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어머니의 불』, 민혜, 해드림출판사, 2021

그루 터기 2022. 3. 12. 05:45

어머니의 불, 민혜, 해드림출판사, 202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1 문학나눔선정 도서이다.

작가의 어머니께서 서른일곱이던 1962년부터 53년간의 일기를 토대로 쓴 책이다. 오늘 빌려온 4권의 책 중에 2권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일부러 이렇게 빌려온 건 아니고 우연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작가의 어머니가 어려운 시절을 지낸 나이대의 나의 생활도 참 많이 어려웠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책을 읽으면서 언제쯤 형편이 펴지고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실까 기대를 했었는데 결국 그 대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의 생활에 대해서 자세한 일기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진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야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들을 바르게 키워낸 어머님이 존경스럽고 잘 커준 자식들이 대견스럽다. 어머니가 생각나는 날이다.

 

 

저자 소개

민혜

서울에서 평생을 살고 있다. 네 살 때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년 대표로 교내 미술대회에 나가봤고, 교지에 내 작문도 실렸다. 4학년 때는 학교 합주부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며 클래식에 맛 들였다. 그 세계가 내 삶의 기저를 이룬 셈이라 전 생애를 그 안에서 헤엄치며 살아간다. 1992창작수필로 등단. 초기엔 한국 문학지를 비롯해 단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학의 현실 참여를 위해 1990년대엔 재소자들에게 편지쓰기 봉사를 했고, 1995~2002년까지 신경정신과 환자들의 재활 프로그램인 문예치료담당자로 일했으며 디지털 조선일보에 힐링 에세이를 연재하기도 했다. 수상경력으론, 2013년 목포문학상 수필 본상 수상. 2014, 2015년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 2018년 가톨릭 출판사 신앙서적 독후감 공모 당선. 2020년 월간좋은 생각문예공모 금상 수상. 2020년 해드림출판사 기획수필집 공모 당선. 2021년 가톨릭 평화방송 평화신문 신앙수기 공모 당선. 저서로는, 장미와 미꾸라지』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어머니의 불5~12인의 공저 꿈꾸는 역마살』 『내가지나가는 소리』 『그대로 계세요, 어머니 아버지』 『우리 기도할까요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에세이스트 문학회 회원

 

 

독서 메모

 

 

삶이란 일개인이 살아온 것을 너머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기억을 어떻게 해석 하느냐의 문제라고 한다.

 

나는 바람을 일으키는 풍구를 돌리기 시작했다. 보기와는 달리 얼마나 힘이 드는지 숨이 탁탁 막히고 온몸에는 땀이 흠뻑. 속내의가 젖었다. 기를 쓰고 돌리는데 주인댁이. “더 빨리 돌리세요. 그러면 끓지 않아요.” 한다. 나는 기운은 없고 악을 써서 돌리는데 얼굴에서 너무도 땀이 많이 흘러 챙피핟. 얼굴을 남이 보이지 않는 데로 돌리고 풍구 바퀴를 돌리는데 손아귀 살점이 바퀴 새에 끼어 살점이 뚝 떨어져나가 피가 벌겋게 나온다. 아픈 맘 이루 말 할 수 없으며 부끄럽기 한이 없었다. 핀는 곳을 재빨리 감추고 아픔을 꾹 참았다. 몸이 몹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나는 그 핏방울이 얼마나 아깝던지 눈물이 또 나온다.

 

고생하며 자란 아이들은 눈치만 발달하고 조숙하게 성장한다. 상황을 판단하는 더듬이가 언제나 민감하게 작동한다. 언니는 장녀로서 가족과 동생들을 챙기는 맏이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쌀도 다 먹어가고 연탄도 떨어졌다. 가난한 집은 밥그릇만 크다더니 우리 집이야 말로 밥그릇이 큰 탓인지 쌀이 헤프다. 근심에 지친 탓인지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듯 가끔 악마가 내 심정을 스쳐간다. 열이가 독감에 걸린 지 나흘째다. 몹시 여위었다. 못 먹인 탓도 있겠지. 미안하다. 저녁 일찍 먹고 성당에 강론 들으러 갔다가 오는 길에 열이가 좋아하는 군고구마를 사 왔다. 싸게 파는 집을 찾아 회현동까지 가서 100원어치 사다 주니 열이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책상 위에 놓인 어항의 금붕어들은 자기 세상인 듯 좋아라고 논다. 나는 정신적 육신적 피로를 항상 느낀다. 오늘도 피로한 몸, 잠이나 들어 꿈나라에 이 몸 실어 태산 같은 소원이나 이루어 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여, 영원히 안녕.

