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문학동네, 2018

그루 터기 2022. 3. 26. 05:38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문학동네, 2018

 

영화에 대한 취미가 별로인 나는 영화배우에 대한 관심도 별로였다. 아침에 하정우 배우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하정우배우가 책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읽은 책이다. 하정우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책이다. 걷기를 이렇게 좋아하고, 이렇게 열심히 걷다니. 나는 걷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작년에는 하루에 100(40km)이상을 몇 번 걸었었다. 주위에서 갑자기 많이 걷는다고 하지 말라고 말리는 바람에 열 번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 둔 것 같은데 이번 봄부터는 조금씩 걸어볼 생각이다. 나도 처음에는 마라톤 풀코스를 걷는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걱정이 되었는데 첫 번째 100리길을 정말 우연히 걷게 되어 자신감이 붙었다. 그 우연이라는 것이 속상한 일이 있어서 소주를 한 잔 먹고 저녁 9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걸었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바보 같은 짓이었는데, 무사히 잘 걸었고, 그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일어나지도 못할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서 놀란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일주일에 새벽 정도 백리길을 걸었었는데 주위에서 너무 말려서 지금은 조심스럽게 가까운 거리만 걷는다.

어찌 생각해 보면 갑자기 많이 걸어서 통풍의 통증이 왔는지도 모르겠다. 무릎관절이나 발목이 약하기 때문에 등산이나 계단을 무리가 오는데 평지 길은 웬만큼 걸어도 힘들지 않는다. 봄꽃이 휘날리는 계절이 다가온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열심히 걸어봐야겠다. 건강을 위해서...

 

 

 

저자 소개

하정우

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그림 그리는 사람.

그리고, 걷는 사람.

다수의 출연작과 그림이 있다.

 

 

독서 메모

 

나에겐 머리만큼이나 큼직한 신체부위가 있다. 바로 두발이다 내 발사이즈는 300밀리미터다. 발이 워낙 크다보니 주로 이태원이나 해외에서 맞는 신발을 구해야 해서 약간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내 왕발이 좋다. 가끔 내 큰 머리에 어지러운 생각과 고민이 뭉게뭉게 차오르기 시작할 때면, 그 생각이 부풀어 머리가 더 무거워 지기 전에 내 왕발이 먼저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머리 큰 내가 발까지 큰 건 분명 축복이다.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치하는 방법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

 

내 몸과 마음의 문신처럼 새겨진 것들은 결국 서울에서 해남까지 걸어가는 길 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길 위의 매 순간이 좋았고, 그 길 위에서 자주 웃었다.

 

내 삶도 국토대장정처럼 길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 갈수 없는 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뭇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나는 나의 기분에 지지 않는다. 나의 기분을 컨드롤 할 수 있다는 믿음, 나의 기분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걷기는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하는 약속이다.

 

나는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묻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에 어떻게 그렸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였지?’ ‘왜 그림을 그리려고 했지?’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 중에도 나는 잘 쉬는 게 아니라 내가 다닌 곳의 흔적을 남기려 안달했던 것 같다.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 봤고 웬만한 데는 전부 다 돌아다녀봤다는 확인을 받기 위해 여행을 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 데 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어도 일할 때 만큼은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일을 좋아하는 만큼, 일을 오래하고 싶은 만큼, 휴식도 신경 쓰고 잘 계획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과 휴식을 어중간하게 뒤섞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휴식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 일이 바쁠 때 '나중에 몰아서 쉬어야지 같은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지 않는 것.

 

오늘 우리가 고단함과 귀찮음을 툭툭 털고서 내딛는 한 걸음에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 나의 오늘을 위로하고 다가올 내일엔 체력이 달리지 않도록 미리 기름 치고 돌보는 일 나에게 걷기는 나 자신을 아끼고 관리하는 최고의 투자다.

 

특히 반바지는 관절이 계속 접혔다 펴지는 무릎을 스치지 않도록 무릎위에서 딱 떨어지는 길이로 선택했다. 한참 걷다보면 아무리 깃털 같은 옷자락이라도 관절에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성가시고 힘들어지는 법이니까. () 평소에 무던한 사람이라도 체력적으로 한계상황이 오면 한없이 민감해질 수 있다. 뾰류지 난 피부에 스치는 깔깔한 옷의 감촉, 미처 자르고 오지 않은 거스러미 등 작은 불편함조차 지옥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나는 출발 전 양말의 탄성까지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하와이에 왔으니 10만보 걷기에 도전해보자며 다함께 목표를 설정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걷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그 '의미'란 걸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 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고. 이 길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부정하며 '포기 할 만하니까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었던 거다.

