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그루터기의 일상사

그루터기의 취미생활

그루 터기 2022. 7. 4. 17:22

 

그루터기의 취미생활

 

누구나 살아오면서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고 지낸다. 옛날에 열정을 바쳐서 좋아 하다가 언제 그런 취미가 있었나 할 정도로 잊어버린 게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취미생활을 해 오신 분들도 있을 거다.

 

나는 어떤 취미가 있었나. 지금은 어떤 게 나의 취미일까. 한 번 생각해 봤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 중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있다. 베이비부머세대는 1955~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하는데 그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 고도성장의 주역으로 경쟁사회로 대표되는 그 세대들은 먹고 사는데 모든 것을 올인 하다 보니 취미 생활은 사치였다. 그나마 나는 남들에 비해서 비교적 다양한 취미 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꽤나 여러 가지 취미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 시골 친구들이면 모두 하는 다양한 놀이를 했었다. 그런 것들은 취미 생활이라기보다는 그냥 어릴 때 놀이였다. 꼭 골라보라고 하면 초등학교 때는 남들 보다 좀 많이 했던 것이 만화책 보기였던 것 같다. 지금은 만화책도 좋은 교양서적으로 생각하는데 그 땐 만화책을 읽는 것은 독서라고 인정해 주지 않았다. 만화책을 보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혼이 날 정도로 좋지 않은 책으로 간주되었다. 주로 공부는 하지 않는 불량한 애들이나 보는 것으로 취부 되던 때였다. 나는 제법 공부도 하고 불량소년에 낄 정도는 아니었는데 만화책을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주로 만화책을 다른 마을의 선후배나 친구들과 바꿔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아이러니하게 만화를 좋아했던 저는 평생 만화방에는 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요즈음 유행하는 인터넷 카툰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고등학교 때는 우표 수집, 기타 치기, 하모니커 불기,

중학교 때부터 웬만한 사람들은 한 번씩 해 봤을 법한 우표 수집을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수집을 했고 많은 우표가 있었는데, 군대 갔다오니 막내 동생이 사용하지 않은 우표는 모두 없애고(그때 기념우표를 발행하면 한 짱씩 사다가 어느 날 부터는 명판(?)을 사고, 직장을 다니기 시작해서는 전지도 많아 샀었는데 한 장도 없다.) 나머지 사용한 우표도 대부분 없애고, 몇 장만 남아 있는데 사진 앨범 속에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등산을 좋아했다. 혼자 다니는 등산도 좋아했다. (주왕산에 혼자 등산을 갔다가 같은 학교 친구들을 만난 적도 있다.) 입대하기 전에는 일주일 종안 제주도 일대와 한라산 등반을 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토요일밤만 되면 기차를 타고 전국 각지의 산에 혼자 다녔다. 한라산도, 지리산도, 소백산도, 속리산도 목표도 여수도, 모두 혼자 여행을 다니고 산행을 했었다. 

제대를 하고 나서는 행글라이더를 타러 다녔는데 오래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행글라이더를 하려면 경비가 좀 드는데 그때 수입이 넉넉하지 못하고 착륙 사고도 한 번 있었고, 몇 년 하다가 그만 뒀다.

 