 

돈암동 언니한테 분 값 받으러 갔다. 돈을 받고 그 길로 재관 네 집으로 갔다. 재관 엄마는 왜 이제 오느냐며 분 값 200원을 깎고 3000원만 준다. 나는 몹시 기분 나빴다. 고맙다는 소리도 안 했다. 자기 맘대로 돈을 주니 그건 잘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 낮에 형부가 거주증을 해달라고 부탁하시며 100원이면 되는데 1000원을 주신다. 기마이(선심). 그 돈으로 처음 반찬을 사고 중국 빵을 사다가 네 식구가 잔치를 했다. 재관 엄마라는 분은 부자였다. 살집 좋은 얼굴엔 윤기가 흐르고 웃으면 금니가 번쩍여서 어린 내 눈에도 부티 나게 보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정은 빈자들이 더 잘 아는 법.

 

아침부터 날씨가 푸근하다. 애들이 벗어놓은 속내의를 하나하나 빨기 시작했다. 찬물에 손을 담가도 손이 시리지 않은 걸 보면 날씨가 퍽이나 푸근한 모양이다.

 

숙이가 들어온다. 독감으로 휴학한다고 공부도 안 하고 왔다. 점심때가 되고 보니 내 것은 없다. 애들만 먹이기 위해 충무로 사는 덕자 네로 분 값을 받으러 갔다. 고모가 왔다고 우동을 시켜줘 점심은 얻어먹은 셈이다. 돈을 받아 집으로 왔다. 날이 점점 흐려진다. 바람이 불며 굵직한 비가 우수수 쏟아진다. 오랜만에 오는 비다. 내 마음속에 있는 눈물처럼 쏟아진다. 내 억울한 눈물 대신 빗물이 내리는 건지 모른다. 숙이와 열이가 싸운다. 가만히 있으니 서로 때리고 욕을 하여 나는 오랜만에 매채를 들고 몇 번 때렸다. 잘 먹이지도 못하는 어린것을 때리기가 애처로웠다. 그러나 매를 안 들 수가 없었다. 막내이며 아들인 동생과 나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는데 육탄에 육두문자까지 날리며 싸웠단다. 무슨 일이었을까.

 

횡설수설하는 남편은 웬일인지 오늘은 집에서 잔다. 꼴이 무슨 소리라도 해서 나를 괴롭힐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욕도 나오지 않고 웃음만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성당에 가지 말라고 한다. 성당에 다녀서 더 나빠졌다고 십자고상도 다 데어 버리라고 한다. 안 떼면 자기가 깨어버리겠다고, 너무도 기가 막히고 슬픈 소리였다. 그러나 눈물을 머금고 십자고상을 벽에서 내려 들고 조용히 예수님 발에 친구하고 가슴에 대며 용서를 청하며 세상 사람이 나를 다 배반하여도 당신만은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을 거라고 맹세하였다.

 

또 행패를 부리지 시작한다. 꼭 밋친 사람과 다름없다. 이혼하자고 옷 내노라고 내 얼굴을 치면서 욕을 한다. 내 얼굴에서 불근피가 나온다. 나는 피를 손에 찍어 가지고 남편의 옷에다 문지렀다. 살 길이 막연한 나는 숙, 열을 붙들고 갓치 죽자고 울엇더니 숙은 엄마 죽지마. 천주님한테 죄가 돼, 내가 공부 열싷미 학게 하며 애처럽게 울부짓는다 진정하고 보니 시간은 자정이다.

 

OO어는 과거 그의 고학생 시절에 엄마가 도움을 주었던 청년으로 당시 대학생이었다. 그는 한동안 엄마를 자기 삶의 은인이라며 가끔씩 우리 집을 찾아왔지만 점차 발길을 끊었다. 그는 남의 집 담배를 팔아주며 고학을 했기에 우린 그를 담배학생이라고 불렀다.

