 남는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그래서 엄마와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지든, 상상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나는 자책하고 후회밖에 할 수 없는 자식으로 남을 텐데, 그래서 나는 결국 마지막까지 좋은 자식으로 남기는 쉽지 않을 텐데, 벌써 이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겠지.
특별할 것도, 대수로울 것도 없는 물건에 당신이라는 이름과 손길이 스미는 순가 그 물건은 새로이 이름을 얻게 된다. “당신과 추억‘이라는 이름을
엄마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잊고 산지가 이제 얼추 30년이 넘어가는데, 이제는 엄마가 ‘엄마’ 대신 엄마의 ‘이름’으로 뭔가 일을 해봤으면 했다.
집밖에서 호박죽을 먹을 때면 종종 ‘호박죽은 원래 이런 맛이 아닌데.’ 혼자 속으로 어깨를 으쓱할 때가 있다. 엄마와의 추억을 맛으로 나타내자면 그 중 하나는 분명 호박죽 맛일 것이다.
아무쪼록 요즘도 집을 내려갈 때면 간혹 엄마가 TV 앞에서 콩나물을 다듬고는 한다. 그럴 때면 나도 언제나 처럼 옆에 슬그머니 앉아 손을 보태고는 한다. 그러고 있노라면 어릴 적부터 이렇게 앉아서 함께 보낸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가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자면 이런 시간들이 음, 그냥 뭐라 할까. 그래, 가족의 냄새가 가장 진하게 배어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반찬 뭘 이리 많이 해왔냐며 볼멘소리 하고 먹으란 소리 제발 그만하라고 짜증도 내지만 사실 이 모두 한 번도 없었던 적이 없어서 할 수 있는 배부른 투덜거림임을, 나도 안다.
그래서 한 번은 이러고 싶었다. 온 마음을 다해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오롯이 엄마만을 위한 선물을 마련하고 싶었다. 이 책에 쓰인 글들은 이런 마음으로 완성되었다. 이 또한 자기만족이라 할지라도. 그래, 그럼에도.
이 글을 읽고서 엄마에게 전화 한 통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걸로 이글은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조심스레 자그마한 욕심을 불보고 싶기는 하다. 내 기대보다 한 발만 더 나아간 바람을 말해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걸고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화를 끊기 전에, 두서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면 좋겠다. 연인에게는 어렵지 않게 하는 그 말을, 엄마에게 한 번만 전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어떤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냥 그러면 좋겠다.
언젠간 이렇게, 그래, 분명 이렇게 …. 이별의 순간이 다가올 텐데.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효자는 못 될지라도. 이 말은 한 번이라도 더 해야지.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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