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생은 아물지 않는다.』, 이산하, 마음서재, 2020

그루 터기 2022. 3. 16. 04:59

생은 아물지 않는다., 이산하, 마음서재, 2020

 

열심히 읽었는데 뭐라 평할 수 없다. 내 수준이 아직은 이 책을 평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 같다.

 

저자 소개

이산하

1960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부산 혜광고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필명 이 륭으로 시운동에 연작시 존재의 놀이를 발표하며 등단해, 그해부터 시운동동인으로 활동했다. 1987제주 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석방 이후 10년의 절필 기간에 전민련과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실행위원, 국제민주연대 인권잡지 사람이 사람에게초대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인권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저서로는 시집 악의 평범성』 『한라산』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성장소설 양철북, 산사기행집 피었으므로, 진다』 『적멸보궁 가는 길, 번역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프리모 레비 지음) 체 게바라 시집(체 게바라 지음) 등이 있다.

 

 

독서 메모

 

()은 아물지 않는다 ---- 이산하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지나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이 텃밭 아름답지 않아요?” 하고 묻는 친구의 마음과 눈이 너무 아름답다. 벼꽃이 피는 것을 개화라 하지 않고 출수라 부르는 것처럼 그가 아무리 세련된 현대미술을 논해도 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친구 가슴속의 텃밭이 먼저 보인다.

벼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듯 농부도 벼꽃 피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 사람이고 그중에서도 더 잔인한 동물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그 위험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한 동물이기도 하다. 인간은 가장 큰 바퀴벌레다.

 

모든 나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잘리고 병든 이웃 나무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최대한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다. 그 애정과 결합의 정도가 강한 숲일수록 더 오래 유지된다. 참나무나 전나무, 가문비나무, 더글러스소나무 등 거의 모든 나무도 마찬가지다. 숲이나 산을 걷다가 발견하는 살아남은 밑동은 그런 우정과 상호 연결의 결과이다.

 

사람의 눈이 두 개인 까닭은 초점르 하나로 맞춰 정확히 보라는 것이지. 두 개를 서로 비교해 분리하라는 것이 아니다. () 내가 우리 국어사전에서 가장 먼저 추방해야 할 단어로 주저 없이 꼽는 것도 바로 이 비교라는 몰개념이다. 비교는 경쟁을 낳고, 경쟁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악마를 낳는다. 그리고 악마는 약자부터 잡아먹는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절해고도의 독방에 갇힌 빠삐용. 그는 꿈속에서 자신의 무죄를 거듭 외친다. 그러나 재판관은 더 크게 외친다. “넌 살인죄로 구속된 게 아니다. 네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 바로 인생을 낭비한 죄다.” () 순천 송광사 불일암의 후박나무 아래에 의자가 하나 있다. 법정스님이 만들고 손수 이름을 붙인 그 의자는 바로 빠삐용 의자이다. 스님은 그 의자에 앉을 때마다 자신에게 질문하곤 했다. ‘나는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여버리면 얼마나 괴로울 것이며,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버리면 또 얼마나 슬픈 것인가.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자르는 데는 너무 인색하고 타인의 생각을 자르는 데는 너무 익숙하다. 더 자를 게 없으면 일부러 만들어 자르기도 한다.

 

옛날에 궁궐을 지을 때 쓴 나무는 금강송이다. 이 소나무는 춥고 폭설이 자주 내리는 강원도 일대에서 자란다. 날씨가 너무 추워 성장 속도가 느리면 나이테가 촘촘하게 생기고, 나이테가 촘촘해질수록 목질의 밀도가 높아져 나무는 더욱 단단해진다. 다른 나무들보다 어렵고 험난한 성장환경이 금강송이라는 명품 소나무를 탄생시킨다. 그러니까 나이테는 나무가 목숨 걸고 견뎌낸 고통의 상징이다. 그리고 '인생의 후회'라는 이자는 늘 연체된다. 올해도 본의 아니게 나이를 먹더니 이자율도 높아졌다. 내 몸의 나이테는 촘촘해지지 않고 자꾸만 느슨해진다.