 

죽을 만큼 힘든 사점을 넘어 계속 걸으면, 결국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조금 더 걸을 수 있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자신만의 길과 행보를 만들 수 있다. 당신은 동서남북 어디로도 갈 수 있다. 내가 사는 곳 부면에 내 이름을 붙인 트레킹 코스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 말한 것처럼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된다."

 

밖으로 나가서 피부로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느끼며 걸으면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감각이 온전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군도>가 개봉한 2014년 여름은 세월호 참사 이후였기 때문에, 현실 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가 무척 깊은 시기였다. 관객들은 좀처럼 풀기 어려운 울분을 영화에서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좋은 작품은 예술가가 안정적이고 반듯한 길에서 벗어나서 일탈하거나 방황할 때 나오지 않나요?” 사람들이 던지는 이런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않다. 좋은 예술과 안정적인 삶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좋은 작품은 좋은 삶에서 나온다. () 나는 다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건강한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걷기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오랫동안 연기하고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어느 날에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온수도 있다. 또 어떤 날에는 나 자신에게 너무도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작업해 나가는 것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탈도, 치기도 없는 약간은 재미없는 삶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몰라도 나의 이런 하루가 나는 마음에 든다. 지금 여기서 동이 터올 때까지 매일 축배를 들기엔 아직 나는 갈 길이 한창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작정하고 웃기려들면 과장되기 마련이라 부담스럽고 오히려 재미가 떨어진다. () 나는 일상에서 유머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촬영현장에서도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웃기는 일을 좋아한다. 남을 웃기면서 나도 웃는다. 내 유머가 사람들을 웃게 할 때, 나는 내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된다.

 

누군가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릴 필요도, 다른 세상의 소식을 불안하게 서칭할 필요도 없다. 하와이에서 나는 걷고 먹고 웃는 일에 하루를 다 쓴다.

 

내겐 삶의 에너지를 얻는데 걷기만큼이나 먹기도 중요하다. 내 두 다리를 움직여 걸을 만큼, 내 손을 움직여서 끼니를 직접 만드는 과정도 소중하다.

 

나는 라면을 끓이기 전에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파를 넣어 파기름을 낸다. 이 파기름에 라면 수프를 넣어서 소스를 만들 듯이 저어주다가 물을 넣고 끓인다. 그러면 생면처럼 약간 오가닉한 맛이 난다.

 

어느 전라도 식당에서 미역국을 먹었는데 엄청나게 구수하면서 감칠맛이 났다 미역국을 끓이면 끓일수록 맛있어진다는데 오랫동안 푹 끓여서 이런 맛이 나는 걸까? 사장님께 물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비밀은 쌀뜨물에 있었다. 쌀뜨물로 끓인 미역국은 곡물에서 배어난 고소한 맛이 해산물과 고기를 휘감아서, 한 차원 다른 국으로 업그레이드 해 준다.

 

오늘도 러닝머신에 올라 야구경기를 본다. 야구 선수들의 분투, 언제 게임이 끝날지 모른다는 긴장과 스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며 이내 위기가 오고, 위기를 잘 넘기면 찬스가 오는 게임의 법칙 , 콜드게임의 처절한 패배와 짜릿한 역전승, 내가 응원하던 선수들의 은퇴 ……. 그 모든 것이 내 삶을 자극해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제 그런 아침이면 나는 생각을 멈추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몸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생각이 무거운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조금씩 달래고 설득해 일단 누운 자리 밖으로 끌어낸다.

 

자신감이 소진돼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마음이 요동치고,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내가 그간 이뤄놓은 것들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허물어질 것 같고, 일상적으로 해왔던 일들이 갑자기 너무도 어렵게 느껴져 꼼짝할 수 없을 때도 있다. () 흔히 번 아웃혹은 스트레스증후군으로 불리는 이런 상태에 빠지면 당장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 힘들다.... 걸어야겠다." 나는 힘들수록 주저 않거나 눕기보다는 일단 일어나려 애쓴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 오히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팔과 다리를 힘차게 흔들면서 온 몸에 먼지처럼 달라붙은 귀찮음을 탁탁 털어 내본 다. 그렇게 걷다보면 녹슬어서 삐걱거리던 몸과 마음에 윤기가 돈다.

