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진보적 노인』(나는 58년 개띠'끝난 사람'이 아니다.), 이필재, 몽스북, 2021

그루 터기 2022. 2. 25. 00:39

진보적 노인(나는 58년 개띠'끝난 사람'이 아니다.), 이필재, 몽스북, 2021

 

정치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책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좀 많았다. 진보적인 노인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인데. 그래도 별로다. 이 책을 고를 때 나는 58년 개띠라는 부제목의 일부가 맘에 들어 선택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애환이나 실용서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끝까지 다 읽었다. 그래도 전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긴 진보적 노인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런 예가 당연히 필요할거다. 사회지도층의 작가에게 진보나 보수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내용이 많았으면 했었다. 아쉬움이 있지만 작가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냥 덮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책의 마지막이며 에필로그의 마지막에 있는 내용에 마음을 녹여본다.

무엇보다 진보적 노인은 시대정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연대 아닐까? 배려와 연대야말로 진보주의자들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저자 소개

이필재

58년 개띠 서울촌놈이다. 코로나19가 덮칠 무렵, 집 장만을 위해 62년간 살아온 서울을 떠나 녹지가 많고 카페 거리가 있는 경기도 별내에 정착했다. ‘뺑뺑이’ 1회로 서울고를 나왔고 연세대와 이 대학 대학원에서 언론을 학으로 공부했다. 중앙일보에 입사해 편집국을 거쳐 시사 잡지에서 일했고 2013년 가을, 쉰다섯에 정년퇴직했다. 이후 8년째 프리랜서로 배운 도둑질을 하는 한편 한국잡지교육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 모교 등에서 이런저런 강의를 한다. 일곱 권의 인터뷰집을 포함, 지금까지 총 아홉 권의 책을 냈고 생애 처음으로 자시의 이야기를 책으로 ᄊᅠᆻ다. 진보적 가치관을 고수하며 원칙주의자로 살아온 그간의 삶과 철학을 담았다.

 

 

독서 메모

 

정년 퇴임식은 살아생전 치르는 장례식이다. 일본 작가 우치다테 마키코의 소설 끝난 사람의 주인공은 정 년퇴직 날 이렇게 내뱉는다. "이건 완전 생전 장례식이구먼."

 

지성인의 기본 예의 : 네이버,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고 안 나오면 물어본다. ㅋㅋㅋ 현대 한국에서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네이버 유튜브 검색도 안 해보는 것은 죄다. 그들이 자녀보다 똑똑하고 친절한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다운 충고다. 나는 네이버를 백과사전으로만 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집단 지성의 보고로 인식하지 못했다. 유튜버이기도 한 딸은 "60대들이여, 네이버와 유튜브를 가까이하라 "는 가르침으로 지적질을 마무리했다.

 

남자도 때로는 우울할 수 있다. 힘들 땐 힘들어해도 괜찮다. 남자라고 센 척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남자도 슬프면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건 여자가 그렇듯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신부이자 작가인 헨리 나우웬은 우리가 사랑하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많은 눈물이 있을 것이라고 썼다. 이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시대에 어찌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는가?

 

나는 이성애자가 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태어나 보니 남자였을 뿐 남자가 되려고 노력한 일도 없다. 이런 생득적生得的 지위는 출생과 동시에 얻는 귀족 신분이나 다를 게 없다. 동성을 사랑하도록 태어난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서는 남자가 최고의 스펙이다." 2017년 생전의 노회찬 의원이 '82년생 김지영 대담회'에 참석해 한 말이다. 성차별적인 문화, 관습 제도와 유형·무형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남자가 스펙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려면 딸 둔 남자들이 앞장 서야 한다.

 

이어서 든 생각은 이 웅장한 건물에 과연 하나님이 계실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의 메가 처치 (대형 교회)들이 언젠가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처럼 텅 빌 것으로 본다.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는 있는지 모르겠다.

 

"나이를 드는 것의 장점은 당신이 뒤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과 여러 명의 대통령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지만,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애 쓴다. 따라서 진보는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이를테면 바보 같은 사람이다.

 

제때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고 피해자인 양할 수는 없다. 배우지 못했다고 면책되는 건 아니다.

