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가뿐하게 드는 여자』, 정연진, 달출판사, 2022
타이밍!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내 머릿속을 지배한 단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이밍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 타이밍인가 생각해 본다. 저자는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유학을 마치고도 새로운 전공을 위해 도전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여성으로서 도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운동을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 취미생활 하듯 설렁설렁 도전한 것이 아니라, 한 번 도전하면 프로의 경지에 도달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도전한다. 부럽다. 따라하고 싶다.
저자 소개
정연진
평생 해온 피아노 연주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뒤 지금은 독일어 동시통역을 본업으로 삼아 일하고 있다. 암벽등반, 마라톤, 철인3종, 크로스핏 등 여러 운동을 접해오다 사십대 중반에 역도를 만났고, 그 후로 매일같이 체육관으로 직행해 꾸준히 스스로 정한 무게를 들어 올리고 있다. 그렇게 역도는 ‘옆업’으로서, 오랜 반려 운동이 되어주었다. 바깥에서도 철봉을 보면 매달리고, 트랙을 보면 내달리고, 무거운 것을 보면 한번 들어볼까? 하는 마음을 품는다. 그렇게 사뿐 대신 가뿐하게 뭐든지 들어 올리고 있다.
독서 메모
행복과 성취감을 주는 운동에 하나씩 도전하다보니 어느 덧 ‘나 홀로 올림픽’을 열고 있던 것이다. 주변에서 나의 운동 종목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반응은 다양했다. 멋지다며 응원하는 사람, 나이에 맞는 다른 운동 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부터 어떤 운동인지 몰라서 공감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한 건, 그들이 ‘운동’이라는 단어를 보고 한 번이라도 멈칫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올림픽을 보며 나를 떠올린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역도를 한 날은 집에 돌아가서도 역도 동작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며 떠나가지 않았다. 예전에 올림픽 중계에서 볼 때는 그렇게나 낯설고 먼 세상 같았던 역도가 지금 내 곁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 사람의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은 후각과 청각의 기억이라고들 한다. 처음 역도장 문 앞에 섰을 때 안에서 스며나오 던 카랑카랑 쇳소리,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후끈 파고들었던 쇠와 고무와 나무 냄새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 장소에 아주 오래 머무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공항장애는 포식자로부터 재빠르게 도망치기 위해 발달한 원시시대 생존 반응에 기인한다고 한다. 확실한 실체가 없는데도 일단 과도한 공포감을 조장하는 게 그 시대에는 생명 보존에 유익했던 거다. 쓸모 0%인 이 과도한 매커니즘을 21세기에는 쓰레기통에 처넣을 때가 됐다.
‘묵묵함’이란 재미없어지든, 힘들어지든 일단 받아들이고 피라미드 위층에 가보겠다는 자세다. 조건부를 따지는 사람은 ‘인용끌하’ 훈련을 할 수 없다. ‘인용끌하’ 훈련이 힘든 이유는, 한마디로 “힘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힘이 들지 않은 훈련은 훈련이 아니고 그냥 물건 들었다 놓는 동작을 반복하는 노동이다.
내 배번에 적힌 ‘YUNJIN'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응원해줄 수 있도록 적힌 것이었다. 부모와 산책 나온 아이도, 지나가는 자동차도 차창을 내리고 이방인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취리히 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내 마음에 연료를 채워주셔서, 울컥하면 호흡이 흔들리니 정신 차리고 계속 움직여!
러너스 하이를 맞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차가 다니지 않고 주변에 장애물이 없는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 눈을 감고 양팔을 한껏 벌린 다음 딱 열 걸음만 걸어보라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을 느꼈다면, 당신의 러너스하이 체험은 멀지 않았다.
세상에 ‘그냥’ 한다고 되는 일이 과연 몇 개나 있겠는가? 인내심에 대해 신뢰를 한 번 갖게 되면, 무엇이든 일단 도전해보게 된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빨리 툭 털고 일어나 또다른 도전 과제를 찾게 된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그래서 너무나 소중하다.
이런 체조 동작은 변명이 구구절절 달린 조건부 성공이라는 게 없다. 역도처럼 “73kg은 실패했지만 70kg은 성공” 같은 결과도 없다. 그저 “할 줄 아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만이 구분될 뿐이다. 나는 링 머슬업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설마 100번 하면 안 되겠어?” 내가 말해놓고도 스스로 나를 믿지 못했지만, 정말로 그 자리에서 100번의 연습을 끝낸 후의 나는 확실히 전과 달라져 있었다. 어떤 알 수 없는 영검한 기운이 나를 감싸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나의 링 머슬업은 완전하지 못했지만. 애매한 개수로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혹시 몇 번 더 했으면성공했을까?” 했던 조급함이 사라지고 평화가 왔다.
그후로 100의 마법은 내 삶의 만능 처방이 됐다. 무엇인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일이 있다면 “우선 100번을 해보자” 하고 외친다. 모든 일이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100을 채우는 동안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1에서 100까지 채워가는 그 과정 동안 나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결국, 최종목표는 ‘행복’인 것이다.
더블언더와 관해 적어도 두 가지는 증명됐다. 첫째, 확실히 어릴 때 안 한 걸 배우려면 오래 걸린다. 둘째, 나는 타고난 몸치가 맞다. 교훈도 있었다. “초조한 초보자들에게 사랑을.” 당신도 언제 어떤 분야에서 성장 더딘 초조한 초보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 아파트 편지함에는 줄넘기가 들어 있다. 지금도 조깅하고 들어올 때, 외출 후 귀가할 때 편한 신발을 신은 날은 어김없이 1층 현관 편지함에서 줄넘기를 꺼내서 우레탄 바닥이 있는 놀이터로 간다.
힘센 지인을 두면 세상이 얼마나 든든해지는지 안다면, 사람들이 평화의 징표 없이도 적극적으로 다가와서 친해질 텐데. 그 힘센 지인이 여자라면 더 든든하고. 힘센 여자 지인과 친해지면 그저 도움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 “사실 그전부터 물어보고 싶었어요. 나도 턱걸이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돼요?” 어서 와요, 친구여. 해치지 않아요.
운동 지도자는 근육질 여성을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도 편견이었고, 시골 할머니는 근육질 여성을 못마땅해 할 거라는 것도 편견이었다. 다시 한 번 구멍가게에서 마주쳤던 할머니께 새삼 존경심을 느낀다.
나는 이 방향이 행복으로 가는 길인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모를 뿐이다. 다음에 또다시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물어본 문장 그대로 또박또박 대답해주면 된다. 네, 남자들은 이런 몸 안 좋아하는 것 알고 있습니다. 네, 이런 운동 하면 허벅지 굵어지는 것 알고 있습니다. 아니요, 이 길로 가도 행복해지는 것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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