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땅콩일기』, 쩡찌, 아침달, 2021

그루 터기 2022. 2. 28. 20:08

땅콩일기, 쩡찌, 아침달, 2021

 

작년 12월 말에 예약했다가 두 달 가까이 기다림 끝에 빌려온 책이다. 뭔지는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기 있는 책이기에 기대를 했다. 만화였다.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다르고, 만화책이라고 하기에는 느낌이 좀 다르고, ! 뒷 표지 추천글에서 그림에세이라고 표현했네요. 글로만 읽던 에세이를 그림으로 같이 읽으니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인데도 금방 읽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피해갈 수 없는 희노애락과 우울을 순간순간 풀어나간 글과 그림들. 가끔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읽혀졌습니다.

마음의 냉장고를 읽을 때 쯤에서야 이 책이 우울증이 있는 작가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냉장고(마음)를 열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작가의 마음이 전해졌다. 작년에 우울증에 관한 책들을 꽤 여러 권 봤다. 볼 때마다 우리주변에 꽤나 많은 분들이 계신다는 것과 내 가까운 사람 중에도 힘들어 하시는 분이 있다는 걸 또 느낀다. 오랜 시간 치료가 필요할 것 같지만 말하지 조차 조심스러운. 본인은 치료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정도의 우울증. 혹시 나도 지금 그런 상태가 아닐까? 선 듯 병원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작가는 마지막에 행복을 책을 마감했다. 행복에 칭찬을 더해서. 그래 우울은 마음이 잠시 길을 잃은거다. 행복이 그 길을 안내할 거다. 칭찬으로 마무리하면서

 

 

저자 소개

쩡찌

일러스트레이터.

돈과 명예가 갖고 싶습니다.

 

 

 

독서 메모

 

열 입곱의 땅콩. 취미는 배드민턴. 특기는, 언젠가 생기지 않을까?! 때때로 볕 좋은 날에 운동장이나 교실 창가에서 광합성이라 부르는, 한가한 볕쬐기 시간을 가지곤 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여느 날처럼 광합성을 하다가 문득 이렇게 좋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 것 아닐까? 어른이 되어서 광합성을 또 하더라도 지금 열일곱의 광합성과는 다른 거니까 지금 이 순간의 감정, 이 햇빛의 양, 지금 이 온도, 바람 같은 건 다시는 만날 수도 느낄 수도 없겠지. 볕이 운동장에 놓인 모든 사물을 반사하면서 빛나는 광경을 보며 한동안 서글퍼했던 기억이 난다.

 

남이 나를 좋아하면 너무 좋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거랑은 다르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건 든든히 옷을 껴입는 일이지만 남이 나를 좋아하면 달려가 안길 수 있다. 체온이 옮아 붙는, 순식간에 따뜻해지는, 나의 안전한 불의 꽃다발.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 만족되지 않는 것은 제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인가요? 인간이 너무하네.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네. 빈 그릇을 들고 태어나버렸네. 너무, 너무하네.

선생님, 저에게는 마음의 냉장고가 있어요. 그리고 불현 듯 떠오르죠. 그럼 아차하면서 이불을 박차거나 이미 컴컴한데도 눈을 가리거나. 아무튼 좀 괴로워져요. 보통은 부정 감정들이라. , 이불 킥이니 흑 역사니 하는 것들이랑 비슷해요. 한 번 뭔가 있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데 그러다 선택의 순간이 와요. 냉장고 문을 열어볼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속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나게 엄청난 것이 들어 있다면?

 

종종 사진 찍기를 부탁받을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오백 장을 찍어버린다. 인물 사진에 서툴러서 꼭 마음에 들게 찍어주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오백 장 전략이 성공하고 있음. 마찬가지로 응원을 부탁받을 때도 나는, 오백 개의 말을 해주고 싶다. 오백 개의 말 중에 네 마음에 들어서, 들어와서, 닿는 그런 말이 있기를 바라며.

 

시를 읽을 때의 나는 선의로 가득 차 있다. 한 번도 악의로 시를 읽은 적 없다. 사랑을 위해 눈 맞음 하듯 이해 없이 좋아하게 된다. 특히 좋아하는 시인은 황인찬(브라질너트) 시인인데 내가 아무 공개된 장소에서나 자기의 시를 읽어도 된다고 허락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한테 계속 살라고도 해줬다. () 그런데 너는 가끔 나를 뜨끔하게 하는 말을 하니까. 절대로 속지 않는 눈을 하니까. 네가 나 대신 나를 다 알았으면 좋겠다. 네가 다 알면서 속았으면 좋겠다. 나 대신 놀랐으면 좋겠다.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선함과 악함을, 그리고 , 마침내 사랑해줘.

