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비탈에 선 가을』, 박기하, 책만드는 집, 2009

그루 터기 2022. 10. 29. 20:36

비탈에 선 가을, 박기하, 책만드는 집, 2009

 

시인 듯, 시조인 듯 헷갈리지만 시집이라고 했으니 시이기도 하고, 시조의 형식을 많이 닮았으니 시조라고 해도 될 듯하다. 하긴 시인들 어떠하고, 시조인들 어떠하리, 그냥 좋으면 되는 것을...

깊이를 알 수 없는 시들이라 몇 번 다시 읽고 읽었다.

 

저자 소개

박기하

저자에 대한 특별한 소개가 없다. 처음 있는 일이다.

 

 

 

독서 메모

 

 

옹이 품듯이

 

세 살이 돋았는데

다 아문 상처인데

 

궂은 날은 찾아와

저리고 쑤시는 고질

 

솔가지

옹이 품듯이

안고 사는

그 고통

 

 

 

 

강경 젓갈 시장

 

짭조름한 아낙들이

푹 삭은 젓갈을 고른다.

넓은 독엔 코를 대고

찍어 먹어도 보고

 

속속이

간 배인 목숨

젓갈 바라 버무리고

 

 

 

 

 

나팔꽃 2

 

어쩌자고

아침부터

 

눈 비비고 여는 창에

온몸 다 꼬고 서서

속내를 다 나발 부나?

 

온 동네

사람들 입소문이

무섭지도

아니해?

 

 

 

 

 

회상

 

초승달 심지 돋운 무덤 주위 서너 평은

여남은 살 여남은 명 모여 앉는 자리인데

저녁상 물리자마자 핑계 맞춰 뛰어왔지

어떤 밤은 산 밑 밭에 고구마를 캐어 왔고

어느 날은 냇가 모래밭 수박들을 훔쳐 왔다.

이제는 일 년에 잘해야 두세 번 하는 고향 이야기

 

 

 

 

 

 

창 닫기

 

추분날 저녁 무렵

창문을 닫아 버렸다.

순간 창밖은 온통

먼 남국의 전설이 되고

방 안은

가을이 서려

외로움에 익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