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뜸 들이다.』, 이정자, 인문엠엔비, 2022

그루 터기 2022. 3. 19. 05:32

뜸 들이다., 이정자, 인문엠엔비, 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1 문학나눔 선정 도서이다.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듯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부담없이 술술 읽히는 책. 바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작은 일화에서 울림이 있는 내용들이 오늘 저녁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 준다. 엄마도 생각나고 손자도 생각나는 밤이다.

 

 

저자 소개

이정자

저자 이정자는 강원도 화천 출생으로 2007한국수필로 등단했다. 아침문학회 회원, 뜸사랑 회원이다.

 

수필집 : 나는 빨강이 좋다, 위로, 수를 놓다, 뜸들이다

공저 : 봄길, 아침문학, 아침시, 인간이해외 다수

 

 

독서 메모

 

머리 손질을 하기 위해 미장원을 갔다. 머리를 자르고 다듬고 미용사가 드라이기를 사용해 말려주었다. 순식간에 예쁜 모양의 머리가 되었다. 나는 그녀가 하는 것을 유심히 보면서 물었다. 나도 미용실용 비싼 드라이기를 사서 쓰고 있데 왜 내가 하면 이렇게 예쁘게 안 되고 고정도 잘 안 되는지를 . 미용사가 웃으며 말했다. “뜸을 들이지 않아서 그래요.”

 

마침 지인이 전화를 했기에 눈물로 내 서러움을 호소했더니 어머님이 나에게 정을 떼는 과정일 수도 있단다. 정을 데는 과정이 없으면 돌아가신 후 남겨진 사람은 그리움과 불효에 대한 후회로 견딜 수가 없을 거란다. 어머니가 이제는 나에게 거리두기를 하는 구나. 마음을 다스리며 위안을 삼았다.

 

나는 첫째니까, 사람들이 우리 엄마를 정자엄마라고 불러주니까, 내가 엄마의 사랑을 가장 긴 세월 많이 받았으니까 내가 자주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둘째가 첫째보다 서운한 생각을 많이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아내를 부를 때 큰 아들의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라 둘의 돌림자인 을 붙어서 섭이엄마라고 부른다. 조금은 위안이 되려나?)

 

왜 할머니들은 꽃을 좋아할까? 어떤 이가 말했다. 젊은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그녀들 자신이 바로 꽃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자신이 꽃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꽃을 사랑하게 된다나.

 

저녁 무렵이었고 해는 서산 가까이에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동쪽 하늘, 하얗게 달이 떠 있었다. 세상에나, 해도 있고 달도 있는 진풍경이었다. 서산일락 월출동 (西山日落 月出東)” 서산에 해지면 동쪽으로 달이 뜨는 윤회사상, 죽고 사는 것은 동시에 일어난다는 뜻이란다. 해가 짐은 죽음을 뜻하고 달이 뜸은 새 생면의 탄생을 말한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고 이승에서 죽자마자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단다.

 

미장원에서 웃었던 내 팔뚝 이야기를 듣고 한 언니가 말했다. 아마도 그 할머니는 팔뚝 굵은 내가 부러웠을 것이란다. 나이가 들면 모든 살은 빠지니까 부러워서 그랬을 거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 팔뚝은 여전히 굵고 나는 그런 튼실한 내가 좋다.

 

그날 저녁 시골 초등학교 카톡방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누군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 우리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해,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버리도록 .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했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돌에다 기록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화가 안 풀리고 있었는데 그 글을 읽으니 마음이 달라졌다. 오늘 일도 모래에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떨어져서 나에게 온 꽃잎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뜸사랑이 아닐까 싶다. 뜸을 떠드리는 일이 나에게 떨어진 꽃잎과 같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곳에 오는 분들이 비록 냄새나는 분들이어도 슬기롭게 대처해나가야겠다. 이곳을 오래오래 지키다 보면 늙은 아내인 나도 향기 나는 사람이 돌 수도 있겠다.