 

몬드야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새 접시를 내어줄 수 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새 접시를, 친구에게, 내어주는 사람, 과 친구라는 것이 놀랍고 뭉클했다. 쿠키의 맛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접시의 아름다움은, 친구에게 새 접시를 내어주는 마음은 영영 잊지 못할 것이라고 오래전 일이지만 그때도 이미 알았다.

 

사람을 사귄 일 있어. 애인을. 너무나 사랑하고, 제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조차 제일 좋아할 수 없는 인간인 건 아닐까. () 아무튼 나는 어딘가 결여된 건 아닐까 생각하기는 해.

 

그래도 오늘 하늘 멋졌지. 아직 하늘이 멋지다고 할 수 있는 여유가 나한테 있다니정말 다행이야. 그래몇 개든, 이런 걸 꼭 가지고 있어야 해. 삶의 깨끗한 조약돌 같은 것들을.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해.

 

라일락 향기가 그중 진하기로는 자정 지난 밤 깊은 골목에서 애인을 오래오래 끌어안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 () 호기심 왕성했을 때라 당시 사귀던 애인을 끌고 자정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골목에서 끌어 안아본 일이 있. 물론 라일락 향 같은 건 나지 않았지만 컴컴한 골목 끝.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뺨에 달큰 들러붙은 온기가 어떤 향을 닮은 것 같기도 해서 그냥 그 시를 믿게 된 일이 있다. 그래서 가끔 골목 끝에서 끌어안고 있는 연인들을 보면 라일락 향기를 맡는구나. 하고 지나가게 된다. 라일락의 계절이구나.

 

종일 누워있었다. 요 며칠 상태가 좋다 했더니 마음이 끝없이 떨어진다. 차라리 지옥이었으면 한다. 적어도 지옥에는 바닥이 있을 것 같다. 행복의 언덕은 구덩이가 쌓아 올린 흙더미 같다. 발밑이 흔들린다. 무엇이 진짜일까? 언덕과 구덩이 중 어느 것이 변덕일까? 무엇을 불신해야 할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반드시 나아진다. 내일을 반드시 나아진다. 그런 믿음 하나로. 그래서 오늘의 나는 나쁘지 않았다는 그런 믿음으로 나는 살아있다. 밟고 서 잇다. 그것이 무엇이든.

 

생각해보면 나는 슬픔의 일들 대부분을 하지 못하게 막아왔다. 슬픔이 하려는 일이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슬픔을 마음껏 놔두기로 했다. 아주 감당 못할 것은 아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는 나의 슬픔임은 분명한데 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대체가 괜찮은 건 어떤 상태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슬펐다. 슬픔으로 나는 마음의 모든 깨끗한 조약돌들을 꺼내어 씻으며 그래도 먹었고, 그래도 썼고, 그래도 그렸고, 그래도 사랑했다.

 

근데 안 부끄럽다. 나는 만날 부끄럽고 부끄러운 거 너무 싫은데 아몬드를 향한 사랑은 나 싫은 걸 안 하게 해준다. 걷는데 거리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스? 하면 또 하지 주짓수? 해볼 만하지 은행 강도? 해볼 만하지(하면 안 됨)

 

진심을 사적인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떠라 진심은 진심일 뿐인데. 진심으로 대하면 사적인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고 진심을 부러 잃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건 네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니까. 그 사람들 잘못도 아니고 네 잘못도 아니야. 그렇지만 너를 지키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깊이 찔러오는 사람들로부터 너를 지키자. 받아들이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전부 진심이니까.

 

이유없이 미워하는 게 참 힘은 나는 그렇듯한 이유가 생기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을 미워한다. 미워하며, 미워하는 마음이 주는 고양감을 기꺼이 여긴다. 미워하는 마음은 때로 나를 높은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만 같다. 실제로는 전혀 아니지만. 그래서 나는 미워하는 놀이를 한다. 까짜로, 조금씩만, 우스개로 만들어, 마음은 먹지 말고.

 

뭔가 새해를 맞아 희망찬 얘기 하고 싶다. 근데 그냥 누워 있음 왜냐하면 누워 있고 싶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 있는 새해라 할 수 있겠다.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

11일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11일은 내일부터임. 근데 새해는 왜 달라져야 하지. 나는 안 달라지는 나도 좋아. 달라지는 나도 좋지만.

 

, 나도 사랑해, 너무, 너무, 너무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 내가 오늘 받은 어떤 사라에도 나의 슬픔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네 사랑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마치 사랑이 잘못해서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거짓말을 하고 싶어. 감추고 싶어. 슬픔 같은 거, 네 사랑 덕분에 모두 사라져버렸다고.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꼭 그렇게 이겼다고. ! 하고 웃고 싶어

 

어떤 슬픔은 떠나지 않고 그것이 사랑의 소용 탓이 아님을 알아. 떠나지 않는 슬픔이 있을 뿐이야. 여전히 슬픔도 존재하는 거야. 사랑도 여전히, 여전히 존재 하는거야. 다만 나의 사랑은 슬픔이 아니라 너를 향해 있는 거야. 너의 사랑이 나의 슬픔이 아니라 나를 행해 있듯이.

