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허혁, 수오서재, 2018
장강명 작가의 『책 한 번 써봅시다.』에서 추천한 세 번째 책이다. 수필을 쓰려면 자기의 직업과 관련된 전문 분야의 경험을 쓰라고 했고, 그 예로 3권의 책을 소개했다. 장신모 작가의『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 김민섭 작가의 『대리사회』 그리고 이 책이다. 이책에는 대리사회를 쓴 김민섭 작가의 추천사도 같이 실려 있다. 시내버스 5년차의 작가는 우리가 버스를 타면서 보아왔던 소소한 사건들을 담담한 필체로 엮었다. 이번에 이 세권의 책을 보면서 글은 작가가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조금은 바뀌었다. 좋은 글은 좋은 경험에서 나온다는 새로운 생각이 나에게 다가왔다. 특히 살아있는 글은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직장생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온 일로, 딱히 내가 글로 쓰지 않더라도 다 알고 있는 사소한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는데, 그 일들이 글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현직 시내버스기사의 에세이. 버스기사의 애완이 가슴에 전해진다. 버스를 운행하면서 일어난 소소한 일상이 묵묵히 다가온다. 나는 전주시내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삼례나 봉동 같은 젊었을 때 내 삶의 일부였던 곳의 명칭이 나올 때마다 추억이 생각나고 정겨움을 더 느낀다.
글 중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쓴 꼭지가 있다. 아버지께 맞은 이야기가 맘이 아프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에게 맞은 적이 없다. 말 잘 듣고 착해서가 아닐 게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고맙고 또 보고 싶다. 지속적인 학대로 힘든 자아를 형성하고, 상처가 깊어 글을 잘 쓰는 것 보다 글을 못 써도 좋다. 옛날에는 작가의 아버지처럼 자식사랑을 잘못 표현하시는 분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내 어릴 때 주위 친구들 중에서도 있었으니까. 거리에 나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버스, 버스기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 서민들의 애환의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자 소개
허혁
전북 전주 출생으로 전주 시내버스기사다. 나고 자란 곳에서 시내버스를 몬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다니는 일이 되었다. 도로 위에 한 생이 펼쳐져 있다. 승객마다 한 생을 짊어지고 버스에 오른다. 시내버스는 이야기 공장이다.
학업을 마치고 몇 군데 직장을 옮겨 다니다 20년 가까이 조그만 가구점을 운영했다. 관광버스로 잠시 경력을 쌓고 시내버스 입사 5년 차다. 고단한 삶이었으나 머리맡에 늘 책을 두고 지냈다. 이 책이다 싶으면 몸에 밸 때까지 읽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버스 운전대만 잡으면 누군가 자꾸 이야기를 불러주었다. 전주 한옥마을 문화해설사 김경심의 남편이다
독서메모
나를 고백함으로써 나의 세계를 드러내고 타인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 이해, 공감, 소통, 이러한 모호하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감각들은, 서로의 몸에 새겨진 언어를 공유하는 데서 비로소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를 쓰고, 타인을 읽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은 버스기사들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거나 간식을 선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그들의 세계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운전석에 앉은 허혁'들'이 왜 오늘도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지, 왜 맞은편의 버스기사에게 경례를 하는지, 왜 버스를 잘못 탄 나에게 어느 정류장으로 갈 것을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는지 그들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게 된다. 모두의 삶에는 나름의 이유와 방식이 있는 법이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호를 주는 영감님이 있다. 안 타니까 어서 가라고 열렬하게 손을 저의신다. 고마운 마음에 기사는 정류장을 지나며 인사를 올린다. 가뭄에 콩 나듯 정류장 뒤로 몸을 숨겨주는 할머니도 있다. 갑이 을의 노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미의 정점이라고 본다. 분명 그분들의 삶도 고단했을 것이다. (이건 조금 오버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좋은 뜻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나쁜 뜻으로 생각하면 손님이 없다고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것은 규정에 맞는 행동인지 모르겠다. 특히 연세 많으신 어르신께서 세워달라고 흔든 손을 타지 않는다고 흔드는 손으로 오해라도 한다면 큰일이 아닌가? 이게 과연 배려일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이를 악물고 울었다. 울음이 터져 나와 이를 악물 수도 없어서 입술을 앙다물고 울고 또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그 뒤로 그날 왜 그렇게 슬피 울었는지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별것 없었다. 내가 대견해서 그렇게 울었다. 가게 팔고 반년도 안 돼 관광차 몰고 시골 아주머니 아저씨들 원 없이 춤추고 놀게 해준 내 자신이 너무 멋져서 그렇게도 울었다.