 

우분투 라는 말은 반투족의 인사말로 '네가 지금 여기 있기 때문에 나도 여기 있다.'라는 뜻이다.

세계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극심한 곳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우분투는 그 나라의 평화주의자이자 세계적인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사용한 인사이기도 하다. 이기주의와 차별이 넘치는 중환자실 같은 사회에 사는 우리로서는 꼴찌 없이 모두가 1등인 '우분투 세상'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의심하지 않으면 진실은 묻힌다. 묻힌 진실은 스스로 뚜껑을 열기 힘들지만 돋은 부리와 발톱이 진실의 못을 완전히 뽑지는 못한다.

 

이 빗방울들의 먼 여행에서 가장 눈부신 일은 빗방울들이 서로 만나서 자신을 허문 게 아니라 만나기 전에 이미 자신을 허물었다는 점이다. 허문만큼 비워지고 가벼워진다. 다시 나는 가고 다시 그녀는 온다. 애틋한 마음이 먼저 가고 간절한 마음이 먼저 온다. 서로 빗방울처럼 긴장하며 조금씩 허물어진다. 여행도 그렇다.

 

사람 역시 반듯하게 자라기도 하고 삐딱하게 자라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신체의 각도가 아니라 독특한 성격이나 개성 같은 정신적 각도를 말한다. 이처럼 삐딱하게 자란 사람이 꼿꼿하게 자란 사람보다 인생의 당도가 훨씬 진할 수 있다는 것을 자두나무에서 배운다.

 

바로 새가 둥지를 지을 때의 날씨였다. 새들은 고요한 날이 아니라 꼭 바람 부는 날에만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필 강풍이 불 때마다 휘청거리는 나무 위에서 마른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들을 얼기설기 엮어나갔다. 그러니 내 눈에 새들이 얼마나 불안해 보였겠는가.() “으이구 요 녀석이 하하 . 새가 바람이 세게 불 때 집을 짓는 건 강풍이 불어도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일이고 집을 더욱 튼튼하게 짓기 위해서 그런 거야.”

 

새의 부화에서 보듯 하나의 세계가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나오려면 자신이 안에서 먼저 깨트려야 한다. 본인을 둘러싼 껍데기를 힘껏 쪼아야 밖에서도 함께 쪼아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모두 껍데기다. 하나의 껍데기를 깨면 날아오르기도 전에 또 다른 껍데기가 금방 나를 둘러싼다. 나는 힘들고 지친 나머지 튼튼한 날개가 없는 것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날개는 새끼가 부리로 껍데기를 먼저 쪼듯 내 안 에서 돋아나는 것이지 누가 밖에서 선물처럼 달아주는 것이 아니다.

 

50대 중반의 프리랜서 K는 어느 날 자기 아내가 갑자기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려서 감짝 놀랐다. 아내는 친구가 항암치료 때문에 삭발한 다음 창피해서 외출을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자. ‘머리를 민 사람이 혼자 있으면 그 사람만 주목받지만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친구처럼 자르고 빡빡 깎아버린 것이다.

 

글쓰기는 기술이 아니라 생각하는 근육을 키우는 일이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바라보는 눈의 깊이와 받아들이는 마음의 넓이가 생긴다. 많은 인문철학서가 말해주듯 현실을 꿰뚫는 통찰과 깊은 성찰의 힘은 글쓰기에서 출발한다. 글쓰기를 통해 숙성된 깊이 있는 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살겠다고 국경을 넘는 순간 난민이자 조난자가 된다. 인권은 푸근한 의자에 안락하게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위험과 불이익을 감수하는 난간에 걸쳐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인권은 허가 받는 게 아니라 존중받는 것이다.

