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 걸』, 이정환, 김영사, 2021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쓴 글이라 여행기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여행기가 아니라 에세이였다. 남들은 전공의라고 하면 더군다나 성형외과 전공의를 마친 의사라면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데 극심한 불면증과 의사로서의 부담이 장기간의 여행을 하게 했다. 그래도 용감하게 현실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럽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용기다. 아무나 뿐 아니라 나는 더욱 힘들고, 실제로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은 시간이 있는데도 훌쩍 떠나지 못한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안식년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안식년은 꿈도 못 꿀 사람이 있을 것이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쉽사리 포기하고 휴식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지금 인생에서 안식년을 누리고 사는 멋진 사람 중에 하나이다. 비록 젊어서 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아직도 인생2막을 따로 놓고 본다면 지금이 인생2막에서는 가장 젊은 시절이 아닐까
안식년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도 하지만 그 하고 싶은 일에 최소한 국내 여행이라도 넣어서 할 수 있는 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작가님이 부럽다. 부러우면 진거지만......
저자 소개
이정환
성형외과 의사.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대학에 남으라는 교수님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세계여행을 택했다. 14개월 동안 다양한 풍경과 얼굴들을 만나며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여행을 꿈꾸는 작가로 살고 있다. 여행을 떠나 석양을 보며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 다시 떠날 날만을 기다리며 요즘을 살아내고 있다. 인스타그램 @hwanissm
독서 메모
우리는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안도의 미소를 주고받으며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는 기차를 타지 않기로. ‘자유의 기차’는 마지막에서야 우리에게 진짜 ‘자유’를 주었다.
아프라카의 뜨거운 햇볕이 작열하는 푸른 언덕, 목동 칼디는 그의 염소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염소들이 작고 둥글게 생긴 이름 모를 붉은 열매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 뒤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마치 춤을 추듯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생긴 칼디는 이 열매를 ᅟᅵᆸ으로 가져와 물에 끓여 마셔보았다. 그러자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 졌다. 칼디는 이 신기한 열매를 이슬람 수도원의 수도사에게 가져가 보여주었다. 하지만 수도사들은 악마의 열매일지도 모른다면 열매를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잠시 뒤 열매는 불에 타면서 독특한 향기를 풍겨내기 시작했고, 그 향기에 매료된 수도사들은 탄 열매를 꺼내어 뜨거운 물을 붓고 밤샘 기도 대마다 우려내 마셨다. 이것이 커피의 유래이다.
여행을 하면서 되도록 많은 것을 경험해보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명확한 목적이 없었다. 무엇을 위해 고소공포증까지 참아가며 하려고 했을까. 나의 어리석음과 한계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 두려운 대상으로 느껴지던 빅토리아 폭포는 한 걸음 물러선 나에게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 이날을 계기로 가슴에 한 마디를 새겨 넣었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지 말자. 포기해도 그렇게 큰일은 나지 않는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흘러가는 것을 느끼기만 해도 무언가 얻어질 때가 있다. 더 가지기 위해 애쓸수록 텅 빈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 이유를 할 것 같았다.
나는 기다림에 서툰 편이다. 늘 빨리 지치고 조급해진다. 빠듯한 시간 속에 움직여야 했던 지난 시간들 때문일까. 그러던 내가 매일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의 일출과 일몰을 기다린다. 늦는다고 짜증 낼 필요도 없고 보지 못한다고 해도 내일 다시 찾아오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 기다림이란 상대방의 변치 않음을 믿고 스스로 여유로워지는 것. 언젠가 누군가를 기다리게 된다면 사라지지 않음을 오롯이 믿고, 그저 여유로운 마음과 다양한 사랑의 표정으로 기다려야지. 유난히 짙은 노을이 마음을 흠뻑 물들이는 어느 늦은 오후 그리운 얼굴 하나를 떠올려본다.
언젠가 다시 그를 만날 날이 온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부디 당신이 살리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죄책감에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저 당신의 손을 보며 자신이 살린 많은 이들을 더 자주 떠올리라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뜨거운 피와 깊은 어둠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나 역시 다시 뛰기 위해 오아시스를 찾아왔다. 이 여행이 끝나면 나에게 어떤 흔적이 남을까. 한 가지 바라건대 새로운 내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누군가의 목마름을 적셔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기를.