일 잘하고 있는데 꼭 건드는 인간이 있다. “박물관 가요?” 안 간다니까 몇 번 타야 되느냐고 또 묻는다. 거기 가는 버스가 한두 대도 아니고 뒤에 버스가 줄줄이 서서 내 차 빠지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현실은 가요, 안 가요 수준의 단답형 대답만 가능하다. 느닷없는 질문에 퍼뜩 생각도 안 나고 모드 전환을 해서 떠오르는 대로 답을 한다 해도 제대로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684, 49, 9, 62, 554, 559, 31, 644, 685….’ 대충 아무 번호나 하나 불러주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은 다른 버스도 많은데 기사가 알려준 버스 하나만을 기다리며 애를 태워야 한다. 정류장에 다른 승객도 많은데 꼭 정신없는 기사한테 물어봐야 하나?
사실 선글라스와 마스크는 중요한 용도가 하나 더 있다. 승객한테 무슨 불만이 있냐고 딸아이가 지적한 바로 그 지점이다. 표정 관리가 안 돼 민망해서 쓸 때가 많다. 화난 기사의 얼굴이 룸미러로 훤히 비치기 때문이다. 마스크는 욕 나올 때 좋다.
저녁은 네 시 전후로 일찍 먹는다. 퇴근길 교통 혼잡에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밤 열한 시 넘어 일 끝나면 어질하다. 시내 버스운전은 육체노동에 감정노동을 더한 일이라 늘 배고프고 배배꼬이기 쉽다. 기사는 밥으로 치유한다. 등이 휠 것 같은 하루를 세끼 밥 먹는 재미로 버틴다. 집에 가면 아내가 ‘뉴슈가’ 넣은 감자를 포근하게 쪄놓고는 자우자울하고 있을 것이다.
들어도 못 들은 척 일년, 봐도 못 본 척 일 년, 알아도 모르는 척 일 년, 삼 년은 돼야 같은 기사다. 선배들한테 각졀히 조심해라. 유식한 척하는 니 말투도 그슬리니까 알고 있고!
원래 나쁜 기사는 없고 현재 그 기사의 여건과 상태가 있을 뿐이다. 누구나 잘하고 싶지 일부러 못하고 싶은 기사는 없다. 내 경우는 짜증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가 뚫려 있어 매 순간 유념 또 유념해야 한다. 자칫 인터체인지를 놓치고 도로 끝까지 가는 수가 있다.
뇌파는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뉴로피드백’이라는 명상치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 두뇌에 흐르는 전기의 세기를 잰 것이 뇌파인데 공부 할 때의 높은 주의력을 요하는 긴장산태를 베타파(15-38Hz), 막 잠에서 깨어난 편안한 상태의 알파파(8-12Hz), 졸릴 때 세타파(4-8Hz), 깊은 수면 상태의 델타파(0.5-4Hz) 등이 있다. 치료 석 달 만에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수면 중 뇌파인 4헤르츠까지 내려갔다. 젊은 의사 선생님 말이 “삼매에 든 기분이 어떠냐?”고 자기는 공짜로 해서 그런지 아직 못 가봤다고 되게 부러워하던 기억이 난다.
아예 빨강, 노랑, 파랑으로 기사의 감정상태를 알려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모든 감정노동자의 가슴에 명찰 대신 '감정표시등'을 달아주는 상상을 해본다. 전주 시내버스 기사가 하루 열여덟 시간 운행 후 스트레스 수치를 잰다면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작은 포유류였을 때 막다른 길에서 아나콘다를 만난 스트레스 수치와 맞먹을 것이다.
전주에서 태어나서 석 달 넘게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군 생활도 고향에서 의경으로 복무했다. 나이 오십에 나고 자란 곳에서 시내버스기사가 되어 한 일은 결국 지난날 나를 만나러 다니는 일이었다. 가는 곳마다 어린 시절, 사춘기, 젊은 날의 추억이 뭉클뭉클 새겨져 있다. 그 거리마다 함께했던 친구들, 나눴던 이야기, 꿈, 타고 다니던 버스 등등.
