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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는 아들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쓴 편지(둘째 아들 며느리)

그루 터기 2021. 6. 26. 08:00

#결혼하는 아들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쓴 편지

 

둘째 아들 결혼식날 양가집 부모님의 편지 순서에 낭독한 편지입니다. 큰아들 결혼식은 야외에서 작은 결혼식을 했는데, 작은 아들은 꿈이 달랐나 봅니다. 크기는 크지 않아도 자연광이 비치는 근사하게 꾸며놓은 예식장에서 식을 올렸습니다. 주례는 없었구요. 주례역할을 신랑아버지인 제가 했습니다. 주례사를 대신 해서 양가집 부모님의 편지 낭독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 결혼식에서 한 번 해 봤던 거라 긴장이 많이 줄었지만 시내 결혼식장의 짧은 결혼식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던 점은 많이 아쉬웠었습니다.

 

편지 내용이 너무 길어 시간을 줄여달라는 아들의 요청과

좋은 날 첫마디부터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빼라는 아내의 명령(?) 때문에 부득이 중간 부분 뒤쪽만 다시 정리하여 읽었습니다.

 

 

#며느리에게 쓴 편지

 

원본 편지

 

불쌍한 우리 며느리, *옴아!

 

시댁과 화장실은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어쩌다가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신혼살림을 차렸니? 불쌍한 우리 *옴이 어떡하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시대가 변했더구나.

요즈음은 잔소리 듣는 며느리가 걱정이 아니라 아들, 며느리 수발드는 시어머니가 걱정 이라더라.

바쁜 아들 며느리 뒷바라지에 손자, 손녀 태어나면 애들 키워주랴 시어머니 등골 빠질까 벌써 걱정이 된다.

*섭아! 애들 키워달라고 하지 마라, 엄마는 직장 다니기도 바쁘지만 산에도 열심히 다녀야 하니까 말이다. 지난번에 엄마가 애기 낳기만 하면 다 키워준다고 한 말 내가 생각하기엔 그거 다 빈말 같다.

우리 애들은 우리가 키웠으니 너 애는 너희가 키우는게 맞지 않겠니?

시어머니가 누구니? 며느리한테는 시어머니지만 나한테는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 아니냐?

(혼주석을 바라보며) 여보 사랑해!

 

내 사랑하는 당신을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말거라.

신신당부한다. 너희집 현관 비밀번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바꿔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 핑계로 엄마가 너희 집에 안가도 되지 않겠냐.

 

*옴아! 그래도 가끔 집에 들러서 너가 좋아하는 달달한거 들어 있는 냉장고 털어가는 건 눈감아 줄게, 그거 막으려고 우리집 현관문 비밀번호 바꿨다간 바꾼 비밀번호를 내가 기억 못해서 집에 못 들어 갈 것 같아 비밀번호 바꾸는 건 그냥 포기한다.

 

그래도 이 좋은날 농담만 할게 아니라 마음에 있는 이야기도 해야 되겠지?

 

*섭아! 잘 자라줘서 고맙다.

*옴아! 부족한 우리 아들 좋아해줘서 고맙다.

큰애들 내외가 멋진 짝꿍인 것처럼, 내가 보기엔 너희 둘도 환상의 짝꿍이구나.

엄마와 내가 항상 우리 아들들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며느리들을 원했는데

어쩜 서로 부족한 성격을 기계부품이 맞물리는 것처럼 그렇게 딱딱 맞추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 좋은날 많은 친지와 친구, 귀빈들을 모시고, 너희들의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서 참 행복하구나.

 

*섭아! *옴아!

형 결혼식 때도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려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전에 말씀 하셨던 것처럼 나도 똑 같이 너희에게 당부 하고자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항상 부모보다 형제들이 같이 살날이 많으니, 부모한테도 잘해야겠지만 형제의 우애가 제일 먼저이어야 한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귀에 생생하구나.

항상 형을 부모처럼 생각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너희 형과 또 형수와 상의해서 하면, 같은 세대이고 생각도 많이 비슷하기 때문에 매사에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라 생각된다.

또 사촌형제도 많이 있으니까 서로 자주 왕래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우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 너희 형제, 그리고 사촌들과 우애 있는 형제들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진심으로 당부하고 싶구나.

 

사랑한다 *옴아! 사랑한다 *섭아!

 

결혼하고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 가족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자구나.

애들아 우리 여섯 식구, 좋은 것만 생각하며 살자. 부족한 건 서로 천천히 채워가면서 살아가자.

급하게 세상을 살다보면 뒤돌아 볼 시간도 없는데,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건강 생각하며 꼭 같이 가고, 같이 사랑하자.

 

 

끝으로 *섭이에게 당부한다.

*섭아!

처가 어른들과 장인 장모님을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해라. 아들이 없는 처가에는 맏사위가 아니라 맏아들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해라. 그래야 *옴이도 우리에게 딸처럼 할 거 아니냐. 비록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자주 찾아뵙고, 좋은 아들이 되어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

오늘은 참 좋은 날이구나. 오늘은 참 행복한 날이구나.

 

 

그리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를 빛내주려 먼 길 오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414

 

 

 

이 편지를 읽었는데 왜 아내가 이렇게 우는지  알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