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 나태주, 시 와 에세이, 2021

그루 터기 2022. 11. 26. 09:08

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 나태주, 시 와 에세이, 2021

 

나태주 시인님의 책을 꽤나 여러권 읽기도 하고 필사도 여러권 했다. 저절로 암기가 되는 시도 있으니 말이다.

많은 책을 내다보니 중복되는 시들이 많아서 가끔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 책에는 새로운 시들로 채워져 있다. 이제까지의 시가 동심을 흔드는 시였다면 이번에 좀 다른 시들이다. 우리 보다 연배이신 선생님의 생각이 이마 나에게도 다가와 있다는 걸 느끼며, 나태주 시인의 새로운 내면의 시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

 

 

 

저자 소개

나태주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1971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대숲 아래서, 막동리 소묘, 산촌엽서, 눈부신 속살등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흙의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충남 공주에 살면서 나태주 풀꽃문학관을 설립·운영하며 풀꽃문학상, 해외풀꽃시인상, 공주문학상 등을 제정·시상하고 있다. 또한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작가의 말

본래 시집 이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시집을 정리할 때 내가 붙인 이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버더레스(nevertheless). 앞부분의 부정적인 상황을 뒤집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판이 기울었거나 나빠졌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고 다시 시작해보자 용기를 낼 때 나오는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좋아하고 자주 써 왔다. 그만큼 내가 처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그것은 내 개인의 형편만 그린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하루하루는 그 무엇도 녹록하지 않다. 위태위태 살얼음판이다.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바닥이 난 그 지점에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에 오늘날 젊은이들 입에서는 포기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다란 말이 나돌고 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나의 시는 여전히 짧고 단순하고 쉽고 임팩트 있게에 의존해서 쓰여진다. 2020년 코로나19 기간 동안에 쓰여진 시편들이다. 좀 과하게 썼다. 밖에서 오는 자극이 강하고 복잡해서 그리 되었노라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실상 내가 바라는 반응이나 변화는 아주 작은 것이다. 한 마리 나비의 나랫짓이거나 벌레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다. 이것들이 독자들에게 가서는 큰 울림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우선 양문규 시인이 주재하는 문예지 시에1년 동안 연재되었던 원고들이다. 그때도 역시 양문규 시인의 후의에 의한 것이었는데 시집 출간도 양문규 시인의 보살핌에 의한 것이다. 오래된 우정에 감사드리며 시집 이름 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는 양문규 시인이 달아준 이름표이다. 나에게도 고맙지만 독자들에게도 고마운 일이 되기를 바란다. 2021년 새봄에 나태주

 

 

독서 메모

 

사랑

 

생각만 해도 봄이 되고

가까이만 가도 꽃이 피고

어쩌나!

안기만 해도 바다가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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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커피

 

마음이 변해버린 여자

그래도 쉽게 잊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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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보고 싶은 사람 보았으니

이제 갈게요

 

아니 조금만 더

머물다 가시지 그러세요

 

아니에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

만나주러 가야해요

내년에 다시 찾아올게요

해마다 그렇게 봄은 왔다가 갔다.

 

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에도

자거나 심지어 앓고 있을 때에도.

 

*그렇게 봄은 나에게 74번째 다녀갔고 나는 이제 75번째 봄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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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를 하다가

 

안경 벗고 찬물에 세수하다가

거울을 바라보면 거기

아버지가 와 계신다.

그것도 늙은 아버지시다.

 

웬 아버지?

정신 차려 다시 보면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얼굴

 

아버지를 피해

아버지 반대 방향을

오래 많이 온 것 같은데

일생을 두고 내가 만들어낸 것은

또 하나 어버지의 얼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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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은 먼곳이 잘 보이고

흐린 날은 기적소리가 잘 들렸다.

 

하지만 나는 어떤 날에도

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