어찌보면 시내버스를 모는 것도 부족하나마 글을 쓰는 것도 모두 아버지 덕분이다. 아버지의 권위를 부정적으로 내면화해 돈과 권력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지속적인 학대로 힘들어야만 사는 맛을 느끼는 자아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상처가 깊은 사람이 글을 쓴다. 버스에 오르는 영감님 중 십중팔구는 성난 내 아버지 얼굴을 하고 있다. 참으로 아픈 우리 근현대의 얼굴이다. 나이를 더할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는 내 얼굴 또한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자기 능력의 70퍼센트를 쓰며 사는 사람이 제일 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머지 30퍼센트의 여유 공간에서 인간다운 면모가 나온다고 한다. 다음 날 쉰다지만 근무 날 자기 능력의 150퍼센트를 써버리면 회복도 더디고 늘 피곤에 절어 살 수밖에 없다. 없는 돈에 보약 먹어가며 절절 매지 말고 피로가 쌓이지 않게 일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아울러 2교대 근무를 시행하면 기사들이 일으키는 전주 시내버스의 여러 고질적인 문제들은 절반 이상 해결될 수 있다.
전주 시내버스는 결손가정이다. 승객이 노인 아니면 학생이다. 엄마 아빠는 자가용 타고 돈 벌러 다니기 바쁘다. 아이들이 버스 안에서 무얼 보고 무얼 듣고 무얼 느끼는지 알지 못한다. 전주 시내버스에도 몇 가지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승객 일부는 특별히 갈 데가 있어 버스를 타는 것이 아니며, 진짜 길을 몰라서 길을 묻는 것이 아니고, 젊은이가 반드시 음악을 듣기 위해 이어폰을 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 등이다.
앞차를 빼먹은 동료도, 항의하는 승객도 그 어떤 누구도 잘못이 없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대목이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대목이다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동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누구나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에 있는 정의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운수노동자의 장시간 운행이 기사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도 크게 위협한다는 사실에 근거해 운수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새벽 대여섯 시부터 운전을 시작해 저녁 여덟 시쯤 되면 감각도 둔해지고 온몸이 안 결리는 곳이 없다. 그 뒤로도 서너 시간을 더 버텨야 하는데 기사들 영혼까지 다 갉아 먹힌다. 신경이 바늘 끝같이 예민해지면서 운전이 난폭해질 수밖에 없다. 피로와 짜증을 어디다 풀 길이 없으니까 운전으로 푼다.
그렇게 피곤한데 잠도 바로 안 오고 잠이 길어도 길게 못 잔다. 다음 날이라도 푹 쉬면 다행인데 알바 나가는 동료도 많다. 당장 한 푼이 아쉬운 동료의 처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정당한 임금 인상 투쟁을 통해 얻지 않고 알바로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해버린다면, 우리의 노동이 합당한 대우를 받는 날은 점점 더 멀어진다고 본다. 전주 지역 일반 대형차 기사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점도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시내버스 3대 핵심 업무 중 하나가 운행 중 동료에게 인사를 잘하는 것이다. 모든 인성 평가가 운행 중 얼마나 인사를 잘 하느냐로 결정된다. 버스 전면유리 위에 크게 쓰여 있는 차량 번호를 통해 멀리서도 누가 운전하고 있는지 알기에 손을 번쩍 들어 경례를 한다. 나이순, 경력 순으로 경례에 임하는 자세는 조금씩 다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한결같은 자세로 흰 장갑에 거수경례를 하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위험하다고 배짱 좋게 아예 '쌩 까고' 다니는 동료도 몇 있다. 고속버스 출신 동료는 멋지도록 절도 있게 가슴에다 거수경례를 한다. 나는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해서 늘 다르다. 형님은 되도록 반듯하고 깍듯하게 거수경례를 하고 동생이 지나가면 운전대에서 두 손 다 떼고 머리에 하트, 승객 눈치가 보이면 가슴에 하트, 엄청 살갑게 '빠이빠이', '엄지척' 등이다.