사진를 취미로 시작하던 때가 그때였던 것 같다. 제대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우연히 카메라를 샀다.  독학으로 카메라 공부를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하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주로 사진을 찍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한 번에 필름 13통을 들고 가서 모두 찍은 일이었다. 물론 몇 장 마음에 드는 사진도 있었지만 그날 찍은 사진이 지금은 하나도 없는 것을 보니 별로 였던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사진은 인화를 했는데 어느 날 보니 A1크기와 비슷한 액자들은 여러 개 만들어 친구와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뿌듯한 사진도 있지만 부끄러운 사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잠깐 배운 당구, 볼링(그 땐 볼링 인구가 별로 없었는데 연속 스트라이크를 8번인가 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조금 했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독서도 한 동안 취미였던 것 같다. 부끄럽다고 표현하는 것에는 독서를 취미라고 표현하기가 좀그렇다는 거다. 그래도 취미라고 표현하는 것은 남들보다 좀더 많이 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인데 매주 토요일을 외식과 서점을 들려 책을 사는 날이었다. 각자 책의 종류에 관계없이 3권씩 샀는데 나는 주로 에세이집을, 아내는 주로 소설책을, 애들은 만화책부터 다양하게 샀던 기억이 난다. 토요일 산 책은 그날 밤부터 빠르면 다음날인 일요일까지 다 읽어버리고 일주일을 기다리면 살았던 기억이 난다. 미쳐 읽지 못한 책은 출퇴근이나 거래처에 갈 때 운전을 하면서 막히는 곳에서도 읽고, 자동차를 달리면서도 읽고, 아주 위험한 운전을 했었는데 그 나쁜 운전 버릇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요즈음은 달리면서 자꾸 핸드폰 문자를 주고 받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아마추어 무선사()에 빠졌다. 그 때부터 뭔가에 한 번 빠지면 집중하는 버릇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도 최고 단계인 1급까지 취득하고, 아마추어무선연맹에서 강사로도 활동했다. 책도 한 권 정리를 해서 인터넷에 올렸었다. 그때가 하이텔 시절이다. 블로그를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것도 그때부터 카페나 동호회 등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된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음에 시작한 것이 스킨스쿠버였다. 여기서도 한 10년동안 열심히 다녔다.  스쿠버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사보고(지금도 집에 10권 정도 남아있다. )  스터디도 하고, 강사님들과 집체 교육에도 참석했다.(강사는 아니었지만 이론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나 혼자만 끼워줬다.) 관련 자격증도 많이 취득했는데 돈도 들고 직업으로 하는 강사 자격만 빼고, 오픈워터를 시작으로 고급과정인 마스터까지 취득하고, 바다에 가면 항상 초보 가이드역할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취미생활을 시작하면 뭐든지 끝까지 간건 아니다. 시작만 해 놓고 하지 못한 취미도 있다.

행글라이더에 대한 미련이 남아 페러글라이더를 구매한지 15년이 넘은 것 같은데 아직도 버리지도 못하고 미련을 가지고 있다. 가끔 한 번씩 펼쳐보면 아직도 쌩쌩한데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라서 사용하기가 좀 그렇다.

스킨스쿠버 장비는 오랫동안 묵혀 놨다가 작년에 버릴 건 버리고 아까운건 같이 입문해서 아직도 가끔 바다에 나가는 친구에게 줬다. 다른 건 다 미련이 남지 않는데 영국에서 맞춰온 드라이슈트는 마지막까지 아쉬움이 있었다. 그 때 200만원 정도의 돈을 들여서 주문했었던 아주 고급 슈트다. 우리나라 남극 근무 대원들이 얼음물에 빠졌을 때 동사하지 않도록 입는 옷과 같은 슈트였다.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취미생활의 장비가 또 있다. 아마추어무선사용 무전기 들이다. FM무전기 몇 대와 휴대용 무전기 몇 대, 그리고 AM단파 무전기와 안테나까지, 부피가 큰 안테나와 케이블 들은 다 버리고 무전기가 창고에 있는데 아내는 필요한 사람 주라고 성화다. 내가 그걸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오랜 애착이 가는 것도 있지만 나이가 좀 더 먹고 혹시나 시골 생활을 하게 되면 성능 좋은 안테나 하나 설치하고 교신을 해 볼까하는 욕심이 있어서다. 사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핸드폰이 발달해서 무전기로 연락을 하는 사람을 거의 없기도 하다. 그냥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건 취미생활일까 뭘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자격증 취득이나 교육 받기다. 자격증 취득 교육도 있고, 정말 취미를 위한 교육도 있다.

옛날부터 교육 받는 것도 좋아하고 자격증 취득하는 것도 좋아해서 가끔씩 시간내서 공부를 했다.

지금은 사용하는 자격증이 운전면허밖에 없는 것 같은데 왜그리 자격증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꼭 따진다면 성취욕정도라고 할 것들이다.

