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생이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흐름출판, 2021
지난번에 산부인과 전문의 선생님의 글을 읽었었다. 이번에 암 전문의 선생님의 글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암이라고 하면 불치의 병으로 생각했다. 저의 주변에도 암이 피해가지 않았다. 아버지와 장인께서도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큰 형님을 폐암으로 고생하셨다. 가족 중에는 갑상선암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친구들 중에 위암 환자들이 특히 많고, 얼마 전 대장암을 이겨내고 5년 이후 완치판정을 받은 친구와 대장암으로 삶을 달리한 친구의 부인도 있다. 나의 베프는 지금도 위암을 이겨내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 아직도 다 이야기하지 못한 주위에는 수많은 암 환자들이 있다. 그 가운데 나도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리라.
우리사회에서는 의사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다. 돈을 잘 벌기도하고 엘리트 집단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문직이기 때문에 정년이 없도록 오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의사란 직업만큼 3D 직업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전문의가 되는 과정까지의 길도 결코 쉽지 않지만 전문의가 되더라도 결코 만만하지 않다. 전문 분야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야간이나 휴일에도 결코 편히 쉴 수 없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지만 항상 좋은 결과만 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의료 분쟁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의료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내가 최선이 방법으로 취했는가에 대한 자책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특히 암 환자들은 치료의 목적이 아닌 생명연장의 목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바라봐야하고, 완치되지 못하고 퇴원해야 하는 경우를 맞닥뜨려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게다. 암병원 종양외과 전문의 이야기라서 대부분 암 환자를 수술로 치료하고 대부분 완치된 이야기 인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다. 정말 간혹 완치된 환자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완치 환자의 이야기도 많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을 자꾸 하게된다. 친구들끼리 만나거나 전화를 하게 되면 아직은 건강하다던가, 아직은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아직은 이다. 요즘들어 부쩍 죽음에 대한 책들을 자주 읽게 된다. 죽음에 대한 책보다는 죽음을 아름답게 맞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책들이다. 이 책들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비슷하긴 하지만 사실 어느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간단하게 ‘웰다잉’ 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놓게되는데 그나마 그 단어를 생각하면 내 인생의 마무리를 한 번쯤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에도 정리에 대한 글이 있다. 책상 정리를 하듯이 집을 치우듯이 평소에 정리해둬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평상시에 이렇게 정리를 해 가야 한다는 뜻일 게다.
‘오늘 누군가의 죽음은 내일의 내가 닿을 시간이고, 어떤 죽음들은 분명히 아직 남아 있는 이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한다.’라고 했다. ‘당신의 남은 날은 이제 ㅇㅇ입니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이 온다면. 나는 이 책을 읽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저자 소개
김범석
서울대학교 암 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항암치료를 통해 암 환자의 남은 삶이 의미 있게 연장되도록 암 환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내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친 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에서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상교수로 근무하고 있으며, 미국임상암학회, 미국암학회, 유럽종양내과학회, 대한항암요법연구회, 대한종양내과학회 등 여러 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3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을 받았으며 《에세이문학》을 통해 수필가로도 등단한 바 있다. 저서로는 《진료실에서 못다 한 항암치료 이야기》 《천국의 하모니카》 《항암치료란 무엇인가》 《암 나는 나 너는 너》 《암 환자의 슬기로운 병원 생활》이 있다.
독서메모
기본적으로 인간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놀라울 만큼 늘어났다. (…) 이렇게 삶의 시간은 더 주어지는데 이 늘어난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쓰고 있을까? 인생에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환자가 의사를 먹여 살리는 셈이고, 때로는 환자가 의사를 치료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만나온 환자들의 선택이, 그들이 꾸려가는 시간이,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내게는 반면교사가 되기도 했고 정면교사가 되기도 했다. 내가 만난 환자 들은 삶과 죽음으로 살아 있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생의 숙제를 푸는 것 같았다. 그들이야말로 나의 선생님이었다.
오늘 누군가의 축음은 내일의 내가 닿을 시간이고, 어떤 죽음들은 분명히 아직 남아 있는 이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한다. 뜻하지 않게 자신이 떠나갈 때를 알게 된 사람들과 여전히 떠날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나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누군가의 어제는 우리의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오늘은 또 다른 이의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모두는 이어져 있다.