시내버스 이용률이 떨어질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문제점 중 하나가 ‘버스회사의 적자를 메꿔줄 지자체의 시내버스 보조금 증가’다. 시민이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할 수 있다면 소중한 세금이 다른 곳에 쓰일 수 있다. 보조금은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승객이 느끼는 불편은 그대로라는 것도 깊이 따져봐야 할 문제다. 시내버스 이용률 저하는 ‘교통 혼잡 비용’의 증가로 나타나는 사회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승객 사이에 상대방이 원치 않는 ‘버스 대접’을 하려 해서 차 안이 소란스러워는 경우가 있다. 동네 언니의 버스비를 자신의 카드로 찍어주려는 승객과 거절하는 승객 사이에 실랑이 때문이다. “둘요!” “아녀, 그러지 마. 나도 카드 있어!” 그깟 버스비 좀 내주고 나중에 무슨 생색을 내려고 그러느냐는 듯 펄쩍 뛴다. 다음 날이면 소문 다 난다. “새로 이사 온 수원댁이 어제 버스비 내줬담서!” 버스비 좀 아꼈다고 살림이 펴는 것도 아니고 맥없이 신세 지기 싫어 죽어도 못 찍게 한다. 찍네 마네 하는 동안에 뒤에서 기다리는 승객과 기사는 숨넘어간다.
보통 15초짜리 좌호전 신호에서 맨 선두 차가 일각도 지체하지 안고 바로 나갔을 때 일곱 번째 버스가 꼬리물기를 하고 간신히 빠져나간다. 요즘은 신호대기만 걸리면 다들 스파트ㅡ폰 보느라고 짧은 좌회전 신호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기사는 늘 다니는 길이라 신호대기에 걸리면 나갈 수 있을지 못 나갈지 발 안다. 맨 앞에 있는 승용차가 밝은 색 소형이면 백퍼센트 못나간다.
752번 ‘관촌’은 배차 간격이 길고 승객도 별로 없는 편이라 늘 반가운 코스다. 임실군 관촌읍에 위치한 관촌 터미널 종점은 무주, 진안, 장수를 지칭하는 ‘무진장여객’과 임실, 순창, 남원을 지칭하는 ‘임순남여객’이 전주 시내버스와 연계되어 있는 곳이다.
그 형님은 승객이 별짓을 다 해도 일절 감정의 동요가 일지 않고 아예 관심 자체가 없다고 애써 강조하신다. “자네는 자네 일 하고 승객은 승객 일 허는 거여.”
시민 모니터단이 비밀리에 버스에 올라 친절기사를 선정하는 방식은 다른 시각에서 보며 ㄴ인권침해이자 노동 착취다.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도 드물고 오히려 시 행정의 성공 사례로 홍보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친화된 문명에서 보면 버스기사의 노동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썩 유쾌하지 못한 사업으로 평가될 것이 분명하다.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그림자 노동’을 지자체가 적극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친절기사 선정 방식은 비록 좋은 의도로 하고 있다 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 전반의 시스템 문제를 들쑥날쑥한 인간의 품성에 기대어 해결해보려는 것은 너무 궁색하다. 버스운전 경험이 없는 시민 모니터단이 무엇을 알겠는가! 승객에게 일일이 인사하거나 할머니 보따리를 받아주거나 신호를 잘 지키거나 등의 당장 눈에 드러나는 것들만 보일 텐데, 시내버스 운전이 기사의 실존과 맞물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머니 날 낳으식 시골 지관이시던 외할아버지께 사주를 보냈는데 “아무리 못 돼도 ‘사’자 들어가는 직업에 넥타이를 매고 사람들 끌고 다니면서 큰소리치고 살 팔자이니 잘 키워라!” ……. “거기, 학생! 해도 너무허는 고만, 전화헐라고 버스 탔어!”
