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이영, 청년정신, 2009

그루 터기 2022. 4. 22. 00:10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이영, 청년정신, 2009

 

크게 기대하지 않고 빌려온 책인데 읽을수록 따뜻함을 느끼는 책이다. 글의 내용도 어렵거나 막히지 않고 술술 읽힐뿐더러 미운 듯 챙기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행복합니다. 처음엔 불평을 하는 이야기인줄 알고 읽었는데 어느 새 자랑질(?) 하는 작가님이 얄밉게 아름답습니다. 작가님의 남자뿐 아니라 시부모님까지도 모두모두 벼려심 많고 착안 마음을 갖고 계시고,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참 좋은 글들입니다.

작가는 환갑이 지나면 연애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70이 되기 전에 작가님처럼 이렇게 술술 읽히는 수필을 쓰고 싶다.

 

 

 

저자 소개

이영

1962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으며, 이제는 부산사람으로 살고 있다. 산문집으로 선물, 그대가 있어 행복합니다를 냈고, 소곤소곤, 이렇게 설명하세요, 소곤소곤, 이게 정말 궁금했어요에 삽화를 그렸다.

 

 

 

독서 메모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소식부터 듣겠느냐는 대사. 선택의 순간입니다 저는 나쁜 소식을 먼저 듣는 쪽에 속합니다.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는 것을 모두 봐야 하는 것이라면 재미없는 것부터 보고, 맛이 있는 것과 맛이 없는 것을 먹어야 한다면 맛이 없는 것을 먼저 먹는 편이지요. 조금 더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성급한 마음을 달래며,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뒤로 미루었습니다. () 그런 식으로 보자면 내가 앞으로 살 세월은 이전의 것들보다 조금은 더 재미있고 맛있는 것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선택의 폭이나 가능성은 줄어들겠지만 무엇인가를 새로 배우고 알아가는 일보다 알고 있는 것들을 살뜰하게 사는 것도 재밌고 맛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꼈던 옷 함 벌도 막상 버릴 때가 되어 버리려 하면 망설여진다. 사람도 입던 옷을 버리고 새로 옷을 사 입듯 그럴 수 있다면 나도 남자를 열두 번은 내다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남자 또한 나를 열두 번의 열두 번을 내다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을 내다 버릴 수 없는 것임에 내가 더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신혼시절, 도무지 선물이란 걸 할 줄 모르는 남자에게 선물을 해달라며 조르곤 했었다. 가난했으니 큰 걸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꽃 한 송이라도 마음이 담긴 것이면 충분했다. 내가 어찌나 집요했던지 이 남자, 장미를 사왔다. 검붉은 색이었다. 고맙지만 다음부터는 검붉은 색을 사지 말라고 당부했다. 꽃이라면 싫어하는 게 거의 없지만 검붉은 장미만은 싫었다. 아주 딱 싫었다. 그러나 남자는 생일에도 검붉은 장미였고 결혼기념일에도 검붉은 장미였다. 기어이 짜증을 내면서 왜 하필이면 검붉은 방미냐고 했더니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 이라나 뭐라나.

 

검붉은 색깔만 아니면 된다고 해도 끝까지 검붉은 장미를 사오는 남자에게 선물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설명하고 바가지도 긁고 구슬려도 봤지만 이해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먼저 지친 내가 이제 꽃은 그만두자고 했고 그것이 남자에게 받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벌써 10년하고도 훨씬 전의 일이다.

 

쌍꺼풀 수술도 결국은 흉터를 만드는 것이다. 상처로 생긴 흉터라는 점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름답지 않은 것은 흉터고 아름다운 것은 무늬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밖에 나가서 돈을 버는 남편은) 내가 굳이 욕조에 담그지 않아도 세상에서 먼저 후줄근하게 젖어오더라는 것이다. 내가 걷어차지 않아도 세상에서 수없이 걷어차이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 순간 화를 다스리지 못해 나까지 물 먹이고 걷어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겨울 한밤중에 똥이 마렵다던 남동생에겐 방에다 달력을 찢어 누게 하면서 내게는 마당 끝에 있는 거름 터에 가서 누라고 해서 밉기도 했던 큰고모, 무섭고 춥고 배신감으로 벌벌 떨며 똥을 누던 그 겨울밤, 총총한 하늘의 별과 건넌방 열린 문으로 아직 멀었나, 궁디 다 얼겠네, 이제 문 닫는다.” 며 내다보던 고모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 가운데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한장의 그림처럼 아련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어린 추억이 생각나는 그런 그림이 말입니다. )

 

어머니를 돕느라 흐르는 땀이 눈에 들어가 눈을 뜨지 못하던 남자도, 농사지은 것에 비해 값이 너무 싸다며 저울 눈금에 인색한 내게 넉넉히 주라고 웃으시는 어머니도 모두 아름다웠다. 누가 뭐래도 남자는 효자고 어머닌 인정이 많다. 효자도 좋고 인정이 많은 어머니도 나는 좋다.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참 좋습니다. )

