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산책을 듣는 시간(소설)』, 정은, 사계절, 2018

그루 터기 2022. 3. 21. 00:40

산책을 듣는 시간(소설), 정은, 사계절, 2018

 

이미화 작가의수어를 읽다가 책속에서 소개한 책이다.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그리고 그의 안내견과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었다. 검색을 하니 청소년 서적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책을 뽑아들었다. 처음에는 청소년 소설이니 수준에 맞지 않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었는데, 청소년이 이해를 할 정도의 책이면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어쩜 지금까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 않은 글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글이었다. 주인공 수지가 당연히 인공와우를 좋아 할 거라 생각하는 엄마와 할머니에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이 세상 소리를 다 듣지 못하듯이 주인공 수지도 다 듣지 못할 뿐이다.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은 들을 수 있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장애인이란 불쌍하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책을 바로 읽은 것일까? 항상 부족한 나를 느낀다.

 

 

저자 소개

정은

수원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영화를 배운 적이 있고, 여러 편의 단편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서점, 극장, 출판사, 고시 학원, 선거 캠프, 방송국, 드라마 편집 회사, 무인 경비 회사, 비서실, , 식당, 카페, 문화재 보존 업체 등에서 일한 적이 있다.

매년 한 달 이상 다른 도시에 머물면서 쓴 글과 찍은 사진을 두 권의 독립출판물로 만들어 독립 서점을 통해 판매했다. 몇 년 전부터는 다른 도시에 머무르는 대신 한 달 동안 칩거하며 장편소설의 초고를 쓰고 있다.

 

 

독서 메모

 

나는 외로움이 뭔지 잘 모른다. 대체로 늘 그랬으니까. 나는 소리를 못 듣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른다. 마찬가지로 늘 그래 왔으니까. 내 모어는 수화다.

 

내 귀가 안 들리는 이유를 물으면 엄마는 언제나 고래처럼 귀지가 많아서라고 했다. 고래는 평생 귓속에 귀지를 쌓아 둔다고 한다. 이동기와 번식기에는 두께와 색이 달라지는데 그래서 나이테처럼 살아온 이력이 귀지에 그대로 새겨진다고 한다. 고래처럼 내 귀지에도 살아온 이력이 새겨지고 있을까? 언젠가 내 귀지가 그동안 수집해 온 소리를 모두 쏟아 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나는 살아왔다.

 

아빠라고 짐작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아빠와 아빠의 일란성 쌍둥이 형제인데, 둘 중 한 명이 아빠다. (중략) 한 명은 화성 탐사단에 선발되어 화성에 세운 비밀 기지에서 살기 위해 중국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적응 훈련을 받고 있다. 또 한 명은 콜롬비아의 메데인 카르텔의 제조 팀장으로 카리브해 깊숙이 숨겨진 잠수함에서 코카인을 제조하고 있다. 아마 돈을 버느라 너무 바빠서 나를 찾아올 시간이 없을 것이다. 나의 아빠는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우리의 대화는 단어의 나열이었다. 작은 의자---구름-접시-접시-책장--식탁-서랍장-마루-벽장-마당의 향나무. 이것이 우리가 나누는 대화였고, 그것만으로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되었다. 여기엔 우리 두 사람만 알 수 있는 미묘한 농담이 있고, 뉘앙스가 있었다. 수화로 전달되는 섬세한 감정과 농담을 말로는 전할 수 없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우리 둘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세상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했다.

 

내게 소리는 무게였다. 마루 끝에 앉아 멜로디언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바람을 불어 가며 노래 한 곡을 다 쳤을 때, 때마침 열린 대문 사이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고, 나는 갑자기 세상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느꼈다.

 

들을 수는 없지만 그게 노래라는 것은 알았다. 동시에 몸을 움직이게 하고, 같은 표정을 짓게 하는 거, 그것이 내겐 노래였다. 나는 노래가 좋았다. 아름다워서 좋았다. 내가 느끼기에 세상에 그보다 강력한 것은 없었다.

 

나는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회의가 들었다. 동물은 태어난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오직 인간만 인간으로 사는 법을 교육받아야 한다. 교육 없이 자연스럽게 산다면 주로 기어다니고 가끔 걸어 다니겠지. 말 같은 건 안 해도 되겠지.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난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진행되었을 인류의 진화 과정을 3년 안에 다 거쳐야 한다.

 

이 학교에선 비슷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귀가 아예 안 들리거나 약간 들리거나, 눈이 안 보이거나, 움직임이 불편하거나. 세상을 느끼는 방법이 각자 조금씩 달랐다. 친구를 대할 때마다 그걸 먼저 염두에 두어야 했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먼저 그 친구에게 맞는 방법으로 대화법을 전환했다. 스위치를 바꾸듯. 다양한 친구들의 그 불균형한 아름다움이 나는 좋았다.

 

장애가 없는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다녔다면 서로가 조금씩만 배려하면 될 텐데. 장애가 있는 친구들끼리 있으면 서로가 두 배로 배려해야 한다.