“선생님, 돈은 상관없으니 예전에 썼던 그 항암제를 다시 써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돈’이라는 단어에 내 마음이 삐걱댔다. 돈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겠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돈이 많으니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일까? 그것ㄷ 아니면 죽기 전에 쓸 ㅅ 있는 돈은 다 쓰겠다는 건가. 어느 쪽이든 그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다.
장애물이 있으면 어떻게든 치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삶.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존재 이유를 찾는, 앞만 보며 이 악물고 달려온 삶. 그에게 삶은 열심히 싸워 야만 하는 투쟁의 장이 아니었을까? (…) 나중에 호스피스 실을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떠났을지, 가족들의 외면 속에서 쓸쓸히 떠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켜봐왔던 그의 삶을 생각해보면 후자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죽은 뒤에 혹시라도 그를 다시 만난다면 꼭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까?”
세상에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연이 있다. 부부는 이혼하면 남이라지만 형제는 서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피가 섞인 사이다. 부부가 의복과 같다면 형제는 수족과 같다. 지구상의 50억 인구 중 유일하게 서로 같은 뱃속에 머물렀던 존재는 부정한다고 부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종양내과 의사이다 보니 삶의 마지막을 목도하는 일ㅇ ㅣ많고 마주하는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그 환자 이전에나 이후에도 환자의 가족들이, 주변인들이 돈 때문에 다툼하는 꼴을 적잖이 봐왔다. 그럴 때면 가끔 그 병실에서 환자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2억 갚아라.”라고 말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역사책에 나올 법한 위인도 아니고 언론에서 칭송받을 만한 이력이 있는 분도 아니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평범한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누구보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일, 느닷없이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이고 본인 몫의 남은 삶을 평소처럼 살아내는 일. 누군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지켜본 그 노년의 환자는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분이었다. (…) 할머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특별했고 보통 사람이지만 위대한 사람이었다.
내가 목격한 수많은 혈연관계도 참담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 때면 생각 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첫 문장은 옳다고. 누군가에게 가족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짐이자 삶을 옥죄는 족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암 환자도 사후에 뇌 기증만큼은 아무런 제약 없이 할 수 있으니 사후 뇌 기증은 굉장히 소중한 프로그램이다. 어쨌든 의사조차도 낯선 사후 뇌 기증을 팔순의 환자가 미리 신청해두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굉장히 놀라웠다. 아마도 그는 장기 기증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을 것이고 암 환자의 장기 기증이 불가능 하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방법을 찾아본 끝에 이 사후 뇌 기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선택 하나만으로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얼마나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거쳤고 준비를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무리수를 쓰며 항암치료를 해서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순리대로 살다가 때가 됨ㄴ 돌아가겠다는 생각 자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가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것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그 같은 결정이 대부분은 확고한 가치관이나 인생관에 의해 내려진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의사로서의 경험으로 볼 때 80퍼센트 이상의 환자들이 나중에 다시 항암치료를 하겠다고 마음이 바뀐다. 특히 암이라고 진단받을 당시에 불편한 증상이 없는 환자들이 대부분 그런 편인데, 이런 화자들은 시간이 지나 힘들어지면 찾아와 항암치료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럴 줄 몰랐다는 것이다.
어차피 맞을 비라면 맞으면서 걸어가는 것이 낫다. 물론 걷다가 돌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가시덤불에 긁힐 수도 있다. 그러나 비를 피할 만한 장소를 마주칠지도 모른다. 혹은 비를 가려줄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갑자기 내린 비와 그 길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여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내공이라는 게 생긴다.
“자, 당신의 남은 날을 ㅇㅇ입니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물론 이 문제를 다 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빈칸으로 남겨두기에는 아쉬운 일이다.
의사는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같은 설명을 거듭해야하니 힘들고 환자 상태를 뒤늦게 알게 된 가족들의 방응은 때로 당혹스럽다. 반면 환자나 보호자는 의사가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의사의 말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렵고, 다른 가족들 역시 이왕이면 담당 의사에게 설명을 듣고 싶을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해보면 의사가 여러 번 설명해야 하는 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버티는 환자들을 지켜보다 보면 ‘죽을 용기’라는 말에 동의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로 용기라는 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가 아니라. ‘결국 죽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날들을 버텨내고 살아내겠다’는 의지에 가까운 살아내는 용기였다. 그리고 S는 내가 아는 어떤 환자보다도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살이라니.