 

86세대 정치인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세대 집단이다. 역사상 어느 세대보다 정치적으로 과잉 대표되 고 있다. 운동 경력은 이들에게 세월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훈장이다. 이렇다 보니 홍세화 씨의 지적대로 윤리적·지적으로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싶다.

그러니 교육의 평등을 외치면서 이들도 자식을 특목고에 보냈다. 해외 유학도 보냈다. 부동산 투기를 죄악시 하면서도 보수 기득권층이 그랬듯이 아파트를 여러 채 보유했다. 역대급으로 이중적이면서도 스스로 성찰하 지 않았다. 교조주의적 운동권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미국 리버럴이 1990년대 탐욕과 무절제에 빠져 트럼프라는 괴물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성찰 없는 능력주의는 세습주의를 낳는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 세습화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들은 자신들이 쌓은 운동 경력을 이 사회의 공공재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무엇보다 반대 정파를 적폐로 몰아 한국 사회를 분열시켰다.

 

젊어서 진보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 먹고도 보수가 안 되면 머리가 없는 것이란 말이 있다. 이 잣대를 들이댄다면 난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난 나이가 들면 오히려 진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적 삶은 이 시대의 대세인 신자유주의적 규범에 저항하는 것이다.

 

나는 낀 세대이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첫 세대. 누군가는 말초(末初) 세대라고 부른다. 우리 세대 중 누가 자식의 봉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같이 살 맘도 없지만. 노후에도 경제력을 유지해 자식과 따로 사는 게 답이다.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촌지를 받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잘나가는 기자는 내 의지만으로 안 되지만 깨끗한 기자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이 결심을 지켰다. 그러느라 여러 번 실랑이를 했다.

 

똑똑하고 게으른 지도자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 자신의 저서인 <초격차>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주장한 리더십 스타일이다. 최악의 리더는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멍부형이다. 멍청해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도 부지런하기에 바로 실해에 옮겨 결정을 바로 잡을 기회조차 무산시키기 때문이다.

 

"머리로 아는 것, 가슴으로 아는 것, 근육으로 아는 것이 다 다르다."

머리에 머무는 건 단지 지식일 뿐이고 공감을 할 때 비로소 가슴으로 알게 되죠. 그런데 스스로 근육을 움직여 행동으로 옮기는, 딱 그만큼이 바로 나입니다.

 

김형석 교수는 고령에도 사람들 이름을 줄소환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항상 문제의식을 갖고 살다 보면 기억력을 유지하게 된다.”고 그가 말했다. 버킷 리스트가 뭐냐고 물었다. “지금 하는 집필과 강연을 죽을 때까지 하는 겁니다.” 나도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눈감고 싶다. 직업적인 글쟁이에겐 현장이라고 해봤자 책상머리이다.

 

오팔(OPAL)세대. 보석 오팔을 연상시키는 이 말은 활기찬 2막 인생을 사는 5060 신노녀층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당시 그는 흔히 낀 세대로 통하는 오팔 세대를 말초末初 세대라고 불렀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으로부터 부양을 기대 할 수 없는 첫 세대라는 의미였다. 지금 내가 딱 그렇다.

 

말초세대 3대 바보도 인상적이었다. 손자손녀 봐주느라 스케줄 변경하는 사람, 사식에게 재산 물려주고 용돈 타 쓰는 사람. 출가한 자식이 방문했을 때 자고 갈 방이 필요하다고 집 늘려 가는 사람. 말초 세대가 빠질 수 있는 3대 착각이다.

 

와인 잔은 가득 채우지 않아요. 자리가 무르익고 와인병이 차츰 비어갈 때 그 빈 공간에 상상으로 채우게 되죠.”

 

2015년 유엔은 평생 연령 기준을 대폭 높여 파격적인 제안을 내 놓았다. 18~65세를 청년, 66~79세를 중년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노년은 80~99, 100세 이상을 장수 노인으로 분류했다.

