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미친개(그림책 : 박기범 쓰고, 김종숙 그리다) 』, 박기범, 낮은산, 2008

그루 터기 2022. 3. 31. 05:52

미친개(그림책 : 박기범 쓰고, 김종숙 그리다) , 박기범, 낮은산, 2008

 

어린이용 동화집이다. 그림 동화집. 글보다 그림에 더 눈이 간다. 요즈음 시작한 캘리그라피에 수묵화를 곁들이는 공부를 하기 때문에 이런 그림은 나에겐 좋은 선생님이시다. 아주 수준 높은.

나는 개를 기르지 않는다. 요즈음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지만 들개로 표현되는 주인 없는 개들도 많아 TV에서는 그 문제점을 부각시켜 방송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같이 생존할 수는 없을까? 개 뿐 아니라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단지에 길고양이용 움막을 지어주고, 음식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위생적이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고양이 집을 철거하고 음식을 주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아직도 어느 쪽이 정당한지 알지 못한다. 양쪽 이야기가 전부 맞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참 어려운 문제다. 지구상에 많은 생물이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저자 소개

 

박기범 쓰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문제아(창비,1999)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대상을 받으며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글과 그림동인, ‘이라크 평화를 바라는 바끼통회원이다. 그동안 쓴 작품으로 새끼 개,어미 개들이 있다.

 

김종숙 그림

1965년 속초에서 태어나 강원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글과 그림동인이고, 속초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독서 메모

 

 

개는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 봉지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어. 코를 가까이 들이대고 무언가 먹을 만한 게 있는지 살폈지. 바깥으로 버려진 음식이 있다 해도 그게 온전히 개의 차지가 되기는 어려웠어. 언제나 길에는 냄새를 찾아 헤매는 또 다른 개들이 있었으니까.

 

사실 개를 더 곤란하게 하는 건 따로 있었어. 아주 날렵한 몸에 날카로운 발톱까지 가지 고양이들. 그것들은 언제 어디서 나타나는지 모르게 소리 없이 움직이며 먹을 것들을 잘도 뒤졌어. 게다가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 냄새를 쫓아가다 보면 그 자라에는 어김없이 고양이 한두 마리가 쓰레기 봉지를 찢어 먹을 것을 찾고 있었으니까.

 

더러 안스러운 얼굴로 보아 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이들 한두 마디에 멈춰질 일은 아니었어. 돌 던지는 아이 하나가 있으면 그 곁으로 재미있어 부추기는 아이들이 떼지어 모이곤 했어.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 않았지. 그 개에게는 다들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여기는 것처럼. 개는 전보다 더 초라하고 볼썽없이 되었어. 사람들 보기에는 지독하게 더럽고 구질구질한 꼴이었겠지.

 

개는 전처럼 사람들이 쓰레기 내놓는 자리를 찾아 먹을 만한 게 있나 살폈지. 자긍마을인 탓에 내다 버리는 것이 그리 많지가 않았어. 하지만 개는 곧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것만큼이나 흙에 코를 대고 킁킁대는 일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 무언가 뱃속을 간질이는 냄새가 난다 싶어 흙을 파 보면 사람들이 묻어 놓은 음식 찌꺼기가 있곤 했거든.

 

추레한 몰골로 눈치를 보아가며 읍내 시장 통으로 떠돌던 개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야 시궁창 냄새에나 어울 것 같던 꾀죄죄한 털은 고운 잿빛으로 보기가 아주 좋아졌지

 

그루터기 째 떠내려가던 통나무와 비닐집을 세우는 쇠기둥 따위가 물길 가장자리 바위 턱에 걸려 있었거든. 그 앞으로 쓸리던 온갖 것들이 함께 엉겨들면서 어디에선가 떠밀려 온 창고 같은 것도 반쯤 물에 잠겨 걸려 있었어. () 겨우 목숨을 건진 개는 그때부터 먹을 것을 찾아 떠돈 거야.

 

마을 사람들은 둘만 넘게 모이면 술렁이듯 개 예기를 했어. 누구는 개가 아니라 늑대일거라 했고, 또 어떤 누구는 한두 마리가 아닌 것 같다며 들개 떼가 나타난 것 같다고도 했어. 말은 말을 낳았고, 또 말은 말을 타고 마을 너머로까지 이어졌지.

 

개는 사람들 눈을 피해 다녔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는 되도록 사람들 사는 쪽으로 내려가지 않았어. 개울 너머나 먼 밭 건너에서라도 사람 기척이 있다. 싶으면 먼저 몸을 숨기거나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

 

개고기 집에 살던 개, 큰물에 떠내려가던 개. 떠돌이가 되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지금은 이 마을에 숨어 사는 개.

 

개는 밤새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지쳐 깊이 잠들어 있었어. 사람들이 막 외양간으로 돌아 들어가려던 때 였을까. 뭔가 이상한 낌새에 개도 정신을 차렸어. 하지만 사람들이 벌써 문앞을 가로막듯 했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지. 개는 있는 힘껏 뛰어 올랐어.

 

견딜 수 없을 만큼 주리고 떨리는 몸으로는 정신이 더 맑아지는 걸까? 개는 아주 깊고 서늘한 눈으로 먼 하늘을 보았어. 먼데서 불어오는 바람을 보았고, 멀리 보이는 마을을 내다 봤어. 어쩌면 보이는 것 너머의 것까지 보느라 차가운 마음이 그대로 눈동자에 비추어졌는지도 몰라. 누구라도 한 번쯤 그 눈망울을 봤어야 했어.

 

, 타앙! 산 깊은 곳에서 나는 소리에 개는 숨을 고르고 있었어. 마치 산을 뚫고 바위라도 깨뜨려 버릴 듯한 소리 그건 사냥꾼들이 한 발 한 발 쏘아 대는 총소리였겠지.

 

! 시간을 멈추게 하듯 총소리가 울렸고, 화약 냄새가 매캐하게 피어올랐어. 떨어져 내린 개가 마치 그이를 덮치듯 몸을 포갰고, 그이는 그대로 개의 몸에 깔려 뒤로 쓰러졌지. () 아니 개는 총에 맞지 않았어. () 크헝! 좀처럼 짖지 않는 개가 산을 울리도록 크게 짖었어. 발아래 사람은 겁에 질려 벌벌 떨었고, 개는 그대로 선 채 목을 길게 세워 여느 때보다 길고 아픈 울음소리를 먼 하늘로 보냈지. 아우우워어.

 

겨울이 다하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몰라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영 모를 뿐이야. 산을 넘으면 아늑하게 몸 쉬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새로 눈이 내리는 건지, 나무에 얹혀 있던 눈가루가 날리는 건지, 바람이 눈을 몰고 가기 시작했어. 개는 그저 눈발을 등지고 서 바람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걸음을 옮겼지. 아마 곧 발자국조차 지워지고 말겠지만.

 

이제 개를 기억하는 이들이 없어. 읍내 장마당에서도, 마을 사람들도. 그냥 헛소문이거나 아주 오래된 얘기처럼, 미친개가 있었노라고 조무래기 아이들 떠드는 말 속에서나 한 번씩 들릴 뿐이야. 글쎄, 개에게 깔렸던 그 사람을 기억할까? 마지막 순간 그 어떤 원망마저도 넘어선 채 서글픔에 젖어 들던 개의 눈망울을 말이야. 물기를 머금어 더 또렷이 아롱지던 그 깊고 투명한 눈망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