마음의 흉터란 어쩌면 나를 성장하게 하는 고마운 흔적일지도 모른다. 만약 미처 아물지 못한 마음의 흉터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이므로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흉터란 점점 희미해지기 마련이니까.
포르투에 오면 누구나 주정뱅이가 되기 쉽다. 밤의 도우강은 여전히 아름답고, 한층 깊어진 자태로 흘러간다. 도시는 활기차지만 북적이지 않는다. 돗자리 하나를 길 위에 펼쳐놓고 와인 한 병과 밤을 즐겨본다. 어쩐지 아쉬운 마지막 잔을 끝으로 내일을 기약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그만 마시라는 고양이의 눈총이 사랑스럽다.
여행이 길어지면 줄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쓸데없는 욕심을 줄이고 하루의 일정을 간소화해야 한다. 식욕을 줄이고 음식 투정을 줄여야 하며, 잠을 줄이고 잠들기 아쉬운 밤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방의 무게를 줄이는 일이다. 무거운 가방은 든든하기보다 거추장스럽기 마련이고 잘못하다간 항공사가 정해 놓은 빡빡한 수화물 기준을 훌쩍 넘기기 쉽다. (…) 오래 멀리 나아가려면 덜어내는 것이 먼저다. 몸이든, 마음이든 그리고 배낭이든
수술은 열 시간 이상 지속되었고, 혈관 봉합 과정에서 나의 실수와 머뭇거림은 환자의 출혈을 초래하고 말았다. (…) 이를 악물고 쌓아온 지난 노력의 시간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그렇게 마음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려 속절없이 흩어져버렸다. 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목적을 잃은 나는 그렇게, 영영 길을 잃어버렸다. 지금 나는 로키산맥의 어느 능선에 서있다. 역사도, 풍경도, 심지어 우치도 정확히 모르지만 마음의 중력이 이유 없이 이곳으로 날 이끌었다. 그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막연히 이곳을 동경해왔고, 거대한 산맥에 자리 잡은 호수의 청연한 기운을 마주하고 싶었다. 처음 긴 여행을 꿈꿨을 때, 이 거대한 배경에 속해있을 내가 행복할 것 같았다.
그 눈물은 태평양을 건너 로키산맥의 호수 속에서 날 기다리다 눈과 함께 내 볼에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그러곤 속삭였다. “넌 잘했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누군가 “오로라는 어땠어?”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늘에서 파도가 친다고 하면 될까? 아니다. 하늘에 심어둔 청보리가 바람에 흔들려 온 사방에 푸르름이 흩날리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설명하려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맥주 한 병을 손에 들고 집 뒤의 전망대에 올라가야지. 그리고 그간의 행운에 감사해야지.
훗날 크로아티아를 더 올린다면 아드리아해나 주황색 지붕이 아닌 아침마다 마셨던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초콜릿이, 한낮의 햇살이 따스하게 드리워진 소파의 포근함이, 상점에서 매일 인사를 나누던 아주머니의 반가운 미소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아마 인도를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주변엔 그런 나의 의지를 꺾으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날도 동행의 인도 예찬이 시작되었다. “형, 인도 바라나시에 가면 갠지스강이 흘러요. 그 곳에서는 한 편에서는 죽은 사람을 화장하고 한 편에서는 산 사람들이 목욕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느낄 수 있어요. …… 그러니까.” “병원도 그래” “…….” 그렇게 우리는 다시 조용히 길을 걸었다.
여행 중에 한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 그의 유서에는 그간의 고통스러운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우리가 저마다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다르고 견딜 수 있는 그릇의 크기도 다르다. 같은 용량의 마취제를 투여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통증의 정도도 천차만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이 겪는 고통의 크기를 감히 짐작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가 떠난 자리의 고통은 그와 함께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몸집이 커져 남겨진 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밤이 지나가고 그렇게 너도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나는 너를 놓쳐버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계절을 헤매다 이별의 문자를 받았던 여름이 오면 난 또 그날에 녹아들겠지. 그리고 다시 겨울이 찾아오면 희망을 품겠지. 난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뒤늦게 깨우친 미련을 계절 사이에 고이 간직해본다. 나의 겨울은 너의 여름. 나의 밤은 너의 낮. 그날부터 바라건대, 나의 밤이 너의 밤이길. 너의 여름이 나의 여름이길.