 

집에 다녀간지 이틀이 되어도 남편은 오지 않는다. 무슨 사고라도 난 건 아닌가 싶다. 한 계집 살리기도 힘든 판에 두 계집 얻어 놓고 돈도 못 버니 따분할 것이다. 쌀이 없어 애들 보고 밥을 조금씩 먹자고 하니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그 소리가 뼈 속까지 들릴 것 같다.

 

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나 죽겠다는 소리만 내질렀다. 무슨 병인지 숨이 턱턱 막히고 수족이 뻣뻣해진다. 혼수생태다. () 주사 한 대 놓고 코에 산소호흡 줄을 끼는데 완전히 마취가 되어 다섯 시간 잠들어 있었다.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누군가 나에게 애처로운 소리로 정신 차리라고 눈 좀 떠보라고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처음엔 이제 수술하나 보다 하고 있었더니 이미 수술이 끝난 후였다. 겨우 눈을 떠서 보니 여러 사람들이 눈이 빨갛게 울고 있다. 내 양팔엔 링거 주사와 피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배를 더듬어 보니 붕대와 고무호스 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진이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내가 불쌍하다고 울고 있다. 나는 이제 죽으면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있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병명은 자궁 외 임신이었다.

 

이통훈 외과 원장 선생님, 우리는 당신을 명의라고 불렀지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뚝뚝하긴 하셨지만 환자를 잘 볼보고 수술을 잘 하시어 우린 정릉으로 이사 갔어도 급하면 충무로로 달려갔지요. 오든 게 어설프던 시절이라지만 당신은 그 많은 치료비를 삭감해주셨네요. 퇴원 날엔 선생님의 내외분과 간호사까지 나와 전송해 주셨다니 요즘 같은 세상에선 꿈같기만 한 일입니다.

 

하루는 교무주임 선생님이 언니를 불러 등록금도 안 내고 학교에 왔느냐고 물으셨는데, 언니는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항의 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한 학교가 돈 없어 등록금 못 낸 학생에게 공부하지 못하게 하면 그게 옳은 거냐고, 그야말로 대단한 우리 언니가 아닌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텅빈 우리 집 쌀독에 신의 기적을 베풀어 주소서. 아멘 () <훈장>이라는 글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산다는 건 괴물의 잔등에 꽃을 피우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거라고, 우린 모두 아홉 대가리 괴물 히드라를 쳐 죽여야 했던 영우 헤라클라스의 분신들이라고, 끝자락에 한 줄 쓴 엄마의 기도문이 내 콧날을 아리게 한다.

 

봄바람이 세게 불어옵니다. 파도가 일다가도 잔잔히 잠들개가 있건만 우리 집 가난은 면할 때가 없을까요. 제게 주신 운명이라면 도리가 없겠지요. 공수래공수거. 욕심 부리지 않겠어요. 혀를 깨물고.

 

가로등 밑에 물지게를 내려놓고 땀을 씻으며 하늘을 쳐다본다. 무수한 별들이 총총히 반짝인다. 큰 별을 세어본다. 큰 별은 부자 별, 작은 별은 가난한 별. 그러나 작은 별이 더 많다. 별의 형태만 보이는 것도 있고 수십 층으로 보인다. 저 별처럼 이 세상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고 나를 위로하며 얼굴 땀을 한 번 더 닦아내고 물지게를 다시 진다.

 

극도로 흥분할 일이 생겼다. 전기료 수금 사원이 전기료 안 냈다고 전기를 끊어놓고 간 것이다. 야박한 인간. 어쩌면 주인도 없는 새에 끊다니. 그 인간도 괘나 속 좁은 인간이라고 괘씸한 녁석이라고 욕을 실컷 해 버렸다. 가슴 아픈 나를 모두가 자꾸 건드린다. 상처를 자꾸 건드리니 칼날처럼 난카로워져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 한 줌 흙으로나 돌아가 버렸으면 싶다.

 

오늘은 숙과 열의 방학이다. 등록금을 안냈다고 성적표를 못 받아왔다. 가여웠지만. “그까짓 성적표가 뭐 필요한 거야. 내 머리에 들어간 공부가 제일이지.” 하며 시치믕 뚝 뗐다. , 비야, 좀 물러가렴, 무섭구나.

