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김비, 박조건형, 한겨레출판사, 2020

그루 터기 2022. 4. 20. 05:06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김비, 박조건형, 한겨레출판사, 2020

 

참 어렵게 만난 두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 사회가 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나가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트랜스젠더 뿐아니라, 동성애자와 폴리아모리까지도 잘못된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삶의 다양함에 오늘도 한 표 던집니다.

 

 

저자 소개

 

김비

1971년 경기도 문산 출생. 남과 북의 경계 위, 삶과 죽음의 경계 위,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 2000년 서른 살의 나이에 여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012년 세계문학웹진 [국경없는문학]www.wordswithoutborders.org의 세계 퀴어문학을 소개하는 자리에 단편소설 입술나무의 영어판을 게재하였고,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를 출간했다. 부끄러운 기억 같은 책 몇 권을 썼으며,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드는 데 함께했다.

트랜스젠더 정보홈페이지인 비포레인(www.bee4rain.com) 집주인이며 인터넷 문학웹진 '21C 젊은 글댕이들'의 글쟁이 중 하나이다. 인터넷 전자출판사 '미지로'에서 장편소설 일생』『개년이, 단편소설 꼬마 눈사람』『그의 나이 예순넷』『미인들이 간다등을 출간했다.

 

 

박조건형

십 년간 현장 노동자로 살다가 짝지 덕에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었다. 전업으로 일상 드로잉 작가 생활을 삼 년 반 정도 하다가 다시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우울증 경력은 이십구 년 차이다. [한겨레]박조건형의 일상드로잉이라는 제목으로 그림과 글을 연재하였다. 김비 작가와 함께 쓴 책으로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길을 잃어 여행 갑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등이 있다.

 

 

독서 메모

 

돌아보면 모든 사랑에는 각자의 영화가 있고, 소설이 있다. 모두가 해피 엔딩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 모든 러브 스토리에는 간단히 기록할 수 없는 시간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엄마가 언제 짝지를 만나주실지 알 수 없다. 강요할 수도 없고, 만나주지 않으셔도 괜찮다. 그저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지내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효도는 짝지랑 재미나게, 건강하게, 신나게, 잘 사는 것이다. 그 모습을 계속해서 들으시면, 나중에 우리 부부랑 같이 식사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심심하거나 밋밋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신랑은 이따금 불쑥 꽃다발을 들고서 현관에 들어서고, 나는 계절이 바뀌면 신랑의 옷가지들을 챙겨 구입하고 채워 넣는다. 꼭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받고, 연극을 보거나, 같이 인형을 만들면서 특별하지 않은 날들을 특별하게 보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특별한 날은 특별하지 않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만난 지 11년째가 된 요즘 우린 장난처럼 반말을 시작했다) ", 병필아!" (신랑은 최근부터 내 본명 공격을 심심찮게 해댄다) "저 싸람이!" (발길질을 하며 신랑에게 쫓아가면, 그는 도망치며 웅크렸다가 다시 또) "어이, 김병필!" 이 세상에서 (남자로 살던 때의) 내 본명을 가지고 놀릴 수 있는 단 한 사람.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어 흉터처럼 몸속에 새겨진 것까지 놀림거리고 만들어 나에게 사랑스러운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저기 있다.

 

숨기고 싶어 가장 깊이 묻어두었던 내가 휘저어질 때, 경직되고 두려워지는 건 당연하다. 한데 언제부터 나에게는 웃고 지나칠 수 있는 힘이 생겨버린 걸까? 나는 내 상처가 보이지 않게 숨어야 한다고 믿었는데, 들키거나 손가락질 당하면 큰일 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자유롭고 안정된 우리 둘만의 세계. 혼자였어도 가능했을까?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만 급급한 채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네 탓 내 탓 손가락질하던 시절을 지나, 느릿느릿 함께 꿈틀거리며 같은 몸짓을 배워가는 우리가 여기 있다.

 

나는 그에게 자유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유는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의 삶에 재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재미란 마음을 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나의 생각은 얼마나 얄팍한가. 그를 위한 일이라고 떠올리는 그 모든 상념들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왜 민망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아이에 대한 욕망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따금 신랑을 닮은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그 아이와 같이 사는 삶은 어떤 풍경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남이야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내 새끼 건강하고 즐겁게 살면 되지. 복희씨는 세상의 모든 편견을 넘어서며 딸이 된 아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애초부터 아들이 아니었던 게지, 사람이 잘못 태어날 수도 있는 게지! 당신이 먼저 목소리를 높이며 둘째의 비빌 언덕이 되길 자처했다. "이 다음에 너랑 나랑 둘이 살자." 복희씨는 둘째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었다. 나도 너도 혼자라 외롭다고 느끼는 때가 오면, 그때는 서로 기대며 둘이서 알콩달콩 살아보자고. 서로 의지하며, 그렇게 살아가자고.

