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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설레는 책을 읽다. 『못 갖춘 마디』, 윤혜주, 북랜드, 2021

그루 터기 2022. 2. 27. 21:19

#못 갖춘 마디,

#윤혜주,

북랜드, 2021

 

 

 

또 한 번의 가슴 설렘을 감당할 수 없었다.

 

몇 달 전 먹을 갈다이후에 이렇게 첫 꼭지 글에서부터 정신을 빼앗긴 적이 없었다. 둥둥거리는 가슴을 어찌하지 못하고 두 번째 꼭지 그 때 그 사람을 만났다. 메모를 하는 손이 벌벌 떨린다. 수필의 생명은 사실감의 표현이라고 배웠다. 아니 들었다. (저는 문학관련 교육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요) 이 책의 글들에는 두드러진 사실감과 찰떡궁합을 연상케하는 적재적소의 단어들과 표현들이 나의 가슴을 두드린다. 두 꼭지를 읽고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커피를 한 잔 내려 천천히 마셨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마음을 가다듬고 세 번째 꼭지 <그 강이 깊어질 때>를 폈다.

 

가을이 부쩍 수척해졌다. 여름내 가들막하던 강물도 시나브로 여위어졌다. 푸른 별 밭 가득한 강가에 풀벌레 소리 가득하다. 귀뚜르르 왕귀뚜라미가 가야금 줄 고르듯 청아하게 울면, 히리이링 히리이링 방울벌레 귀뚜라미가 응답하듯 구슬프게 운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소리다. 사랑이란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한 폭의 그림처럼, 한 곡의 슬픈 노래처럼 잔잔하게 가슴을 두드린다. 이렇게 따스한 글을 쓰시는 분은 마음도 따뜻하다고 믿는다. 이 꼭지의 마지막을 읽으며 주책스럽게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다시 조용히 책을 덮는다. 표현력이 부족한 나는 더 이상 어떻게 이글을 표현할 수가 없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몇 번이나 다시 책을 덮을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얼마나 더 진정시켜야 할지.

 

<닭장>에 이르러서 기어코 또 한 번 책을 덮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두 번을 다시 읽어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다. 아마도 난 이 책에 미치고 작가를 사모하게 된 것 같다. 더 이상 하나 둘 더 나열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 둘러댄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가슴을 떨게 한다. ( 닭장을 읽고 나서 확인해보니 역시 이 글은 월간<한국수필>에 등단한 작품이었다.)

 

한 꼭지 한 꼭지를 넘길 때마다. 잘 쓰여 진 단편 소설을 보는 듯하다. 수필을 읽으면서 소설처럼 이라고 느낀 것도 그리 많지 않다. 수필은 사실을, 소설은 픽션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나는 소설도 사실을 위주로 쓰는 글이라 생각한다. 그래야 독자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살아있는 소설이 될 것이다. 문득 수필이 소설 같은 생각이 들 때, 이런 느낌이구나하고 다가온다.

몇 꼭지 남지 않은 글들을 넘기기가 아깝고 두렵다. 잠시 책을 덮고 거실 밖의 풍경에 눈을 준다. 늦추위의 괴롭힘을 견디며 새봄을 맞을 준비를 하는 목련꽃 몽우리가 며칠 사이에 엄지 손톱크기에서 밤알 만하게 커졌다. 지나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며 다가오는 봄을 재촉한다

 

책을 빌려올 때 기대보다 실망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데 어떤 땐 큰 기대없이 빌려왔는데 이렇듯 감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사실 살짝 기대를 하고 빌려왔다. 먼저 2021년 문학나눔선정 도서이다. 작가 소개를 봤다. 내가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등단여부와 동연배인가 하는 것이다. 소설가나 시인의 에세이도 비교적 성공확률이 높다. 더군다나 지속적으로 신문에 연재를 하셨다고 하니 기대할 할 만하다. 소설가나 시인은 아니셨지만 나의 예상은 올림픽 양궁 과녁의 중계카메라를 정통으로 맞춘 화살처럼 나의 심장을 관통했다.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가슴 떨림을 느꼈는지 모른다.

 

무엇에 대해서 글을 썼느냐가 이과 출신의 내가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썼느냐가 작가의 몫이었다. 내가 글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작가는 예술적인 감각으로 글을 이어갔다. 나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평상시에 글을 써온 사람도 아니고, 짧게라도, 글쓰기도 배워보지 못한 사람이다. 최근에 와서야 독서도 많이 하고 글쓰는 흉내도 내어보는 초보 중에 왕초보라서 잘 쓴 글과 잘 쓰지 못한 글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 가슴에 와 닿는 글은 느낌으로 안다.

이제까지 내가 읽은 수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 닮고 싶은 글. 배우고 싶은 글. 오늘 한편의 참고서를 얻은 기분이다. 필사는 기본이다. 이젠 몇 번의 필사인가가 남은 일이다.

 

작가님께 감사한다. 많은 욕심 중에 작가님의 새로운 책을 기다리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