 

그날 밤 나는 신발장을 정리했다. 예쁘지만 발이 아파서 신지 못하는 내 신발들을 모조리 버렸다. 나에겐 비싼 것 그리고 새것이었지만 세월이 흐를 대로 흐른 것들이었다. 넓적해지고 두툼해진 내 발에는 신을 수조차 없는 이미 구닥다리가 된 것들이었다. 내 머리 속에는 구닥다리가 없을까. 이것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비싸고 새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수두룩할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천에 갔다 어머니는 물 폭포 맞는 것을 좋아한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주변에 있는 여인들이 어머니께 잔소리를 했다. 그러다가 옆에 내가 있으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혼자 오는 할머니는 혼내야 하는 대상이고 딸과 같이 오는 할머니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시간 나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언제쯤이나 보이지 않는 것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런 지혜를 가지는 사람이 될까. 왜 나는 눈에 보이는 것에 약할까.

 

하늘의 별을 잘 보려면 달이 없는 날이어야 한단다. 그래야 밤하늘은 더 어둡고 별은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밤 환히 빛나는 별을 포근히 돌보는 수퍼문을 보았고 하늘에 있는 별 만큼 땅에 있는 별들을 생각하면서 산길을 내려왔다. 별의 나라는 하늘에도 있었고,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도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온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다. 갑자기 손자가 폐렴기가 있어 병원에 입원한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병실을 지키게 되었다. 아이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열이 오른 아이가 괴로워할 때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자꾸 그때의 그 연인과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내가 잘못을 해서 내 손자가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그 4천 원짜리 잔치 국수를 먹는 것이 아닐까. 비싼 것도 아니고 훌륭한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내가 힘들 때 추운 바람을 피할 수 있게 해준, 그 순박하고 구수한 맛 곳에서 따뜻하고 행복했던. 그리고 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혹시 잔치국수 같은 따스한 향수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고향집에 다다르고 조금 지나자 해가 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해가 질 때의 저녁노을을 보고 싶어 한다. 한낮에는 까맣게 잊고 지냈던 그 해를 다시 기억해낸다. 우리 친구들의 지금은 저녁노을이 지는 시기인가 보다. 서로 복 싶어 한다. 친구의 새 삶의 터전인 작은 집. 그 집에서 혼자 있을 친구를 생각한다. 언젠가 그 집으로 글을 쓰러 갈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재주라는 것은 빨랫줄에 걸린 속옷과 같다. 그 속옷은 가늘고 가벼운 산들바람만 불어도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나풀거린다. 그러나 덕은 장롱 속에 넣어둔 속옷과 같기에 그 덕이라는 속옷은 남의 눈을 피하여 그것을 입을 사람에게 추위를 면하게 해주려고 항상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적혀 있었다.

 

진달래는 나무가 없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단다. 온 산에 푸른빛이 돌기 전에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고 산을 화사하게 수놓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 척박한 곳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꽃. 그러나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수풀이 우거지면 진달래는 더 이상 잘 자랄 수 없단다. 이제는 내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으흠. 서울이란 곳이 척박한 곳이라 진달래가 그곳에 있구나. 사람들을 위로해 주려고.

 

세상에! 아침에 나설 땐 꽃구경 가리라 생각하고 나왔건만 연거푸 들려오는 슬픈 소식에 난감하기만 했다. 세상살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며늘아기는 얼마나 상심이 크겠는가. 또 그 고생은 얼마나 시하겠는가. 나도 첫 아이를 유산했다. 담임을 맡고 있던 한 아이가 결석을 해서 산등성이를 넘어서 가정방문을 하고 오니 갑자기 몸이 안 좋았다. 그 유산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더 가슴 아팠다. 여자는 이래저래 정말 고생이 많으니 정말 잘 위해 줘야 한다고 아들한테 신신당부 문자를 보냈다.