어차피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라면 임종이 지연될 때 대답할 수 없는 환자에게 묻고 싶어진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지. 알 수만 있다면 알아내서 그 바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평탄하지 않았을 삶과 지난한 투병 끝에 떠나는 길만큼은 가능한 한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의사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 환자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섰을까? 끝내 아이들을 보고 떠났으니 아쉬움이야 덜었겠지만 남은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버리지 못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인데 죽은 사람이 귀신처럼 다니는 거다 생각하니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예전에는 택시를 몰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사람을 보면 ‘지랄 지랄’ 욕을 한 바가지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그러려니 내버려둬요. 갑자기 껴들든 말든 그래봐야 한 5분지나면 어차피 잊어버리고 신경도 안 쓰게 되거든요.
나 죽으면 내 제사 때문에 애들이 계속 싸우겠구나 싶더라고요. 살아서 잘해준 것도 없고 물려줄 재산도 없는데 죽고 나서도 애들 힘들게 하면 내가 나쁜 놈이죠. 그래서 저희는 명절 때 제사 안 지내고 그냥 놀러 다녀요. 그러니까 다들 좋아해요. 명절 때 더 열심히 와요. 올해는 어디로 놀러갈지 지들끼리 계획해서 와요. 비용은 똑같이 나눠서 N분의 1이에요. 사실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구경하며 지내기에도 인생이 짧거든요, 구론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싸우면서 지냈는지 모르겠어요.
전자 제품에 리셋 버튼이 있듯이 가끔 우리 인생에도 리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인생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 버튼을 누르고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주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많은 환자를 봐야만 하는 의사에게는 0.1퍼센트의 예외적인 특별한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0.1퍼센트의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두 명의 기적적인 치료 결과보다 전체 환자에서 평균적인 치료 결과를 만들어내길 원하고, 그 치료의 평균치가 조금씩 좋은 쪽으로 이동해가길 원한다.
암 투병은 환자도 가족도 모두 지치는 일이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이 이어져가다 보면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랑도 남루해지기 쉽고 희망도 쉽게 잃는다. 어쩔 수 없이 긴 투병의 모든 끝이 상처만 가득한 폐허로 남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니 희망 없는 속에서도 그 사랑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암 덩어리가 줄어든 것만큼이나 기적이었다.
놀랍게도 이 표적항암제가 그녀의 암을 남김없이 죽여 버렸다. 다시 완전 관해. 약값이 1억 원 정도인 고가의 약이었으나 임상시험에 참여한 덕분에 무상으로 약을 제공받아 약값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잴코리라는 표적항암치료제가 악성림프종에 그렇게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젤코리는 의학교과서를 바꿔놓은 치료법이 되었고 논문도 출판되었으며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핏줄은 하나같이 나를 괴롭혔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세상이 마냥 더럽고 험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세상에는 그래도 아직 온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핏줄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배웠다. (그것은 내가 살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 중 하나다.)
잔인한 생의 굴레가 또 누군가를 얽매지 않기를 바라지만 대자뷔 같은 느낌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잔인한 생도 생이어서 멈추지 않고 굴러간다는 점이다. 내 경우에도 돌아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그 굴레가 어느 순간 느슨해졌고, 이제는 그 흔적을 쓸어보며 그때만큼은 아프지 않게 되었다.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일은 부모로서 결코 담담해질 수 없는 일이다. 암 병원에서도 이런 일은 드물지 않다. 암 환자라고 하면 나이 든 중년, 노년의 환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암은 나이를 가려 덮쳐오지는 않는다. 당연히 어리고 젊은 암 환자들이 많고, 그중 에서는 완치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결국 그 부모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요구르트 아저씨를 볼 때마다 진정한 긍정은 결과물이 아니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며 천천히 스며드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태도 안에 있는 것임을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나의 요구르트 아저씨에게서 진짜 긍정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있다.
