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천풀다발』, 전소영, 달그림, 2018
백창화의 『숲속책방 천일야화』에서 소개한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찾아 한 참을 서가를 뒤적였다. 그런데 이 책이 유아용으로 분류된 책이었다. 성인이 봐도 충분할 그런 책이 어떻게 유아용으로 분류되었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책 뒤편에 사용연령 6세 이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인가보다.
실제 지명이 홍제천인 냇가의 이름을 동네 이름을 따서 연남천이라고 했단다. 서울에 50년 가까이 살았지만 연남동이 어디쯤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제 작년부터 연남동에 큰 며느리가 파티룸를 시작하여 여러 번 다녀왔었다. ‘연남천’ 그 이름이 익숙하고 궁금하여 책을 빌렸다. 그것도 1층 아동 도서실로 가서.
연남천에 피는 야생화를 그리고 글을 썼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최고의 선물처럼 다가왔다. 몇 번씩 읽어도 가슴에 와 닿는 글들이 좋다. 살아 있는 듯 피어 있는 야생화들이 반갑다. 너무 얇은 것이 아쉽다.
저자 소개
전소영
홍익댛꾜 회화과를 졸업하고, 남편과 함께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늘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사소한 것 생명이 있는 것, 아름다운 것들의 소중함을 글과 그림을 담고 싶어 한다.
독서 메모
모든 것은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실어 나른다.
씨앗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땅 버려진 화분, 아스팔트 틈새에서 몸을 웅크리고 다음 해를 기다린다. 그 곁에 구부려 앉아 보내는 응원. 툭 힘을 내.
떨어진 단풍 사이로 노오란 꽃이 피었는데 모두가 질 때 피는 꽃이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저마다의 계절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앙상한 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것들이 첫서리를 맞이해 반짝이는 구슬처럼 빛이 났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런 날 오겠지. 그런 날 부디 반짝이기를.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잎을 키우고 열매를 맺는 너.
그러고 보니 세상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꽃이 피고 지는 일에도, 작은 열매의 생김새에도 이유가 있다. 당장은 시리고 혹독하지만 지나고 보면 소중한 겨울처럼.
어제는 친구가 꿈에 나와 깜깜한 밤에 쑥을 캐러 간다고 자랑을 했다. 여린 쑥들로 땅이 온통 보들 거리겠구나.
미처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앞만 보고 걷는 사이에 뒤를 돌아보는 사이에 삐죽이 고개를 드는 봄.
뽐내려고 하지도 서두르지도 않는다.
햇살이 조금 더 빨리 깨어나 바람이 따스해지고 땅이 부드러워지는 그 때가 왔을 뿐이다.
이곳에서도 아름답게 피는 꽃을 보면서 나도 힘을 내야지. 좁고 오염된 땅에 깊이 박힌 뿌리를 보면서 투정 부리지 말고 지내야지
며칠 전까지 무릎 정도로 자랐던 애기똥풀이 도로 키가 작아지더니 꽃이 진 자리에 씨방이 생겼다. 비가 오지 않은 채 봄이 끝나 가면 꼿꼿하던 대가 흐느적거리기 시작한다. 풀은 물을 저장하지 않는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나날이 키가 자라고 콩알만 한 꽃망울이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연두색과 초록색 사이의 초록 여름
어떤 풀은 뾰쪽하고 어떤 풀은 둥글둥글하다. 둥근 풀은 뽀족한 풀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멈출 수 없고 탁해지는 공기를 막을 수 없지만, 언제나 푸른 것이라면 할 수 있지.
한여름 비가 쏟아진 뒤 매미가 줄지어 울면 도시의 틈새를 모두 메울 듯이 풀들은 무성해진다. 두 가리를 쭉 뻗고 자라기에 모두에게 좋은 때이다.
흔들 흔들 풀들은 부드럽다. 고개를 숙일 줄은 알지만 부러지진 않는다.
물에 닿으면 물처럼, 바람에 닿으면 바람처럼. 흔들지만 질기게,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게.
땅만 쳐다보고 걷다가 잠시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무성해진 단풍잎의 그림자가 아른 거린다. 때로는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씨앗이 날개를 달아서 혹은 힘차게 멀리 터뜨리기도 하고 밟히는 대로 납작하게 줄기를 뻗어 휘감아 기댄다.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는 방법.
어느덧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언제나 똑같은 계절은 없다. 반복되는 일에도 매번 최선을 다한다.
올해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 > 독서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문학동네, 2018 (0) | 2022.03.26 |
---|---|
『그때 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 걸』, 이정환, 김영사, 2021 (0) | 2022.03.25 |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겐지, 언제나북스, 2021 (0) | 2022.03.23 |
『여자 목욕탕』, 강미애, 교음사, 2021 (0) | 2022.03.22 |
『산책을 듣는 시간(소설)』, 정은, 사계절, 2018 (0) | 2022.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