 

집 밖에는 그런 배려가 없었다. 아니 배려가 아니라 사람들은 내가 못 듣는다는 사실에 화를 냈다. 그게 왜 화낼 일인지 모르겠다. 불편한 건 나지 그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은 늘 화가 나 있는 상태이고, 쓰레기통처럼 그 화를 받아 줄 만만한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약하다고 느껴지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화를 쏟아 붓는다.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있으면 사람들은 내가 못 듣는다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주는 느낌이다. 가게에서 계산할 때 점원의 말을 못 알아들어도, 뒤에서 길을 묻는 사람의 목소리를 못 들어도 아무도 내 탓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헤드폰은 장식이고 내가 소리를 못 듣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소리를 못 듣는 건 내 잘못이자 책임이 되어 돌아왔다.

 

그 애가 개를 데리고 운동장 가장자리를 걷는 뒷모습은 완벽했다. 나는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데, 커다란 배낭을 메고 개를 데리고 산책하듯 걸어가는 그 애의 뒷모습은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을 것처럼 그 상태로 완성된 것 같았다.

 

"너는 어떻게 말해? 고맙다는 말?"

처음이었다. 나의 언어로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하는지 묻는 사람은. 그냥 고맙다고 말하면 되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와 나만의 약속인 수화로 가득 찬 마음이라고 말해버렸다. 어렸을 때 이후로는 쓴 적이 없는 수화였는데 갑자기 튀어나왔다. 손으로 상대방을 가리킨 다음에 심장 근처로 가져가 원을 그리며 쓰다듬는 일련의 동작을 그 애는 천천히 정확하게 따라했다. 그것은 이제 지구상에서 단 세 명만 알고 있는 단어가 되었다. 나는 구화로 고맙다고 덧붙였다. 그런 다음 우리 셋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둘은 언제나 한 세트 같았다. 무한한 신뢰로 형성된 관계였다. 마르첼로가 그의 눈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그가 마르첼로의 시선으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했다.

 

내가 소리를 못 듣는 것에 불편함을 못 느끼듯이 그도 색을 못 보는 것에 불편함을 못 느꼈다. 그는 안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은 냄새만 맡아 보면 알 수가 있다고. 나에게는 좋은 냄새가 나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른들의 관계란 그런 거야. 사람마다 적절한 거리가 있거든. 가까워지면 결국엔 멀어지지. 그런데 멀어지지 않으면서도 아주 가깝게 다가가는 어떤 지점이 있어. 사람마다 그 적절한 거리를 찾아내서 유지하는 거야. 각 관계를 교통정리 하면서. 쉬운 일은 아니지. 쉽지 않아. 하지만 보람이 있지. 보람이 없기도 하지만.”

 

네가 느끼는 걸 상대방도 그대로 느낄 거라고 착각해서 안 돼. 백 개쯤 해 주면 상대방이 한 개쯤 눈치채고 감정을 느끼는 게 사랑이야. 마음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어. 사람은 빈껍데기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거야. 관계는 길 같은 거지. 많이 걸어 다녀야 길이 반들반들하게 나는 거고. 그러니까 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려면 최대한 많이 받아 내야 한다. 선물을 달라고 해. 이것저것 달콤한 거 있잖아.”

 

못 듣는 것은 그들 삶의 핵심적인 정체성이었다. 소리 없이도 이미 충만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걸 괜히 깰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하나둘씩 수술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견고했던 공동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원래 그랬으니까. 이 상태로 이미 내게는 완전한 세상이니까. 오히려 내가 받아들이는 감각 외에 소리라는 감각이 하나 더 있고, 사람들이 그것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게 내게는 더 이상한 일이었다.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못 듣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더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라고. 나는 축복받은 거라고. 그렇게 말했던 것을 엄마는 다 잊었나 보다.

마취실에 들어가기 전에 할머니가 병실로 왔을 때 나는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침대 옆에 서서 내 까칠까칠한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고 내 얼굴 위로 고개를 내밀어서 입술 모양이 잘 보이도록 한 뒤에 또박또박 말했다.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의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말을 듣길 바란다고. 그 순간이 오면 엄마와 할머니의 결정에 뒤늦게 감사해할 거라고.

 

옛날에 어떤 철학자는 별마다 내는 소리가 다르다고 생각했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밤하늘이 악보로 보였겠지. 소리는 결국 주파수고 별들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으니까 허무맹랑한 생각은 아닌 것 같아.”

 

나는 평생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야.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어.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거야. 부모님이 정해 주시는 길로 가고 싶어.

 

면접관이 뭐라는지 알아? 베토벤은 귀머거리지만 훌륭한 곡들을 많이 남겼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베토벤은 청력을 잃기 전에 이미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청력을 잃지 않았다면 훌륭한 곡들을 더 많이 남겼을 거라고 대답했어. 왜 내게 극복을 강요해?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추하게 살아있을까 봐 두려워. 혹시 내가 우아하지 못한 날이 오면, 내 죽음을 앞당겨 주었으면 좋겠어.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사춘기가 왜 있는지 알아? 동물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 곁을 떠나잖아. 독립을 돕는 호르몬이 나와서 그렇게 되는 거래.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우린 신체 성장이 끝나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잖아. 더 오래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몸에서는 독립하라는 신호를 보내니까 부모 곁에 있으면서도 보호와 도움을 거절하는 사춘기를 겪게 되는 거지.”