메멘토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고 살라는 말이다. 어쩌면 사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할 때에도 그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살면서 가끔씩 그 말을 기억한다면 그 두 사람처럼 남은 날들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600명 중 한 명’이라는 말이 내 머리에 깊이 박혔다. ‘600명 중 한명’과 ‘단 한 사람’, 이것이 그가 느낀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간극일 것이다. 생사를 다투는 암이라는 절박한 병 앞에서 그는 의지할 곳을 찾아야 했고, 그에게 나는 흰 가운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가 느끼기에 나는 600명의 신도를 둔 교주와 같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날 나에게 ‘600대1이라는 불균형’과 ‘600대1 이라는 거리’를 일깨워주었다.
별을 헤아리는 일을 하던 그는 2019년 4월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밤하늘의 별을 볼 대마다 이제야 그와 600대1이라는 관계에서 일대일의 관계가 된 것처럼 느낀다. 멀어 보여도 멀지 않은 것처럼.
가족을 환자 대하듯이 하지 않고 당연히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지도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말이다. (…)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는 의사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환자는 실제로 의사의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 의사가 자신의 환자 전부를 가족처럼 여기면 그 의사도 버티지 못한다. 가족 한 명만 아프거나 생을 마감해도 남을 가족들은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만약 누군가가 가족이 600명이고, 그 모두가 아프거나 그 모두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 사람은 필시 미쳐 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의사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 환자와 적절한 거리를 찾는다. 그것이 사람들이 바라는 가족 같은 의사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환자와 의사를 떠나 서로 다른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본디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너의 상황을 짐작해보건대 너는 아마도 이럴 것이라고 짐작 한다’는 선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고, 완벽히 같은 상황과 처지에서의 똑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무모하게 무턱대고 맞서 싸우기보다는 전략을 바꾸는 게 낫다. 이길 수 없다면 지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이다. 끝까지 버틴다는 정신으로 버티다 보면 때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도 한다. (…) 이때 지지 않고 버티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갖춰야 할 것이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나도 때로는 파비우스와 같은 전략을 택한다. 암세포가 싸움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런 때에 종종 최대한 시간을 끌며 버틴다. 종양의 크기가 어떻든 간에 장기의 기본적인 기능이 유지되도록 하는 데 집중한다. 환자가 좀 더 오래 숨 쉴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아프지 않도록 만든다. 정면승부를 피하고 버텨보는 식이다. (…) 이 같은 전략의 목적은 암이 자라는 것의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환자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기에 이 작전도 언젠가는 무의미해질 테지만 적어도 독한 항암치료로 힘든 상황은 피할 수 있고 나름대로 삶의 질도 유지할 수 있는데다가 버티면서 시간을 벌 수도 있다.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으로 환자가 다른 유용한 일을 하도록 독려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항암치료를 이어가는 데는 또 다른 요인이 뒤섞이기도 한다. 항암치료 중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은 시간도 에너지도 많이 드는 일이지만 병원 수익 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항암치료도 하고 CT 검사도 하고 여러 의료 행위를 하면 병원에 수익이 발생하지만 나쁜 소식을 전하고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병원에는 0원의 수익이 발생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암 환자들이 사망 2주 전까지 항암치료를 받는 것은 여러 요인들이 얽힌 결과다. 나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경우에 환자들에게 가능한 한 일찍 말하려고 한다. 어떻게 두 달 만에 삶을 정리하느냐는 그 환자의 말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이해할 수 없는 내 몫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다. 그 같은 슬픔은 타인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이 그들의 잣대로 규정짓고 재단하려 할 때 슬픔을 견뎌야 하는 사람에게 더 큰 슬픔이 되곤 한다. 아버지를 잃는 것도, 아버지 없이 홀로 신부 입장을 해야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딸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 슬픔은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다.