 

아이들이 결혼할 때 얼마간 보태느니 나중에 손주 용돈을 주는 게 낫다고 얘기한다. 최악은 노인 빈곤에 빠져 자식에게 손 벌리는 것이다. 그 손을 잡아 줄 수 없다면 자식은 또 얼마나 괴로울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가까이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여행이 길 위에서 하는 독서라면, 독서는 책상에 앉아 떠나는 여행이다."이 이야기에 생각대로 클릭하지 않으면 클릭하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인다.

 

우선 뉴닉은 3인칭 대명사를 그녀를 구분하지 않고, ‘로 통일해서 쓴다. 나도 언젠가부터 인터뷰 기사에서 여성 3인칭 대명서도 라고 쓴다. 낙태 - 임신중단, 저출산 - 저출생, 유모차 - 유아차,

 

나는 왕 꼰대가 되고 싶지 않은 소심한 꼰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꼰대 지수 같은 게 있다면 또래보다는 낮을 거라 자부 한다. “개그를 다큐로 받지 말라.”는 말을 가끔 하지만, 내가 웃자고 한 이야기에 열 받아 누군가는 죽자고 달려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때로는 내 생각일 뿐일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건 젊은 사람들의 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노인은 자리를 양보 받고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맙다는 말도 안 해요. 자존감이 낮으면 남을 배려하는 힘도 달립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세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거절당할 용기, 상처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용기, 남의 장점에 직면할 용기다. 인간으로서의 성숙도를 떠나 이런 용기를 내는 게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리라.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다른 사람에게서 장점을 발견해 내는 것이 성공이라고 읊었다.

 

우리 삶을 옥죄는 건 각종 욕구와 두려움이다. 나는 평생 인정 욕구와 비난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려 살았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의 아버지는 아들을 상대로 인정 투쟁을 벌인다.

 

진보가 기득권 수호적 처신으로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지만 약자 지향성마저 잃지는 않았다.() 진보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약자를 보호하는 건 우리 사회의 쇠락을 막는 길이다.

 

진보 세력은 더 이상 도덕적 우위에 있지 않다. 사실 기득권 세력이 되면 기득권에 안주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들 수밖에 없다. 인지상정이다. 보수주의자가 그렇듯이 진보주의자에겐 오직 진보적 의제가 있을 뿐이다. 박원순 시장의 자살은 이런 생각을 더 굳히게 만들었다.

 

좌충우돌하던 그 시절, 우리 동아리의 지도 목사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옥에 갔다"고 얘기한 일이 있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 치기 넘치던 시절의 나는 이렇게 받아쳤다. 성삼문이 지옥에 갔다면 저도 지옥에 가 성삼문 옆에 거적때기 깔고 앉아 있겠습니다." 성삼문은 과연 지옥에 갔을까? 이 의문을 대학 후배이자 신학대 교수인 다른 목사가 풀어줬다. 자신도 이의 문에 빠졌었고 그래서 의문을 풀려 신과대에 진학했다는 그에게 유동식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200여 년 전 선교사 등에 업혀 이 땅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무릎을 칠 만한 명답이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비문이다.

 

부부가 등 돌리고 누우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옆에 누운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누가 세계 일주를 하나. 상대가 등을 돌릴 때 엄습하는 배우자와 단절된 느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나는 딸깍발이 기자로 살다 55세에 정년퇴직했다. 퇴직한 지 만 8년째.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다. 얼마 전 나는 아내에게 필요를 채워주고 자유를 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진심이었다. 사실 그것 말고는 딱히 줄 수 있는 게 없기도 했다.

 

나는 인생도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중심 잡고 나름대로 살아갈 뿐이다. 어차피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그러니 정답을 찾고 정답대로 살려 애쓰는 건 '파랑새'를 찾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100~120세를 자기 수명의 디폴트값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김용태 마케팅연구소장은 주장한다. 60대면 비로소 반환점을 돈 셈이다. 올해 102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고 말했다. 60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라고 덧붙였다. 나를 믿어야 행복하다고 부추겼다. 이 믿음이 지나치면 진보 아재보수 노땅이 되기 십상이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는 둘 다 청년을 가르치려 드는데, 진보 아재의 설교는 거짓 위선으로 비치고 보수 노땅의 훈시는 아예 헛소리로 들린다.”고 칼럼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