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취미생활과 일상사/독서 메모

『사랑이더라』, 김행숙, 청어, 2019

그루 터기 2022. 11. 28. 22:25

사랑이더라, 김행숙, 청어, 2019

 

아버지의 기일이라는 시를 읽고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요즘 자주 아버지 생각이 나고,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난다. 죄송스럽고, 미안한 아버지, 한 달 후면 아버지 기일이다. 그날이면 아버지와 내가 동갑이 된다. 더 이상 나이를 잡수지 않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추월하는 내가 되었다. 한 없이 커 보이고 늙어 보이시던 아버지가 이제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언제나 든든했던 아버지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보내드린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주위의 가까운 혈육들을 먼저 보내고 슬퍼하는 시인의 마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저자 소개

김행숙

부산 출생, 새시대문학 등단, 2009년 새시대문학 작품상(본상) 수상, 2012년 새시대문학 작가상(본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밀양문인협회 회원, 밀양문인협회 전 부회장, 문학세계가 뽑은 2016년도 빛낸 100인 선정

시집 : 내 작은 사람들, 잎새 하얀 그리움, 사랑이더라

 

 

 

 

독서 메모

 

 

 

내장사 가는 길

 

시간과 공간에 뒤엉켜

빨갛게 땅 위에 몸을 누인 이파리

그냥 떠나보내기에는 아쉬운 계절

가을, 끝자락에 서다

 

길 따라 고운 빛깔이

가을바람에 흠뻑 젖어

아직도 흔들리는 그대 마음위로

하나씩 하나씩 낙엽비를 뿌리고

조금씩 쌓여가는 붉은 별의 숨소리

 

산천은 곱게 늙어 가는데

되돌아갈 수 있는 시간은 없나요

시나브로 묵은 피를 토해 담금질하는 이파리

단풍, 길 위에 쓰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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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기일에

 

거무스레한 잎들이 얼어버린 채

울음마저 토해놓은 차가운 밤

새까만 어둠을 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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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려나

 

웅크리고 앉은 채 바라본 길 위로

겨울비 한없이 쏟아져 내리는데

앞을 다 털어버린 나무 같은 당신을

지우고 비우고 또 잊어버리고

 

오늘밤

정성스레 작은 등불 한 밝힙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어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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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며칠째 꿈속에 당신이 찾아왔습니다 .

무슨 일일까

보고픔이 당신께 전해졌는지

하얀 달이 자목련 가지에 베이는 날도

오늘처럼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날도

당신을 생각하곤 합니다.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지요

, 내일이 음력 오월스무사흘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입니다 .

삼십칠 년 전 조금만 더 살아달라고

애원하며 당신을 보낸

가슴 아픈 날이기도 합니다.

 

 

(먹먹한 마음으로 책을 닫는다)