“여호와의 증인으로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가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하는데, 출혈이 클 것으로 예상하는 수술이다. 수혈을 하면 환자는 살 수 있는데 환자가 수혈을 거부한다. 생명의료 4대 원칙에 입각해서 생각해볼 때 당신은 담당 의사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 환자 몰래 수혈하며 수술을 할 것인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은 열심히 대답하며 토론을 했다. 어느 정도 결론이 모아지는 것 같으면 이어서 또 다른 질문을 했다. “부모가 여호와의 증인이고 아이가 다섯 살인데 부모가 아이 수혈을 못하게 한다. 이때 당신은 담당의사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 “부모는 여호와의 증인이고 아이는 신도가 아니다. 아이가 17세로 스스로 판단이 어느 정도 가능한 나이인데, 민법상 미성년자이고 수술 및 수혈의 동의서는 부모가 써야 한다. 부모는 17세 아이에게 수혈하는 것을 반대한다.~” ( 지난번 읽었던 박경철 작가의『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서는 의사가 여호와의 증인인 사례가 실려 있었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런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하나? 이 어려운 상황을 의사에게만 결정하라고 할 게 아니라 재판에서의 판례처럼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종교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명과 비교해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어쩌란 것인지. 나는 지금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런 내 사정을 알리없는 보호자의 말이었지만 아픈 사람을 놔두고 어떻게 휴가를 갈 수 있느냐는 그 말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의사는 쉬지 않고 환자를 돌봐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보호자는 내게 이기적이라고 했지만 이 같은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도리어 사람들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느꼈다.
누군가를 돌볼 때에는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어야 이타적이 될 수 있다. 결국 이기심과 이타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볼 수 있고 스스로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이기심은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보호자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서 나 자신을 보살펴야 하는 스스로의 보호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먼저 돌볼 사람은 나뿐이다.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을 때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과 여력이 생긴다. 이타적이기만 하려다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서 다른 사람도 돌보지 못하는 것은 결코 바람적인 일이 아니다.
2015년에 만들어진 ‘김영란법’은 이런 폐해를 끊어내고자 한 것이지만 어떻게 하라는 행동지침이 되기보다 걸리면 걸리는 ‘걸리버법’으로 전락한 것만 같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정의롭고 좋은, 안전한 나라에 대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제로 정의롭고 안전하고 좋아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자도생의 나라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 스스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던 평범한 사람들의 뼈저린 경험에서 생겨난 말, ‘각자도생’. 내 생존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므로 우리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원래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암 환자인 경우 중환자실에 가도 좋아질 확률이 지극히 낮다면 환자에게 중환자실을 권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번 고비만 넘기면 명백하게 좋아질 여지가 확실하면 일단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보호자에게 통보한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경우가 늘 있다. 지금 당장 중환자실에 가지 않으면 바로 사망하겠지만 그곳에 간다고 해서 다시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그렇다. 이런 때에는 의사도 보호자도 결정하기 쉽지 않다.
“인턴 선생님 … 살살 ….”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눈치 없는 인턴이 최선을 다해 흉뷰압박을 하자 주치의는 적당히 살살 하라고 주의 아닌 주의를 주었다. 어차피 ‘소피알(환자는 가망이 없으나 어쩔 수 없이 보여주기[Show] 위해서한 CPR이라는 뜻)’인데 제대로 CPR를 할 이유가 없었다. 갈비뼈만 더 부러져 봐야 나중에 가족들 보기에 좋지 않았다.
모두들 보호자와 가족들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호자가 오면 주치의는 나가서 보호자와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할 것이다. 가족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환자의 죽음을 받아들이면 쇼피알 연극은 끝나고 주치의는 사망을 선언할 수 있다. 환자의 저승 가는 길은 그렇게 힘들고 험난했다. 가족들과 의료진은 환자에게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고 환자는 너무 힘들게 저승길로 떠났다. 나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자꾸 되묻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하고.
나는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 환자의 산소 공급과 승압제 주입을 중단했고 그는 사망했다. 2018년 2월 이전이었다면 나는 살인자가 됐을 것이고, 2018년 2월 이후라면 합법적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한 의료진이 된다. 행위는 같으나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애매하고 인간의 판단은 인위적이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애매할수록 현장은 혼란스럽다. 법의 모호성은 권력을 낳고 법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법을 논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진정 환자를 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법을 따지려는 이들은 현장에 발들이지 않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법이라는 이름으로 심판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책상머리에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현장에서는 늘 일어난다. (나는 연명치료 중단을 원한다. 그러나 아직 서명은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모인 곳에서는 가끔 하는 이야기이지만 가족들은 아직 먼 이야기로만 듣는다. 막상 닥치면 어떤 행동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다시 이야기 하지만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 이 결심이 바뀌지 않기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것이 병원과 의료진의 존재 가치의 근간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을 공공재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병원은 기업이기도 하고 의료진 역시 일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병원도 수익이 있어야 유지가 되고 그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 역시 수익 구조 바깥에 있지 않다. 내가 3시간 안에 외래를 봐야 하는 환자가 40명인 것도 그 이유에서 벗어나지 않고 ‘시속 10명’은 되어야 겨우 수지 타산을 맞출 수가 있다. 때때로 나는 인건비 개념이 없는 우라나라에서 의학적 설명은 공짜이고 CT검사에 끼워 파는 미끼 상품 같다고 느끼곤 한다.