 

이웃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언니는 남편의 등만 보고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고 했다. 그 등은 어떤 때는 물을 달라고 하고 어떤 때는 밥을 달라고 한단다. 남편의 등만 보고도 지금은 물이 먹고 싶구나. 느껴져서 컵에 물을 따라서 갖다 주고, 어떤 날은 지금은 배가 고프구나. 느껴져서 얼른 밥을 차려준다고 했다.()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긴 세월 살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다고, 그 말이 나는 참으로 신기했다.

 

택시기사가 이곳에서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했다. 쌈지 공원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어머니랑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는 어설프게 서고 나는 어머니 팔짱을 꼈다. 잡히는 어머니 팔이 몹시 가늘어서 왠지 코끝이 찡했다. 어머니는 나무처럼 자신의 잎을 말리는 중인가. 그래도 어머니 얼굴에는 즐거움으로 화색이 돌았다. 어머니는 단풍이었다. () 잘 문든 단풍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스님의 말씀처럼 어머니는 아름다웠다. 산 높은 곳의 붉은 단풍은 산벚꽂나무의 잎이다. 봄이면 연분홍의 화사한 꽃으로 산천을 수놓고 가을엔 아름다운 단풍으로 행복을 주는 산벚꽃나무, 자신의 본분을 다했기에 젊어서도 늙어서도 아름다운 내 어머니 같다.

 

요즈음 지랄병이란 말도 간질이란 병명도 쓰지 않는다. 마치 벙어리장갑이나 여류작가처럼 . 요즘은 뇌전증이라는 단어를 쓴다. 어디에서도 실수하지 않도록 소리 내어 읽어본다.

 

모든 것의 가치는 매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머니의 모피코트가 나에겐 자부심이고 자존심이고 그럴듯하게 효도하는 것처럼 포장해줄 수 있는 좋은 도구였지만 어머니께는 불편하고 무거운 짐일 뿐이었다. 썩은 나무는 나에겐 버려야 할 먼지 같은 존재지만 어머니껜 행복한 추억이고 사랑이었다.

 

부처님은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에게 남에게 베푸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사람은 자신은 가진 것이 없어서 베풀 수가 없다고 했고 부처님은 재산과 상관없이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를 말씀 하셨다. 화색 띤 얼굴, 친절한 말, 따뜻한 마음, 웃는 눈빛, 친절히 가르쳐주는 것, 앉은 자리 양보하는 것 잠자리를 깨끗이 정리하는 것.

 

늦었어. 니들은 이미 짜장면을 포기했어. 인생은 그런 거야. 지나간 짜장면은 돌아오지 않아.” 그렇구나! 지나간 짜장면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 지나간 짜장면이란 무엇일까. 뭐든지 그 자리에서 즐겁게 살아야 진정한 삶이란 뜻이 아닐까.

 

언젠가 종교방송에서 누군가 했던 이야기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많은 것은 기존 종교들이 자신의 일을 잘 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라고.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종교들이 외로운 그들에게 더 가까이 갔다면 사람들이 그런 곳에 빠지겠느냐고. 나는 고모를 생각할 때마다 그 말을 생각하곤 했다.

 

40대는 미모의 평준화, 50대는 지성의 평준화, 60대는 물질의 평준화, 70대는 정신의 평준화, 80대는 목숨의 평준화

 

정말 베옷 입혀 놓으면 모두 다 똑 같아요.” 그녀는 장례업을 하는 남편을 도와 장례지도사 일을 가끔 하고 있었다. 삼베옷을 입고 있는 사람 모두 같은 표정, 같은 얼굴이라고 했다. 베옷에는 주머니도 없단다. 간혹 자손들이 돈을 베옷에 넣어주고 싶어 하는데 그 옷에는 넣어서 갖고 갈 주머니가 없다. 이 세상이 아닌 그곳에서는 이승의 그 돈을 쓸 수가 없다고 말해주면 사람들이 참으로 난감해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