 

제일 황당한 자격증 하나가 있다. 레저보트 면허증 1, 말하자면 배 운전면허다.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앞으로 보트도 하나사서 취미 생활을 하고 싶다라는 단순한 생각에 친구 따라 교육을 받고(그 때 1급 교육비만 50만원이었던 것 같다.) 취득한 자격증인데 지금도 가지고 있다. 자동차 운전면허와 비슷하게 7년 마다 갱신을 위한 교육도 받아야 하는데 벌써 두 번을 받고 세 번째 교육이 가까워졌으니까 20년이 다되간다. 그런데 면허를 취득하고 나서 배 운전대도 한 번 잡아보지 못했으니 말 그대로 대표적인 장롱면허다. 그것도 1급이다.

 

가장 아쉬운 취미 생활이 하나 있다.

초경량비행기 조정이다. 꼭 해보고 싶었던 취미생활인데 마음만 먹고 실천을 못했다. 20여 년 전 안산의 비행교육장을 찾아서 몇 만원을 내고 체험 비행을 한 이후 푹 빠졌는데 마음만 빠지고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자격증을 취득을 위해 20회 이상 비행실습을 해야하고, 교육도 따로 받아야 하는데 기억으로는 250만원 정도의 교육비가 필요했던 것 같다. IMF 시절 쯤인 그 땐 살아가기가 빠듯하고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희망사항 중의 하나이다.

 

또하나의 하고 싶은 취미 생활을  꼽는다면 스카이 다이빙이다. 이건 취미생활이기보다 체험 다이빙을 해보고 싶다. 해외 토픽에 90세가 넘은 분들의 다이빙 소식이 가끔 전해질 때마다 나도 과연 할 수 있을까 두려고, 안타깝다.

 

그 외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섹스폰도 배우고 싶고,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고 싶다. 연필로 그리는 그림이나 간단한 채색을 할 수 있는 그림 정도이면 좋다. 혼자 앉아서 스케치북에 연필로 쓱쓱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보면 정말 부럽다. (그림을 전공을 한 전문가가 나는 이해도 잘 못하는 그림을 그린다거나 클래식을 전공한 사람들이 졸리는 노래를 부를 때 감상하는 것 보다는 사실위주의 스케치나. 트로트 음악이 더 마음에 닿는 것은 예술쪽에 감각이 둔한 나에게는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

 

지난 20년간 열심히 했던 취미생활중의 하나가 골프다.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가 그렇듯이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거의 10년 이상을 매일 새벽 2시간씩 연습을 빠트리지 않고 했었다. 한 동안은 새벽에 2시간, 퇴근 후 2시간 씩 연습을 하던 때도 있었다. 어떤 땐 일요일 남녀주 파3(지금은 없어진)에 종일권을 끊어 하루 20바퀴 정도 돌았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그 때 첫 싱글도 하고 거리도 많이 늘고 샷도 정교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때가 골프의 전성기아 아니었을까?

 

이제 나이가 먹고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 무얼까 고민을 하는 시기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목공도 해보고, 사진도 다시 배워보고, 드론도 배우고, 캘리그라피이기도 배우고 한다. 아직까지 취미라고 까지 할 수 없지만 어느 날 갑자기 취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평생 취미생활이 뭘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한 번 좋아했는데 아직까지 계속 하고 있는 것이 무얼까?

굳이 꼽자면 사진과 독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굳이 꼽자면이라고 표현한 것은 열정적으로 계속 유지한 취미는 아니고 조금 소원한 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도 좋아하고, 조금씩이라도 하고 있어서다. 어쩌면 독서가 오늘 이 순간에는 가장 핫한 취미이기도 하다.

 

모처럼 앉아서 지나간 취미 생활의 추억을 돌아보니 행복하다. 그리고 꽤 여러 가지 취미가 있었구나 생각되고, 돈도 좀 썼네.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취미에 대한 기대가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아침이다.

 

캘리그라피에 푹 빠진 요즈음 하루가 모두 캘리그라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