 

이제 아가씨인데 밝은 옷도 입어 봐. 좀 꾸미고 살아. 인생은 껍데기야. 겉모습이 내면을 드러내 주는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고모 저는 이제 누가 돌봐 주나요?” 고모는 당황한 듯이 이내 크게 웃었다. 과장된 웃음이었다. 그러고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네가 혼자 살아야지.”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에요.” “사는 건 원래 그래. 그걸 이제라도 알았으니 잘됐네.”

 

내가 너한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충고는 이거야.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많을수록 잘 살고 있다는 증거야. 그런 순간이 네 인생을 바꾸는 거야. 지나고나서 돌아보면 그런 순간들이 인생을 덜 후회하게 만들었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

 

운전면허를 따고 싶어. 차를 운전하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싶어. 비행기 운전도 하고 싶어. 사람들은 내가 이런 얘길 하면 '저런 안 됐구나.'라고 말하는데 그럴 때 그냥 '너는 그렇구나.' 이렇게 답해 주면 좋겠어. 동정이 아니라 인정이 필요해.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하는 건 환상이다. 그건 처음부터 다른 영역에 놓여 있다. 결고 같아질 수 없다. 그 생각이 나를 무너진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해 주었다. 이해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곁에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그걸 믿어 보자.

 

할머니는 늘 얘기했다.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고. 모두가 옳지만, 각자의 옳음들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곳은 비어있다고, 구멍처럼. 세상엔 그런 빈 구멍들이 여러 곳 존재하는데 그곳을 진실이라고 부르며, 그 구멍 안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를 정말 사랑하는데 왜 엄마가 그렇게 외로워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이건 나의 가장 오래된 슬픔 중 하나야.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혼자 있는 법을 몰랐어. 진정한 고독은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거야. 그것은 처음부터 둘이야. 너무 가까워서 닿을 수 없는 둘이야. 그러니까 사람은 자기 안에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신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러니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게 당연하지. 누구도 닿을 수 없는 부분이 각자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걸 인정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한 단계 성장하는 것 같아.

 

관계가 깊어진다는 건 마음에 다양한 방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해하려다가 미워지고 용서하려다가 거부하게 된다. 수많은 머뭇거림이 마음속에 수많은 길을 낸다. 그 잔뿌리들이 마음을 단단히 잡고 있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듯. 나에게 애증이라는 단어를 알려 준 할머니에게 문득 감사했다.

 

당신의 산책을 들어 드립니다. 산책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줍니다. 신청하는 이유를 적어서 연락처와 함께 메일을 보내 주세요. 당신의 부족한 시간에서 산책할 시간을 만들어 드립니다. 우리는 함께 산책합니다. 당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돈이 많거나 적은지, 어떤 병이 있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관없고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산책하는 바로 그 시간 동안 당신의 눈과 귀와 코와 손으로 무엇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있는지 입니다. 그 순간을 나눠 주세요. 그것을 듣겠습니다.

 

나는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하고 싶어. 사람들 내면에 이미 있지만 자각하지 못하는 낯선 감각을 깨우쳐 주고 싶어. 감각을 확장시키고 재분배해서 사람의 몸이 바뀌게 하고 싶어. 감각을 확장시키고 재분배해서 사람의 몸을 바뀌게 하고 싶어. 몸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니까. 근본적으로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사람과 세상을 바꾸고 싶어. 그걸 언어로 하면 시인이겠지? 우리는 그걸 산책을 통해서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아무도 묻지 않아서 좋아요. 직업이 뭔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디에 사는지 자신에 관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저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말해 주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 치유에 도움이 되었어요. 잠시 내가 투명해지는 느낌이었지요. 그러다가 더욱 뚜렷해지는 느낌이었고요. 그 순간의 감각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나는 계절이 바뀌는 내낸 나뭇잎을 지켜봐야 하는 나무의 고독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하나가 음이어서, 나무만 들을 수 있는 긴 노래 한 곡을 사계절 내내 연주한다면 어떨까. 그래도 나무는 고독할 것이다. 나무를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문득 시를 쓴다는 건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선과 태도의 문제다. 시도 사랑도.

 

숨을 방이 있고 필요할 때 숨을 줄 아는 사람은 아마도 건강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이제 서야 엄마가 블랙홀처럼 마음을 닫고 있던 시절에 행복했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안으로 숨어 있는 동안 엄마는 행복했을 수도 있는데 왜 엄마가 아프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이해 할 수 없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닌데. 내가 아픈 엄마를 걱정했다는 것은 핑계였다. 나는 엄마에게 위로받지 못했던 나를 걱정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내 눈에는 오로지 나만 보였지. 블랙홀에 빠져 있는 것 같았던 엄마, 어쩌면 그때 엄마는 마음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가장 아름답던 시절로 돌아가 비밀들을 하나씩 꺼내 와서, 그것을 새로 펼쳐질 날에 하나씩 대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