환자나 보호자도, 의사도 컨베이어벨트처럼 3분에 한 명씩 진료실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을 당연 하게 여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주어진 짧은 시간이 끝나면 울고 있는 환자를 보호자가 끌고 나가고, 밖에서 울음소리는 새어 들어오고, 그 옆에서 오래 기다린 대기자들은 화를 내는 이상한 현실을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는 슬퍼하거나 울 수 있는 권리가 없는 걸까? 이 공장식 박리다매 진료에서 마음껏 울 수 있는 권리를 논한다는 게 과욕인 걸까? 이 시스템의 변화는 불가능한 걸까?
미사(未死). 아직 죽지 않은 자. ‘살아 있는’ 보다 ‘아직 죽지 않은’ 편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길고도 무겁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교수님은 매달 확연히 달라졌다. ‘꺾어지는 팔십’은 다른 숫자들에 비해 무겁고도 빨랐다. 그러나 가족들이 느끼는 변화의 시작은 10년 전이었다.
효도는 이상이고 도덕은 뜬구름이지만 현실은 돈이다. 앞으로도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흔이 다 된 치매 아버지와 여든 중반의 치매 어머니의 병수발을 해야 하는 예순의 노인의어깨는 너무 무거워 보였다. 그것은 그가 반드시 짊어지고 가야하는 무게라기보다 마치 누군가가 얹어놓은 무게 같았다.
자나간 1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환자가 된 그 교수님이 아직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던, 여든 초반에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참 멋진 사람으로 기억했을 텐데. 10년의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생각해보면 마음이 어지러웠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생명은 고귀한 것이라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기는 쉽다. 입으로 도덕을 외치고 윤리를 말하는 일도 참 쉽다. 똥 치우며 병수발하고 비용 부담하긴 어려워도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정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만 있을 뿐 인간다움을 완전히 잃는다면 그때에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혹 당신이 그런 상황이 된다면, 혹은 인지 기능 없이 단순히 숨만 쉬는 상태가 된다면 그런 상태로 몇 년 더 사는 것을 간절히 원하게 될까?
첫 만남, 첫사랑, 첫눈, 처음 학교 가던 날, 첫 월급 …. 우리는 대부분 첫 순간을 잘 기억한다. ‘처음’의 순간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분명하고 저마다 거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마지막’은 잘 모른다.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음은 늘 지나서 깨닫기 때문이다.
내가 목격한 마지막 뒷모습은 때로는 정리되지 않은 돈이었고 사람이기도 했는데, 그것들은 대체로 시끄럽고 혼란스럽게 뒤얽혀 고인에 대한 슬픔을 넘어 분노로, 지리멸렬함으로 끝나고는 했다. 고인이 정리하지 못한 관계들이 남아 있는 이들을 괴롭게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결국 지켜보면 무엇이든 간에 정리되지 않고 남은 것들은 대개 아름답게 기억되지 못할 것들이었고, 남은 사람 들이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고인의 뒷모습으로 남았다. (이렇게 자주 마지막에 대한 책들을 읽는데도, 마지막에는 나는 잘해야겠지 정도만 생각하고 끝이다. 언제나 제정신이 들려는지. 정망 웰다잉을 할 수 있을지 오늘도 고민한다.)
그래서 그렇까? 나는 종종 그조차도 책상 정리를 하듯이 집을 치우듯이 평소에 정리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흔적들을, 나의 관계들을, 나의 많은 것을 오늘 집을 나서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여기고 지금의 내 흔적이 내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덜 어지르게 되고, 더 치우게 된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서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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