 

동인들과 사진전을 열었다. 제각각 다른 주제를 선택했는데 내 사진의 주제는 이었다. () ‘이라는 주제에 사랑이며 사람, 인생을 슬며시 끼워두었다. 그것들은 밖으로 끄집어내서 말하기엔 쑥스럽고 조심스럽고 무엇보다 남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었다. 50도짜리 술이 나왔다. 엄지손가락만한 잔이 따라 나왔다. “장미가 아름다운 것은 가시가 있어서고 술이 맛있는 건 독하기 때문이다거푸 술잔을 비우던 분이 한 수 던진다. “장미에 찔려 죽기도 하고 술에 절어 죽기도 한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분이 받았다. 장미가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릴케처럼 장미 가시에 찔려 죽고 싶지도 않고, 술이 에 아무리 맛있어도 술병으로 죽고 싶지도 않다.

 

책을 읽다가도 그렇다. 문득, 마음을 송두리 채 흔드는 문장을 만나게 되면 책갈피에 있는 저자의 프로필을 다시 보게 된다. 이런 모든 감정을 이름 짓자면 설렘이 아닐까.

 

우리 집 식구 네 사람 이마를 합치면 잠실운동장 만한 크기다. 관상학 측면에선 행복은 물 건너 간 것이다. 그러나 행복해서 좋아 죽을 만큼은 아니지만 크게 더 바라는 것도 없다. 지금, 딱 죽고 싶다는 심정이 아니라면 아름다운 팔자 아니겠는지.

 

다른 사람이 자신을 건드리는 걸 싫어하는 지인이 있다. 예순을 목전에 둔 지인은 일생 그랬다고 했다. 얼마 전 누군가가 선생님!” 하면서 뒤에서 안았다고 했다. 참 좋았다고. 사람이 사람을 안아주는 일이 그렇게 따뜻한 일인 줄 몰랐었다며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어린아이의 호흡처럼 짧은 11월이다. 그래도 따뜻하다. 그래도 눈부시다. 그래도 반짝인다. 어린아이처럼 짧지만 꼭 해야 할 호흡만 하면서 11월의 볕처럼 귀하지만 알뜰하게 겨울로 들고 싶다. “내가 미안해.”, “사이좋게 놀자창가에 닿은 한낮의 빛줄기, 톡 튀어 올라 눈을 찌른다.

 

사는 일은 죽는 일보다 귀한 것이라 아버지는 아들 잃은 동생의 슬픔 앞에서도 딸의 배고픔이 무거웠던 모양이다. 그 염려 안에는 사랑 있는 자식에 대한 고마움과 안도가 있음을 왜 모르랴. 해서 넘어가지 않는 밥을 먹고 후룩후룩 메밀묵을 먹으면서 길게 살자고 먹었던 것들은 생각했다.

 

이젠 사랑한다는 말은 귀에도 입에도 간지럽고, 밥 한 끼보다 못하다. 사랑은 걸러도 현기증이 나지 않지만 밥 한 끼 거르면 현기증이 난다. 우울한 주인공보다 더 재미있는 나이다.

 

환갑이 되면 연애시를 쓰고 싶다. 연애시를 쓰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 어렵지 않게, 모나지 않게, 낡았으되 순한 언어로 내밀한 이야기로 노래하고 싶다. () 아무래도 나의 노후는 낭만적일 것 같다.

 

누구나 다 제 마음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대는 무엇을 통해 세상을 보는지?

 

초등학교 다닐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귤을 받았다. 처음 먹어본 달고 시고 새콤한 그 맛은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주신 그 크리스마스 선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의 부는 고작 그런 것일 만큼 부잣집 딸로 커보질 못했다. 결혼을 했으나 농부의 넷째 아들인 남자를 만나서 빚 없는 것을 부자로 알고 지금까지 산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외모로 즐거워 본 적도 없다. 해서 단 한 번도 주목을 받거나 중심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남 앞에 서서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고 박수를 받았던 적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다가 숨이 턱턱 막히는 문장을 만나게 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책의 앞쪽으로 돌아와 작가의 프로필을 다시 보게 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 능력에 좌절하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즐기고, 즐기는 동안 행복하니 거기까지다. 그러니 절망할 일이 없다. 그래서 발전이 없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더 솔직한 속내는 욕심도 낼 만해야 내는 것이고 안 되는 일에 공연한 기운 쓰지 말자는 것이다.

 

모처럼 한국에서 가지고 온 커피믹스를 탔다. 뜨겁고 달고 그윽한 커피를 마시자니 적금 탈 날 멀었으면 어쩌랴 싶다. 들지 않은 것보다야 훨씬 희망적인 일 아닌가. 무엇보다 아직 먼 뉴욕여행, 카페 단고보다 막 입안으로 드는 이 커피가 만기된 적금이고 낙찰된 목돈이 아니겠는가. 이래서 난 지금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