 

루틴의 힘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거나 의지력이 약해질 때, 우선 행동하게 하는 데 있다. 살다보면 그냥 놔둬야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어쩌면 인생에는 내가 굳이 휘젓지 말고 가만 두고 봐야 할 문제가 80퍼센트 이상인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 나는 생각들을 이어가다가 지금 당장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그냥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편이다.

 

나는 어쩌면 감독의 일이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감독이란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로구나. 각 파트에서 알아서 하게끔, 자연스럽게 굴러가게끔 조율하고 가이드하면 족한 것이구나. 굳이 제일 앞에 나서서 모니터 가려가면서 목청 높이고 스태프들에게 지시할 필요가 없는 거로구나. 새삼스레 감독의 일에 대해 깨달은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이는 혼잣말의경우도 마찬가지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업는 것 같지만 결국 내 귀로 다시 들어온다. 세상에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은 없다. 말로 내뱉어져 공중에 퍼지는 순간 그 말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비난에는 다른 사람을 찌르는 힘이 칭찬에는 누군가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말에는 힘이 있고 혼이 있다. 나는 그것을 '언령'이라 부른다. 언령은 때로 우리가 예기지 못한 곳에서 자신의 권력을 증명해 보이고, 우리가 무심히 내뱉은 말을 현실로 뒤바꿔 놓는다. 내 주위를 맴도는 언령이 악귀일지 천사일지 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책임을 밖으로 돌릴수록 나에게 남은 것은 화나고 억울한 마음뿐이다. 그 상태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러니까 남 탓을 나를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192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 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심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몇 개의 우물을 부지런히 파서 열심히 두레박을 내리다 보면, 내가 평생 식수로 삼을 우물을 발견하기가 더 쉬워지지 않을까? 나는 한 사람 안에 잠재된 여러 가지 능력을 일생에 걸쳐 끄집어내고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 이자 의무라고 본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뿐이다. 나는 내가 지나온 여정과 시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지만, 결코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않는다. 어쩌면 확신은 나 자신에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오만과 교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겠다.

 

중간 지점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넘어지거나 꽃다발을 받거나 하는 일들은 어쩌면 크게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일회일비 전전긍긍하며 휘둘리기보다는 우직하게 걸어서 끝끝내 내가 닿고자 하는 지점에 가는 것, 그것이 내겐 소중하다.

 

오래된 돌길을 밟고 돌아다닌 덕분에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나는 발바닥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밤마다 찬물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발에 열나게돌아다닌 이탈리아에서의 시간은 지금도 생생하게 가슴에 남아있다.

 

흔히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이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를 둘러싼 상황은 끊임없이 달라지는데, 어떻게 처음의 마음을 그대로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을까? 이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슬럼프는 언제든 찾아온다. 슬럼프란 불운한 누군가에게 느닷없이 떨어지는 재앙이 아니라. 해가나면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처럼 인생의 또 다른 측면일 뿐이다. 슬럼프란 선생님은 평생에 걸쳐 계속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나에게 슬럼프는 인생길의 장애물이 아니라 나를 겸허하게 만들어 주는 스승이다.

 

아버지 뿐 아니라 나와 오랫동안 만나고 함께 일해 온 모든 사람들이 내게는 마치 숲처럼 느껴진다. 해가 너무 뜨겁거나 바람이 불 때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숲을 마련하는 것, 어쩌면 배우뿐 아니라 모든 생명들에게 꼭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보통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능한 한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노력은 그 방향과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노력의 방향과 방법을 아는 감독이었고, 노력의 밀도를 높임으로써 모든 작품에 자신만의 인장(印章)을 새겨 넣었다.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렇게 기도한 이후로 이상하게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그저 신이 내게 맡긴 길을 굳건히 걸어갈 수 있도록 두 다리의 힘만 갖게 해 달 라고 기도한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나는 나에게 주 어진 길을 그저 부지런하게 갈 뿐이다.

 

티베트어로 인간걷는 존재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