 

불안이 없던 시절이라고 말했지만, 돌아보니 그때의 내가 가장 끔찍했다는 걸 안다. 타인이 되지 못해 안간힘을 쓰던 나는 모두가 바라는 보통 사람이 되었지만, 거울 속 나에게 자꾸 묻고 싶어졌다. 점점 야위어가는, 모두가 ''라고 말하는 이 낯선 사람에게 계속 다그치고 있었다. 너는 살아 있니? 거기에 있니, 있기는 한 거니? 서른이 다 되어, 나는 나만 알고 있었던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 처음 알았다. 온통 내 것이던 불안이 이제는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의 것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내 불안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그 불안을 끌어안고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쩐지 공평한 느낌이 들었다. 불안이라는 게 실은 이토록 얄팍한 감정인지 알지 못했다. 불안을 꺼내놓고 나니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 볼품없음에 나도 모르게 웃었는데, 그게 어쩌면 용기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늘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

사람들은 질문 속에 권력이 존재한다는 걸 잘 모른다. 누구에게는 자신의 사소한 궁금증을 풀려는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은 학생에게 편하게 아무렇게나 질문을 하지만, 학생은 교장선생님에게 그렇게 질문하기가 힘들다. 위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질문은 서로 신뢰와 관계가 쌓인 뒤에 조심스럽게 천천히 할 수 있는 것이지 초면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들에게 쉽게 질문을 하고 답을 요구하는 것, 그리고 당사자가 민감해하는 단어를 함부로 쓰는 일도 상처를 줄 수 있다. 부디 앞으로는 짝지가 그런 무례한 일을 적게 겪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의 우울증 앞에 선 느낌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벌써 11년째 그의 우울과 같이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 어떤 말들이 피어날수록 그 말들은 해선 안 되는 말이라는 걸 깨우치고 만다.

 

계속 걱정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생각들이라 내 마음속에만 담아둔다. 짝지 또한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고, 스스로 감당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어려운 질문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서면, 어쩔 수 없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그런 자리를 피하지 않는 건 당사자의 입으로 발화된 성소수자에 관한 삶의 증언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여성으로 살고 있는 내 삶에서의 이질감은 남자로 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덜 하다는 것이다. 지정 성별로 그 어떤 불편함이나 이물감을 느낄 필요 없는 여성이나 남성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자연스러움만큼이나, 내게는 여성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인 나 역시 여성성이라는 허울이 얼마나 피상적이며 또 억압적인 역사의 결과물인지 잘 알고 있다. (비트랜스젠더 여성이 자신이 알고 있던 여성성이 피상적이고 억압적이었던 시간의 결과물이자 허울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우치는 과정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온 생애를 걸었던 어떤 결정이 완벽한 어리석음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나를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 삶 속에서 나는 비로소 가장 큰 안정감을 찾았고, 나에게 주어진 자리를 찾았다고 확신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꼭 규정화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짝지는 트랜스젠더 여성이지만, 내게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소중하고 예쁘고 귀한 사람이다.

 

수술을 하고, 호적정정을 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리라 예상했지만, ‘형수님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서류에 기록된 성별을 나 자신에 맞추어 바꾼다는 것이 그저 숫자 하나의 문제일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처음 형수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좀 낯설었고 또 뭉클하기도 했다.

 

지인이라고는 1,2년 장거리 연애를 한 연하의 남자친구가 전부인 도시에 내려와 살면서 나는 조금도 망설이거나 두렵지 않았다. 나에게 마을이나 이웃은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지만,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의 불편함이 의외로 얄팍한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웃는 낯으로 다가가고, 서로 사는 이야기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우리가 그렇게 멀지 않음을 단박에 깨우치게 된다. (...) 벌써 몇 년째 같은 마을 주민으로 그곳에서 또 다른 주민을 소개받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함께하면서, 나는 비로소 여기 이 마을의 주민이 되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주고받은 것은 충고나 조언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만히 듣는 일이었고, 깊은 내면을 털어놓으며 자신을 새롭게 기록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사회적인 이름들을 배제한 채, 오직 눈앞에 보이는 사람 그 자체만을 환대하며 서로를 존중하고 그 시간을 즐겼다.

 

젊은 시절 느끼는 온전함이란 운이 좋았던 것일 뿐, 우리의 몸은 결국엔 자동차 바퀴처럼 닳아져버린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휘어진 내 삶을 가만히 만져본다. 매끄럽지 않고 우둘투둘 돋아난 돌기로 가득한 모서리를 손바닥에 문질러본다. 날카로운 통증에 비명 지르지 않고 조용히 생각한다. 나를 아프게 했던 것들을 생각한다. 이름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빼앗겼거나 지워졌거나, 모호하고 흐릿한 이름을 지닌 모두를 생각한다. 버티고 살아남은 그 안간힘을 위해 소리 없는 찬사를 마음속에 되뇌어본다.

 

그림과 전혀 상관없이 살다가 다시 그림을 그려본 것은 짝지를 만나고 나서였다. 연애 초기에 그녀의 용인 집에서 우연히 짝지를 그린 적이 있었다. () 짝지가 침대에 기대어 책을 보던 모습을 그렸는데, 짝지는 그 그림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정말 좋아했다.

 

희망이나 절망은 섣불리 규정하지 말아야 하는 단어일까? 우리가 믿고 있는 순리의 얼굴은 한 가지 표정만 가진 건 아닌 걸까? 나는 그 순간 신랑에게 내질러버렸던 내 화에, 그즈음 최악으로 치달았던 신랑의 우울증에 모종의 감사를 전했다. 별것 아닌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삶으로 이끌었던 그 마법을 신기해하며 말이다.

 

신랑을 만난 일은 정말 엄청난 기적이었다. 수술을 하고 호적까지 바꾸면서 나는 충분히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소설가라는 이름도 얻게 되면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최대치의 기적을 얻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는 내게 이 세상이 컬러풀할 뿐만 아니라, 눈부시게 빛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발버둥을 치지 않아도 사랑을 얻고 축복을 받는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삶이 나를 얼마나 눈부시고 빛나게 만드는지 그제야 깨우쳤다. 이 사랑을 잃지 말아야지. 나에게도 이렇게 온전한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지.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래도 사랑은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있는 걸 보면, 당신에게는 더 많이, 더 근사한 사랑이 있었거나 있거나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이 작은 한 권의 책이 적어도 피로한 날 베고 누워 사랑을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