누군가 의사가 되어 가장 안 좋은 점이 뭐냐고 물으면 난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타인의 아픔에 무뎌지는 것’이라고, 의사가 되어 매일 누군가에게 ‘아프다’ ‘고통스럽다’라는 말을 듣다 보니 아픔이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아픈 거지, 뭐.’ 그러다 보니 난 그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를 할 뿐,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타인의 아픔에 무뎌진 나는 남을 쉽게 아프게 했다.
어느 날 성적이 떨어져 풀이 죽은 내게 어머니는, “사람은 내려와야 다시 올라갈 수 있으니, 내려와 있을 때 푹 쉬다 가렴”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다 금세 지쳐버린 내게 아버지는 “한 번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시도한 것이 낫다. 잘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떠난 다는 건 원래 그래요. 멀리 왔다고 생각하지만, 두고 온 미련 하나가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죠.” 여행 중에 눈물을 보이자 누군가 내게 건 낸 말이다. 오늘 터키를 떠난다. 떠나기 전 수차례 빈자리를 살폈지만 어린 시절의 나처럼 무언가를 놓쳐버린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그런 밤이다. 꿈꿔왔던 모든 것에 대한 설렘부터 아련한 미련까지, 그 모든 것이 여행임을 깨닫는 밤이다.
선택의 결과에 대한 믿음은 내가 선택한 일을 끝까지 하도록 하고 때때로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 하지만 선택이란 것은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얻는 것이다. 나는 주로 포기의 대상으로 나를 택했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그 결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얻고 수긍하는 법을 배웠지만, 그 배움의 결과로 내가 치러야 했던 것은 지독한 불면증이었다.
좋아하는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은 뭔가를 희생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대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연금술에서의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누군가의 등을 빌려야만 겨우 오를 수 있던 그때, 산을 미워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홀로 산 앞에 있자니 왜 그렇게 부모님이 나를 산으로 이끌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온기를 기억했다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인생은 늘 후회와 깨달음의 연속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일 때 다가오는 울림은 길을 걷는 데 평생 동안 지표가 된다. 조금만 더 일찍 그 뜻을 깨달았다면, 부모님과 더 큰 사랑을 나누며 각박했던 내 인생을 좀 더 따뜻하게 채우며 살 수 있었을 텐데.
밤 11시 30분, 새벽 1시, 새벽 2시 45분 그리고 새벽 4시 ……. 습관적으로 눈을 뜰 때마다 시계를 확인한다. “이번엔 꽤 잤네, 아직 일어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구나. 30분 더 잘 수 있겠어.” 시계를 보며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다시 잠을 청한다. (요즈음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불면증이 아닌 것 같은데 잠자는 하룻밤에 보통 3~4번을 깬다. 보통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사이에 한 번씩 깬다. 어떤 땐 30분마다 깰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렘수면과 비렘수면의 주기에 한 번씩 깨는 것 같다. 작가는 이것을 지독한 불면증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불면증인가?)
앞으로도 스스로를 믿고 멈추지 말아야지. 물론 망설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서 일단 나서봐야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을 두 눈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스스로를 믿고, 끊임없이 발자국을 만든 결과였다. 앞으로도 스스로를 믿고 멈추지 말아야지. 물론 망설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길을 낸 오늘의 작은 발자국을 떠올리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서 일단 나서봐야지. 그리고 누군가를 묵묵히 잡아주고, 당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온통 하얀 풍경에 다짐을 선명히 새기고 있었다.
한 아이는 한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는 마사이족보다 열정적이며, 사막의 태양보다 뜨겁다가도 토라지면 아이슬란드의 빙하보다 차갑다. 울음소리는 이구아수 폭포 마냥 우렁차고, 변덕은 오로라처럼 변화무쌍하며, 어른의 말을 이집트 상인의 호객행위처럼 귓등으로 듣는다. 하지만 속마음은 히말라야의 만년설처럼 순수하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운이 좋게 많은 나라를 돌며 제가 느낀 이야기를 여러분께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행은 참 많은 걸 저에게 가져다주네요. 곧 떠날 수 있게 된다면 많은 걸 내려놓고 온전히 ‘나’로 걸어보셨으면 합니다. 나를 수식하는 직업이나 나아. 성별 말고요. 언젠가 디시 길에서 만나게 된다면 이름을 꼭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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