시내버스의 세 가지 큰 덕목
승객이 있건 없건 시간 맞춰 제 궤도를 돈다. 빠르고 넓은 길을 놔두고 굽이굽이 돌아 나온다.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이 술을 마시면 중성지방이 올라와 몹시 해로우니 죽을 각오를 하고 술을 마시라고 해서 습관적인 음주는 자제하게 되었다. (…) 애주가였던 내가 장장 열여덟 시간을 운전하고 그 보상으로 막걸리 한 잔을 못 먹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크게 불행한 일이다. ( 요즈음 통풍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니 생판 죽을 맛이다. 이제는 요산 수치도 관리가 잘 되고 하여 의사 말씀대로 먹고 싶은 거 가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먹었다. 그런데 안 된다는 소주를 세잔 먹었는데 신호가 왔다. 소주만 세잔 먹었으면 몰라도 요 며칠 사이 고기와 쭈꾸미, 회까지 두루두루 맘놓고 먹어서 인지 무릎이 고장이 났다. 가족들 걱정할까봐 살짝 살짝 절면서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좋다, 싫다, 기쁘다, 슬프다, 밥이나 먹자! 다섯 마디 외는 모두 미혹이듯 버스에서는 간다, 안 간다, 딱 두 마디만 진실이다. 쓸데없는 소리가 쓸데 있는 소리보다 많다. 마음이 시간을 앞설 때마다 싫은 소리가 난다. 어느 사이 기사는 클레이사격장의 타깃처럼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 속으로 마음을 정 조준한다. 운행 중에는 시간을 잊는다. 아니, 시간이 된다. 시간의 블랙홀에 버스를 얹어 간다. 몸에 딸린 오감은 도로의 결을 살피느라 전혀 여력이 없다. ‘내리고 싶은 자 편히 내려주고 타고 싶은 자 얼른 태워주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운전에만 집중할 것’은 인사조차 받지 않는 버스기사의 숨은 사랑법이다.
몸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팔짱 끼고 자신을 부리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생각이나 눈으로는 쉬워 보여도 막상 몸으로 그 기대를 실현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몸으로 하는 일은 제약이 많고 해도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버스기사가 당신의 눈에 못마땅하게 비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사도 그걸 잘 알기에 사실 당신의 평가에 별 관심이 없다. 머리로는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어도 실제 손으로는 그릴 수 없다. 왜 동그라미를 그렇게밖에 못 그리느냐고 별소리를 다 해도 우리는 그냥 우리 할 일 한다.
중년의 봄은 애도의 봄인 듯하다. 생의 중심에서 아직 어린 마음이 어른 노릇 하기가 쉽지 않다. 몇 번 보지도 못했는데 마당의 매화나무에 꽃이 다 져 있다. 눈물을 콕콕 찍으며 집을 떠나는 어머니 뒤로 어머니의 다섯 평 텃밭이 더욱 작아 보인다.
가만히 있어도 화난 얼굴이라면 늘 웃는 수밖에 없다.
“삶이 예술이 된 뒤로 그토록 밝히던 돈 생각이 잘 안 나는 것도 신기하다”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데 요즘도 시를 쓰느냐고 묻는 페이스북 지인에게 정확한 답을 못 하고 얼버무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 "요즘도 시를 쓰냐고?" 사실은 한때 깊은 우울증에 빠져 습작 몇 편 쓴 것이 전부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시를 쓰려고 애쓰고 있다.
행선 안내판을 아예 볼 생각도 않고 “중앙시장 가요”하고 묻는다. 하루는 할머니 한 분이 뭣이 그렇게 급했던지 한참을 말을 더듬다가 “거시기 가요?” 그러시기에 (거시기는 보나 마나 중아시장일 테니까) “예, 거시기 가요!”라고 큰 소리로 익살스럽게 답을 해서 버스가 뒤집어진 적이 있다.
나는 스스로가 무척 경우 있고 예의 바르다고 자부하면 산다. 걸핏하면 경우 없는 꼴은 절대 못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의식은 달라 보인다. 버스 운행할 때 승객의 사소한 실수나 경우 없음에도 자주 속앓이를 하는 걸 보면 스스로에 대한 많은 의문이 든다.
남은 생도 상처 깊은 어린 나랑 함께 해야 한다. 귀찮고 구리다고 그냥 덮어버리면 흥미진진한 내면의 모험도 끝이 나고 화석처럼 늙어갈 것이다. 상처 깊은 어린 나를 잘 보살피고 잘 키워내야만 가슴까지 아름다운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융의 말대로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되어 인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파랑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 수시로 감사하다 고맙다 소리를 듣는 직업이 있고 / 할 일 없이도 마냥 걸을 수 있고 / 언제든 책도 보고 글도 쓸 수 있다 / 나에게 오는 길 / 얼마나 헤매었던가 /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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