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여자 목욕탕』, 강미애, 교음사, 2021

그루 터기 2022. 3. 22. 00:02

여자 목욕탕, 강미애, 교음사, 2021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1 문학나눔 선정 도서이다. 남자와 여자의 평등이 요즘의 화두다. 페미니즘에 대한 젠더가 이번 대선에서도 특표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분석가들은 이야기한다. 그래도 여자 목욕탕은 영원히 남자들은 갈 수 없는 금남의 구역이다. 남자들이 생각할 때 남자 목욕탕이나 여자 목욕탕이나 다를 게 없을거라 생각되지만 책 제목이 그냥 목욕탕이 아니고 여자 목욕탕이라고 했을 땐 남자목욕탕과 다른 이야기일거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ARKO 문학나눔에 선정되지 않은 책이었다면 가십거리 내용이 아닐까하고 그냥 지나갔을 텐데.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집어 들었다.

목욕탕이야기. 그러나 목욕탕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목욕탕에서 하는 이야기지만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 여자들만이 있는 곳에서 여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어쩜 여자 목욕탕은 여성 전용 노인정 같은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자들이 수다를 떨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딱 그런 장소인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목욕에 대한 역사는 기억하면 좋을 간단한 상식으로 그 보탬을 더한다.

 

 

 

저자 소개

강미애

2001月刊 수필문학 등단, 2020년 평론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수필문학작가회 회원

저서:새벽 숲에서 너를 만나다』 『모래바람 나무가 되다』 『이미지 기록 외 다수

 

독서 메모

 

4시다.

나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일요일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목욕탕에 간다. 이른 아침의 여자 목욕탕은 사람도 없고 조용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전에 골프나 에어로빅, 수영을 마 친 사람들이 운동 후 단체로 목욕탕에 들어온다. 사우나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2시 전후의 목욕탕은 거의 전쟁터다. 늦은 아침을 먹고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울음소리,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물소리가 한데 섞여 소음 데시벨이 최고조에 이른다

 

요즘에는 소형 드라이어나 휴대용 고데기를 갖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탈의실에서 머리를 말려야 하는데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려면 어느 자리가 비었는지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목욕탕은 규모가 제법 크다. 탈의실에 헤어드라이어가 10대다. 그런데도 사용하려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빈자리를 탐색해야 한다. 여자들은 머리를 말리고 손질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경우에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그 시간이,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길어도 너무 길다. 특히 선풍기가 있는 곳을 선호하는데, 시원한 바람과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이 교차하며 머리를 말리기에 좋아서다. 혹시 자리가 날까,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그래서 나도 휴대용 드라이어를 장만할까 생각 중이다. 벌거벗은 채, 내 차례가 올 때까지 여기저기 기웃대기 싫어서다

 

샴퓨와 간단한 비누칠, 샤워를 마친 후 목욕용품을 출입구 옆 철제 선반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내가 않았던 자리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파란색 때밀이 타월이 담긴 대야가 단단히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잠시 사용하고, 자리를 비워 두면 그 사이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 때를 밀거나 마무리할 때는 자신의 목욕용품을 가져와 빈자리에 앉으면 된다 함께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목욕하는 내내 부끄러웠다. 오늘따라 힘들게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데 탕 입구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목욕탕은 공공의 장소입니다. 자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사실 여탕에서는 얼굴에 무엇을 바르고 돌아다녀도 상관없다. 이사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물론 없다. 슈렉 팩이 유행할 때는 뿌연 수중기 속에 여기저기 초록색 얼굴만 돌아다녀 괴기스럽울 때도 있었다. 어지간히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 예전에 목욕탕에서 자연팩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오이를 얼굴에 붙이기도 하고, 계란 노른자를 바르는 사람도 있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시행된 후 2개월 만에 3천 명이 넘는 환자가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나중에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 두는 것으로, 19세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다. 이 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으로, 20161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호스피스 분야는 201784, 연명의료 분야는 20182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나도 오십대 후반이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미 계획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사실 성공적인 노후 생활에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찾고 그 일을 위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유 말이다. 나 역시 아름다운 노후를 꿈꾼다. 바다 혹은 숲이 보이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사색하며 글을 쓰는 노후를. 하지만 우리들의 노후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이제부터라도 최소한의 의식주와 의료비 마련을 위해 누에 불을 켜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꽃탕?” “여기 막 안에 나무를 넣고 이틀 동안 불을 때. 타오르던 장작이 숯이 되는 새벽에 그 숯을 긁어내면 그때부터 숯막에 들어갈 수 있거든. 엄청나게 뜨겁지. 아무나 못 들어가. 가마니 두세 개는 뒤집어쓰고 들어가야 해.” () 나는 꽃탕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 옆의 숯을 꺼낸 지 만 하루가 지났다는 중간 막에 들어갔다. 막의 입구가 낮고 좁아서 서서는 못 들어간다. 아마도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 같다. 가마니를 세 겹이나 뒤집어쓰고 기어들어갔다. 5분도 있지 못하고 나왔다. 숨이 막혔다. 열기에 죽을 것 같았다. 원형이 숯막은 공포스러움 그 자체였다.

 

탕에 들어갈 때는 머리를 묶고 들어가시오

냉탕에서 수영하지 마시오.’

부항을 붙이고 욕탕에 들어가지 마시오.’

탕에 들어갈 대는 몸을 헹구고 들어가시오.’

여자 목욕탕에는 하지 말라는 안내문도 참 많다. 결국 아주머니는 탕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어오지 못했다.