 

웃긴 이야기를 하나 해 볼까.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거지만. 엄마 나는 목숨에 목숨을 걸었어. 목숨에 목숨을 걸다니 웃기는 일이지. 딱히 목숨 걸 데 없는 건 맞지만 그래서 목숨에 걸은 것은 아냐. 그러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서성이거나, 굴거나. 발견당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할 거야.

 

엄마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는데 행복하데. 우리 딸이 엄마의 행복이야. 엄마는 만족해, 묻지도 않은 만족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다른 행복을 알아서 슬퍼. 엄마가 가게 한복판에서 얌전히 견디고 있을 때 동상을 밟고 담을 넘는 행복을. 쓰고 그리는 행복을, 엄마는 내가 아는 다른 행복을 몰라서 지금이 행복할까 봐 너무 슬펐어. 근데 또 바꿔 생각하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암마와 내 삶이 다른 게 너무 슬퍼. 엄마와 내 삶이 차라리 같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나랑 엄마를 바꿔줄 거야. 이름도 줘버릴 거야. 가진 모든 열쇠와 비밀번호도 줄 거야.

 

의사 선생님한테도 말했다. 선생님 불안해 죽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다시. 죽을 것 같아서 불안해요. 저 좀 도와주세요. 여기까지 오면서 벌써 세 번은 죽었다고요. 인도에서, 지하철에서, 병원 계단에서, 친구와 엄마 아빠도요. 선생님은 항불안제를 처방해 줬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눈 질끈 감았다. 하필 솟아오른 자리에 앉아서 이 밑이 바퀴인지 엔진이니 모르겠어서. 너무 무섭다.

 

불안이 사람 미치게 하는 기폭장치가 아니래. 보호 장치래. 그 뒤에도 무슨 말 더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뇌의 어디가 뭐랬는데. 불안도 역할이 있데. 위험 또는 위협을 감당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할 시간을 주는 거다. 나 안 죽게 하려고, 작동하는 무수히 작동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피의 압력, 근육과 살덩어리. 자라는 손톱. 전부 살고자 하는 것들. 아무튼 그러니까 불안은 나를 보호하는 장치이고 근데 작동하고 작동하다가 너무 열심이다가 작동 안 해도 되는데 솥뚜껑 보고도 자리인줄 알고 막 작동하고 그런다는 거지?

 

그럴 수도 있지. 너는 모르지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이 얼마나 사람을 구하는지.

 

그건 아주 작아서 평안한 마음. 어떤 파형도 일지 않는 마음. 아주 선명하게 작은 마음. 몇 번이나 기억해도 좋을 대로인 마음. 도려낼 수 없어도 그저 그만인 마음. 그런 미래라면 가 봐도 좋다는 생각을 했어작아진 것들이 많아진 미래. 큰 걸 가지고 싶은 게 아닌 거 같아 나는. 아주 작은 것들을 가지고 싶다. 들려? 내 목소리? 작아진 것들이 많아진 미래, 대단치 않은, 그런 미래로.

 

2020년에 20이 둘이라고 좋아하던 거 생각난다. 그치. 희귀한 자동차 번호판을 발견한 것처럼, 운 좋은 것처럼 굴었잖아. 너는 잊었니? 나는 아직 그 생각을 해. 네가 곁에 있었어도 나는 생각을 해. 그리고 그런 게 좋아. 우리여서, 누군가 잊어도 우리로 가지게 되는, 그런 2020년이었어. 세상이 축복으로 넘치기 전의. 고요와 긴장감. 그런 게 있다. 12월의 31일에는 서서히 들끓는 마음의 바닥을 누르며 괜히 가만히 있게 된다. 무엇이 달라지지요? 마음이 달라져요. 새해가 되면은요.

 

반드시 행복하세요. 행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자주 어떤 대답도 돌려줄 수 없었다.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만난 것처럼. 왜 일까 행복 하라는 말에 그래, 나 행복할 게 답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이야? 너도 행복해. 돌려줄 수 없는 것은 어째서야? 가슴이 아파오는 것은 무엇 때문에? 행복 하라는 말에 겨우 고마워 받아 들고 말았어. 그게 거짓은 아니었지만 내가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네가 행복하다면 좋겠지만. 행복 하라는 말에 도무지 답할 수 없는 마음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에? 행복이 뭘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행복은 행복이라고 밖에 답할 수 없는 막연함이 때로 슬픔이 되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