 

초등학교 남자애들을 가르칠 땐 그 댁 부부가 나를 양녀 삼고 싶다며 의향을 물어온 적이 있었다. 그들은 초등학생 부모라기엔 나이가 다소 많았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어느 날 정중히 나를 불러 놓고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이 우리 집 딸이 돼준다면 공부는 물론, 이담에 미국 유학가지 보내줄 거예요. 그러니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잘 의논해 보세요.” () 어느 날 엄마에게 양녀 예기를 했더니 엄마는 굳은 표정으로 눈물을 보였다. 그런 이유로 그 일은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고 나는 몇 달간 더 드나들다가 가정교사 일을 그만 두었다.

 

심란했다. 흐리거나 습도가 높은 날 밤이며 특히 그랬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무형의 살인마. 그로 인한 인명 피해도 많았던 시절이다. 이런 위험 속에서 우리 식구는 연탄가스를 죽지 않을 만큼만 마시며 살아온 것 같다.

 

지금 시각 020분이다. 남편이 오지 않아 꾸벅꾸벅 졸다 정신 차려 밖에 나가보니 함박눈이 쌓인다. 수북한 눈에 발자국이 묻힌다. 자정이건만 남편 오라고 마당을 쓸어놓았다. 하지만 남편은 오지 않는다. 오늘도 외박인 모양이다. 어디에 가서 밤을 새우나. 내일은 꼭 알아보리라. 나는 동기간에 남남 간에 걸머진 빛 때문에 말 못할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꼴이란 이해할 수 없는 일, 많지 않은 형제 남매간에 돈 문제로 뼈에 사무치도록 푸념과 원망을 들었는데 죽을 때까지 이런 속을 썩기는 싫다.

 

엄마의 일기장엔 간간이 당신 일기를 뒤져보는 식구들에게 경고문을 써놓은 대목이 나온다. 나도 몇 번인가 몰래봤지만 아마 다른 식구도 봤던 모양이다. 당연하지. 매일 정성스럽게 뭔가를 끼적이는 엄마였으니 얼마나 궁금하고 보고 싶었겠는가.

 

양평동 집 변소는 밖으로 나가 마당을 돌아가야 했는데 너무 나도 허접하여 비가 오면 우산을 받고 들어갔다. 빗물로 변기가 그득해지면 구더기들은 똥물에 둥둥 떠다니며 꼬물거렸다. 뿐만 아니라 녀석들은 변기통에만 있지 않고 자꾸 밖으로 기어 나왔다.

 

, 그간 단절됐던 대화를 또 계속하겠어. 나는 그간 병고에 시달렸지. 아주 무서운 병이었어. 나 자신만은 내가 왜 그런 흉한 병에 거렸는지 알고 있지. 쇳덩이로 만들어진 기계도 기름을 치지 않으면 녹이 슬 듯 나도 몸에 녹이 슨 모양이지. 뼛속까지 사무친 사연들로 말이야. 그 뭉친 덩이들이 마찰이 되면 터져버리고 증세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말지, 태산 넘 태산이라더니 갈수록 태산이 첩첩이네.

 

남편은 큰댁에 세배가고 숙은 시집에 가고 나 혼자 멀고 먼 하늘 보며 진과 열르 허공에 그려본다. 얼굴은 얼마나 여위었을까. 혹은 좋아졌을까. 고생이 얼마나 될까. 지금쯤 집 생각 하며 울고 있진 않을까. 공상 속에 하루가 후딱 지나가 버린다. 환율 인상으로 인한 물가고에 시름 깃든 사람들은 명절도 쓸쓸하다.

 

1975년 이후의 일기는 1980년으로 이어진다. 그 공백기에는 일기를 적지 않았는지, 아니 그보다는 일기를 쓰지 못할 만큼 현실이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아버지는 1979358세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 간암이 원인이었다.

 

주일날이다. 날마다 눈을 뜨면 주님께 마음과 뜻을 마깁니다. 라는 구호 아래 현관에 놓여 있는 아들 구두를 닦으며 하느님이시어, 오늘도 이 구두를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하며 십자가를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