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새발로 하는 산책』, 문소리외, 마음산책, 2021

그루 터기 2022. 4. 19. 04:47

새발로 하는 산책, 문소리외, 마음산책, 2021

 

반려견과 함께 하는 세상, 어릴 때 시골집에서 기르는 개(그 때는 같이 살다가 식용으로 도살되고 했었다.) 외에는 한 번도 반려견과 같이 살아보지 않아서 애틋한 마음을 잘 몰랐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어렴풋이나마 그 마음이 어떨까 생각이 든다. 어느 날 갑자기 다리 하나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사고가 났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도 가족 중에 누군가가 큰 사고가 났을 때와 같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장애를 딛고 잘 견뎌준 반려견이 노후를 맞이하고 정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저자 소개

문소리

배우. 영화감독. 영화 만드는 일이 좋아 남편과 함께 영화사 연두를 설립, 가끔은 감독으로 가끔은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과일부터 깎고, 108배를 자주하고 술상을 잘 차린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유머를 좋아하고 눈물이 많다.

 

강숙 그림

일러스트레이터, 콘티 작가. 가끔은 배우도 하고 캘리도 쓰고 일러스트도 그리고 향수도 만들고 초도 만든다. 잘 웃고 자주 설레 하고 밤에 잠 안 자고 뭐든 만들기 좋아한다. 마구 마구 퍼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아낌없이 일한다. 종종 친구 소리한테 좀 아끼라는 잔소리를 들어도 굴하지 않고 아직은 아낌없이 우당탕탕 사는 게 즐겁다.

 

 

독서 메모

 

 

세 발로 하는 산책을 쓰고 보니 무엇보다 제 가족의 이야기여서 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열어보자, 조금 더 용기 내보자,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어보자 마음을 다졌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이 이야기가 있다면 우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당신과 나 사이에 이 이야기가 있다면 우린 더 아름다운 생각을 나눌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수영이 고모이자 연두 엄마인 저는 옛날 그 달마 이야기에 달마의 노년까지 그려내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로 다시 써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달마의 십오 년 견생 기록이자 서투른 반려인간의 부끄러운 고백이자 달마와 함께한 우리 가족의 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덕구가 강아지를 일곱 마리나 낳았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연두 엄마는 깜짝 놀랐죠. 그때까지도 연두 엄마는 덕구가 수놈인 줄 알고...

 

스님은 두 마리의 강아지를 건네주시며 제일 작은 막둥이 강아지 이름을 보리, 제일 튼튼한 강아지 이름을 달마라고 지어주셨습니다. 보리, 달마라는 이름은 인도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며 깨달음을 얻은 선승, ‘보디다르마에서 따온 것입니다. 인도식으로는 보디다르마, 중국식으로는 보리달마. “보리달마는 깨달음을 뜻합니다.”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대문을 열어주면 달마, 보리는 총알같이 튀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나간 달마와 보리는 한 시간 정도 뒷산과 동네, 논밭을 뛰어다니다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할아버지의 우렁찬 "달마, 보리 밥 먹자!" 그 소리에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직 진돗개는 야생성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자기 영역에 배설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매우 강하고(야생에서는 배설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어서 야생성이 강한 견종들은 최대한 멀리 산책을 나가 배설한다고 합니다) 사냥개 본능도 남아 있습니다(그래서 달마 보리도 쥐, , 뱀을 그렇게 잡았나봅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 모란 가축 시장은 개를 사고파는 것뿐만 아니라 개 도살과 개고기 유통이 성행하던 곳이었습니다.

 

앞다리 위쪽이 부러졌습니다. 굉장히 튼튼한 뼈인데 완전히 부러진 걸 보니 교통사고일 가능성이 큽니다. 일단 철심을 넣어서 수술을 해보긴 하겠는데 이렇게 큰 개들은 수술 후에 많이 움직여서 뼈가 잘 안 붙을 수도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날들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달마와 보리는 차고 위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몇 번인가 투닥거렸지만 어느 날부터는 사이좋게 둘이 나란히 앉아 동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우리 집 사이좋은 오누이 수영이와 연두처럼 참 사이가 좋은 우리 집 달마와 보리

 

달마와 보리는 신기할 만큼 빨리 아파트 생활에 잘 적응했습니다. 옥상 테라스에서는 쉬도 응가도 절대 하지 않고 하루에 두 번 산책할 때 멀리 나가 풀숲에서 꼭 배변을 했습니다.

 

산책을 나가면 보리는 늘 느린 달마를 챙깁니다. 앞장서서 총총총 가다가 문득 멈춰 서서 뒤돌아보고는 달마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그러다 달마가 조금 다가오면 다시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또 멈춰 서서 달마를 기다립니다. 달마는 그런 보리를 보며 좀 더 기운을 내고 몇 걸음이라도 더 걸어보려 애쓰는 듯합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종종 마음 한구석이 뜨듯해집니다. 혹여 노을이라도 붉게 질 때면 더더욱 몽글몽글 뜨듯해진 마음에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합니다.

 

마침내 달마에게 맞는 것을 찾았습니다. 요양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용하는 대자 기저귀에 달마 꼬리를 뺄 수 있는 구멍을 뚫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며 채식을 지향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가끔 닭고기는 먹을 때가 있지만 붉은 고기는 전혀 먹지 않습니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환경을 위해 플라스틱도 줄이고 고기 소비도 줄이고, 여러 소비를 줄여보려는 축소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 가족 달마의 멋진 모습입니다. 달마는 우리에게 깨달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