 

오래전 미국의 의사 덩킨 맥두걸이 임종을 앞둔 폐병 환자를 대상으로 과연 영혼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실험한 일이 있었다. 의사는 실험을 위해 특수 저울을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의 숨이 멎었고 그 순간 고개가 떨어졌다. 그 대 저울의 눈금 막대도 똑 같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줄어든 무게는 약 21그램이었다. 맥두걸은 이 21그램의 무게가 영혼의 무게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내미는 단 한 번의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서늘한 깨달음이다. 비록 그 손길이 모든 일을 결정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희망은 옆의 숨결을 느낄 때 오고 절망은 옆의 숨결을 느끼지 못할 때 온다. 숨결과 숨결이 모이면 물결로 변한다.

 

아파치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 가운데 하나인 아파치족의 이름이고 토마호크는 그 인디언들의 사용하던 도기의 이름이다. 모두 자신들의 살상무기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으로 참으로 교활하고 악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19805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미국 내 한국 위기비상대책팀 코드명은 체로키였다. 이 또한 자신들이 학살한 인디언 부족인 체로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람은 빈부격차는 참아도 불공평함은 참지 못하고 차이는 수긍해도 차별에는 분노한다. 자존감을 직접적으로 저격하는 인격모독이 되기 때문이다. 문득 다 같이 가난했던 어린 시벌이 떠오른다. 환경적으로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인간적인 차별을 없었던 그 시절의 소박한 공동체가 자꾸 그리워진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조국의 딸 조민이 동시에 생각이 난다.)

 

지난 촛불시위에서는 아날로그 양초가 디지털 LED초로 바뀌었다. 아날로그 촛불은 자신의 온몸을 다 태우고 녹는다. 하지만 디지털 촛불은 장렬하게 전사할 심지와 근육이 없다. ()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의회공화국이며 모든 권력도 국민이 아니라 자본, 그리고 좌우 상관없이 소수의 엘리트들에게서 나온다. 그러므로 심지 없는 디지털 촛불이 아무리 타올라 풀과 물을 불로 바꿔놓을지라도 우리의 '비정규직 민주주의'는 여전할 것이고 세상도 적당히 바뀔 만큼만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촛불이 곁에 있어도 촛불이 슬프다.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잎클로버의 꽃말은행운이다. 우리는 행운이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일클로버의 행복을 짓밟았던가.

 

강자를 공격하는 명분이 아무리 정의로울지라도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을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이 약자임에도 강자로 착가하는 것이다 작가가 유일하게 강자가 될 대는 더 이상 잃르 것이 없다는 자세로 글을 쓰는 결기의 순간뿐이다. 사회적 민주화에 익숙하지만 자신의 언어적 민주화에는 작가들조차 너무 태만한 오늘이다.

 

박경리 작가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이렇게 썼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완서 작가도 타계 전에 이렇게 썼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이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으로 홀가분한 노년의 삶, 더 이상 무엇으로 얻으려고 자신을 부수거나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는 삶, 가을이 되면 꽃 핀 아름다움을 버려서 열매를 맺고 겨울에 그 열매마저 버림으로써 다가올 봄의 꽃을 준비하는 그런 겨울나무와도 같은 삶. 두 대문호는 겨울나무처럼 삶의 모든 잔가지들을 걷어내고 마지막 버린다는 생각까지 버리며 홀로 여위어가다 눈을 감았다. 그것이 자유고 그것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위험은 회피한다고 물러가지 않는다. 강인한 도전정신으로 위험을 직시할 때 오히려 출구가 열린다. 자전거를 탈 때도 넘어지지 않으려면 오히려 넘어지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넘어지는 게 무서워 핸들을 반대쪽으로 꺾으면 더 빨리. 기어코 넘어지고야 만다. 삶의 자전거를 탈 대도 마찬가지다. 위험 속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진짜 용기다.

 

첼로는 백허그로 연주하는 유일한 악기이가. 사랑하는 이의 정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슬픔을 같은 곳을 같이 바라보는 것으로 달랠 수 있어 그 선율이 더욱 가슴 깊이 스며드는지도 모른다. 첼로를 메고 걷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 자리에 노란 은행잎만 수북이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