 

핑계 같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평생 혼자 살아온 나의 친구에게는 뱃살과 허릿살이 없다. 역시 엄마들의 뱃살에 아이들의 기여도가 높다. 출산의 후유증이다. 어쨌든 뭐,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뱃살을 늘이면서 살 수도 없으니 뭔가 방법을 강구해 보기는 해야 하다. 뱃살을 멍이 들 때까지 열심히 문지르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어르신은 잠시 말을 끊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목욕탕에 하울링이 되어 파장을 일으킨다. 어깨에 걸쳤던 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어르신은 내게 나이를 물었다. “범띠에요. 쉰아홉이요.” “좋은 나이네” “ 어르신, 좋은 나이가 무슨 뜻이에요?” “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나이 아닌가…… 그러니 좋은 나이지.” () 열탕에 들어가 어깨까지 푹 담갔다. 잠시 식었던 몸의 열기가 밀려든다. 비키니의 흔적으로 여름의 기억을 온몸에 남긴 여인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 흔적은 겨울이 다가올 때쯤에는 희미해져 있을 것이다. 여름에 대한 그녀의 기억도…….

 

모두에게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과거, 현재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그 시간 중에 우리는 현재에 머무르며 살아간다. 살다가 문득 과거의 기억이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을, 만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사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기억을 새기고, 때론 지우며 이렇게 지나가는 것. 어른신도, 비키니의 흔적을 가진 그녀도 그리고 나도.

 

맞아요. 저도 졸다 깨다 겨우 아이 재우고 났더니 남편은 건넛방에서 편히 자고 있더라구요. 그럴 대마다 좀 억울하기는 한 데 어쩌겠어요.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맥주로 마음 다랠 수밖에요.”

그러니까 맥주가 십전대탕이지. 아기 엄마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아기를 키우지. 스트레스 싸이면 못 견딘다니까.” “ 맞네요. 맥주는 십전대보탕~” “오늘은 우리 모두 저녁에 십전대보탕 마식 푹 자 버립시다.” 

 

욕탕에 앉아 샤워기 쪽을 바라본다. 줄지어 선 여인들의 다양한 포즈에 고대 유적지의 나신상이 떠오른다. 여자 목욕탕에서의 훔쳐보기는 부러움과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성적 호기심과는 분명 다르다. 내 몸에 대한 절망과 비교할 수 없는 좌절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이러한 호기심은 예측하지 못한 낭패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어린 손녀와 함께 도란도란 목욕을 하거나 중년의 딸과 노모가 서로 등을 밀어주는 모습에서는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다.

 

낡은 노란색 때밀이 타월을 부끄럽게 내미는 할머니의 손을 보며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의 등은 아주 작고 초라했다. 긴 세월을 어떻게 이겨내고 살아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할머니의 작은 등을 구석구석 샅샅이 닦아 드렸다. 등을 다 밀고 난 후에는 비누칠을 하고 샤워기로 깨끗이 씻어 냈다.

 

제사 음식 준비하는 건 금방 해, 괜찮아. 고모님이랑 시어른들 오시면 내일 저녁부터 모레까지 끼니마다 밥하는 게 더 문제지. 그게 더 힘들어. 국도 끓여야 하고 반찬도 계속 만들어야 하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배달 음식을 안 되잖아요.” “ 당연히 안되지. 배달 음식 시키자고 하면 우리 남편 난리 날걸. 어른들 오셨는데 무슨 배달이냐고.” “ 고생하시겠다.” “밥 좀 그만하고 싶다. 진심으로여자들은 여전히 남편과 남편 집안의 죽은 가족들 밥상까지 차리고 있다.

 

살림이란 가사 일을 뜻한다. 빨래, 설거지, 청소, 육아 등 집안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살림하는 남자는 이러한 집안일을 하는 남자다. 최근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살림하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같이 출근하는 마당에 예전과 같이 여자가 집안일을 전부 도맡아 할 수는 없는 상활이다. 결국 함께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최근 가정 내에서의 성의 역할이 변화되고 잇다는 점이다. 남자가 요리를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너무나 미안했다. 사춘기 때 그런 힘든 일을 겪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형제로 같이 자라는 동안 내내 사이가 좋았던 큰아이도 미안한 눈치였다. 조용하고 말 수가 적은 아이라 별문제 없이 학교에 다니는 줄 알았다.. 우리는 당연히 아이가 원하는 대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삶의 행복한 기준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남들과 비교해서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그렇게 행복의 기준을 만든다면 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행복의 무게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다.

 

아버지 손이 내 등을 쓰다듬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아니 아주 먼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서러움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바다는 우리 부녀를 향해 천천히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날 새벽, 아버지는 서해의 물빛을 따라 우리 곁을 떠나셨다. 향년 81세 범띠 내 아버지 ……. 서해 여행지에서 우리는 마지막 저녁 식사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날 낙조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사진은 영정 사진이 되었다

 

요즘에는 개명하는 일일 어렵지 않다. 법원에 개명허가 신청서와 개명하려는 사유서,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예를 들어 친족 간에 동명이인이 있다거나 또는 항렬자를 따라 이름을 바꾸고 싶으면 족보, 친족 증명서만 있으면 된다. 가정이나 일상생활에서 불리는 이름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편지, 일기, 생활기록부 등을 제출하면 되고, 이름으로 놀림을 받고 있다면 신청서에 주변 사람들의 진술서 등을 붙이면 개명이 가능하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바꾸면 좋겠다. 할아버지께서 서운해 하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